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초반 KBO리그의 이슈 메이커 한화가 또 한 번의 대형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6일 한화 이글스는 KIA 타이거즈와 4대3 트레이드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한화에서 투수 유창식과 김광수, 외야수 오준혁과 노수광이 KIA로, KIA에서는 투수 임준섭과 박성호, 외야수 이종환이 한화로 건너가는 트레이드다.
지난 4월초 이성열 영입으로 한동안 재미를 본 한화는 이번에도 올 시즌 성적에 초점을 맞춘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이번 트레이드는 한화 쪽이 먼저 KIA에 임준섭을 요청하고, 이에 KIA가 유창식을 맞상대로 지목하면서 성사됐다. 결국 임준섭과 유창식, 두 좌완 투수의 이적 이후 활약에 트레이드의 성패가 달려 있는 셈이다.
먼저 한화가 얻은 선수들을 보자. 대졸 4년차 임준섭은 지난 3년간 KIA 마운드에서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스윙맨 역할을 했다. 등판한 81경기 중 선발 등판은 42차례, 불펜은 39차례로 거의 5:5에 가까운 비율이다. 안영명 외에는 사실상 선발과 불펜의 구분이 사라진 한화 마운드에 최적화된 유형의 투수다. 상대팀에 따라 선발로 기용했다가 며칠 뒤에는 불펜으로 기용하는 김성근 감독 스타일의 투수 운영에 큰 어려움 없이 적응할 것으로 보인다.
불펜으로 자리를 굳힌 올 시즌에는 3연투 한 차례, 4연투 한 차례를 소화하며 연투 능력도 증명했다. 선발로 나올 때는 140km/h를 밑돌던 빠른 볼 구속도 올해는 140km/h 중반대로 상승하며 데뷔 이래 가장 좋은 탈삼진율(K% 18.84, 통산 10.66%)을 기록 중이다. 그간 지속적으로 선발보다는 불펜에서 좋은 투구를 선보였다는 점에서, 한화에서도 일정 수준 활약이 예상된다. 김성근 감독은 임준섭을 “왼손 송창식”으로 활용하겠다고 공언했다.
임준섭과 함께 한화 유니폼을 입은 이종환은 중거리포를 갖춘 좌타 외야수다. 2013년과 2014년 대타와 백업 외야수로 출전하며 나쁘지 않은 공격력을 선보였다. 이에 외야가 구멍난 올 시즌 KIA에서 출전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지만, 김다원이 두각을 드러내고 김호령-이은총 등 젊은 선수들의 활약으로 13경기 18타석에 나서는데 그쳤다. 2012년 이후 우투수 상대 타율 0.302/장타율 0.435로 강점이 있는 만큼, 한화에서는 대타와 백업 외야수로 좀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질 전망이다.
우완 투수 박성호는 이번 트레이드로 친정팀 한화에 복귀하게 됐다. 박성호는 지난 2009년 신인드래프트 4라운드에서 한화의 지명을 받고 입단했다가 장성호가 포함된 3대3 트레이드 당시 KIA로 건너갔다. 2013년에는 상무에서 54경기 66.1이닝 동안 3세이브 9홀드 평균자책 3.12를 기록하며 좋은 투구내용을 보였다. 원래는 140km/h 중후반대 빠른 볼을 뿌리던 투수지만 올해 퓨처스리그에서는 좀처럼 구속이 올라오지 않는 모습이다. 장점인 빠른 볼 구속을 어느 정도 되찾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유창식과 한화의 어긋난 4년
한화가 당장 올 시즌 써먹을 좌완불펜과 대타-외야수감을 선택했다면, KIA쪽에서는 잠재력 있는 젊은 선수를 데려오는데 주안점을 뒀다. KIA가 영입한 4명 중 가장 핵심적인 선수는 좌완 유창식이다. 광주일고 에이스 출신인 유창식은 지난 2011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1라운드 1번으로 한화에 입단했다. ‘초고교급 투수’, ‘미국에서도 주목하는 선수’, ‘양키스가 귀찮게 하는 투수’로 각광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지난 다섯 시즌 동안 남긴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올 시즌을 앞두고는 김성근 감독이 직접 투구폼을 만지며 기대를 모았지만, 결과는 오히려 지난 시즌보다 더 좋지 않았다. 시범경기 부진에 이어 정규시즌에서도 8경기 평균자책 9.16으로 무너지며 결국 트레이드 매대에 오르게 됐다. 시범경기에서는 100구 이상을 투구해 ‘벌투’ 논란이, 정규시즌에서는 두산전에 15구 연속 볼을 던지며 유쾌하지 않은 화제거리만 남겼다.
