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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와 세월호는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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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와 세월호는 닮았다!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지금 한국 사회는 '문명 사회'인가?

지금 한국 사회는 '문명 사회'인가?

양 혜왕이 맹자에게 "선생께서 천리를 머다 않고 오셨으니 이 나라를 이롭게 할 방도를 가지신 것이겠지요." 할 때 맹자가 "임금께서는 왜 꼭 이로움(利)을 말씀하십니까. 어질음(仁)과 옳음(義)이 있을 따름입니다." 대답한 장면은 <맹자>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대목의 하나다.

현대인은 이 이야기에서 맹자의 비현실적 도덕주의를 읽는다. 치열한 국제 경쟁 속에서 추상적 가치를 구체적 국익에 앞세우는 자세를 보며 "역시 어수룩한 시절이었어" 생각한다.

하지만 세월호 사태, 메르스 사태를 거푸 겪으면서는 맹자의 말씀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세월호 침몰의 원인인 노령 선박 운항, 안전 기준 완화 등 '줄푸세' 노선은 이익 극대화를 위한 것이었다. 메르스 확산을 유발한 사태 초기 정부의 비밀주의 또한 경제적 타격을 피하려는 것이었다.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려는 어질음과 자본의 이익에 치우치지 않으려는 옳음이 경제적 이익에 밀려났기 때문에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나고 작게 끝나야 할 일이 커진 것이다.

맹자가 스승 자사에게 "백성을 다스리는 도리로 무엇을 앞세워야 합니까?" 물었더니 "먼저 이롭게 해주느니라." 대답한 일이 있다. "임금의 백성을 가르침이 어질음과 옳음에 있을 뿐인데 어찌 꼭 이로움이겠습니까?" 맹자가 따져 묻자 자사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어질음과 옳음도 사실은 백성을 이롭게 하는 수단이니라. 위에서 어질지 아니하면 아래에서 자기 자리를 얻지 못하고 위에서 옳지 못하면 아래에서 속이기를 즐겨하게 될 것이니, 그 이롭지 못함이 크지 않은가. 그러기에 <주역>에 이르기를 '이로움은 옳음의 어울림'이라 하고 또 이르기를 '이롭게 쓰고 몸을 편안히 함은 덕을 받드는 길'이라 하였으니, 이 모두 이로움의 중요함을 말한 것이다." (仁義 固所以利之也 上不仁則下不得其所 上不義則下樂爲詐也 此爲不利大矣 故 易曰 利者 義之和也 又曰 利用安身 以崇德也 此皆利之大者也)

스승인 자사는 이로움의 중요성을 앞세웠는데, 제자인 맹자는 후에 양 혜왕에게 이로움을 앞세우지 말라고 윽박지른 것이다. 맹자가 자사의 가르침을 버린 것일까? 뒷날 사마광은 이렇게 풀이했다.

"자사와 맹자의 말은 같은 것이다. 무릇 어진 자라야만 어질음과 옳음의 이로움을 알고 어질지 않은 자는 알지 못한다. 따라서 맹자가 양 혜왕에게 대답함에 바로 인의를 말하고 이로움을 말하지 않은 것은 말하는 상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子思孟子之言 一也 夫唯仁者 爲知仁義之利 不仁者 不知也 故 孟子之對梁王 直以仁義而不及利者 所與言之人 異故也)

자사와 맹자 같은 프로 선수끼리는 인의와 이익의 미묘한 선후관계를 거리낌 없이 논할 수 있지만 양 혜왕 같은 아마추어에게는 정확한 대답보다 명확한 대답이 필요했다는 설명이다. 그렇다. 자사가 이로움의 중요성을 말한 것은 정치의 목적이 백성을 이롭게 하는 데 있다는 원론이다. 그 목적의 실현을 위해 인의를 앞세워야 한다는 데는 자사와 맹자의 생각이 같다. 목적이어야 할 이로움에 방법에서부터 매몰된다면 그 이로움은 공익(公益) 아닌 사익(私益)이 될 위험이 크다. 천하의 이로움보다 특정 국가의 이로움이 되고 백성의 이로움보다 위정자의 이로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서상철의 <무한경쟁이 대한민국을 잠식한다>(지호 펴냄)는 요즘도 마주치는 청소년들에게 권하는 책이다. 이 책의 '들어가는 말'에 서상철은 이렇게 썼다.

