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오월의봄, 2015년 3월 펴냄)는 뉴라이트 역사 인식에 대응하기 위해 마련된 책이다. 노무현 정부 무렵부터 통상 '뉴라이트' 그룹이라 칭해지던 학자와 언론인들이 주로 기존 교과서 서술의 문제점을 제기하며, 일련의 활동을 전개해왔다. 최근에도 뉴라이트 시각을 반영한 교학사 교과서가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뉴라이트 역사관은 한국 사회에서 강한 보수적 시각을 대변한다. 공산주의와 북한에 대해 철저하게 비판하고, 민족주의와 민주주의보다는 문명(산업화, 경제 발전)을 강조하고, 해방보다는 건국을 더 중요한 사건으로 내세우며, 이승만과 박정희의 업적을 강조하는 것이 대표적인 특징이다.
뉴라이트의 주장을 사실을 들어 반박하다
이 책은 <프레시안> 기자 김덕련이 묻고, 성균관대 명예교수 서중석이 답하는 대담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사실상 이러한 형식은 뉴라이트 계열의 책들이 많이 사용했던 방식이기도 하다. 예컨대 뉴라이트 학자들이 펴낸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책세상, 2006년 2월 펴냄)을 보면 이들의 역사관은 거기에 수록된 논문보다는 편집자들이 나눈 대담 형식의 글에 더 집중적으로, 선명하게 표출되어 있다.
대담 형식으로 엮은 글은 이야기체 형식으로 대중에게 쉽게 다가갈 수는 있지만 역사적 사실의 심층적·체계적 분석보다는 역사를 보는 시각 또는 태도에 대한 주장을 담아내는 데 더 편리한 형식이다. 따라서 일부 독자들은 이 책이 아주 뻔한 내용을 담고 있을 것이라 예단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책의 내용을 읽어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서중석은 주로 구체적인 사실을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그는 이 책에서 다루는 해방 직후와 한국전쟁의 역사에 대해 이미 여러 권의 전문적 연구 성과를 발표한 학자이다. 이 책은 이러한 연구 성과를 대중적으로, 대담이라는 형식을 통해 이야기하듯이 풀어낸다. 그러하기에 서중석은 책 전체를 통해 역사를 보는 시각을 이야기하면서도 그것을 그렇게 볼 수밖에 없는 사실적 근거를 제시하는 데 주력한다. 그 근거는 매우 구체적이고, 광범위하며, 또한 정확하다. 기본적으로 대중적 요청에 신속히 응답하기 위해 마련된 형식의 책이지만, 전문 역사학자들이라도 알지 못했던 여러 사실들을 충분히 건질 수도 있는 책이다.
익숙한 진영 논리에서 벗어난 서술들
대표적인 예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위해 1948년에 실행된 '5.10선거'에 대한 내용을 들 수 있다. 서중석은 "내가 진보 세력하고 의견을 달리하는 대목이다"라고 하면서 단독 정부에 반대했던 세력들도 5.10선거에는 참가하는 것이 옳았다고 주장한다. 그는 김구, 김규식이 행한 남북 협상의 필요성과 의의를 충분히 인정하고 긍정한다. 그러나 1947년 하반기면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상황에서, 미·소 분할 점령 상태의 한반도에서 통일 독립 국가 수립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고 본다. 따라서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했던 세력들도 선거가 치러지는 상황에서는 선거에 참여하여 극우 단정 세력을 견제하고, 개혁적 정책을 추진하여 좀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고, 그 안에서 통일을 위해 노력할 필요성이 있었다고 주장한다(1권 127∼130쪽).
실제 제헌 국회 국회의원들 중에는 이승만, 한국민주당과는 성향을 달리하는 무소속, 소장파 의원들도 많았다. 이들은 친일파 청산을 위한 '반민특위' 활동, 농지 개혁 등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또한 남북 협상을 주장하는 등 분단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들 소장파 집단들은 1949년 6월 '국회 프락치' 사건 전에는 제헌 의회에서 실제로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이러한 측면에서 서중석은 단독 정부에 반대했던 세력들도 현실은 현실대로 인정하고, 선거에 참여하는 것이 더 정치적으로 옳았다고 보는 것이다. 나아가 5.10선거의 의의에 대해서도 이것이 "분단을 초래한 점에선 참으로 마음을 무겁게 하지만 그럼에도 최초의 보통 선거라는 점에서 그것대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긍지를 가질 만하다"라고 평가한다(1권 204쪽).
