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세계 5대 올리브유 생산지는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튀니지, 시리아이다. 스페인의 올리브유 생산량은 110만 톤(t)으로 단연 압도한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공정무역 올리브유의 산지는 팔레스타인이다. 2013년 이스라엘 생산량은 1만2300톤으로 최대 생산국인 스페인과 무려 90배 차이가 난다.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좁혀지면 아주 적은 양이다. 하지만 뜻밖에도 두레생협 에이피넷의 한준현(45세) 씨는 팔레스타인이야말로 최적의 생산지라고 말한다.
"팔레스타인 올리브유는 거의 두레생협 에이피넷의 역사나 다름없습니다. 공정무역 품목을 넓히려고 할 때 공정무역국제연대(WFTO)에서 팔레스타인 올리브유를 추천했어요. 생활협동조합으로서 국내 생산 품목과 중복되지 않는 올리브유 수입을 고민했습니다. 현지 생산지를 방문하고 일련의 소통 과정을 거친 끝에 팔레스타인과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왜 팔레스타인이어야 했을까.
"생산지에 들어가기도 힘들고 들어가서도 여러 가지 신경 쓰며 돌아다녀야 해요. 하지만 생산자들이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상황에 따라 국내에서도 어떤 운동을 병행할 수 있는 곳이죠. 처음 교류를 맺기로 했던 그때나 지금이나 팔레스타인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어요. 오히려 나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런 점이 앞으로도 함께 해야 하고, 계속 이어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던 가운데, 2014년 여름 50여 일 동안 '가자-이스라엘 전쟁'이 일어났다. 팔레스타인 현지 생산자들도 이 전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일차생산자 가족들의 인명피해, 전력이나 제조 공장 같은 기반 시설 파괴로 올리브유 생산은 큰 타격을 입었다.
"공정무역으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는 있지만 기반이 파괴된 상태에서는 그럴 수 없잖아요. 생산자분들에게 필요한 것을 물었더니, 답변이 나무 심기였어요."
이렇게 '팔레스타인 올리브 나무 심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2014년 11월 27일부터 2015년 1월 29일까지 가자지구 내 북부지역 아베드 랍보(Abed Rabbo), 바이트 하눈(Beit Hanoun), 자발라 동부(East Jabalia) 41가구에 농지 약 70두남(9.1헥타르)에 올리브나무와 시트러스(Citrus. 오렌지, 레몬, 라임, 자몽 같은 과일을 포괄) 묘목 2800그루를 심었고, 남부 라파지역(Rafah) 14가구에 온실 14개, 토마토 모종 3만5000포기를 나눴다. 시트러스와 토마토는 공정무역으로 수입되지는 않지만, 식량 안전과 생산지 내 시장 활성화에 도움을 줄 것이다. 갈등이 일상인 곳에서 이 나무들이 무사히 자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팔-이 전쟁' 때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이스라엘군이 올리브나무를 태우거나 베어버리기 때문이다.
"현지에서 타버린 흔적들을 많이 봤어요. 길가다가 웬 시커멓게 태워진 것이 있어 화전민이 있나 싶어 물어봤더니 이스라엘 군인들이 올리브나무를 태운 거라고 하더군요."
올리브나무는 자라는 데 오래 걸리는 편이다. 올리브나무는 석회질 토양에서 특히 잘 자라지만 건조하기만 하면 질흙에서도 자랄 수 있다. 뿌리가 튼튼하고 멀리 뻗어 건조한 곳에서도 강하기 때문이다. 더운 날씨와 그림자 한 점 없이 볕 잘 드는 곳에서 잘 자라며 영하 10도 아래 추위는 견디지 못한다. 가지치기만 잘하면 오랫동안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나무를 심은 지 4∼8년이 지난 뒤에 열매를 맺기 시작하지만 15∼20년이 지나야 가장 많은 열매를 얻을 수 있다. 올리브나무는 몇백 년까지도 자랄 수 있고 지중해 인근에는 1000년 넘게 산 올리브 나무도 있다고 한다.
팔레스타인 현지에서도 눈 돌리면 올리브나무가 보이고 몇백 년 된 나무들도 있다. 하지만 할아버지에 할아버지 때부터 생계를 책임져주고 함께 지낸 올리브 나무가 한순간에 불타거나 베어질 때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언제 또 올리브나무가 베어질지 모를 불안감을 늘 안고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올리브 나무는 생명이나 다름없습니다."
불안감이 일상이 된 상황에서도 그들은 다시 나무를 심는다. 전쟁 위협이나 분쟁 없는 일상을 만드는 평화의 나무를 꿈꾸면서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프로젝트를 지원한 안민지(27세) 씨는 팔레스타인 생산자들이 나무심기 프로젝트를 하겠다고 했을 때 사실 많이 놀랐다고 한다.
"불안한 현실에서 앞으로 나무를 키우고 관리하셔야 되잖아요. 그분들에게 올리브 나무가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어서 뿌듯하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하며 복잡한 감정이 들었어요."
지난해 국내 올리브유 수입량은 1만3520톤, 약 550억 원에 이른다. 그 가운데 팔레스타인 공정무역 올리브유 수입량은 30톤, 5억4000만 원으로 약 1% 정도이다. 요즘 우리나라의 '먹방·쿡방 열풍'은 먹는 감각을 깨우는 데만 온통 쏠려 있다. 여전히 우리가 먹는 올리브유가 어디서 어떻게 자라고 누가 생산하는지 관심도 없고 낯설게만 여긴다. 나만의 식감을 넘어 다른 사람을 향한 감각까지 세우는 것이 공정무역의 시작이다. 팔레스타인 올리브유로 평화의 나무를 한 그루 심는 것은 어떨까.
월간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1996년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 생태 환경 문화 월간지입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위한 이야기와 정보를 전합니다. 생태 감성을 깨우는 녹색 생활 문화 운동과 지구의 원시림을 지키는 재생 종이 운동을 일굽니다. 달마다 '작아의 날'을 정해 즐거운 변화를 만드는 환경 운동을 펼칩니다. 자연의 흐름을 담은 우리말 달이름과 우리말을 살려 쓰려 노력합니다. (☞바로 가기 : <작은 것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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