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대한민국 관료들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맞아 축소 지향과 낙관론을 펼치다 국가 위기를 초래하고 있는가. 이는 관료들이 태생적으로 그런 문화에 젖어왔기 때문이다. 관료들은 몸에 축소 지향의 디엔에이(DNA)를 지니고 있다. 특히 사회 재난이나 위기 발생 때 이 디엔에이가 더욱 잘 발현된다.
의사를 비롯한 전문가들도 대체적으로 그런 경향을 보인다. 메르스 방역을 맡아 최일선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질병관리본부를 비롯한 보건복지부 관료들과 삼성서울병원 등의 의료진, 그리고 정부의 메르스 방역 자문을 맡으면서 긴급 대응팀의 공동 구성원이기도 한, 국내 내로라하는 감염내과 최고 전문가들 또한 관료들과 동일한 감염병 낙관 디엔에이를 지니고 있다.
이런 특성은 발생한 위기, 그리고 앞으로 진행될 위기에 대해 낙관적으로 사고하게끔 만든다. 이들은 과잉 대응이 아니라 과소 대응을 좋아한다. 나쁜 소식은 알리지 않거나 최대한 발표를 늦추고 좋은 소식은 앞뒤 재지 않고 일단 저지르고 본다.
컨트롤 타워가 '낙관 바이러스'에 감염
박근혜 대통령이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소통이 잘 되지 않는 불통 문화에서는 윗분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정보는 최대한 잘 알리려 하지 않는다. 낙관론을 펼치는 사람이 득세를 하기 마련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최근 행보와 발언, 즉 '중동식 독감' '손만 잘 씻으면 된다' '국민들이 괜한 공포를 느낀다' 따위를 보면 그 또한 관료와 전문가들과 같은 '낙관 바이러스'에 감염된 듯하다.
"환자와 2미터 이내 2시간 이상 접촉해야만 메르스에 감염될 수 있다" "중동식 독감에 지나지 않는다" "기저 질환이 있는 사람만 문제가 된다" "잠복기는 2~14일이다" "그 어떤 경우도 공기 감염은 되지 않는다" "3차 감염은 없다" "지역 사회 감염은 염려할 필요 없다" "메르스의 지역 사회 유행은 없을 것이다" 등 지금까지 쏟아낸 많은 낙관론 내지 중동의 탈레반식 메르스 역학 특성 설명은 바로 관료, 전문가들의 낙관 디엔에이에서 비롯한 것이다.
"국민은 몰라도 돼" "별일 아니야"와 같은 비밀주의, 정보 독점주의, 위기 축소 지향주의는 늘 있어 왔다. 이는 군사 독재 시절 극대화됐으며 오랜 독재 시대를 거쳐 온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문화 유산이다. 유신과 5공 시절을 거치면서 위기와 재난의 축소 보고는 특히 관료의 보신 문화로 자연스레 자리 잡았다.
이는 민주 정부 10년을 거치면서 약간 나아지는 듯했으나 최근 다시 치료약이 없는 메르스처럼 창궐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메르스 대란에서도 어김없이 관료들의 뇌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던 이 축소 지향의 디엔에이가 자연스레 표현되고 있다.
질병 앓은 적 있으면 기저 질환?
메르스 포털 초기 화면 팝업창에서 유독 격리자 수만 밝히지 않는 것도 축소 지향이 빚어낸 결과이다. 아무리 지적을 해도 못들은 척한다. 신문과 방송은 매일 오늘의 격리자 수를 업데이트해 국민들에게 알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메르스는 기저 질환자에게만 위험하다는 리스크 메시지를 줄곧 내보내기도 한다. 그러다 건강한 사람들이 잇달아 숨지자 10년 전 백내장 수술을 받은 적이 있는 사망자도 기저 질환자로 둔갑시키는 요술을 부린다. 전 세계 의학자들이 놀랄 일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 정말 눈물겹기만 하다.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말하지 못하는 관료들을 보면 홍길동전이 절로 떠오른다. 함께 동업자가 된 감염내과 교수들은 지금까지 무엇을 해왔던가. 정부 발표 때 옆에 서있는 것으로, 대통령 곁을 지키는 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지방자치단체와 중앙 정부가 엇박자를 내고 지방자치단체 간에도 환자의 동선 공개를 두고 이랬다저랬다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 어떤 지침을 내렸는가.
