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녹사평역 터널 내에서 유류(휘발유와 등유)가 발견되면서 시작된 이 사건은 한미 간의 공동조사 끝에 2003년 12월 '녹사평역 유류오염 관련 한미 공동 합의문'을 발표하며 일단락을 맺은 것처럼 보였다.
용산기지 밖의 오염은 서울시가, 기지 내부는 미군이 책임지기로 하고, 기지 밖 오염정화를 위해 서울시가 부담하는 비용은 한미 SOFA 처리 절차에 의거해 미군에게 배상을 청구하기로 한 것이 당시 한미 당국 간 합의의 골자였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기지 밖 오염정화비용의 경우 한미 SOFA 청구권조항에 따라 75%는 미군이, 25%는 한국 정부가 부담할 것"이라고 밝혔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시는 꾸준히 기지 밖 오염정화를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오염은 오히려 심각해지고 있는 것이다.
기지 밖 정화에도 불구하고 오염도는 오히려 늘어
일단 서울시는 양국 간의 합의에 따라 2003년 11월부터 올해 5월까지 유류로 오염된 지하수 150톤을 퍼 내고, 지하수 위에 뜬 유류 67.45L를 수거해 폐수 및 폐유처리를 진행했다. 올해 3월부터는 내년 1월에 완료되는 4차 정화작업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7월 서울시가 한국 환경수도연구소에 의뢰한 녹사평역 일대 지하수 유류오염도 분석결과에 따르면 오염상태는 좀처럼 개선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 22개 지점 중 정화기준치 대비 최대농도는 발암물질인 벤젠의 경우 1387배(20.810mg/L), 혈관계에 영향을 주는 에틸벤젠은 5.12배(2.302mg/L), 중추신경계통의 기능을 저하시키는 톨루엔과 크실렌은 각각 12.26배(12.268mg/L)와 7.28배(5.459mg/L)가 검출됐다. 암 유발물질인 다환방향족 탄화수소가 들어있는 TPH(석유계총탄화수소)도 68.1배(102.1mg/L)에 이르렀다. 여전히 심각한 오염상태를 보여주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작년 13곳에서 검출된 벤젠의 경우 올해에는 오히려 5곳이 증가해 18곳에서 검출됐다. 벤젠과 톨루엔, 에틸벤젠의 평균농도도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다. 오염이 줄기는 커녕 오히려 확산되고 있는 셈이다.
오염원인 용산기지 주유소에서 가장 가까운 미군기지 담장 측 인도에 위치한 BH-34호 관측정(서울시 시추)의 경우에는 조사가 시작된 이후 정화 기준치 대비 1387배에서 1998배까지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군이 오염의 원인이 된 용산기지 내의 오염원을 제대로 정화하지 않고 방치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은 그래서 제기된다.
상황이 이런데도 합의문 발표 후 4년이 지난 지금까지 미군은 단 한 차례도 기지 내 정화와 비용 부담에 따르는 약속을 제대로 이행했는지 여부를 밝히고 있지 않다.
게다가 미군 측은 답변을 요구하는 서울시 수질과 관계 공무원, 농촌공사 전문가의 관련 자료제출 요구에 전혀 응하고 있지 않다. 필자도 검증을 요구했지만 미군 측은 "기지 내의 정화는 이미 완료했다"고만 통보해 오는 등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군, 정말 기지 내 오염정화 '완료'했나?
필자는 지난 19일 서울시의회 정례회 시정질문을 통해 기지 밖 정화작업을 추진해 온 한국 농촌공사의 2006년 6월, 2007년 2월의 보고서를 공개했다. 그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2006년 6월 보고서에는 문제의 'BH-34호 관측정'의 벤젠 농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보고서에는 "유류의 유입시점이 오래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는 내용까지 있었다. 보고서는 용산기지 내의 오염원이 정화되기는 커녕 오히려 추가 유류누출 가능성마저 제기했다.
2007년 2월 보고서에서도 "미군기지 내 지속적인 유류누출의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기지 내의 정화는 이미 완료했다"는 미군의 주장과는 완전히 배치되는 것이다. 그 동안 서울시가 추진해 온 노력만큼의 성과를 왜 얻지 못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진실규명을 위해선 기지 안에 대한 오염조사를 진행해야 한다. 그러나 서울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군 부대 측은 정화관련 자료를 제출하지 않고 있다. 보고서에는 "미군 측으로부터 기지 내부의 오염 상태와 정화 작업 결과를 전달받지 못하고 있다", "기지 내부에 위치하는 오염원에 대한 접근이 불가능하다"는 내용도 있었다.
"정화를 완료했다"는 미군 측의 주장은 근거가 전혀 없었던 셈이다. 특히 미군 측이 기지 내 정화에 대한 서울시의 과학적 검증요구를 묵살하고 있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처사다.
결과적으로 미군이 애초의 약속과는 달리 기지 내부의 정화작업에 대한 약속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는 의심을 지우기 힘들다는 것이다.
미군, 기지 밖 정화비용도 "나 몰라라"
앞서 밝힌 대로 양국 간의 합의에 따라 미군은 기지 밖 정화비용의 75%를 지불해야 한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미군에 배상을 신청했다. 그러나 미군 측이 이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시간을 끌자, 급기야 서울시가 작년 3월 우리 정부를 대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해 승소하는 일도 있었다.
이에 따라 지난 2001년부터 작년까지 기지 밖 정화를 위해 사용된 18억 원과 앞으로 소용될 비용 모두를 우리 정부가 지급해야 할 판이다.
그러나 정작 오염의 당사자인 미군은 비용을 책임지겠다는 공식적인 입장을 단 한 차례도 밝히지 않고 있다. 앞으로 얼마의 비용이 더 들지도 모르는 기지 밖 지하수 정화비용 모두를 우리 정부가 부담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매향리 폭격장, 군산기지 문제 등 미군관련 피해로 인한 우리 정부의 배상액이 143억5500만 원에 이르는 현실을 감안하면 더욱 기가 막히는 일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군이 비용부담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밝히도록 만들어 자신들이 저지른 환경오염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다. 물론 미군이 오염의 원인을 제대로 제거했는지 검증하는 일도 병행돼야 한다.
미군이 기지 내 오염에 대한 조사에 응하고, 비용을 부담할 수 있도록 서울시민의 각별한 관심과 지지를 부탁드린다. 미군이 저지르고도 '나 몰라라'하고 있는 일을 수습하기 위해 피 같은 세금을 쓸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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