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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선 '호구', 안에선 발길질하는 좀비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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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선 '호구', 안에선 발길질하는 좀비 정부"

[한반도 브리핑] 한반도 디브리핑 : 한일관계와 사드배치

이 칼럼의 코너 이름이 '한반도 브리핑'이다. '브리핑'은 주로 사전에 정보나 지시사항 등을 요약해서 전달하는 행위를 뜻하는 용어다. 그런데 '디브리핑'(debriefing)은 상황이 끝나고 난 뒤 요약하고 평가하는 행위를 말한다.

현재 우리 대외정책에 있어 두 가지 이슈, 한일관계와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에 대해 디브리핑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둘은 물론 여전히 진행 중인 사안들이지만, 사후에 진행하는 '디브리핑'이라고 규정한 것은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지금까지 일본의 반성과 사과 없이는 '외교관계 올스톱'이라는 강경책을 고수해왔으며, 대북정책과 마찬가지로 실용보다는 원칙의 날을 세워왔다. 그런데 느닷없이 대(對)일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하이라이트는 한일 두 나라 정상들이 각자 서울과 도쿄에서 상대국 정부가 주최한 한일국교 정상화 50주년 기념행사에 교차 참석해 기념사를 하는 '깜짝쇼'였다. 형식도 전격적이었지만, 내용도 과거에 매여있지 말고 희망찬 미래를 향해 함께 나가자는 것이었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어리둥절한 그림이 아닐 수 없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6월 22일 오후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주한 일본대사관 주최로 열린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 리셉션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박 대통령 뒤로 한일기본조약 비준시 사용된 병풍이 서 있다. ⓒ연합뉴스

단순한 해프닝일까? 아니면 '대책 없는 강경책'에서 이제는 '대책 없는 관계개선'인가? 처음 매듭을 묶었던 아베는 바뀐 것이 거의 없는데, 박근혜 정부가 스스로 풀려는 이 상황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럴 것이었다면 지금까지 왜 그렇게 강경했을까? 그냥 기분이 삐쳐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화가 저절로 풀려버린 것일까?

한일관계 개선의 당위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단절에 가까운 한일관계는 결코 우리 국익의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않으며, 변화는 있어야 했다. 한일 갈등이 장기화되자 보수·진보할 것 없이 관계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힘을 얻어온 것은 맞다.

그런데 이런 느닷없는 변화의 배경과 구도가 우려스럽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위안부' 문제가 핵심사항이고 반드시 해결되어야 마땅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님에도, 한일 갈등 관계를 위안부 문제로 좁혀서 그것만 해결하면 모든 것이 풀리는 구도로 몰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독도, 재무장, 야스쿠니신사 참배, 교과서 등 한일 간에는 많은 문제들이 있는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아베 정부가 약간의 진전된 자세만 보여도 모든 장애물을 걷어주고, 더 나아가 다시는 재론하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50년 전 싼값에 성급하게 던진 면죄부가 재현되는 조짐이다.

이 모든 변화 뒤에 미국이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운신의 폭은 앞으로 더 좁아질 가능성이 크다. 웬디 셔먼 국무부 정무차관의 과거사 발언을 시작으로 최근 방한했던 케리 국무장관의 일본 두둔 발언을 보면, 미국이 한국의 등을 떠밀었고, 한국은 이제 온몸을 맡기며 떠밀리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아시아전략에 '눈엣가시'로 여겨졌던 한일갈등이 해결의 방향을 잡은 것으로 간주하고 서울과 도쿄의 이벤트에 곧바로 환영의 뜻을 밝혔다. 미국이 그리는 동북아라는 장기판에서 한국이 전형적인 졸의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냉전동맹 네트워크를 강화해 중국을 견제하고 아시아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미국과 일본의 재무장이 만나 신(新)냉전 질서 구축이 본격적인 시동을 걸고 있는 와중에, 한국은 일본의 우경화에 디딤돌 역할까지 자임하면서 미·일이 세운 프레임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돌아보면 우리가 미국을 동원해서 일본의 '못된 버릇'을 고치려고 했다지만, 오히려 일본이 미국을 동원해서 '고집스런' 한국을 굴복시킨 셈이 되었다.

박근혜 정부는 대일정책의 근간을 과거사 등 갈등 이슈들과 다른 현안들을 분리해서 대응한다는 '투 트랙' 접근이라고 주장해왔다. 강경할 때도 그랬고, 관계개선을 모색하는 지금도 그렇게 말한다. 그런데 둘 다 실체는 투 트랙 외교와는 거리가 멀다.

