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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도 막지 못한 '지역주의의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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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DJ도 막지 못한 '지역주의의 붕괴'

개혁성 사라진 '서울 新지역주의'의 등장

이번 대선에서 '세대 변수'가 힘을 쓰지 못한 만큼 '지역 변수'도 힘을 잃었다는 분석들이 적지 않다. '바꾸자 신드롬'과 연동된 '경제 프레임' 말고는 아무것도 맥을 못췄다는 평가다. 지금까지 한국 정치 분석틀 가운데 가장 강력한 준거가 지역주의였음을 상기하면 상당히 달라진 지점이다.

일각에선 영호남 지역주의 대신 '서울 신지역주의'가 등장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는 지역별 표 갈림이 '3김'이라는 자연인과 연동됐던 특징의 소멸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DJ 입김'마저 미미

3김의 종언을 다시 이야기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감이 없지 않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7년 외환위기 발생 이후 사실상 정치적 영향력을 상실했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사례처럼 친 김영삼적 행보는 죽음의 키스로 작용했을 정도다.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역시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의 노회찬 의원에게 밀려 10선에 실패한 상징적 사건 이후로 사실상 칩거에 들어갔다.

물론 이들은 이번 대선에서 '이명박 지지'를 선언하고 나름의 활동을 벌였다. YS 직계로 구성된 '민주연대21'라는 단체는 외곽에서 열심히 뛰었고, JP는 노구를 이끌고 충청권을 돌면서 "표를 몰아주자"고 외쳤다.

하지만 선거전이 시작되기 전이나 후나 이들의 영향력은 미미한 상황이다. 오히려 말실수나 복고 이미지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을 정도다. 물론 충청권과 특히 영남권에서 이명박 지지도가 높긴 하지만, 이들이 나선 것과 큰 연관을 맺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 지난 달 한 행사에 참석한 김대중 전 대통령. 그는 이 자리에서 "조용히 있으면 전직 대통령으로 대우받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여러 이야기를 듣고 말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대선에서) 잘못하면 전쟁이 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뉴시스

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는 좀 다르다. 자신의 집권 뿐 아니라 정권재창출까지 해냈다는 '실적'이 다른 2김과 가장 큰 차이점. DJ는 또한 노벨상 수상자·햇볕정책의 기획자·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민주지도자라는 이미지를 바탕으로 만만찮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역대 대통령 가운데 박정희 전 대통령 바로 다음 자리를 차지했다.

대선전이 본격화된 2007년에도 김 전 대통령은 범여권을 향해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인식을 가져라', '통합이 중요하다'는 등의 훈수를 둬왔다.

게다가 그는 정동영, 문국현 두 사람을 향해서도 단일화를 사실상 종용했고 얼마 전에는 "대통령을 잘못 뽑으면 전쟁이 날 수도 있다"고 위기론을 전파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대중의 '정치적 영향력'은 여전한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결과적으로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 현실 정치에 대한 장악력이 떨어진 정황은 곳곳에서 노출됐다.

무엇보다 범여권 단일화와 통합에 관한 'DJ 구상'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았다. 일찌감치 둘째 아들 김홍업 의원을 탈당시켜 대통합민주신당으로 보내고, 장남 김홍일 전 의원마저 민주당을 탈당했는데도 민주당의 이인제-박상천 두 사람이 '마이 웨이'를 걷고 있는 것이 산 증거다. 또한 동교동계 일부는 내년 총선을 내다보고 이회창 캠프, 한나라당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물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향력 퇴조는 평화 문제, 남북 문제가 이번 대선의 주요 쟁점으로 등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과도 엮이는 문제다. 또한 현 여권이 대선에서 패배한다면 그들은 내년 총선에서 김 전 대통령을 상징적 구심점으로 삼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역주의의 완화
▲ 지난해 연말 호남향우회 전국연합 중앙행사에 참석한 이명박 후보ⓒ연합뉴스

실제 표심이 어떻게 갈릴지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여론조사만 살펴보면 영호남의 전통적 지역주의는 완화되는 조짐이 완연하다.

12일 마지막으로 실시된 여론조사를 보면 이명박 후보는 호남에서 두 자릿수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정동영 후보, 문국현 후보의 영남 지지율은 노무현 대통령이 출마했을 당시의 그것에는 현저히 못 미치고 1987년, 1992년 김대중 후보의 지지율과 비슷하다. 대통합민주신당의 한 인사는 "경상도에서 호남 향우회 표도 안 나온다"고 까지 말했다.

반면 정동영 후보의 호남 지지율은 50%를 약간 상회하는 정도다.

영남권에서는 이명박, 이회창 초강세 현상이 두드러진다. 사회적 보수화 현상이 '정권심판론'과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는 이야기다.

지난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는 대구경북에서 74.4%, 부산경남에서 64.6%를 득표한 바 있다. 영남출신인 노무현 후보가 세대 간 표 대결 구도를 틈입해 들어간 결과가 이 정도 였지만 이번엔 그것도 없다.

대신 여권의 전통적 지지벨트는 와해되는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노무현 후보가 2002년에 호남에서 90% 이상의 몰표를 얻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우리가 밀어주면 이길 수 있다"는 전략적 표심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동영 후보는 현재 호남권 유권자들에게 이같은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이 변했다"

1987년 직선제 재도입 이래 서울의 표심 추이는 단순했다. 1987년 김대중 1위, 1992년 김대중 1위, 1997년 김대중 1위, 2002년 노무현 1위.
▲ 역대 대선의 서울 표심 향배. 상대적 진보성을 띈 후보가 계속 1위를 지켜왔고 1위와 2위 표차도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엔 과거 추세와 본질적인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이유가 뭘까?ⓒ프레시안

호남 원적자들 뭉침 현상과 서울 지역의 상대적 진보성이 결합된 결과였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이명박 독주 현상은 뚜렷하다. 1년여 간 이명박 독주의 원동력은 바로 서울에서 나왔다. 12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는 정동영 후보를 두배 이상 따돌렸다. 심지어 지역별로 봐도 대구 경북 다음으로 이명박 지지율이 높은 곳이 서울이었다.

이렇게 볼 때 2007년 대선을 지배한 큰 화두 중의 하나는 '서울 지역주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호남 1세대의 퇴조와 2세대의 '현실화', 원적의식이 미약한 3세대의 유권자층 진입이 맞물린 결과다.

그 자리는 보수적 경향을 대변하는 '신지역주의'로 대체됐다. 이 같은 현상은 노무현 정부 들어 뚜렷해졌다. 행정수도 이전 문제, 부동산 값으로 대표되는 서울과 지역의 양극화 심화 현상 등으로 인해 대한민국은 '서울과 비서울'로 재편됐다.

이에 대해 '민' 컨설팅 박성민 대표도 "서울 지역주의가 생겼다고 볼 수 있다"며 "교육, 부동산, 세금 등 구체적 이슈에 대한 시민들의 선택은 과거처럼 연고지 기류와 연동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이뤄진다"고 분석했다.

자신을 '경상도 사람', '충청도 사람', '전라도 사람'이 아니라 '서울 사람'으로 생각하는 이들은 이명박 후보를 '서울 후보'로 생각하고 있다.

박 대표도 "이 후보가 청계천 복원 등을 통해 시장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시민들이 그를 서울후보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사교육과 아파트값 앞에서 서울 고학력층의 상대적 진보성을 탈각된 지도 오래다. 386의 '현실주의화-원적지와 탈동조화', 20대의 보수화 등이 맞물려 이번 대선 결과와 별개로 서울의 보수화가 장기간 심화될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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