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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vs. 러' 신냉전, 책임은 미국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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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vs. 러' 신냉전, 책임은 미국에 있다

[주간 프레시안 뷰] 나토의 동진, 유럽 평화 깬다

오는 5월 9일 모스크바에 열리는 대나치 승전 70주년 기념식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측 정상들은 거의 참석하지 않습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프라납 무케르지 인도 대통령 등이 참석하는 반면 미국은 존 테핏 주러시아 대사가 참석합니다. 독일 메르켈 총리는 9일 기념식에 불참하는 대신 10일 모스크바를 방문해 전쟁기념탑에 헌화할 예정입니다. 미국의 눈치를 보는 한편 러시아를 달래기 위한 고육지책이죠.


서방 정상들의 보이코트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보복입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 사태의 책임이 전적으로 러시아에 있다고 말합니다. 거의 모든 서방 언론들도 이런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러시아와 미국을 무력 대결 일보 직전까지 몰고 갈 정도로 중대한 사태입니다. 그래서 현재 미국과 러시아는 신냉전, 또는 냉전 2.0에 돌입했다고 말합니다. 지난 해 2월 친러 성향의 빅토로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쿠데타로 권좌에 밀려난 이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크림반도를 러시아에 합병했고, 우크라이나 동부에서는 친러 반군과 우크라이나 정부군 간의 내전이 시작됐습니다. 이 내전은 지난 2월 독일 메르켈 총리의 필사적인 중재로 일단 봉합되긴 했지만(2차 민스크협정),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미국의 정치군사 지도자들은 물론 주요 언론들까지도 러시아에 대한 무력 응징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푸틴의 팽창 야욕이 크림반도를 삼킨 데 이어 우크라이나까지 정복하려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때문에 미국의 저명한 러시아 전문가인 스티븐 코언 프린스턴대 교수는 현재 미러 관계가 1962년 쿠바 미사일위기 때보다도 훨씬 위험하다고 말합니다. 당시 미국 군부는 소련과의 전면 핵전쟁까지 주장했었죠.

그런데 과연 우크라이나 사태는 러시아의 팽창 야욕 때문에 시작된 것일까요? 서방 지도자들과 서방 언론은 그렇게 주장하고 있지만 실상은 정반대입니다. 미국의 팽창 야욕이 초래한 것입니다. 그동안 여러 번 '프레시안 뷰'를 통해 우크라이나 사태의 실상을 말씀드렸지만 이번 주에는 미국의 저명한 전문가들의 말을 통해 우크라이나 사태의 진상을 알려드릴까 합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미국의 책임인 이유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학 교수는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대가로 알려진 분입니다. 좌파, 또는 비판적 지식인라고 할 수 없는 분이죠. 이 분이 지난 해 <포린 어페어즈>(9-10월호)에 '우크라이나 위기가 서방의 잘못인 이유(Why The Ukrine Crisis Is The West's Fault)'라는 글을 기고했습니다. 글의 요지는 "우크라이나 위기는 전적으로 러시아의 침략행위 때문이라는 것이 서방의 통념"이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며 "책임의 대부분은 미국 및 미국의 유럽 동맹국들에 있다"는 것입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포린 어페어즈>는 미국 주류사회(Establishment)의 의견을 대변하는 외교전문지입니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대가가 미국 주류사회의 견해를 대변하는 잡지에 '우크라이나 사태는 미국 책임'이라는 요지의 글을 발표한 것입니다. 앞에 말한 스티븐 코언 교수도 같은 의견입니다. 그럼 미어샤이머 교수의 글을 중심으로 우크라이나 사태가 왜 미국 책임인가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미어샤이머 교수는 우크라이나 사태의 주요 원인으로 다음 세 가지를 꼽습니다. 1990년대 말 현실화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진, 2008년 시작된 유럽연합(EU)의 확대,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이른바 '민주세력'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 그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통해 미국 등 서방이 러시아의 전통적 세력권이었던 우크라이나를 서방권으로 끌어들이려 했고, 이에 중대한 안보위협을 느낀 러시아가 무력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1800년대 초반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략, 그리고 1,2차 대전 당시 독일의 러시아 침략이 모두 우크라이나 평원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러시아는 민감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미어샤이머 교수는 현재 미국이 추진하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마치 중국이 미국의 인접국인 캐나나나 멕시코와 안보동맹을 맺고 미국을 포위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카리브해의 조그만 섬나라 쿠바에 소련 핵미사일 기지가 설치된 것에 대해 3차 대전을 각오한 핵전쟁을 고려했던 미국이 중국과 캐나다, 또는 멕시코와의 군사동맹을 용인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죠.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미국은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러시아의 안보 우려를 이해해야 한다는 겁니다.
▲ 우크라이나 정부 군. ⓒAP=연합뉴스