지금까지의 대일 강경론은 일본의 사과를 전제조건화해서 같이 묶어버렸고, 이제는 그냥 한방에 '퉁'치고 갈 수 있게 길을 활짝 열어준 것이다. 진정한 투 트랙 외교를 회복하는 길이 제대로 된 대일정책이지만, 그럴 생각과 능력 모두 없어 보인다. 그런데 사실 한 꺼풀만 벗겨보면 이해하기 힘든 것도 아니다. 박근혜 정부가 국내 정치에 이용하기 위해 썼던 반일(反日)의 가면이 이용가치가 떨어져서 벗은 것뿐이라는 해석이 더 설득력을 가진다.

사드 배치도 대일외교와 매우 유사한 패턴을 보인다. 지금까지 정부는 전략적 모호성에 기반해 요청한 적도, 협의한 적도, 결정한 적도 없다는 '3No'(No Request, No Consultation, No Decision)를 공식적인 입장이라며 선을 그어왔지만 결과는 반대로, 그것도 생각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흐르고 있다.

전략적 모호성이라 함은 전략적 사고를 통해 의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지, 무대책이나 눈치 보기로 일관하는 것은 아니다. 전략적 모호성이 아니라 '전략 없는 모호성'을 틈타 미국 국방부는 물론이고, 주한 미군 사령관까지 주재국의 정부정책에 반하는 월권적인 언급을 수시로 하면서 사드 배치에 불을 지펴왔다. 어떤 항의나 조치조차 없었던 정부의 행보는 이해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그러다가 대일정책의 전격적 변화처럼 사드 배치 문제도 급물살을 타는 분위기다. 미국의 사드 배치에 대한 압박에 가까운 언급들이 국방부를 넘어 국무부로 확대되고, 발언 수위도 눈에 띄게 높아졌다. 지난주에는 로즈 미 국무부 차관보가 한반도에 아예 사드의 영구적 배치 결정을 고려하고 있다고까지 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사드 배치와 관련해 실무검토에 착수했다고 했다. 한미 간 협상이 남았다고 하지만 순식간에 사드의 한국배치가 기정사실화되는 모양새다.

▲ 사드의 실험 발사 장면 ⓒAP=연합뉴스

되돌아보면 지금까지 계속 회피로 일관했던 정부의 행동은 사드가 북한 미사일 위협에서 한국의 안보를 위해 필수적이라고 하는 주장과 달리 '미국을 위해 중국을 겨냥한' 무기라는 것을 행동으로 확인해준 것이었다. 이제 비용문제는 물론이고 미국에 어떤 반대급부도 제공 받지 못하고 대일외교처럼 등 떠밀리는 형국이다.

박근혜 정부의 외교는 지금까지 원칙 외교도 아니었고, 실용 외교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냥 무(無)외교·무(無)전략에 가까웠으며, 그러는 동안 국익은 줄줄 새버렸다. 세월호에서 메르스까지, 그리고 대북정책에서 외교까지 어떤 일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무능한 정부다. 국가들 사이에서는 '호구'로 '갈 지(之)자'걸음이고, 국민들에게는 발길질하는 난폭하고 무능한 좀비 정부 같다.

박근혜 대통령과 윤병세 장관이 한일 사이의 협상에 진전이 있었고 일본의 자세가 전향적으로 바뀌었다는 식으로 말하지만 아베가 예정된 담화에서 기존 입장을 고수할 경우 대비책은 있는가? 한일정상이 악수하고 약속한 다음, 차후 다시 망언이나 어긋난 행동을 할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미국이 사드 배치 비용을 우리에게 전부 부담하라고 요구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주권과 내정간섭 논리 외에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을 무마할 방책은 있는가? 어느 하나 신뢰를 줄 만한 대안이 이 정부에서는 나올 것 같지 않다.

가장 심각한 우려는 이 두 사안이 공통적으로 주변국의 군비경쟁을 본격화시키는 큰 방향으로 가고 있으며, 우리는 그 사이에서 화약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위태롭게 이어져 온 지난 60년간 전쟁도 평화도 아닌 불편하고 불안한 한반도의 상태가 해결은커녕 다시 대결로 갈 조짐을 보인다.

북한의 위협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을 넘어 제거하겠다는 한미의 과도한 욕심이 한반도의 안보를 악화시키고, 중국의 부상을 상호공존으로 유도하기보다는 군사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미·일의 과도한 욕심이 동북아의 평화를 흔들고 있다. 대북관계개선을 통해 대결의 사슬을 끊는 것만이 이러한 배타적 진영을 뛰어넘을 수 있고, 시시각각 깊어지는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에도 박근혜 정부는 계속 외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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