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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 아빠의 '메르스 공포'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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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 아빠의 '메르스 공포' 체험

[우석훈 칼럼] 메르스 사태에도 거꾸로 가는 박근혜 의료 정책

1.
나는 34개월, 8개월의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하루 종일 육아를 하지는 않지만, 뒤늦게 태어난 아기들이라 가능하면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목요일(4일) 밤에는, 메르스로 인해서 정말로 살떨리는 경험을 했다.

둘째 아기는 그날 편도선염과 중이염을 앓고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숨을 못 쉬어서 한바탕 난리를 치뤘던 아기다. 그렇게 퇴원해서 집에 오자마자 이번에는 바로 기관지염에 걸렸다. 안 아픈 날보다 아픈 날이 더 많아서, 제 날짜에 맞춰야 하는 예방 접종도 밀려 있을 정도다.

4일 낮부터 고온으로 열이 오르기 시작했고, 담당의사에게 탈수증 생길 정도면 응급실에 데리고 가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밤, 해열제 먹였는데도 열이 39도를 넘었다. 아기들 열이 그렇듯이, 응급실 데리고 가야 할 건 별로 없다. 그렇지만 정말로 응급한지 아니면 버티고 넘어가면 될지, 그게 집에서 판단하기는 어렵다.

이번에는 정말로 '응급'한 고민 하나가 더 늘었다. 응급실은 보통 대형병원만 운영을 하는데, 지금 응급실에 잘못 갔다가 응급실에 마침 그 때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꼼짝없이 격리조치가 될 확률이 있다. 게다가 감염 위험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해열제 먹이고 물찜질 하면서 하루밤을 버텼다. 아기의 열은 떨어지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에 정말 중요한 회의가 있었는데, 이 와중에 회의에 갈 수 있는 아빠 심정이 아니었다. 그렇게 이틀 밤 동안 아기의 열과 씨름을 하면서 응급실에 가야할지 말아야 할지, 정말 진지한 고민을 했다. 두 번째 밤에는 아기가 두 번을 토했다. 아내는 응급실 가서 수액이라도 맞아야 하는 게 아니냐고 했고, 나는 지금 응급실 가봐야 답 없다는, 정말 비정한 아빠 역할을 했다.

주말을 지나면서, 둘째 아기의 열은 좀 떨어졌다. 이번 주에는 큰 아이도 어린이집을 쉬기로 결정을 했다. 그야말로 모를 일 아니냐? 엄마와 아빠가 좀 고생하는 게 낫지, 이유 없이 위험도를 높이고 싶지는 않았다.

2.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왜 아기를 데리고 응급실에 가야할지 말아야 할지를 이렇게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까? 다행히 큰 일이 벌어지지 않아서 그렇지, 더 위급한 일이 생기면 응급실에 가지 않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이전에 살던 집이 지금 한참 난리가 난 송파구의 가든 파이브 바로 앞에 있었다. 이사온 걸 다행으로 생각하는 게, 이게 정상적인 생각인가 싶다. 누군가는 위험해지고, 누군가는 가슴을 쓸어내리는 이 상황, 과연 정상적인가?

야당 내에서는 '매뉴얼' 문제로 지금의 사태를 보는 하나의 시각이 있다. 참여정부 때 조류독감을 겪으면서 현장 매뉴얼 등 대응 체계를 대폭 강화했는데, 그 매뉴얼들이 이명박(MB) 정부 때 상당수 폐기됐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참여정부가 다른 건 몰라도 시스템이나 매뉴얼, 로드맵 같은 것을 만드는 데에는 정말 열심이기는 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많은 매뉴얼들이 MB 정부 때 전 정권의 일이라고 무시되거나 방기되는 일이 벌어졌다.

현 정부에서 초동 대처가 미흡해서 생겨난 대표적 사건은 세월호 아니겠는가? 1년이 지나자마자 이제는 온 국토가 세월호처럼, 그야말로 정부기관의 입만 쳐다봐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게 다음 주를 경계로 '패닉' 모드로 넘어갈지, 병원 내 격리 조치의 성공으로 진정 국면으로 넘어가게 될지, 사실 아무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앞으로도 몇 주간 국민들의 '공포'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 시점에서 앞으로 이런 일이 또 벌어질 것인가, 아닌가? 진지하게 고민해보려고 한다. 나는 이런 종류의 일은 또 벌어지고, 또 지금처럼 온 국민이 공포 속으로 내몰리는 일이 또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기적 조건은 '행정의 실패'다. 박근혜 정부의 행정력에 대해 한 번쯤은 우리 모두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두 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가깝게는 '수첩인사'라고 불리는, 비전문가들에 대한 뜬금없는 임명이다.

2003년 사스 사태 때, 당시 고건 총리의 선제적 판단은 한국 행정사의 한 페이지에 들어갈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행정의 달인'이라는 별명을 듣고 있을 정도로, 행정 조직 등 많은 부문에서 기가 막힌 실력을 보여주었다. 외부로 크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나는 서울시장으로 역할을 가장 잘했던 사람으로 고건을 꼽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공항 검색대에 열감지기를 긴급투입한 결정은 총리에게 위기와 관련된 모든 정보가 일단 모이도록 한 후에나 할 수 있던 조치였다.

