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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참에 '노동부'를 '노예부'로 바꾸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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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참에 '노동부'를 '노예부'로 바꾸면 어떨까?

[기자의 눈] '근로자의 날'에 노동부를 생각한다

5월 1일은 세계적으로 '노동절'이라고 부르는 날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근로자의 날'이라고 부르라고 정했다. 하긴 임금을 목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정부는 한사코 '근로자'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근로자에게만 특별히 유급 휴일을 주는 날을 '근로자의 날'로 부르려는 것은 '일관성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근로자를 고용하는 정책을 만드는 주무 부처는 '근로부'가 아니라 '노동부(2010년에는 고용 정책 총괄 부서라는 점을 강조한다면서 고용노동부라고 변경했다)'라고 하는 것을 보면 의문이 든다. 단지 어감 차이인가?

그렇지 않다. 근로자는 '노예'를 완곡하게 표현한 대체 용어이기 때문에 '근로부'라고 하면 '노예를 다루는 기관'이라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격이 떨어져 스스로 '근로부'라고 자처하기는 민망한 일이 된다.

근거가 없는 해석이라고? 아니다. 최근 근로자 보호를 위한 '특별 경찰'이라고 불리는 국가 공무원인 노동부의 근로감독관이 '진실'을 털어놓아 발칵 뒤집힌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의 내용은 이렇다. 경상남도 김해 지역 한 인터넷 협력 업체 서비스 기사들이 임금 체불 문제로 노동부에 민원을 제기했는데, 7개월째 아무런 답을 받지 못하고 있다가 근로감독관을 직무 유기로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이들이 검찰 고발에 나서게 된 것이 근로감독관이 노동자가 아니라 기업을 봐주기 위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 근거로 이들은 녹취한 근로감독관의 발언을 언론에 공개했다.

녹취에는 근로감독관이 "여러분들이 사실은 요새 노예란 말이 없어 그렇지 노예적 성질이 근로자성에 다분히 있어요"라고 말한 대목이 담겨 있었다. 심지어 노동법이 근거라는 얘기까지 했다. 그는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들이 "근로자는 돈주는 만큼은 너는 내 마음대로 해야한다 이렇게 돼있다"고 주장했다.

현재의 노동법이라는 게 노예로 불리던 시절의 어떤 부분을 개선했을 뿐이지 본질적으로 돈 주고 사는 건 마찬가지라는 '본질'을 실토한 발언이다.

근로감독관이 왜 '노동감독관'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예들을 의미하는 근로자를 다루는 격 떨어지는 직무이기 때문이다. 노동부 산하에서 노예들인 근로자들이 죽거나 다치면 도와준다는 기관의 이름이 '노동복지공단'이 아니라 '근로복지공단'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근로복지공단의 영어 명칭에서 '근로자'에 해당하는 번역도 노동자를 의미하는 'laborer'가 아니라 'worker'라고 표현돼 있다.

노동계에서는'근로자(worker)'와 '노동자(laborer)'의 용어 차이에 민감하다. '근로자'는 수동적으로 고분고분 시키는 대로 부림을 당하며, 임금은 사용자가 주는대로 받는 의미가 담겨 있으며, '노동자'는 노동의 주체로서의 권리를 의식하는 능동적 존재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건설 현장에서 안전모 착용 시범을 보이는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연합뉴스

근로자의 날에 "3분의 1은 근로"가 의미하는 현실

정부도 이를 모르는 바 아닐 것이다. 그러니 근로자를 다루는 기관으로서 산하 기관이면 몰라도, 명색이 중앙 부처까지 노예를 뜻하는 '근로'를 명칭에 포함시키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이상한 점은 또 있다. 근로자의 날인데, 근로자의 3분의 1은 근로자의 날에 근무하고, 대부분은 보상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온라인 취업 포털 '사람인'이 직장인 1197명을 대상으로 '5월 1일 근로자의 날 휴무 여부'를 조사한 결과, 34.2%가 '쉬지 못하고 근무한다'고 답했다. 재직 중인 기업에 따라 살펴보면, '중소기업'(36.7%), '중견기업'(32.1%), '대기업'(24.8%) 순이었다.

