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IBRD)만큼은 아니지만 세계경제협력기구(OECD)도 지난 30년간 시장만능의 이론과 정책을 전 세계에 퍼뜨린 국제기구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침체가 지속되자 이들도 최근에 불평등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과거 그들의 신조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보고서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OECD는 2008년 <불평등의 심화(Growing Uneaqual)?>에서 지속적인 불평등에 대해 경종을 울린 후, 2011년 "우리는 분할되었다(Divided We Stand)"에서 근본적 원인을 탐색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4년 뒤인 올해 5월 21일 <그 안에서 다 함께 : 왜 불평등 완화는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가?(In It Together: Why Less Inequality Benefits All)>을 펴냈습니다.
(돈을 내지 않으면 그냥 화면으로 읽을 수만 있습니다. 꼭 필요하신 조합원께는 제가 이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무려 330쪽에 이르는 방대한 보고서라서 저도 아직 요약과 1장(개괄) 밖에 제대로 못 읽었지만 여기에는 과거의 주류경제학과 정책에 대한 반성이 곳곳에 있습니다. 국내외 언론은 2012년 현재 상위 10%의 소득이 하위 10%의 9.6배라는 점을 주로 보도했죠. 1980년대에 7배, 1990년대에 8배, 2000년대에 9배였으니까 불평등은 계속 증가하고 있는 거죠. 한국 역시 2013년 10.1배로 비슷한 추세를 보이고 있는데, 미국은 19배로 가장 심각합니다.
이 보고서 역시 이러한 불평등의 원인을 기술혁신에 따른 임금격차의 확대에서 찾고 따라서 교육이 해결책이라고 주장하는 면에서는 주류경제학의 이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주로 사회경제적 역관계나 정책 방향이 더 중요하다는 피케티의 비판('기술과 교육의 속도경쟁' 비판)을 떠올릴 수 있겠죠.
(특히 2011년 OECD의 불평등 원인 분석이 계량 상의 오류 때문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경제정책센터(CEPR)의 로즈닉과 베이커의 글을 참고하십시오. ☞바로 가기)
그런 관성에도 불구하고 이번의 보고서는 많은 사실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시각에서도 상당한 변화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 보고서에는 피케티의 관점, 즉 1%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부의 불평등에도 한 장(6장)을 할애했습니다. 특히 이 보고서는 하위 40%의 불평등 악화에 주목하고 정책대안도 이들을 향한 정책을 강조합니다. 이들이 자신의 능력을 축적하고 새롭게 일할 기회를 잃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불평등은 장기성장에 해롭다"
이 책의 전체 주장은 "불평등 심화는 사회통합에 대한 영향을 넘어서, 장기 경제성장에도 해롭다"(p15)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됩니다. 보고서는 1985년에서 2005년까지의 불평등 심화가 5년 후 기간인 1990년에서 2010년까지 총 4.7%의 경제성장률을 끌어내렸다고 주장합니다(2장).
보고서는 불평등과 성장의 관계에 관한 기존 경제학 이론을 "유인 가설(incentive hypothesis)"과 "기회 가설(opportunity hypothesis)"로 나눕니다.
첫 번째는 "빈부격차가 있어야 부자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복지를 제공하면 일할 유인이 없어진다"는 말들로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가설입니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생각이기도 하죠. 한 마디로 재분배는 성장을 저해해서 하향평준화로 끝날 거라는 얘기죠.
두 번째는 부자들은 돈 벌 기회를 쉽게 포착하는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애들을 충분히 교육시키지도 못하고 투자기회를 안다 하더라도 여러 자원이 부족하고 어렵기 때문에 불평등은 이들의 잠재력을 사장시킨다는 것이죠(본문에는 이 두 가지 가설을 학자별로 다시 5가지로 나누어 소개합니다).
지금까지의 실증 결과는 어느 한 쪽도 지지할 수 없을 정도로 상반된 것이 많았지만(실은 첫 번째를 지지하는 실증결과가 훨씬 많습니다) 최근 OECD의 연구는 가처분소득의 장기적 불평등 심화는 장기성장에 심각한 장애가 되며, 나아가서 재분배를 통한 불평등 완화가 성장률을 떨어뜨리지 않는다는 일관된 증거를 찾아냈다고 주장합니다. 재분배정책이 거의 없어서 시장소득 지니계수와 가처분소득 지니계수의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한국의 경제학자나 정책결정자들이 꼭 새겨들을 이야기죠(아래 그림 참조).