물론 이러한 주장은 논란의 여지가 있고, 향후 여러 각도에서 학술적 논쟁이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아무튼 서중석의 주장은 그가 5.10선거와 대한민국 정부 수립 등 일련의 국면을 단지 '통일이냐 분단이냐'라는 이분법적 차원에서만 사고하지 않는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서중석은 구체적인 사실을 끊임없이 제시하면서 해방 직후 극우 세력들의 반탁 운동의 문제점과 허구성을 밝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북한의 김일성이 1946년 신년사에서 "조선에 임시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연합국이 조선에 대하여 5개년간 후견제를 실시하기로 했다"라고 말한 것을 들어 당시 좌익 세력도 모스크바 3상 결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1권 96쪽). 모스크바 3상 결정 내용을 보면 일단 미·소 공동위원회가 한국의 정당, 사회단체와 협의해 남북한을 모두 포괄하여 전체 한국인을 대변하는 임시정부의 수립을 추진하고, 이 임시정부와 협의 아래 최고 5년 기한으로 신탁 통치를 하도록 되어 있다. 김일성의 이러한 발언은 기본적으로 그 순서를 잘못 이해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당시 좌익 세력들이 반탁 투쟁에 담긴 한국인들의 독립에 대한 강한 열망, 민족적 자존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도 문제라고 본다. 비록 신탁 통치라는 제약은 있지만 미·소 군정 상태, 실질적인 남북 분단 상태에서 벗어나 한국인 전체를 대변하는 임시정부 수립이 시급한 필요성을 일반 대중들에게 충분히 설득하려 노력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에 당시 좌익 세력이 너무 원리주의적 사고를 했다고 비판한다(1권 99∼100쪽).
친일파, 무엇이 문제인가
서중석은 친일 세력이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것이 한국 현대사의 커다란 파행을 불러일으켰다고 거듭 강조한다. 그러나 그는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친일파를 '민족을 배반한 세력'으로만 평가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친일파가 억압적인 군국주의 지배의 틀 안에서 기능했던 집단이고, 침략 전쟁에 협력했던 집단이라는 점을 또한 강조한다. 따라서 친일파 미청산이 이후 비민주적 독재 정권의 장기화와 한반도에서 벌어진 분단과 전쟁에 끼친 영향을 강조한다.
뉴라이트는 물론이고 일부 진보 세력도 탈민족주의를 강조하며, 친일파 청산 문제를 어떤 '혈통적 민족주의'의 산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는 당시의 역사적 상황에 대해 몰이해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혈통적 민족주의는 친일 청산의 논리라기보다는, 같은 민족이니 이제 '건국'에 협력하기만 하면 다 잊고 용서할 수 있다는 오히려 친일파를 변호하는 논리였다. 친일 청산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기본적으로 일본인에 의한 식민지 지배를 받았지만 같은 한국인 중에서도 여기에 협력한 사람들이 있으니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혈통적으로 한국인이라고 모두 식민지 지배의 피해자는 아니었고, 식민지 지배에 대해 법률적·정치적·도덕적으로 책임져야 할 집단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친일파 문제는 혈통적 민족주의의 소산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한국 민족주의가 단순한 혈통적 민족주의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제기될 수 있는 문제였다.
또한 이는 단순히 민족주의 문제라기보다는 군국주의적 의식과 관행을 탈피하는 문제, 평화를 달성하는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점은 동아시아에서는 냉전 때문에 유럽과 달리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제대로 청산되지 않아, 이 지역 나라들 사이의 평화 정착과 협력의 분위기를 구축하는 데 큰 장애가 되고 있는 현실을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다만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은 친일 문제에 대해 인적 청산을 주로 강조하고, 군국주의적인 제도와 의식, 침략 전쟁을 뒷받침했던 억압적 국가 동원 체제의 유산을 극복하는 차원의 제도적, 구조적 청산에 대해서는 본격적으로 제기하지 못한 점이다. 아마도 박정희 정권기를 분석하는 다음 책에는 이러한 내용들이 좀 더 들어가지 않을까 기대한다.
