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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약값 1000만 원, 말기 폐암 환자는 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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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약값 1000만 원, 말기 폐암 환자는 어쩌라고?

[기고] 중증질환 환자의 신약 접근권 보장 위한 기금조성이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이후 대선 공약사항인 4대 중증질환 보장성 확대와 3대 비급여(선택진료비․상급병실료․간병비) 개선 정책을 흔들림 없이 계속 추진하고 있다.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정책을 단계적으로 추진하면서,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의료사각지대 저소득층 환자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비급여를 포함한 의료비를 2000만 원까지 지원하는 '한시적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도 시행하는 세심한 배려까지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항암제 3개 중 2개는 '그림의 떡'

문제는 박근혜 정부의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유독 중증질환 환자들이 신약 접근권 확대만은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생명과 직결된 암 치료제는 전 세계적으로 23개가 새로 등재되었으나, 우리나라에는 이 중 39%에 해당하는 9개만이 건강보험 적용이 되고 있다. 항암제 3개 중 2개는 환자들에게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신약을 시기적절하게 공급하는 것은 환자의 질병 치료와 환자가족의 경제적 부담 경감, 그리고 의약품 접근권을 보장해야 할 국가의 책무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OECD 가입국 지위에 걸맞지 않게 신약의 건강보험 적용이 지연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해 환자들이 치료약을 두고서도 죽음으로 내몰리는 상황에 종종 처하기도 한다. 이는 "모든 환자는 필요한 의약품을 먹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환자에게 의약품이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는 '환자권리선언문'에도 반한다.

영국의 항암제 기금(Cancer Drug Fund)

지난 14일 환자단체들은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실을 방문해 주호영 의장과 간담회 시간을 가졌다. 여기서 환자단체는 생사의 기로에서 치료약이 있어도 사용하지 못하면서 힘겹게 버티고 있는 환자들의 어려움을 호소했고, 환자의 신약 접근권 보장을 위해 주호영 의장에게 조속히 대안을 마련해 줄 것을 제안했다.

▲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지난 14일 주호영 새누리당 정책위의장과 간담회 시간을 가졌다. 이날 간담회에는 주호영 의장, 보건복지부에서 파견된 최희주 보건복지위 여당 수석전문위원과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이은영 한국백혈병환우회 사무국장, 안상호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대표가 참석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그 대안 중 하나로 영국에서 항암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보수당 정권 공약사항으로 2011년부터 운영되고 있는 'Cancer Drug Fund(항암제 기금, 이하 CDF)'를 소개했다. 이는 약값이 너무 비싸 건강보험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거나 지연되는 항암제이더라도, 말기 암 환자들의 신약 접근권 보장을 위해 임상적 판단에 따라 별도의 조성된 기금에서 약값을 지원하는 제도이다. 2011년부터 연간 2억 파운드씩 기금이 조성되었으나 2014년과 2015년도에는 2억8000만 파운드로 증액되었다.

최근 한 달 약값 1000만 원으로 고액 항암제 논쟁을 불러 일으켰고, 해당 제약사 직원의 약제급여평가위원회 위원 로비 의혹까지 제기되었던 '잴코리'라는 말기 폐암 치료제가 있다. 이 약은 우리나라에서 2012년 1월부터 출시됐지만, 아직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았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300여 명의 말기 폐암환자들이 '잴코리'를 복용해야 하지만, 경제적 능력이 되어 매달 약값 1000만 원을 지불하고 복용하는 환자는 60여 명에 불과하다. 중환자실 입원이 필요한 환자들도 '잴코리' 복용 후 며칠 만에 일상생활이 가능한 경우가 흔할 정도로 그 효과는 드라마틱하다. 문제는 '잴코리'가 완치제가 아니라 말기 폐암 환자의 생명을 평균 9개월 정도 연장시키는 항암제라는 것이다.

