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값이 부담돼 '차라리 그냥 죽을까' 고민했던 신 씨는 "잴코리가 곧 건강보험이 적용될 것 같다"는 담당 의사의 설명을 듣고 약을 먹기로 했다. 실제로 지난 1일부터 잴코리는 건강보험이 적용됐고, 신 씨는 앞으로 약값의 5%만 부담하면 될 줄 알고 한시름 덜었다.
하지만 신 씨는 '잴코리'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받을 수 없었다. 보건복지부에 문의하니 "잴코리는 다른 약을 1차 치료제로 먹어 보고 2차 치료제로 써야 건강보험이 적용되므로, 신 씨처럼 처음부터 '잴코리'를 쓴 환자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신 씨는 지난 11일 한국환자단체연합회가 서울 중구 북창동에서 연 '환자샤우팅' 행사에 참여해 "건강보험이 적용된다는 말만 믿고 지금까지 왔는데, 정책 입안자들이 나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며 울분을 토했다.
지난 2년 동안 신 씨는 치료비로 3억 원을 썼다. 세 아들이 월급 대부분을 보탰지만, 한 달 약값 1000만 원을 대기에는 버거웠다. 급기야 큰아들 부부는 신 씨 치료비 문제로 싸우다가 이혼까지 했다. 신 씨는 "둘째 아들 부부도 불안하고, 막내아들은 나 때문에 결혼도 안 한다고 한다"며 가슴을 쳤다.
신 씨는 "언제 내성이 생겨서 못 먹을지 모르는 약이고, 이 약을 먹고 내가 언제까지 산다는 보장도 없는데 왜 나는 건강보험이 안 되느냐"며 "죽더라도 억울해서 이렇게는 안 죽고 싶다. 이 약이 건강보험이 적용돼서 한 알이라도 먹어보고 죽고 싶다"고 말했다.
"4대 중증질환 공약, 제대로 실행되고 있나?"
화이자제약이 내놓은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잴코리'는 건강보험 적용을 두고 그간 수많은 논란을 낳아 왔다.
이 약은 암 완치제는 아니나, 폐암 말기 환자들의 생명을 평균 9개월가량 연장시켜 주는 약이다. 다만, 효과에 견줘서 제약회사가 부른 가격이 비싸다는 이유(비용 효과성 불분명)로 그동안 건강보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었다.
논쟁 끝에 '위험 분담 제도' 방식으로 지난 1일부터 잴코리에 건강보험이 적용되면서 환자가 내야 할 한 달 약값 부담은 1000만 원에서 37만 원으로 뚝 떨어졌다.
위험 분담제란 보험 청구액의 일정 비율을 제약회사가 건강보험 공단에 환급하는 방식이다. 건강보험 재정 지출을 줄이려는 정부와 외국에서 가격 협상력을 유지하려는 초국적 제약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다소 변칙적인 제도다.
문제는 '위험 분담 제도'로 건강보험이 적용된 약은 3년간 건강보험 적용을 확대할 수 없도록 묶여있다는 점이다.
권용진 국립중앙의료원 기획조정실장은 "정부가 4대 중증질환에 대한 보험 급여를 확대한다고 발표했는데, 암 환자의 가계 파탄을 막겠다는 것이 제도의 목적이었다"며 "제도의 본래 목적대로 건강보험이 적용됐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 실장은 특히 "정부가 건강보험 적용 기준을 만들기 전에 이미 1차 치료제로 잴코리를 사용해서 효과를 봤던 환자에 대해서도 고려했어야 한다"며 "최근 1차 치료제로 잴코리를 쓴 환자에게도 효과가 있다는 논문이 나왔으니, 건강보험 적용을 재논의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른 항암제 썼다가 잘못될까 두렵다"
신 씨 사례에 대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관계자는 "다른 항암제로 바꿨다가 환자 상태가 악화했다는 의사 소견이 나온 뒤, 다시 잴코리로 바꿔서 상태가 호전됐다는 소견이 나오면 건강보험을 적용할 수 있다"며 "환자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겠지만, 제도가 그러니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신 씨는 "폐암 환자 중에서도 5%만 잴코리를 쓸 수 있다고 하는데, 나는 그 5% 중에서도 가장 약이 잘 듣는 경우에 속했다"며 "하지만 잴코리를 3년 썼던 다른 환자분이 최근 내성이 생겨서 못 쓰게 된 것을 봤고, 나도 이 약을 먹어도 앞으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불안해했다.
신 씨는 "(이런 상황에서) 다른 항암 치료를 하다가 잘못되면 잴코리로 갈아타라는 것은 나를 가지고 다시 임상 실험하겠다는 것"이라며 "다른 항암제로 바꾸면 한 달, 길어야 두 달 버틸 수 있다고 하는데, 그러다 (잴코리로 다시 바꾸기 전에) 죽으면 억울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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