나토 동진, EU 확대, 미국의 '민주세력' 지원이 위기의 근원

미어샤이머에 따르면 냉전이 끝나고 독일이 통일되던 당시(1990년), 소련은 미군의 유럽 주둔과 나토 존속을 용인했습니다. 미군이 통일독일의 소련에 대한 안보 위협을 억제할 수 있다고 보았던 때문입니다. 단 소련 지도자들은 나토가 더 이상 확대되지 않기를 요구했고, 미국은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당시 부시 대통령은 고르바초프에게 "앞으로 나토는 단 1인치도 동쪽으로 확대되지 않을 것"을 구두로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이 구두 약속은 클린턴 정부에 의해 파기됩니다. 1999년 헝가리, 폴란드, 체크 세 나라가 나토에 가입한 것을 시작으로 2004년에는 발트 3국을 비롯해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 7개 국, 그리고 2009년에는 알바니아와 크로아티아가 가입한 것입니다.

특히 2008년 4월 루마니아 부카레스트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담에서 조지아와 우크라이나의 가입 문제가 논의되면서 러시아의 반응이 날카로워집니다. 두 나라는 옛 소련의 일부로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데다 미국의 은밀한 지원에 의해 이른바 '친서방 민주정권'이 들어선 나라들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러시아의 반발을 우려한 독일 및 프랑스의 반대로 이 두 나라의 가입은 잠시 연기됐지만 러시아의 반응은 강경했습니다. 알렉산데르 그루쉬코 러시아 외무차관은 "조지아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유럽 전체의 안보에 중대한 결과를 초래할 엄청난 전략적 실수"라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러시아 신문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만일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한다면 이 나라는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강력하게 경고"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러시아는 조지아의 나토 가입을 막기 위해 무력을 행사했습니다. 2008년 8월 미하일 사캬쉬빌리 조지아 대통령이 나토 가입을 위한 사전 정지 작업으로 분리주의 세력이 점거한 조지아 내 아브하지아와 남오세티아를 무력 합병하려 하자 러시아군을 파견해 이 지역을 군사 점령해버린 것입니다. 조지아에 대한 러시아의 무력 개입은 러시아가 조지아 및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얼마나 중대한 위협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미어샤이머는 서방 지도자들이 조지아 사태를 통해 나토의 동진이 러시아의 안보, 그리고 러시아-서방 관계에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깨달았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서방은 러시아의 안보 우려에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유럽연합은 2008년 5월 이른바 '동방 동반자 계획(Eastern Partnership Initiative)'을 발표하면서 우크라이나 등의 유럽연합 가입을 추진합니다. 2013년 11월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 가입이 서명 절차만 남겨놓은 상태에서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러시아의 압력에 의해 가입을 철회했고 이후 이른바 '민주화 시위'가 일어났으며, 결국 다음 해 2월 22일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권좌에서 밀려나 모스크바로 망명합니다. 미어샤이머는야누코비치 퇴진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합법적 정권에 대한 쿠데타이며, 여기에 미국이 개입한 것은 분명하다고 지적합니다. 이 점은 미국의 많은 비판적 지식인과 언론인들이 주장한 바 있지만 제도권의 권위 있는 학자가 이를 인정한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민주화 시위'가 한창이던 2013년 12월, 네오콘의 일원인 빅토리아 눌란드 유럽담당 차관보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미래를 위해' 1991년부터 50억 달러를 쏟아 부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미국은 또한 민주주의진흥재단(NED)이란 단체를 통해 우크라이나 시민사회를 발전시킨다는 명목 아래 친서방 단체들의 60개 프로젝트에 돈을 댔습니다. 특히 NED의 총재 칼 거쉬먼은 2013년 9월 <워싱턴 포스트>기고를 통해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 가입으로 푸틴이 추진해온 러시아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의 붕괴가 가속화 될 것"이며 "푸틴은 러시아 인접국은 물론이고 러시아 자체의 패배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러시아의 멸망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 지도자라면 자국의 안보를 위해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대응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푸틴의 크림반도 합병 및 우크라이나 반군세력에 대한 지원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는 게 미어샤이머의 분석입니다.

케넌의 복수: 냉전의 원인을 되돌아보라

나토의 동진이 유럽의 평화 및 집단 안보에 중대한 위협이 될 것이라는 점은 일찍부터 예견돼 왔습니다. 예를 들면 '냉전 시대의 현인'으로 불리는 조지 케넌은 나토의 동진이 논의되던 1996년, 나토가 소련의 옛 영토에까지 확대되는 것은 "어마어마한 파장을 불러올 전략적 실책"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는 또 1998년 미국 상원이 나토의 최초 확대를 승인한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앞으로 러시아는 점차 적대적으로 대응할 것이며 이런 태도가 러시아의 정책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이는 비극적 실수다. 도대체 이런 일을 할 필요가 없다. 어떤 나라도 다른 나라를 위협하고 있지 않은데..."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소련은 2차 대전 당시 초인적인 노력으로 나치 독일 격퇴의 결정적 공을 세웠습니다. 독일군 전사자의 90%가 소련군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2차 대전에 의한 소련 병사 및 시민 희생자는 무려 3천만명으로 다른 모든 나라(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희생자의 2배에 이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 직후 소련은 미국의 세계 전략에 의해 미국과 적대하게 됐고 이후 미국과의 무리한 군비경쟁으로 결국 멸망하게 됩니다.

