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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난사' 예비군 훈련, 꼭 해야 하나?

[기고] '시간 때우기' 급급…1971년부터 폐지론

지난 13일 서울 송파·강동 예비군 훈련장에서 총기난사 사고가 있었다. 지난 주 예비군 훈련을 다녀왔던 터라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았다. 이런 사건이 나도, 대한민국 남자라면 선택의 여지 없이 예비군 훈련을 가야 한다. 불참하면 처벌받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비군 훈련의 관리 부실·소홀의 정도가 어떤지는 다녀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예비군 훈련 대상이 아니거나, 오래 전에 받아 보신 분들을 위해 지난 주에 필자가 다녀온 예비군 훈련 이야기를 좀 들려드린다.

훈련이 아침 9시까지 입소이니, 아침밥도 못 먹고 후다닥 집에서 나와 훈련장으로 갔다. 인원 파악을 하고, 올해부터 바뀐 훈련 방식에 대해서 교관이 이야기했다. 현역병들이 예비군을 통솔하던 '타율적 방식'을 바꿔, 예비군들끼리 10명 단위로 분대를 짜 5가지 훈련을 돌아다니며 받게 하는 '자율적 방식'을 도입했단다.

또 각 훈련과목에서 70% 이상의 성적을 받지 못하면 '조기 퇴소'를 할 수 없다고 한다. 전략적이다. 모든 예비군 훈련에 있어서 '조기 퇴소'는 교관들이 가진 미끼이자 강력한 무기다.

예를 들어 향방기본훈련은 원래 8시간인데, 오전 9시부터 시작하면 오후 5시에 끝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통상 훈련은 오후 3시에 끝난다. 사실 오전에 훈련을 다 이수하면 오후에는 막상 할 것이 없을 정도다. 6000원짜리 점심 먹고, 한두 시간 분대원들과 수다 떨다가 집에 가면 된다.

머리를 잘 쓰면 훈련은 오후 2시 반 전에도 끝낼 수 있다. 훈련 과목인 '심폐소생술', '분대전술', '포박술'은 형식적으로 30분 만에 다 이수할 수 있다. 실전 같은 예비군 훈련이라며 TV에도 나온 '시가지 전투'는 그래도 제대로 하겠지 했으나, 페인트 총탄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고 서바이벌 총이 고장났단다. 조를 대충 둘로 나누더니 양 쪽에 꽂힌 깃발을 선점하란다. 5분 만에 끝났다.

다음 '안보 강연.' 이번 안보 강연은 나름대로 개편을 했다고 한다. (원래 예비군 안보 강연에서는 수강자들의 절대 다수가 잠을 잔다). 탈북자 출신 랩퍼가 나와 김정은을 비하하는 랩을 한다. '요샌 이런 것으로도 랩을 하는구나' 생각했다.

개편을 한 효과인지 안보 강연에서 잠을 자는 사람은 크게 줄었다. 랩 때문이냐고? 그건 아니고, 안보 강연 내용으로 시험을 쳐서 낙제하면 조기 퇴소를 안 시켜준다고 해서다. 열의가 없던 젊은이들이 갑자기 미친 듯이 강연을 듣는다. 반복하지만, 조기 퇴소는 이렇게 강력한 무기다.

예비군 훈련에 대해 국가가 주는 유일한 보상은 밥값 6000원과 교통비 뿐이다. 동원훈련을 가면 2박 3일, 향방훈련을 하면 1일을 꼬박 날려야 하는데 말이다. 예비군 제도, 이제는 본격적으로 축소나 폐지를 논의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아니, 이미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한국에 향토예비군이 1968년 처음 창설된 이래, 대통령 후보들마다 예비군 축소를 주장했다. 심지어 1971년 대선에서 김대중 당시 신민당 후보는 '예비군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지난 2005년 '국방개혁 2020'에서도 '예비군을 절반 이상으로 축소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했다. 예비군과 관련된 무수히 많은 사회적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과연 예비군을 축소할 수 있을까? 아니면 최소한, 무수히 많은 청춘들을 2박 3일 동안(또는 8시간 동안) '잉여'로 만드는 예비군 제도에 대해 제대로 된 개혁안을 마련할 수는 없을까?

(이 글을 쓴 박지웅 변호사는 법무관으로 군 복무 중이던 지난 2008년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에 대해 헌법소원을 냈다가 이듬해 파면당했고, 2011년 고등법원으로부터 파면 취소 결정을 받았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회(민변) 사무차장을 지냈고, 새정치민주연합 홍종학 의원실에서 비서관으로 일하며 입법 활동 경험을 쌓기도 했다. 현재는 법무법인 '민본'에서 일하고 있다. 지난 1월에는 세월호 희생자를 어묵에 비유한 '일베' 회원들을 자신을 포함한 시민 510명의 이름으로 고발했으며, 이 소송 대리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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