한 사회의 경쟁의 도가 지나치면, 공작과 같이 경쟁을 위한 경쟁으로 그 낭비가 효용을 능가할 수 있다. 현재 한국은 극단적 경쟁 때문에 해가 득보다 오히려 큰 상황으로 볼 수 있다. (…) 극심한 경쟁은 사회 전체에 불행을 초래하고 경제 발전에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 성장의 기대가 키워온 희망은 그럴듯하지만 과도하면 성장에 대한 망상을 초래할 수 있다. '성장 망상증'에 의한 장밋빛 미래의 기대나 의존은 허구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그리고 성장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으며 그것을 이루기 위해 사람들이 점점 더 불행해진다는 현실을 직시하는 순간에 진짜 희망이 보일 것이다.

나는 '프레시안 books'에 기고한 이 책의 리뷰에서 "저자의 진단에 크게 공감하면서도 완전히 만족하지는 않는다"고 썼다. 문제의 존재와 성격을 정확히 짚기는 했지만 그 배경을 충분히 밝히지 않았다고 봤기 때문이다. 내 생각을 이렇게 적었다.

서상철도 이 책 제1장 "경쟁은 인간의 본성인가"에서 잘 설명했지만 뉴라이트에서 즐겨 들먹이는 명제 "인간은 이기적 존재"는 인간의 전체 모습이 아니라 한 측면일 뿐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서도 경쟁보다 협력을 중시하는 존재라는 사실은 복잡한 언어를 발전시킨 데서 단적으로 알아볼 수 있다. 경쟁과 투쟁에는 그렇게 복잡한 언어가 필요 없다. 언어는 협력을 위해 발전한 것이다.

근대의 인간은 원래의 본성과 달리 원자론적 세계관, 개인주의, 경쟁에 치중하며 살아왔다고 나는 본다. 산업 혁명 덕분에 낭비가 허용되는 상황 속에서 일어난 일이다. 자원과 환경의 한계에 부딪친 이제는 근대의 습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경쟁 지상주의만이 아니라 원자론적 세계관과 개인주의에 치우쳤던 모든 관습과 제도를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익을 앞세우지 말라는 맹자의 말씀을 우활한 것으로 현대인이 보는 까닭은 근대적 국민 국가의 현상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근대 세계에서는 '국익'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관점이 지배적이었다. 맹자는 '국익'도 '공익'보다 '사익'의 성격을 가진 것으로 보았다. 군주가 자기 나라의 국익에 지나치게 매진하는 것이 천하의 공익을 해칠 수 있는 일이라고 본 것이다.

제국주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근대 세계는 국익 추구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던 세상이었다. 20세기 들어 두 차례 '세계 대전'을 겪으며 국익을 넘어선 '세계 질서'를 위한 노력의 필요성이 떠오르기 시작했고, 20세기 후반에 자원과 환경 문제들이 부각됨에 따라 더욱 절실해졌다. 국가를 최종 단위로 여기던 근대 정치철학의 한계와 문제점을 지적하는 논설도 이제 나오고 있다.