근로자의 날은 유급 휴일로 이날 근무하게 되면 1.5배의 수당을 받아야 하지만, 68.2%가 보상이 없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79.6%는 별다른 대응 없이 그냥 넘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근로자가 '노예'라는 것을 보여주는 실감나는 조사 결과다.

근로자의 날에 쉬지 못하고 근무하는 직장인들은 이로 인해 '업무 의욕 상실'(50.9%, 복수 응답), '퇴사 및 이직 충동'(40.6%), '업무 집중력 감소'(36.7%), '애사심 감소'(36.2%), '상대적 박탈감'(35.2%) 등의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증세를 드러내면 곤란할 것이다. 노예의 본문을 망각한 근로자이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종북'으로 몰릴 수도 있다.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는 근로자라는 용어를 굳이 '노동자'라는 용어로 바꿔 쓰고, '근로자의 날'을 '노동절'로 부르는 사람들을 '골치아픈 노예' 정도가 아니라 '빨갱이'라든가 '종북'으로 보는 시선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사실 '노동절'은 '노동계의 현충일'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절은 미국 노동계가 1886년 5월 1일부터 '8시간 근로'를 쟁취하려는 투쟁에 돌입해, 그 과정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의 죽거나 다치고 체포된 것을 기리기 위해 1889년 국제 사회주의 노동자 운동의 결사체 제2인터내셔널 창립 대회에서 결정한 '메이데이(May day)'에서 시작된 것이다.

1890년부터 5월 1일을 '메이데이'로 기념하면서 전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 날을 노동절로 기념해오고 있다. 한국에서도 박정희 군사 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5월 1일을 '노동절'로 기렸다. 하지만 어용 노조인 대한노총(한국노총 전신) 창립일로 '노동절' 날짜가 바뀌더니, 1963년에는 아예 '근로자의 날'로 명칭까지 바꿔버렸다. 비슷한 용어인데, 어감 차이로 순화시킨 것이 아니다.

김영삼 정부 때인 1994년이 되어서야 다시 노동절은 5월 1일로 복귀했다. 하지만 여전히 명칭은 '근로자의 날'이다. 이 점을 보더라도 '근로자의 날'을 노동절로 바꾸는 것에 대한 '보이지 않는 저항 세력'이 여전히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립국어원은 왜 '노동자'를 순화될 용어로 봤나


'저항 세력' 중에는 국립국어원도 있다. 국립국어원은 지난해 노동절 전날 트위터로 "5월 1일은 근로자의 날로, 트위터를 통한 국어생활종합상담 업무를 하지 않으니 이용에 차질 없으시기를 바란다"고 공지했다. 한 트위터 이용자가 "노동자의 날로 바꾸어달라"고 하자 국립국어원은 "'노동절'은 1963년 '근로자의 날'로 이름이 바뀌었다. 또한 '노동자'는 '근로자'로 다듬어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답했다. 1992년까지 국립국어원에서 발간한 국어순화자료집에 '노동자'를 '근로자'로 순화해서 표현하라고 적시되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1993년판 국어순화자료집에는 '노동자'라는 용어를 그대로 써도 무방한 것으로 수정됐다. 당시 이 한심한 사건에 대해 조사했던 심상정 의원은 "1992년부터 12년이 지난 2014년까지 정부기관인 국립국어원은 ‘노동자’를 부정적인 의미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면서 "한국 정부의 '노동'에 대한 인식 수준을 그대로 드러낸 해프닝"라고 꼬집었다.

국립국어원이 뒤늦게 잘못을 시인하기는 했다. 하지만 지금도 많은 직장인들에게 '근로자'와 '노동자'의 차이가 '어감 차이' 정도인 줄로만 알게 하고, '근로자의 날'을 그저 정부가 시혜적으로 주는 '유급 휴일'로만 알게 만들려는 노력은 국립국어원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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