그렇다면 최고 유망주 유창식은 왜 한화에서 실패했을까. 여기에는 몇 가지 불운과 부정적인 환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한화는 미국 구단들을 제치고 유창식과 계약하기 위해 7억 원이라는 파격적인 계약금을 베팅했다. 최근 1라운드 신인 계약금이 담합에 가까운 3억원 수준으로 고정된 상황에 비춰보면 매우 큰 금액을 투자한 셈이다. 이에 유창식에게는 입단 이후 줄곧 ‘7억원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이 뒤따랐다.
최근 KBO리그는 리그 전체 수준이 향상되면서, 고교를 갓 졸업한 선수가 좋은 활약을 펼치기는 쉽지 않은 여건이다. 이에 많은 구단은 신인 유망주를 다년간 퓨처스리그에서 많은 경기에 출전하며 실전 경험을 쌓게 하거나, 1군에 기용하더라도 불펜이나 백업 멤버로 역할을 제한한다. 당장 좋은 활약을 못하더라도, 꾸준히 2군 경기에 출전하고 군복무까지 마치면 잠재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하고 충분한 시간을 주는 편이다. 유망주가 입단하자마자 바로 1군에서 엄청난 활약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는 구단은 거의 없다.
하지만 유창식은 처지가 달랐다. 한화는 유창식이 바로 1군에서 ‘7억팔’의 잠재력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리고 유창식이 –다른 많은 신인 유망주들처럼- 1군 타자들을 상대하는데 어려움을 보이자, 기대는 빠른 속도로 실망이 되어 돌아왔다. 구단 내에서도 “무슨 7억짜리가 저러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비슷한 시기 다른 구단 1라운드 지명자 대부분이 혹독한 프로무대 적응기를 겪었지만, 누구도 이 선수들에게 ‘기대만 못하다’ ‘계약금이 너무 많았다’는 비판을 하지는 않았다. 신인이라면 당연히 겪는 통과 의례로 여기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유창식은 2군에서 성장할 시간도, 1군에서 적응할 기회도 거의 없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했다.
프로에 입단한 신인 투수들은 대부분 고교와 대학 시절 많은 공을 던진 후유증으로 몸 상태가 좋지 않은 편이다. 입단 당시 유창식도 완벽한 몸 상태는 아니었다. 고교 시절 유창식은 양 다리가 엇갈려 나오는 ‘크로스 스탠스’로 150km/h 가까운 강속구를 던지며 타자에게 공포감을 주는 투수였다. 프로에서는 이 투구폼을 부상 방지와 컨트롤 안정을 위해 일반적인 스탠스로 수정해야 했다. 그 자체는 합리적인 판단에 따른 처방이지만, 대신 고교 시절 장점이던 공의 위력과 타자에게 주는 위압감은 예전만 못하게 됐다. 완벽하지 못한 몸 상태에 바뀐 투구폼으로 막중한 부담감을 안고 1군에서 던지는 19살 신인투수가 성공을 거둘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쉽지 않은 이야기다.
