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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마전 세상, 선을 자처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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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마전 세상, 선을 자처하지는 말자"

[작은것이 아름답다] 세월호 이후·② 사회학자 정수복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둔 지난 3월 28일,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카페에서 사회학자이자 작가로 활동하는 정수복 선생을 만나 지금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들여다보고, 어떻게 문제의 실마리를 찾을 것인지,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를 물었다.

-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벌써 1년입니다. 하지만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고,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로 머물러 있습니다. 정부는 가능한 사건을 축소하고 '교통사고'로 정리되기를 바라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어떤 사건을 이해하려면 지금 사회를 만들어온 지난 역사를 들여다봐야 합니다. 지금 일들이 그냥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거든요. 2014년 이전 일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건 1987년 '6월 항쟁'을 기점으로 이뤄진 한국 사회의 민주화라고 봅니다. 한국 사회는 1960년대 이후 빠른 경제성장을 앞세운 억압정치 체제에서 민주화를 갈망했습니다. 독재시대를 끝낼 '대통령선거 직선제'가 현실이 되고, 민주화의 기운이 만들어지면서 우리 사회는 뭔가 커다란 변화를 기대했지만, 야권 분열로 노태우 정권이 들어서며 사회적인 좌절과 상실감을 경험했습니다. 이후 김영삼 정부,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민주화가 그리 쉽지 않다는 것 또한 경험했죠.

▲ 세월호 참사 1주기, 공권력은 유가족과 시민을 향해 최루액을 살포했다. ⓒ프레시안(선명수)

1987년 6월 항쟁 못지않은 보다 중요한 사건이 1997년 금융위기로 인한 구제금융(IMF) 사태입니다. 민주 정부가 들어선 동시에 금융위기 탓에 한국 사회는 다시 격랑 속으로 빠져듭니다. '신자유주의' 질서에 본격 편입되면서 구조조정과 명예퇴직이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정규직이 없어지고 비정규직이 대량 양산됐습니다. 기업주들은 '노동 유연성'을 내세우며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다는 경고를 일상화했습니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의 생활이 더욱 어려워졌는데,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 하는 상황입니다. 이렇게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상황을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 안에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게 된 것이 또 한 번의 좌절이었다고 봅니다. 오랫동안 억압됐던 욕구가 겨우 분출됐는데, 10년 만에 확 꺾여버린 것이지요.

김대중 정부도 워낙 커다란 외부 압력에 적응하느라, 신자유주의 체제를 만드는데만 기여했을 뿐 수습도 제대로 못했어요. 정치적으로는 민주 질서와 인권 부분을 신장했고 남북관계도 개선하려 했지만, 국민들의 기대에는 못 미쳤습니다.

노무현 참여정부 때는 언론개혁과 사법개혁을 시도했지만, 그때부터 복잡해진 겁니다. 60∼70년대 산업화 세력과 70∼80년대 민주화 세력이 충돌하면서 한국 사회가 막 엉겨버리기 시작한 게 참여정부 후반기였다고 봅니다. 그 뒤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면서 한국 사회가 다시 과거로 회귀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또 다른 역사적인 좌절을 경험하고 있는 겁니다.

1997년 뒤로 불평등이 심화되며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많아져 한국 사회에 불만과 분노가 늘었던 시기였는데, 그런 상태가 계속되다 나타난 게 2008년 촛불시위였어요. 미국산 소고기 문제가 쟁점이었지만, 그동안의 기대와 실망·분노·좌절이 그것으로 표현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에서 4대강 개발을 비롯해, 규제완화로 무분별한 개발의 물꼬를 텄습니다. 곳곳에서 상식적인 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봐야 했습니다. 변화를 갈망했지만,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해결되지 않은 좌절이나 분노가 이 사회를 내리누르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세월호 참사가 터지면서 그 이전에 누적됐던 좌절과 분노들이 함께 터졌다고 생각합니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누적된 모순이 드러난 것입니다.

지난 1년 동안 세월호 참사를 처리하면서 누적된 문제도 해결돼야 했는데, 민주적 절차라든지 책임 있는 정치라든지 투명한 해명, 진상규명, 이런 것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겁니다. 정치권이나 청와대, 언론이나 사법부가 유가족뿐 아니라 여론이나 국민들 열망에 대응해 적절한 응답을 못했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던진 질문에 응답을 보내지 않고 답답한 교착상태를 만들고 있는 겁니다. 세월호는 우리 사회 '블랙박스'인데 해독이 안 된 상태입니다. 한국 사회가 추락했는데, 원인을 읽으려 하지 않은 채 시간을 끌면서 은폐하고 축소하고 덮어버리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억울하다, 이럴 수가 있느냐!'라는 분노로 시작해 그다음엔 좌절, 우울증, 실어증까지 왔어요. 말이 없어지는 겁니다.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까요.

-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계속 '성장'을 앞세워 달려왔는데, 사람들은 갈수록 절망과 박탈감에 놓여 있습니다.