1990년대 중반 보건복지부를 맡아 취재할 때의 이야기다. 197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서 사라졌던 3일열 말라리아(흔히들 학질이라고 하며 치명적인 열대성 말라리아와 다름)가 휴전선에서 발생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것이 그 수가 늘어나 순식간에 수백 명 수준으로 늘어났다.
말라리아 환자 수, 내기하자던 방역 책임자
"올해는 1000명이 넘는 수준의 환자가 나올 수 있을 것 같다"며 "방역 당국은 어떤 대책이 있느냐"고 의사 출신의 방역 책임자에게 물었다. 그는 "1000명은 절대 안 나온다"고 큰소리를 치며 나에게 내기를 하자고 했다. 그의 호언장담과 달리 그해 국내 말라리아 숫자는 1000명을 훌쩍 넘어버렸다. 지금 말라리아는 2000년 4000여 명의 환자가 발생해 정점을 찍은 뒤 줄어들기 시작해 최근에는 수백 명 수준으로 기세가 많이 꺾었다.
그가 당시 환자 발생 수를 축소 지향으로 잡은 까닭은 1000명이 넘으면 사실상 방역 실패를 뜻하는 것인데 이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이미 보건복지부를 떠나고 없지만 그 후배들은 지금 질병관리본부와 보건복지부에서 본부장, 실장, 국장, 과장 등을 맡아서 메르스와 하루하루를 힘겹게 싸우고 있다.
후배들은 그 옛날 선배가 지녔던 축소 지향의 감염병에 걸리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메르스 대란을 지켜보면서 바뀐 게 크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감염병 때문에 메르스가 별 것 아니라는 식의 설명을 줄곧 언론과 국민에게 해댔고 그 결과는 참담하기만 하다. 메르스가 별 것 아닌데 호들갑을 떤다는 식의 발언을 하던 보건복지부 장관과 박근혜 대통령의 얼굴에는 요즘 웃음기를 찾아보기 어렵다.
하기야 지금 메르스 여파로 백성들의 살림살이가 더욱 팍팍해졌고 가뭄, 불안 등으로 수심이 가득한데 웃었다간 낭패를 겪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감염병에 관한 한, 아니 모든 위기 대응은 과소 대응보다는 과잉 대응이 낫다. 확실한 대응법이 있다면 물론 과잉 대응보다 적정 대응이 좋겠지만 말이다.
'안심 바이러스'보다 '소통 바이러스'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메르스는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메르스와 양상이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유행중인 메르스 바이러스는 중동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한다. 혹 변이가 일어나 영화 <감기>에서처럼 감염력과 독성 모두 최악의 바이러스로 되는 일은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천만다행이다. 고맙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방심은 금물이다. 내가 일찍이 메르스(MERS), 즉 중동호흡기증후군이 한국에 와 코르스(KORS), 곧 한국호흡기증후군이 됐다고 한 것은 바이러스 유전자 자체의 변이를 말한 것이 아니다.
비틀거리는 공공 의료, '도떼기시장' 같은 응급실, 왁자지껄 병문안 문화, 이 병원 저 병원 돌아다니는 소비자들의 의료 이용 행태, 돈이 메르스 바이러스보다 우선인 이윤 추구 민간 상업의료, 예방은 거들떠보지 않는 의료계 현실 등이 어우러져 바이러스 전파 속도와 양상, 치사율 등 많은 임상 역학 양상이 중동과는 다른, 한국적인 것이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 만든 이름이다. 코르스란 이름은 의학적 관점이 아니라 보건의료사회학적 관점에서 붙인 것이다.
메르스 바이러스와 싸워 이길 수 있는 효과적인 전략은 '안심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것이 아니다. 투명 바이러스, 소통 바이러스를 특히 대통령부터 말단 관료까지, 그리고 의료전문가, 언론인들까지 메르스 슈퍼전파자보다 더 대량으로 퍼트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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