[프레시안 북스 지난 호 바로 가기]
역사 전쟁을 넘어서
서중석은 뉴라이트 역사관을 비판하면서 "역사 전쟁이 싫다"고 한다(서문 10쪽). 역사를 통해 성찰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다. 뉴라이트 역사관을 둘러싼 여러 논란은 그 내용도 문제지만 역사 논쟁을 과잉 정치화된 진흙탕으로 끌고 들어가, 과거의 갈등을 성찰하는 것이 아니라 재연시키는 것이 더 큰 문제라 할 수 있다. 뉴라이트 역사관은 민족이냐 문명이냐, 민주화냐 산업화냐, 반공이냐 용공이냐, 해방이냐 건국(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냐, 이승만과 박정희를 찬양하느냐 반대하느냐 등의 이분법적인 선택을 강요한다.
서중석은 1945년 12월 5일 <조선일보>가 사설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세력과 인민공화국 세력이 합작하여 민족 통일 전선을 완성할 것, 토지 문제를 해결할 것, 친일파를 척결할 것 등을 주문했음을 지적한다(1권 65쪽). 현재의 <조선일보>가 보여주는 역사관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분단과 전쟁을 거치면서 형성된 냉전, 반공주의가 한국 사회를 압도하기 전에는 우익 민족주의자와 좌익 혁명 세력의 입장과 이념은 사실상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 차이가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해방 직후 미·소 양군의 분할 점령이라는 상황 하에서 한반도에 조성된 독특한 내외적 상황이 한국인 정치집단 사이의 관계를 걷잡을 수 없이 악화시키고, 민족 분단과 전쟁으로 귀결되면서 한반도에서 상호 학살을 불사하는 극단적인 이념적 대립과 갈등이 발생한 것이었다. 뉴라이트의 사관은 이러한 갈등에 대해 역사적으로 성찰하여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보수적 역사관의 일방적인 승리를 추구하여 해소하려 하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이 책은 역사적 사실에 집중함으로써 뉴라이트가 제시한 역사 논쟁의 구도 자체가 실제 역사적 상황과 얼마나 유리되어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뉴라이트의 역사관을 근본적으로 비판하려면 해방 직후 한반도에 내외적 차원에서 조성된 냉전, 분단 상황을 좀 더 구조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 기존 한국 현대사 연구의 전반적인 한계이기는 하지만, 이 부분이 역시 아쉬움으로 남는다. 또한 뉴라이트 사관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인물 중심, 특히 집권한 지도자(이승만, 박정희)의 평가 논쟁을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하는 것이다. 뉴라이트 사관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 과도하게 찬양된 이승만과 박정희를 폄하하는 데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보다는 영웅사관류의 역사 인식의 한계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 이 책은 이승만과 한국 보수 정치인들의 개인적인 품성과 자질, 정치 행태를 비판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데, 이는 뉴라이트가 조성한 인물 평가를 중시하는 역사 논쟁의 프레임에 오히려 휘말려들 가능성도 있다.
이 책이 취하고 있는, 묻고 답하는 대담 형식은 한계도 있지만 확실히 장점도 있다. 대중들의 역사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고, 관심을 유도하는 데 효과적인 측면이 있다. 질문자 김덕련은 아주 간략하고 명확한 질문으로 대중들이 이해하기 쉬운 명쾌한 답변을 유도해내었다. 관련 연구 성과를 섭렵하며 사전에 많은 준비를 한 흔적이 보인다. 또한 대담 내용을 아주 효과적으로 정리했고, 사진 자료를 넓게 활용하는 등 공들여 그 내용을 정리했다.
그러나 묻고 답하는 역사 서술 형식이 좀 더 진가를 발휘하려면 질문자가 단순히 체계적인 질문을 하고, 깔끔하게 내용을 정리하는 차원에만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때로는 서중석의 입장과 반대되는 측면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기도 하고, 반박하기도 하면서 질문자와 응답자가 좀 더 긴장감 있게 상호 작용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특히 응답자 서중석과 질문자 김덕련은 같은 학교, 같은 학과를 나왔지만 세대 차이가 크게 난다. 독자들은 서중석의 이야기에 대한 김덕련의 반응도 궁금해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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