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진정으로 사회정의의 보루가 되려면
많은 국민들은 대법원이 우리 사회의 정의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런데 국민들이 바라는 이러한 대법원의 위상은 대법원의 기득권 강화에서 비롯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대법원이 국민의 권리를 옹호하고 신장시키려 노력하는 데 존재한다.
상고법원 신설론에 대하여
대법원이 맡아온 상고심 사건 대부분은 상고법원으로 넘기고 대법원은 중요한 사건만 추려서 재판하도록 한다는 상고법원 설립 법안이 국회에 상정되어 있다.
일반 국민에게 재판이란 자신의 일생을 좌우할 수 있는, 치명적인 영향력을 지닌 중차대한 문제이다. 이렇듯 국민들의 생활에 결정적인 관련을 맺고 있는 중요한 문제가 국민들이 거의 알지 못 하는 가운데 진행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반드시 충분한 공론화 과정의 절차를 거쳐야 마땅하다.
상고법원 신설은 사실상 4심제이며, 그것은 국민들의 비용 부담이 대단히 커지고 재판 기간이 지금보다 훨씬 더 소요되어 국민에게 피해를 주고 재정과 시간의 낭비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의 3심제는 비록 헌법 규정은 아니지만 일종의 ‘관습헌법화’한 상황이다.
또한 우리 국민은 헌법에 명시된 바 최고법원인 대법원을 최종심으로 하는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 만약 ‘상고법원’이 만들어진다면 어떤 사람은 대법관한테 재판받고, 어떤 사람은 ‘상고법원’의 일반 판사한테 재판받게 되는데, 그 분류 기준이 지나치게 자의적이다. 따라서 상고법원 신설론은 헌법이 보장한 대법원에서 재판받을 권리를 박탈한다는 위헌 논란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각 분야별 전문화된 대법관 필요
우리 사회에서 법원의 문제는 “검찰권력” 문제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노출되지 않았지만, “사법권력”이 이에 대한 효과적인 견제 시스템의 부재 속에서 갈수록 비대화하고 있어 주시해야 할 상황이다. 사법 권력에 대해서도 시민의 통제 시스템이 작동되어야 하며, 이를 위하여 장기적으로 최소한 지방 법원장의 직접 선출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동시에 고도의 복잡화와 전문화가 진행되는 현대사회에서 우리 법원의 정상화는 우선 대법관의 대폭 증원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12명의 대법관이 민사·형사라는 전통적인 분야를 넘어 행정, 재정, 사회, 노동, 특허 등 제반 분야, 더구나 연간 수만 건에 달하는 사건에 대한 전문적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는 상황은 상식 있는 사람이면 모두 알 수 있다.
300명에 가까운 독일과 프랑스의 대법관
독일에서 민사와 형사에 관한 상고심에 해당하는 연방(일반)대법원은 2014년 현재 128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외에 행정, 재정, 사회, 노동 등 다른 분야(연방행정법원, 연방재정법원, 연방사회법원, 연방노동법원)를 합하면 전체 대법원 대법관은 약 300명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행정사건을 제외한 일반사건의 최고법원인 파기원은 129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헌법재판소의 존재 여부이다. 상고법원 신설론에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경쟁이 그 배경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미국이나 일본의 국가는 헌법재판소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연방대법원(혹은 최고재판소)이 위헌법률 심판 등 헌법재판소 기능을 같이 수행함에 따라 “법령해석 통일의 기능”이 가장 강조되는 반면, 독일이나 프랑스와 같이 헌법재판소가 별도로 존재하는 국가의 경우 대법원은 다수의 전문적 대법관에 의한 “권리구제의 기능”이 강조된다.
따라서 기왕에 헌법재판소가 존재하는 우리나라에서 대법원이 국민들의 권리구제에 중점을 둬야 함은 너무나 당연하다.
대법원 자신부터 변해야 한다
진정으로 사법부의 위상을 제고시키고자 한다면, 세계적으로도 입법례가 없는 상고법원 신설 등 다른 사법 시스템의 변화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먼저 대법원 자신부터 변화되어야 한다.
우선 정치적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 지양되어야 한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경우에도 정치적 사건에 대한 개입은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반면 그간 우리나라에서 이뤄진 법원의 정치적 사건 판결은 대부분 정치권력의 입맛에 따라 좌우되는 결과로 귀결됨으로써 법원에 대한 신뢰 위기를 자초하는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로 작용하였다. 일례로 최근의 긴급조치 배상 소송 사건에서도 대법원은 전원합의체가 내린 기존 판결을 소부가 “통치 행위는 불법이 아니다”는 논리로 뒤집었다.
대법원이 이러한 논리를 주창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일본 아베 총리에게 일제 강점기의 위안부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행태야말로 대법원의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주요 요인이다.
지금 이 땅의 사법 시스템이 필요로 하는 것은 12명 소수의 ‘전지전능한’ ‘신적(神的)’ 대법관과 이들로 구성되는 대법원의 기득권을 완전하게 유지시켜가는 방식이 아니라 국민이 제대로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다.
만약 각 분야별로 전문화된 전문대법원과 대법관 증원으로 대법원이 새로 구성된다면, 국민들이 제대로 재판을 받을 수 있게 되고 법원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 신속하게 제고될 수 있다.
그렇게 될 때 사법부의 위상도 비로소 흔들림 없이 확고하게 정립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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