한화는 유창식을 다루는 면에서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했다. 2군에서 좀 던진다 싶으면 바로 1군에 올려 테스트했다가 한 두 경기 부진하면 다시 내려 보내는 패턴이 반복됐다. 그 과정에서 선수는 자신감을 잃고 주눅만 들었다. 이는 2012 1라운드 1번 지명자 하주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주석은 고교 시절 미국에서 주목하는 내야수로 각광받았지만, 입단 이후 1군에서는 대주자와 대수비를 전전했다. 이따금 주어진 기회에서 안타를 쳐내지 못하면 다시 벤치에 앉거나 2군에 내려가는 패턴의 반복이었다. 하주석은 올 시즌 퓨처스리그 상무에서 붙박이 톱타자로 경기에 나서며, 19경기 타율 0.363에 8도루 장타율 0.513을 기록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2013 신인 1번 조지훈도 다르지 않았다. 이는 한화의 스카우트와 선수들의 문제라기보다는, 뽑은 선수를 관리하고 육성하는 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유창식은 풀타임 선발투수로 기용된 지난 시즌 데뷔 이후 가장 낮은 평균자책점(4.14)과 가장 좋은 WAR(1.0)을 올리며 어느 정도 자리를 잡는 모습을 보였다. 올해 현재까지는 평균자책점 9.16으로 좋지 못한 기록을 내고 있지만, 0.429로 통산(0.321)에 비해 높은 인플레이 타구 안타비율(BABIP)과 52.63%의 낮은 잔루처리율(리그 평균은 70~72%)을 감안하면 반등의 여지가 있다. 올해는 유독 불운한 일도 많았다. 선발투수로 내정된 상황에서 갑작스레 불펜 ‘알바’를 하는 일도 있었고, 수비 실수로 이닝 종료에 실패한 뒤 홈런포를 얻어맞는 경우도 두 차례나 나왔다.
이런 면에서 고향 팀인 KIA로의 이적은 유창식 개인에게는 새롭게 출발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기대치에 부응해야 한다는 중압감, 팀 안팎의 따가운 시선, 잇단 불운에서 벗어나 첫 단추부터 다시 꿸 수 있는 기회다. 필요하다면 부진한 선수에게도 ‘100타석까지도’ 충분한 기회를 부여하는 김기태 감독의 스타일도 유창식이 좀 더 편안한 환경에서 투구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기태 감독은 LG 시절 모두가 포기했던 ‘최고 유망주 출신’ 유원상을 리그 정상급 불펜요원으로 키워낸 바 있다. 유창식도 확실한 보직과 일관성 있는 기용만 이뤄진다면, 충분히 데뷔 때의 기대치를 보여줄 수 있는 잠재력이 남아 있는 투수다.
한편 KIA는 유창식과 함께 베테랑 우완투수 김광수, 젊은 외야수 요원인 오준혁과노수광도 받아 왔다. 이 중 오준혁과 노수광 둘 다 빠른 발과 컨택 능력을 갖춘 외야 요원으로, 외야진 리빌딩이 진행중인 KIA에 딱 들어맞는 선수들이다. 오준혁은 올 시즌 퓨처스리그 24경기에서 타율 0.367에 10홈런 장타율 0.522를, 노수광은 25경기 타율 0.347에 3개의 3루타를 기록하고 있다. 퓨처스리그 성적을 1군에 그대로 적용할 순 없지만, 현재 KIA 1군에서 뛰는 신인급 외야수들의 2군 기록과 비교하면 훨씬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는 점이 기대해볼 만하다.
시즌 초반 무서운 질주 중인 한화는 이번 트레이드에서도 올 시즌 ‘당장’을 겨냥했다. 한화가 영입한 임준섭, 이종환 등은 이미 어느 정도 성적 예상치가 나와 있는, 당장 팀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선수들이다. 반면 올 시즌 이후에 초점을 맞추고 팀을 재편하는 중인 KIA는 선수들의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영입을 했다. 미완의 기대주 유창식과 젊은 외야수들이 KIA에서 잠재력을 현실로 만드는데 성공한다면, 이번 트레이드는 양 팀 모두에 성공적인 트레이드로 남게 될 것이다.
기록출처: www.baseball-la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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