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교역 규모 10위의 국가가 군사적 긴장과 전쟁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음은 분명 비정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한반도에서 남북의 군사적 대치와 긴장이 심화되고 있음은 아무도 부인하기 힘들다. 서해가 첨예한 대치와 대결의 바다가 된 지는 이미 오래다.
여기에 더해 남북관계는 정치적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오기와 신경전의 기 싸움만 지속되고 있다.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대신 불신하고 미워할 뿐이다. 남이 제안한 것은 북이 무시하고 북이 제의한 것은 남이 거부한다. 올해 초 오갔던 당국 간 대화 제의는 이제 말뿐인 것이 돼버렸다. 당연히 대화와 협력은 설 땅이 없다. 상대적으로 수월한 민간차원의 교류마저도 정치적 갈등으로 봉쇄돼 있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고조와 남북관계의 정치적 대결이 지속·심화되는 조건에서 동북아의 대결 지수는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아시아 회귀정책이 중국을 견제하는 재균형 전략임을 잘 알고 있고, 미국 역시 중국의 '신형대국관계'가 미국의 헤게모니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중국식 발언임을 잘 알고 있다.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와 적극적 평화주의가 작금의 동북아 갈등에 편승해서 미국과 군사적 일체화를 진전시키고 전쟁수행이 가능한 보통국가로 발돋움하려는 국가전략인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외교적으로 고립된 러시아가 중국과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북한과 정치경제적 협력을 증대시키는 것도 동북아에서 미국과 각을 세우는데 기여하고 있다.
여기서 동북아의 갈등지향적 구도에 가장 큰 구실이 되는 게 바로 북핵이고 북한문제이며 지금 한반도의 긴장과 대립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한반도 평화의 실종과 남북관계의 정치적 대결이 동북아 갈등구조를 강화하는 데 기여하고 활용되고 있는 셈이다.
힘의 관점에서 정의되는 남북관계가 정치 군사적 대결의 심화로 이어지고 전쟁 가능성과 군사적 긴장의 고조로 진행될 때 한반도 평화는 사라지고 남북관계는 구조적으로 대결과 반목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된다. 힘으로 작동되고 힘이 부딪치는 남북관계가 아니라 안정적이고 제도화된 남북관계를 통해 한반도 평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제라도 평화의 절박성과 정당성을 고양하고 주장해야 한다. 언제부턴가 사라져버린 평화의 담론을 다시 복구해내야 한다. 군비경쟁 대신 군사회담을 강조해야 하고 군사주의와 안보 담론 대신 평화주의와 협상의 우월성을 주장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 필요한 한반도 평화는 기존의 군사 안보적 차원에 국한된 평화가 아니라 포괄적 평화여야 한다. 그동안 한반도 평화를 논의하는 것은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비통제 및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대체 등 군사 안보적 담론의 연장선이었다. 그래서 논문과 저서에는 수많은 평화체제 구축방안이 정리되어 있지만 매번 비현실적인 공허한 논의에 머물고 말았다. 4자회담이 겉돌고 6자회담에서 한반도 평화가 진전되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실제 한반도에 실현 가능한 평화가 정착되는 것은 군사안보적 차원의 평화체제 논의가 아니라 정치적 대결 대신 평화, 군사적 대치 대신 평화, 상호 적대 대신 평화, 내부의 갈등 대신 평화 등을 포괄하는 한반도 전반의 '관계'의 평화를 구축해야 한다. 남북관계의 진전과 함께하는 '포괄적 평화'(comprehensive peace)여야 한다.
포괄적 평화는 우선 남북의 정치적 대결 해소와 평화로운 남북관계를 지향한다. 평화로운 남북관계는 상호 부인과 적대의 재생산이 아니라 상호 존중과 인정에서 출발해 정치적 화해와 협력이 진전되는 것이어야 한다. 실제 군사적 차원의 평화는 평화로운 남북관계만큼만 가능하다.
개성공단과 남북경협이 활성화되는 것만큼 군사분계선을 넘어 물자와 사람이 통과하고 이를 위한 군사실무회담이 열리고 그만큼 군사적 신뢰구축이 이뤄진다. 경제협력과 사회문화교류가 군사적 신뢰구축을 가능케 하고, 이와 병행해서 정치적 대결을 완화하고 해소하는 노력을 기울여야만 진정한 의미의 평화로운 남북관계가 가능해진다.