한국 사회의 성격은 크게 보면 '압축 근대'라고 합니다. 전근대사회에서 근대사회, 농업농촌사회에서 도시산업사회로, 그 이동이 굉장히 빨라 사람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적응하기 바쁜 사회죠. 삶 자체가 안정되지 않고 계속 바뀌기 때문에 변화에 적응하는 것을 강요받는 삶을 살고 있어요. 이런 경우 정당하지 않은 방법이 동원되는 일이 많습니다. 부조리와 부패, 부정이 많은 사회라는 특성을 갖게 되죠. 그래서 억울한 사람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조건인데, 그것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건강한 사회가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세월호 참사에서 보듯이 그런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세계화와 정보화 속에서 한국 사회가 만들어낸 물건이 세계로 나가고 외국 노동자와 결혼이민 여성도 들어오는 등 사람과 정보와 돈과 자원의 이동성이 굉장히 높은 사회가 됐죠. 더욱이 정신 차리고 살기 힘들어지다 보니, 생존을 위한 투쟁이 삶에서 더 많을 부분을 차지하게 됐어요. 살아남으려면, 생존하려면, 어릴 때부터 공부에 갇히고, 대학생은 스펙 쌓아서 취직시험 보느라 바쁘고, 입사한 사람은 적응하기 바쁘고, 입사 못한 사람은 계속 취직 준비하느라 바쁘고, 결혼한 사람은 출산할 조건이 안 되고요. 게다가 변화를 견디게 하는 마지막 안전망인 가족마저도 해체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기업가나 정치가, 주류 언론은 한국 사회가 경제 선진국으로 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3만 달러 시대, 4만 달러 시대로 가려면 신기술을 개발해야 하고, 기업하기 좋은 정책을 만들어줘야 하니까 '어렵더라도 참고 지내야 한다'고 끊임없이 각인하는 거죠. 하지만 이런 현실은 지속불가능 합니다. 사회를 지탱할 수 없게 만드는 조건입니다.

핵발전소 문제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겁니다. 핵발전에 대해 문제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한국 사회를 유지하는 에너지가 핵에너지를 기반에 두고 있기 때문에 계속 주장합니다. 에너지 정책이나 한국 사회 선진화 정책, 반환경적 정책이 모두 맞물려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도 민주주의를 심화시켜야 합니다. 국민의 직접 참여를 늘리고, 국민을 대표하고 대변하는 정치권이 국민 의견을 법 제정과 정책, 행정에 반영해야 가능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투명하고 열린 정치가 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오히려 퇴보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남북관계 문제에서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것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남북 간 대화와 협상을 통해 상호 신뢰관계를 구축해야 하는데, 여기서도 큰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어요. 분단체제가 벌써 70년입니다. 한국 사회를 억누르고 있는 바위 같은 겁니다. 남북분단 상태에서 남한은 경제성장을 통해 밥은 먹고 살고 있지만, 뭔가 찜찜하고 눌린 느낌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건 해결되지 않은 분단체제 안에서 무엇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사실에서 옵니다.

- 2014년 4월 16일 이후, 우리 사회가 멈춰 버린 것 같다는 말을 듣습니다. 지금 상황을 어떻게 봐야할까요?

정부와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인데, 그 부분에서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겁니다. 사건사고가 났으면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찾아내 후속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오히려 여러 조사 과정에서 수상한 점만 드러났어요. 이런 의문점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데 (정부가) 분명하게 답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냥 덮어버린 느낌이랄까. 의혹이 계속 꼬리를 무는 상황입니다. 여기에는 보수언론의 책임도 큽니다. 언론이 속속들이 파헤쳐 정치 차원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압력을 가해야 하는데, 입을 닫고 있는 겁니다. 무서울 정도로 단단한 '지배 카르텔', '침묵의 카르텔'이 만들어져 있는 거지요.

이런 것을 국민이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문제를 제기한 사람을 배제하고 소수자로 몰면서 본질을 덮고 시간을 끄는 동안, 또 다른 사건이 사건을 덮어버리면서 잊히기를 반복해 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겁니다. 정부가 '세월호 문제'를 그렇게 취급하고 있어요. 우리는 '관피아'의 실체를 경험하고 있어요. 관(官)이 제대로 작동을 못하고 마피아가 돼서 자기 이익을 도모하고 진상규명을 덮어두는 집단이라는 걸 보고 있습니다. 우리 행정관료 체제가 정당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게 드러난 겁니다.

이렇게 국가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 버렸어요. 사건으로 시작했는데, 실제 들여다보니 구조적인 문제였던 겁니다. 그래서 유가족과 시민사회·종교계에서 '세월호 진상규명하라. 선체 인양하라'라며 계속 문제를 제기하고 전국민을 대상으로 서명도 받은 겁니다. 다수의 국민 역시 정부가 이상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느끼고, 그걸 받아들일 수 없다는 흐름이 존재했다고 봅니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어떤 식으로든 정리되겠지요. 진상조사위원회가 지지부진하긴 하지만, 뭔가 얘기를 하고 결론을 내려고 할 겁니다. 일정한 사법처리도 계속 진행될 거고요. 하지만 앞서 드러난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문제제기는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오후 진도 팽목항을 찾았다. 1년 전과 같은 깜짝 방문이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로 가족을 잃고 국가에 대한 신뢰마저 잃은 국민의 반응은 무(無)였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이날 팽목항 분향소를 임시 폐쇄한 뒤, 성명을 통해 "국민을 버리고 대통령만 탈출했다"고 비판했다. ⓒ이상엽

