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앞서 본회의를 통과한 국회법 개정안의 일부 자구(字句)를, 정의화 국회의장의 제안대로 수정해 15일 정부로 이송했다. 야당이 이날 의원 총회에서 정 의장 중재안에 대한 당내 반발을 정리하고 '수용'으로 방향을 틀면서다. 공은 청와대로 넘어갔다. 여야 합의와 국회의장의 중재까지 거친 법안을 놓고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행정부 대 입법부'의 대립 양상이 가시화될 전망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날 오전 의원 총회를 열어 정 의장의 중재안대로 국회법 개정안을 수정하는 방안을 받아들이기로 결론내렸다. 이언주 원내대변인은 의원 총회 이후 브리핑에서 "'요구'를 '요청'으로 변경하는 부분과 관련해서 원내대표에게 위임한다고 결론내렸다"며 "자구 수정에 불과하기 때문에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 다수 의견이었다고 전했다.
결국 국회법 개정안은 본회의를 통과한 원안에서 '요구'를 '요청'으로 바꾸는 '1글자 수정'만을 한 다음 이날 오후 늦게 정부로 이송됐다. 이 과정에서 이상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자구 수정 절차에 문제를 제기해 의장 서명이 예정보다 늦어지는 일도 있었다. 정 의장과 여야 지도부가 이송 서류에 서명한 시각은 오후 6시 7분이다.
정 의장의 중재안은, 국회가 시행령 수정을 '요구'할 수 있다는 부분을 '요청'으로, '정부가 처리하고 그 결과를 보고해야 한다'를 '검토해 처리 결과를 보고해야 한다'로 바꾸자는 것으로 알려졌었다. 이종걸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중재안 수용 범위를 "'요구→요청'에 한하는 것"이라며 '검토해서'를 추가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논의에서 빠졌다"고 했다.
정 의장 측은 두 부분 중 어느 한 가지만 수정해도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최형두 국회 대변인은 '2가지 중 1가지만 수용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원래 그것은 '앤드(AND)'가 아니라 '오어(OR)'였다"며 "언론에 '앤드'로 알려졌지만 그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최 대변인은 "야당이 수용한 범위 내에서 수정해 정부로 보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검토 후 처리한다' 부분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은 좀 아쉽게 생각한다"고 했다.
공은 청와대로…정의화·유승민 "국회-행정부 충돌·갈등 없길"
이제 관심은 청와대 거부권 행사 여부로 쏠린다. 앞서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었다. 청와대 내부나 여당 내 친박계 의원들 사이에서는 정 의장의 중재안에 대해서도 '자구 수정 정도로는 위헌성이 해소되지 않는다'며 부정적 기류가 있기도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오전 정 의장의 중재안에 대한 입장을 묻자 "거기에 대해 수차례 말씀드린 바 있다"며 기존 입장이 바뀌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거부권 행사 여부에 대해서는 "법안이 이송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은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했다.
만약 청와대가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즉각 '국회 대 행정부'의 대립 구도가 표면화할 가능성이 크다. 헌법 53조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도 국회가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 의원 3분의 2의 찬성으로 재의(再議)하면 그대로 법률로서 성립된다고 정하고 있다. 정 의장은 이날 아침 취재진과 마주친 자리에서 '야당이 중재안을 수용할 테니, 청와대가 거부권 행사시 재의할 것을 담보해 달라고 한다면?'이라는 질문을 받고 "그게 공식적인 것이라면 내가 안 받을 이유가 없다"고 답했다.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정 의장에게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도록 노력할 것과 함께, 만약 (거부권을) 행사하게 된다면 국회 재의를 통해 국회의 뜻을 관철시키도록 노력해 달라고 말할 것"이라며 "저에게 개인적으로는 (거부권 행사시 재의할 것을) 확답하신 상태이나 공식 발표는 하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이날 권은희 대변인 논평에서 "새누리당은 이미 정 의장의 중재안을 수용한다고 한 바 있다. 야당의 결단만 남은 셈"이라고 했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을 압박하기 위해서이기는 하지만, 정 의장의 중재안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당 대변인을 통해 공식적으로 밝힌 셈이어서 청와대의 거부권 행사시 법안 재의를 거부할 명분이 없는 상태다. 이에 따라 청와대가 거부권이라는 칼을 빼들 경우, 전선(戰線)은 '야당 vs. 정부·여당'이 아니라 '야당+국회의장+새누리당 지도부 vs. 청와대+새누리당 내 일부 친박'으로 그어질 전망이다.
정 의장은 이날 오후 이송을 앞두고 여야 원내대표와 만나 법안에 서명하는 자리에서 "정부가 우려하는 사항에 대해, 여야가 충분히 숙고하고 협의해 위헌 소지를 완전히 없애서 이송하려는 취지"라며 "행정부와 입법부의 불필요한 충돌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청와대를 간접 압박했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우리는 당초부터 위헌 소지가 없다고 판단했고, 의장 중재안대로 하면 위헌 걱정이 더 덜어지는 것"이라며 "행정부와 국회 사이 불필요한 갈등이 없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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