(<표> 시장소득의 불평등과 가처분소득의 불평등. 출처: OECD, 2011, "Divided We Stand")
(언젠가 소개해 드렸듯이, 이 그림에서 한국의 시장지니계수는 2인 가구 이상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과소평가된 수치로 이를 보정했을 경우 미국보다 약간 낮은 정도의 수치가 됩니다)
즉 재분배정책은 하층의 인적 자본이 훼손되지 않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기회를 제공해서 오히려 성장에 도움이 될 거라는 애깁니다. 거시적으로는 이들의 소비를 늘려서 성장률을 끌어 올릴 거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죠("소득주도성장론").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이 보고서가 사회적 당사자(social partner)간의 사회적 대화를 강조한다는 점입니다. 특히, 노동시장개혁과 같은 구조개혁이 임금격차를 확대시켜 성장의 효과를 상쇄할 수 있으므로 보완 대책과 함께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합니다. 오늘도 국회 탓하며 짜증만 내고 있는 박 대통령도 OECD 보고서라면 좀 귀를 기울이지 않을까요(불행하게도 이 보고서를 읽은 비서관도, 이런 내용을 보고할 간 큰 비서관도 없을 듯합니다)?
이번 보고서가 많은 지면을 할애해서 집중적으로 분석한 것은 4장의 "비표준 노동"(non-standard labor, 내용을 보면 우리의 '비정규직'에 '자영노동'을 더한 개념입니다), 5장의 여성노동입니다. 불평등의 핵심이고 또 정책의 대상이라는 얘깁니다.
"성장에 도움이 되는 분배정책"
보고서는 성장정책 중에 분배를 해치지 않는 정책을 고를 수도 있고, 분배정책 중에 성장을 촉진하는 정책을 골라내는 방법도 있다고 소개합니다. 따라서 "성장친화적이고 동시에 불평등을 줄이는 정책패키지"를 찾아야 한다는 거죠.
이런 정책은 다음 네 가지 영역을 대상으로 해야 합니다.
1) 여성의 경제참여 제고 – 이를 위해서는 예컨대 부부출산휴가, 보육, 방과후 교육, 유연한 근무제도가 마련되어야 하겠죠.
2) 고용촉진과 "좋은 질"의 직장 – 주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통해서 수입의 질, 고용안정성, 작업환경이 보장되는 "좋은 질"의 직장을 주로 청년과 저숙련 노동자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겁니다.
3) 숙련과 교육 : 기회에 대한 투자 – 언제나 그렇듯이 아동 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교육결과의 불평등을 완화하는 정책을 강조하고 있습니다(그러나 한국의 교육을 예로 들면서 신뢰도는 폭락하고 맙니다).
4) 효율적인 재분배를 위한 조세-이전 체제 – 적극적 지출과 소득적 지출을 구분한 후 선진국의 경험은 노동 수당(in-work benefit), 보육지출과 같은 적극적 지출이 소극적 지출보다 성장에 더 기여한다고 강조합니다.
특히 다국적기업에 과세하기 위한 투명성 강화와 국제공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협정 쇼핑"(요즘 한국에서 벌어진 세금 관련 투자자 국가 중재 건들을 생각하면 금방 이해되시겠죠?)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거죠.
하위 40%라고는 하지만 주로 개인의 역량의 보존과 개발에 역점을 둔다는 점에선 이 보고서도 과거의 주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고 그다지 참신한 정책을 보기 어려운 건 실망스럽습니다. 하지만, 마치 '구조개혁'만 하면, 국회 통과만 되면 성장과 고용이 늘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거라고 믿는 대통령과 참모들은 꼭 읽어봐야 할 보고서라고 할 수 있겠죠.
추신 : 언론에 보도된 노인빈곤율 세계 1위(상대적 빈곤율 49.6%, OECD 평균 12.1%)는 3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또 27일 OECD는 <직업역량 전망 2015(OECD Skills Outlook 2015)>에서, 한국의 청년 상대실업률(핵심생산인구(30∼54세) 실업률 대비 청년(16∼29세) 실업률)이 3.51배로 22개 OECD 조사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게 나타났다고 밝혔습니다. 불평등의 고통이 노인과 청년에게 집중되는 것 또한 우리 경제의 큰 문제입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