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3세 승계 작업이 막바지 단계다. 시나리오는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늘 삼성전자였다. 시가 총액이 193조 원(27일 기준)에 달하는 거대 기업을 개인이 지배하기란 쉽지 않다. 지분을 1%만 늘리려 해도, 2조 원 가까이가 든다. 계열사 지분을 동원하는 복잡한 지배 구조가 나타난 건 그래서다.
지난 26일, 제일모직(옛 삼성에버랜드)과 삼성물산의 합병 결정이 발표됐다. 다수 언론이 분석한대로, 이런 결정은 삼성 지배 구조를 단순화한다. 아울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을 강화하는 효과도 있다.
왜 하필 지금?
이런 결정이 시나리오에 따른 것이란 점은 명백하다. 발표 시점만 봐도 그렇다. 제일모직 주가가 치솟고, 삼성물산 주가는 주저앉은 시점에 합병 결정이 났다. 합병 비율 계산은 최근 주가를 기준으로 삼는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흡수 합병하기에 가장 유리한 때를 고른 것이다. 제일모직은 삼성그룹 지주회사 격이다.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이 강화됐다는 해석 역시 이런 시점 선택과 관계가 있다. 삼성물산 주식을 싸게 인수했다는 건, 삼성물산이 갖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을 싸게 인수했다는 뜻이다. 이 부회장이 막대한 이익을 누린 셈인데, 이게 다 시기를 잘 고른 덕분이다.
그래서 불법이냐 하면, 그건 아니다. 삼성물산의 최근 주가가 이 회사의 실제 가치에 비해 턱없이 낮았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이 회사가 보유한 부동산과 주식만 해도 29조5058억 원어치다. 이런 회사를 8조6300여억 원으로 평가해 흡수한다면, 주주 입장에선 속상한 일이다. 하지만, 주가가 기업의 실제 가치를 반영하지 못하는 건 흔한 일이다. 시장이 해당 기업의 미래 가치를 낮게 평가했다고 보면 된다. 결국 주주들의 동의가 관건이다. 오는 7월 17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임시 주주 총회가 열린다. 제일모직 주주들이 이번 결정을 반대할 이유는 없다. 삼성물산 주주들은 과연 동의할 것인가. 그렇다면, 문제가 없다.
지난해 삼성중공업-삼성엔지니어링 합병 무산, 재연될까?
이 대목에서 떠올리게 되는 사건이 있다.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이 합병한다는 발표가 난 게 지난해 9월 1일이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19일, 두 회사의 합병은 최종 무산됐다. 주주들의 주식 매수 청구권 행사가 쇄도한 탓이다. 주식 매수 청구권이란, 기업의 합병 등이 주주 총회에서 결의된 경우 이에 반대했던 주주가 자기 주식을 회사로 하여금 사들이도록 요구하는 권리다.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들이 너도나도 자기 주식을 회사에 떠넘기면, 회사의 자금 부담이 너무 커질 수 있다. 그래서 합병이 무산됐다.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 시도 역시 경영권 승계와 관련이 있었다. 당시 삼성 미래전략실(옛 비서실) 수뇌부가 받은 충격은 대단했다고 한다.
시나리오보다 중요한 게 실행인데, 여기서 헛발질이 있었던 셈. 7월 17일 삼성물산 임시 주총 이후에도 이런 일이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다. 물론, 삼성도 대비하고 있다.
제일모직 "주식 매수 청구권 행사하면, 주주에게 세금 발생"
제일모직이 지난 26일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합병 관련 증권 신고서를 보면, '주식 매수 청구권 행사 관련 유의 사항'이 담겨 있다. 지난해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합병 시도 당시엔 없던 내용이다. 여기엔 주주들이 주식 매수 청구권을 행사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세금 내역이 꼼꼼하게 적혀 있다.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들이 주식을 팔면 손해 볼 수 있다는 경고다. '관리의 삼성'다운 면모인데,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일단 증권가에선 이번 합병은 지난해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합병 시도와는 경우가 다르다고 보는 편이다. 삼성물산 주주 입장에선 이 회사의 미래 가치가 커졌다고 볼 테고, 굳이 합병에 반대할 가능성은 낮다는 게다. 그러나 주주들이 전략적으로 행동할 가능성도 있다. 이 부회장 입장에선 이번 합병이 절실하므로, 적극적인 반대를 통해 합병 비율을 재조정하려 한다는 게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한국 경제의 미래를 좌우하는 결정이 오로지 특정 가문의 상속 논리에 따라 이뤄지는 게 타당한가라는 것이다. 삼성물산의 운명은, 이 회사의 사업에 대한 시장과 사회의 판단에 따라 정해져야 한다. 경제개혁연대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 대한 논평에서 "'깜짝쇼' 형식의 인수 합병 발표가 아니라, 승계를 위한 사업 재편이 과연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효율적인지 여부에 대한 회사 측의 보다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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