만약 법무부 장관에서 영전된 총리가 지금 전체를 지휘했다면? 미안한 말이지만, 고건만큼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장관 등 주요한 인사만 이렇게 수첩 인사를 한 것도 아니다. 행정부처의 과장급까지 청와대에서 일일이 간섭한다는 볼멘 소리가 작년부터 행정부 내에서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무라도 좋으니, 일단 임명부터 해달라고 하는 투덜대는 세종시의 작은 소리가 여의도 한 가운데까지 들려오는 정도이다.

'불확실하다는 것이 확실하다.' 이 문장이 박근혜 정부의 행정부 인사의 확실성을 뜻한다고 사람들이 말한다. 노무현 정권, 심지어는 MB정권 때도 차관 혹은 차관급 인사 정도에나 청와대가 관여했지, 지금처럼 시시콜콜 인사에 관여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인사가 흐트러지면서 박근혜 정부의 행정력은 밑에서부터 붕괴하고 있는 게 아니냐, 메르스 사태를 보면서 그런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행정관 한 명 한 명이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인사 등 공직 시스템을 움직이는 기구가 기형적이 되면서 지금 한국의 행정능력은 긴급하고 긴박한 상황에 대처하기 어렵게 되었다.

경제부총리인 최경환이 공개한 병원 명단에 행정구역에 있지도 않은 '여의도구'가 버젓이 표기되는 등, 적지 않은 단순 표기 오류가 있었다. 이는 초고를 작성한 사람도 전문가가 아닐 뿐더러, 그 위의 상급 결제라인 전부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는 방증 아닌가? 단순 표류오기인 것은 맞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들이 하는 행정이 제대로 점검되고 돌아가고 있다고, 그렇게 봐줄 수가 있겠는가?

단기적인 행정 오류, 이건 마음만 먹으면 단기간에 시정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일을 하는 데 황교안이 적합한 사람인지 그리고 지금의 청와대 운용 방식이 그걸 할 수 있는지, 여전히 의문 부호가 남는다.

장기적인 문제점은 더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조류독감, 사스를 거쳐 메르스까지, 초대형 바이러스 사건은 더 많아지면 많아지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생물학과 생태학의 최근 연구 기류가 점점 더 글로벌 전염병 쪽으로 넘어가는 흐름이 있다. 이동 거리와 속도 뿐만 아니라 지구 온난화 등 신종 전염병의 확산 속도를 높이는 쪽으로 가고 있다.

그런데 지금의 방역 체계와 의료 체계 그리고 공조직의 대응체계가 적합하게 움직이고 있는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염병 등 질병관리 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은 (기초 의학을 연구하는) 연구의 시스템을 확충해야 가능한다. 어떻게 하면 단기 상업성이 나오지 않는 연구의 체계를 강화할 것인가, 이건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질문이다. 영리병원과 연구의는 정반대의 정책인데, 박근혜 정부 등 의료 민영화를 추진하는 여당에서 연구의 시스템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방기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누적된 연구성과로 단기 대응에 성공하는 일이 점점 먼 나라 선진국의 얘기가 되어간다. 이런 정책 방향은 시정되어야 한다. 예방의학 그리고 연구의 중심 의료체계, 장기적으로 가야 할 방향이다.

또 다른 문제는, 이공계 일반의 문제와 맞닿아있다. 지금 메르스 1차 확진과 2차 확진 등을 담당하는 정부 의료기관의 담당자들 월급을 알면 아마 깜짝 놀랄지도 모르겠다. '연구관'이라는 오래된 제도의 영향이다. 간단히 말하면, 문과 박사들은 5급 때로는 4급으로 공직에 들어가게 된다. 그렇지만 같은 공부를 했더라도 이공계 박사들은 연구관으로, 훨씬 더 아래 직급에서 박봉을 받고 일을 하게 된다. 이 연구관 체계를 언제까지 유지할지, 이제는 근본적으로 생각해보아야 한다.

돈을 진짜 조금 주고, 밤만 새라고 하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게 장기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는가? 공공성, 공적인 것, 이런 것에 대해 우리는 너무 투자를 안하고 있다. 이공계로 오면 진짜로 눈물 날 지경이 된다.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최소한 의료계 분야에서만이라도 연구관 제도 등 공공 연구기반에 대해서 재검토를 하는 게 맞다. 전염병이 그렇게 무섭다면, 그 분야에 돈을 집어넣어야 한다. 의료 관광으로 첨단산업으로 의료계를 만들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의료 정책, 조금은 더 공적인 것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두 아이가 성인이 되려면 아직 한참 남았다. 그 때마다 병원 응급실을 가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을 하고 싶지는 않다. 메르스 사태 한 가운데에서, 과연 이런 일이 이 정도로 심각하게 다시 발생하지 않으려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런 근본적인 고민을 같이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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