<케인스 평전>의 저자이자 영국의 저명한 경제사학자인 로버트 스키델스키는 지난 1월 초 보스턴에서 '제2차 냉전의 예방'이란 주제로 열린 '평화와 안전을 위한 경제학자들' 모임의 기조연설에서 "절박한 의료, 교육, 복지서비스를 고갈시키면서 '상상된 위험들'을 경계하기 위해 수천억 달러를 쏟아 붓는 일의 사악함"을 질타했습니다. 그가 염두에 둔 주된 상상된 위험은 러시아 팽창주의입니다.

스키델스키에 따르면, 냉전의 주춧돌을 놓았다는 조지 케넌은 죽음을 몇 년 앞두고 냉전이 지속된 이유가 서방이 '무조건 항복'에 버금가는 것을 얻을 때까지 소련과의 협상을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탄식했다고 합니다. 그는 이어 "1952년과 54년 소련이 독일의 중립을 전제로 독일통일을 용인했고, 1954년에는 모든 체제에 열린 보편적 유럽집단안보조약을 제안했으며, 1955년에는 흐루시초프가 나토 가입을 신청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 몇 명인가?"라고 반문합니다. (소련 주도의) 바르샤바조약이 체결된 1955년은, 나토 창립 6년 후 이 모든 제안들이 거절된 직후였습니다.

스키델스키는 또 "고르바초프가 나토를 독일 밖으로 확장하지 않겠다는 전제로 독일의 재통일을 찬성했고, 나토와 바르샤바조약을 대체할 새로운 대서양-유럽 집단안보체제를 제안했다는 사실, 그리고 2001년 푸틴이 러시아의 나토 가입을 원했다는 점을 아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라고 질문합니다.

2차 대전 직후부터 소련(러시아)은 줄곧 유럽의 집단안보를 요구해온 반면, 미국은 이를 한사코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유럽의 집단안보가 러시아의 살 길인 반면 미국은 러시아와 유럽의 통합을 가로막아 유라시아를 분할 지배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분할 지배를 위해서는 갈등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우크라이나 사태도 바로 이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스키델스키는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을 위해서는 러시아와 대화하고 러시아의 요구를 경청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러시아는 이미 해법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우크라이나를 핀란드와 같은 '중립국', 그리고 스위스와 같은 '연방국가'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우크라이나를 중립화함으로써 러시아의 안보 위협을 해소하는 한편 연방국가화를 통해 우크라이나의 우크라이나계 주민과 러시아 주민들의 공존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미어샤이머 역시 같은 의견입니다. 우크라이나를 냉전 시대 오스트리아와 같은 중립완충지대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러자면 미국과 러시아가 대화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미국이 대화에 나설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습니다. 앞에 말한 스티븐 코언 교수에 따르면, 미국의 주요 정치지도자와 언론들은 러시아와의 무력대결을 강력하게 원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지난 3월 23일 미 의회를 통과한 우크라이나 무기지원법에 대한 반대는 상원 4명(전체 100명), 하원 48명(전체 435명)에 불과했습니다. 당분간 평화적 방법에 의한 문제 해결은 불가능하다는 얘깁니다.

발칸 반도로 확대 꾀하는 나토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유럽을 전쟁 일보 직전까지 몰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발칸 반도의 국가들을 나토에 가입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현재 발칸 반도 국가 중 나토 가입국은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두 나라입니다. 하지만 마케도니아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등이 정부 차원에서 나토 가입을 위한 선전전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습니다. 슬로베니아와 세르비아에 활동하는 언론인 이고르 메키나에 따르면, 이들 정부는 나토 가입의 장점만을 부각시키며 국민들을 세뇌시키고 있다고 합니다. 2004년 가입한 슬로베니아의 경우, 2003년 3월까지만 해도 찬성이 42%에 불과했지만 정부의 강력한 홍보 덕택으로 국민투표에서 66%의 찬성표를 얻어냈습니다(유럽연합 가입에 대해서는 90% 가까이가 찬성). 하지만 가입 10주년인 지난해 3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나토 참여에 대한 찬성이 32%, 반성이 66%로 나왔습니다. 미국이 제공하는 자금과 노하우를 활용해 국민들을 오도한 결과입니다.

나토 확대의 결과 세계는 점점 전쟁과 갈등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미국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기는커녕 더욱 위험한 길로 나아가고 있는 형국입니다. 불행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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