말기 폐암환자, 한국에서는 죽고 영국에서는 산다

'잴코리'는 2012년 2월과 2013년 8월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 급여신청을 했지만 두 번이나 통과하지 못했다. 그 사이 한 달 약값 1000만 원을 지불할 능력이 되는 말기 폐암환자 60여 명은 '잴코리'를 복용했지만, 약값을 부담할 형편이 안 되는 240여 명은 9개월간 생명을 연장하면서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기회를 잃었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비싼 약값 때문에 '잴코리'가 건강보험(NHS) 등재가 되어 있지 않지만, 영국의 말기 폐암환자들은 '잴코리'를 복용하고 있다. 약값을 'CDF'에서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 한 달 약값 1000만 원으로 고액 항암제 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말기 폐암치료제 '잴코리'는 우리나라에서 2012년 1월부터 출시되었지만, 아직까지 비급여로 다수의 환자들이 복용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영국의 말기 폐암환자들은 2011년부터 운영되고 있는 '항암제 기금(Cancer Drug Fund)'에서 지원받아 복용하고 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우리나라 말기 폐암환자들이 '잴코리'를 먹지 못하는 이유는 약값을 높게 받으려는 제약사와 약값을 많이 깎으려는 정부의 약값 줄다리기 때문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말처럼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건강보험료와 세금을 꼬박꼬박 내고 있고, 약값 결정에 아무런 잘못도 없는 말기 폐암환자들이 제약사와 정부의 약값 흥정 때문에 9개월이라는 천금 같은 시간을 도둑맞는 것은 문제가 있다.

어떤 부자 환자는 '잴코리'를 복용한 후 가족과 함께 여행도 가고 남은 인생을 의미 있게 정리하고 있는데, 어떤 가난한 환자는 '잴코리'를 복용하지 못해 응급실과 중환자실을 들락날락 하다가 결국 9개월 일찍 죽음을 맞이한다면 죽음을 앞둔 가난한 환자와 이를 지켜보는 가족들의 심정은 찢어질 것이다. 우리나라 말기 암환자도 영국의 말기 암환자처럼 자신의 생명을 연장시켜줄 신약을 먹게 해 달라는 요구는 절대 무리한 요구가 아니다. (☞관련 기사 : 폐암 말기 환자 "한 달 약값 1000만 원, 가족에게 미안해")

정부와 제약사가 참여하는 기금조성 모델 적합

환자단체들은 주호영 정책위의장에게 "제약사와 정부의 약값 협상 결렬이나 지연으로 환자들이 피해받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나라도 영국의 '항암제 기금(Cancer Drug Fund)'과 같은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주호영 의장은 "기금은 재원처가 분명해야 기획재정부를 설득할 수 있으니, 정부 재원 이외 조달할 수 있는 민간 재원에 대해 조사한 후 구체적인 방안을 만들어 오면 기획재정부와 논의하겠다"며 공감을 표했다.

환자의 신약 접근권이 늦어지는 근본 이유가 제약사와 정부의 약값 협상 결렬이나 지연이기 때문에 기금 조성에 정부와 제약사가 참여하는 것이 가장 현실성 있는 모델이다.

물론 제약사가 엄청난 재원의 기금을 부담할지는 의문이지만, 중요한 것은 제약사에서 기금을 출연해야 기획재정부의 기금 출연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집권 여당의 정책위 의장이 환자단체들에게 낸 숙제이고 환자단체는 어쨌든 이 숙제를 풀어야만 한다.

주호영 정책위의장,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 하루아침에 중단은 문제

또한 환자단체는 "2013년 8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한시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은 저소득층 중증질환 환자의 호응과 만족도가 높고 의료사각지대 해소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2015년 재원도 8월경이면 모두 소진될 것으로 예측되어 해당 환자들의 불만과 걱정이 가중되고 있다. 중증질환 환자들이 재원 조기 고갈이나 사업기간 종료를 걱정하지 않도록 계속 안정적으로 유지할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은 2012년 8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암, 희귀난치성질환, 심장질환, 뇌혈관질환, 화상 등 중증질환 환자의 비급여를 포함한 의료비를 최고 2000만 원까지 지원하는 한시적인 제도로써 기획재정부에서 300억 원,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300억 원씩 총 600억 원의 재원으로 운영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에 대해 주호영 의장은 "중증질환 환자의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수준에 맞춰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하지만) 혜택을 주는 사업을 하루아침에 중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재원이 문제라면 현재 수혜자 범위가 넓다는 비판이 있으니 이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대신 치료비가 2000만 원을 넘어가는 환자도 특별한 경우 지원 금액을 높이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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