정치적 대결 해소의 내용으로는 상호 비방·중상 중단과 지도자 거명 비난을 중단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매번 논란이 되는 상호 체제 존중과 적화통일 및 흡수통일 지양도 선언해야 한다. 자신의 요구를 수용해야만 진정성이 있고 상대방의 주장과 제안은 모두 진정성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일방주의적 진정성 대신 역지사지와 상호주의적 진정성도 필요하다. 정치적 대결 해소는 결국 상호 적대의식의 재생산이라는 악순환을 끊을 수 있을 것이다.
포괄적 평화는 또한 군사적 대치 해소와 한반도 평화체제를 지향한다. 한반도 평화의 최소한의 필요조건은 바로 전쟁방지와 군사적 충돌방지이다. 남북관계는 잘 진전되다가도 군사적 충돌과 긴장 고조 상황에서는 어김없이 퇴행의 과정을 경험했다. 그래서 평화로운 남북관계를 지향하는 포괄적 평화에는 반드시 군사적 긴장완화와 충돌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와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을 넘어 종국에는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전쟁을 억지함으로써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를 넘어 갈등을 근원적으로 제거함으로써 전쟁이 불필요한 안정적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하고 이는 곧 평화공존의 정착을 의미한다.
더불어 남북대결의 고질적 안보이슈인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평화체제 논의가 불가피하다. 남북의 군사적 긴장과 대결의 가장 악화된 양태가 바로 북핵 문제와 북·미 적대관계인 만큼 사실 북핵 문제의 해결은 평화체제 구축과 동전의 양면이 될 수밖에 없다. 북한 스스로도 이미 한반도 비핵화의 첩경이 바로 평화체제 구축이고 북·미 적대 관계 해소 역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것에 의해 가능하다고 밝혀 왔다. 한반도 평화체제가 평화로운 남북관계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기여하는 이유이다.
포괄적 평화는 구성원의 적대의식 해소와 '내부'의 평화를 지향한다. 정치 군사적 대결의 내재화가 바로 상호 적대의식의 고착화이다. 갈수록 증대되는 북한 주민의 반남 의식과 남한 여론의 염북·혐북 의식을 해소해야만 비로소 포괄적 평화는 가능하다. 상대를 부인하고 적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포용하는 관용의 자세가 필요하다.
상대방을 동의하지 않더라도 인정하고,(not accept, but admit) 상대를 따르진 않지만 이해하는(not admire, but understand)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남은 북을 이해하고 북은 남을 인정하는 상호 존중이 절실하다. 타도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언젠가는 같이 더불어 살아야 할 공존의 대상으로 수용해야 남북관계의 평화가 가능할 것이다.
관계의 평화는 결국 남북 각각에 내부의 평화도 가능하게 한다. 남측을 적으로 간주하고 적들에 둘러싸여 있다는 '피포위 의식'(under-siege consciousness)이 사실은 북한의 수령독재를 정당화하는 정치적 환경인 바, 남북이 상호 적대의식을 해소하게 된다면 북의 피포위 의식은 상당부분 사라지고 결과적으로는 수령독재의 정치적 기반이 완화됨으로써 내부의 평화가 가능해질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내부의 남남갈등도 남북의 상호 적대의식 해소에 의해 자연스럽게 완화되거나 해소될 수 있다. '수구꼴통'과 '종북좌빨'로 서로를 매도하는 남남갈등은 남북관계의 평화가 자리 잡고 남북 구성원의 상호 존중이 정착되면 자연스럽게 설 땅을 잃게 될 것이다. '관계'의 평화가 동시에 '내부'의 평화를 충족하게 된다.
이제 한반도에 포괄적 평화가 시작되어야 한다. 이제라도 포괄적 평화는 시도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신혼처럼 깨가 쏟아지는 평화로 돌아갈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평화를 아예 포기하고 극단 대치와 극한 대결로 끝장을 보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 포괄적 평화로 나아가기 위해 지금 가능한 일을 시작해야 한다. '남북관계 중년부부론'이라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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