세계에서 중국이 공헌할 수 있는 적극적 의미는 새로운 형태의 대국, 세계를 책임지는 대국, 세계사에 출현한 갖가지 제국과 아주 다른 대국이 되는 것이다. 세계를 책임지는 것은 단지 자신의 국가에만 책임지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이론에서 중국 철학의 관점이고 실천에서 완전히 새로운 가능성이다. 즉 무엇보다도 먼저 '천하'를 정치/경제적 이익에 관한 분석 단위로 삼아 문제를 분석하여 서양의 민족/국가의 사유 방식을 뛰어넘는 것이며, 세계를 책임지는 것을 자신의 소임으로 삼아 새로운 세계 이념과 세계 제도를 창조하는 것이다. 세계 이념과 세계 제도는 역사적으로 줄곧 결여되었던 이 세계의 가치관이자 질서였다. 일찍이 세계를 지배했던 영국과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미국에는 지금까지 모두 국가 이념만 존재했다. 따라서 모두 자국의 이익만 고려했기 때문에 세계를 관리하는 측면에서 영국과 미국은 지금까지도 정치적인 합법성도 없었고 특히 철학적인 합법성도 없었다. (<천하체계>(자오팅양 지음, 노승현 옮김, 길 펴냄), 12~13쪽)

세월호 사태, 메르스 사태 같은 국내 문제들 앞에서 국가주의 문제를 떠올리는 것은 '공익'과 '사익'의 차이를 생각하기 위해서다. 근대적 세계 체제 안에서 살아온 현대인에게는 '공익'의 의미가 '국익'의 한계를 넘어서기 힘들다. 진정한 '공익'을 생각할 기회가 거의 없다. 그러니 사회 내에서 공익을 무시하고 파괴하는 행태를 비판할 근거가 취약한 것이다.

맹자가 '인의'를 앞세운 것은 공익과 사익의 판별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인의에 어긋나는 이익은 사사로운 이익일 뿐이며 천하의 공익에 해로운 것이다. 양 혜왕이 이익을 앞세울 때 자기 한 몸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라면 말 상대도 되지 않는 암군(暗君)이다. 자기가 책임진 나라 전체의 이익을 꾀할 정도의 명군(明君)이라는 가정 하에, 이익을 앞세우지 말 것을 맹자는 권했다. 그 나라의 국익을 지나치게 추구하다 보면 천하의 공익이 훼손될 수 있으니, 인의의 실천에 힘을 쏟으며 그 결과로 이익이 저절로 생겨나게 하라는 것이었다.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는 온갖 이해관계가 온갖 지점에서 충돌하고 있다. 집권 세력은 충돌을 더욱 유발하고 격화시킴으로써 자기네 사익 추구가 두드러져 보이지 않게 한다. 노승현은 <천하체계> "옮긴이의 말"에서 "왕조를 바꾸고 국호를 고치는 것을 국가의 멸망이라 하고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는 것을 천하의 멸망이라 한다"는 고염무의 말을 인용했다(238쪽). "천하의 멸망"이란 곧 문명의 멸망을 뜻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는 풍조를 이 땅에 처음 들여온 것은 일본 식민 통치자들이었다. 지금의 집권 세력은 더 열심이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충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충돌, 세대 간의 충돌, 지역 간의 충돌을 격화시키기 위해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길이 있을까?

집권 세력에게 전가의 보도는 '국익'이다. 세월호 사건의 진상 규명에 비용을 들이는 것이 국가 예산의 낭비고, 메르스 사태의 방역 등급을 올리는 것이 국격에 손상을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국가 경제의 침체를 피해야 한다며 대통령부터 나서서 "독감일 뿐이에요," 경계심을 풀 것을 요청한다. 석연치 않으면서도 '국익' 주장만은 수긍하는 것이 착한 국민의 마음이다.

국익을 등지라고 독자들을 선동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문명을 지키는 것이 국익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일 수 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생각해 보기 바란다. 세월호 사태와 메르스 사태의 공통점 하나가 사람들로 하여금 이익에만 묶여 있던 생각에서 벗어나 어질음과 옳음에 대한 생각을 해볼 계기를 만들어줬다는 것이다. 이런 계기를 거듭 겪으면서도 집권 세력의 농락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회라면 어디에서 각성의 계기를 찾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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