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공천권 얘기 나오면 국민이 실망한다"

"당헌당규에 잘 정리돼 있다…사람과 운영이 문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24일 오후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와 선거 이후 첫 공식회동 자리에서 당청관계-공천권 등을 둘러싼 당내 갈등에 대해 "(현행) 당헌 당규에 잘 정리돼 있는 것 같다"면서 "당헌당규를 고친다든지 하는 문제는 앞으로 이야기 안 하는 게 좋겠다"며 '논의 종결'을 선언했다.

이 당선자는 "결국 사람과 운영이 중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제도적 문제를 언급해 분란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박근혜 전 대표측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계산도 깔려있다.

또한 이 당선자는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당 대표와) 주례회동과 같은 정례회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례 '보고'가 아니라 정례 '회동'이라는 이야기지만 이름이 무엇이든 현 정부에 비해 대통령의 여당 장악력은 강력해질 것으로 보인다.

"취임 후에도 정례회동이 필요하다"

▲ 24일 이명박 대통령당선자가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연수원 당선자사무실을 방문한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날 두 사람의 회동은 모두 발언 외에는 비공개로 진행됐다. 배석했던 박형준 대변인에 따르면 강 대표가 먼저 당청관계 이야기를 꺼냈다.

강 대표는 "대통령은 당의 정강정책을 반영하고 국정수행하고, 당은 대통령 보좌하고 공동책임 진다는 부분이 현행 당헌당규에 잘 나와 있다"고 말했다.

강 대표의 말에 동의한 이 당선자는 "규정이 아무리 좋아도 사람과 운영이 결국 문제인데 당청이 협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참여정부에 비해 청와대의 정무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데 뜻을 같이한 두 사람은 정무수석 부활 등에 대해 논의하고 취임 전 수시로 회동키로 했다. 이 당선자는 "취임 후에도 (당 대표와) 정례회동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날 회동에서 공천권 문제 같은 구체적 사안은 언급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당선자는 "신문을 보니까 우리가 '공천 문제 때문에 뭐 어떻다' 해서 깜짝 놀랐다"면서 "우리 당이 그런 것 갖고 시끄럽게 할 때가 아니다. 그런 이야기가 나오면 국민이 실망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논의가 완전히 종결된 것은 아니다. 배석했던 박 대변인은 "우선 인수위 구성 문제가 있으니 그런 문제는 인수위 구성보다 천천히 하겠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말했다. '나중에 보자'는 이야기다.

"당 인사도 인수위에 좀 참여시켜 달라"

한편 강 대표는 이 자리에서 당의 '민원사항'을 전달하기도 했다. 그는 "당의 정책이 인수위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해 달라"면서 "당의 정책기능을 담당했던 사무처의 전문 인력도 인수위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게 필요하다"고 건의했고 이 당선자는 "적극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또한 강 대표는 이날 '학자 중심의 인수위가 될 경우 실패하기 쉽다. 관료들을 설득할 정치력도 필요한 것 아니냐'며 당 최고위원회의 논의 결과를 전했다. '당 인사들도 인수위에 좀 많이 끼워달라'는 이야기지만 당선자는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현재 사무처를 비롯해 한나라당 안팎에선 인수위 진입 경쟁이 극에 달해있다. '야당 10년'을 지내온 당직자들의 기대수준도 높은 편이다.

박 대변인은 "당선자 표정으로 볼 땐 '일리가 있는 이야기'라는 반응이었다"고 주장했지만 강 대표의 이같은 요구사항이 전면적으로 수용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이날 이 당선자는 28일 정기국회에 대해 자신의 공약사항이 예산에 반영될 수 있는 방도를 찾아보라면서 "한미FTA도 (처리)하고 예산안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선 이후 이날 첫 회동에서 당 대표와 대통령 당선자의 '신분 차이'는 여러 면에서 도드라졌다. 이같은 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현격해질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이 '대통령과 그 외 다수'로 재편되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