세월호 참사는 텔레비전 화면에 한 달, 두 달 넘게 등장했어요. 지금까지 텔레비전 화면에서 그렇게 사건사고를 지속해서 오래 보도한 것을 본 적이 없어요. 한국 사람들 뇌리에 세월호 참사가 각인된 데는 TV의 역할이 굉장히 크게 작용했어요. 하루아침에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시각을 통해 머리와 마음속에 저장돼 버렸어요. 미디어를 통해 국민들이 장기간 노출됐기 때문에 타격을 심하게 받고 있는 겁니다. 해결이 안 되면, 계속해서 마음의 상처로 남으니까요. 문제는 우리 사회에 과연 치유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인데, 치유 능력이 없다는 걸 확인하면 살아가는 게 얼마나 힘들겠어요. 언제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요.

- 우리 사회는 분명 심각한 상처를 입었는데 치유되는 쪽으로 가지 않으니, 상처가 덧나고 곪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싶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다양한 문제가 드러날 텐데, 사회적 상처를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요?

이건 사실 굉장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과거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희생됐던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외부 세력의 조종을 받아 했던 일 그들이 했던 일을 외부 세력의 조종을 받은 것으로, 국가의 정당성을 거부하는 소수자들의 반란이라 매도했기 때문에 굉장한 상처를 받고 치유가 안 된 채로 남아 있거든요. 1980년대 내내 그랬지요. 2000년대 와서 민주화운동을 했던 이들이 주장하는 게,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당시 일의 역사적 의미를 짚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역시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잘못된 점을 공적으로 인정해 유족들이나 피해자들의 얘기를 충분히 감안한 후, 보상과 사후 해결책이 제시되어야 합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게 실수와 잘못했던 부분, 부정이나 부패가 있던 부분을 드러내고 공적으로 인정하는 겁니다. 국민들이 모두 납득할 수 있도록 '이런 잘못이 있었다 걸 뼈아프게 인정한다. 앞으로는 이렇게 하겠다. 이런 체계를 만들겠다'는 것을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분명한 그림으로 보여줘야 해요. 대책보다 앞서야 하는 것은 잘못에 대한 인정입니다. 이걸 안 해서 문제가 되는 겁니다. 재난이라든지 불가항력 사고라고 해 버리면, 잘못을 인정할 게 별로 없거든요. 잘못된 점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면 그것이 정치적인 문제가 되니까,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하는 겁니다. 다음 선거도 염두에 두고 있을 테죠. 정치 논리로 끌고 들어가 문제를 문제 자체로 해결하지 않고 있는 겁니다. 다른 논리를 끼워 넣어 다른 방향으로 이끌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원하는 대로 문제 해결이 안 된다면, 그대로 물러나는 대신 그 다음 단계로 가야 합니다. 유가족들도 생업으로 돌아가야 되고 정상 생활을 해야죠. 2년이고 3년이고 지금 상태로 갈 수는 없어요. 우리 사회를 더 투명하고 건전하고 책임감 있게 함께 살아가는 인간적인 사회로 만들기 위해 다른 방식의 공적인 활동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1997년 뒤로 우리 사회가 정보화·민주화·신자유주의화가 되면서 생겨난 배제된 사람들, 또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생겨난 사회적 약자들과 연대해 사회적인 힘을 만들고, 시민사회 영역을 강화시키는 움직임을 만들어야 합니다. 세월호 참사의 온전한 처리를 원하는 사람들이 집결해야 합니다. 그래야 앞으로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해결하는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세월호 뿐만 아니라 여러 부당한 정치적 결정이나 사회적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 훨씬 더 합리적이고 합당하게, 여러 힘을 강하게 결집시켜서 대응할 수 있는 시민사회 역량을 의미합니다. 그게 지금 우리가 대비해야 할 부분입니다.

- 우리가 원하는 방향은 분명하지만 말끔하게 해결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잖아요. 우리는 어떻게 그다음 삶과 역사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요? 지난 1년이 우리에게 어떤 성찰적 과제를 남겨줬다고 보시나요?

우리가 사물을 바라볼 때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 어떤 차원에서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똑같은 사물도 보는 관점에 따라 동서남북에서 보는 게 다르고, 어떤 차원에서 보느냐, 즉 '경제적인 차원이냐, 정치적인 차원이냐'에 따라 다른데, 멀리 내다보며 성찰하는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있어요. 한 사건을 너무 가까이에서만 보지 말고 크게, 현실을 상대화시켜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걸 '사회적 영성'의 고양(高揚)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겁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진정한 평화가 없고, 문제투성이고, 복마전 같은 세상입니다. 단번에 해결되지 않을수록 더 완전하고 평화롭고 이상적인 상태를 실현하는 꿈을 더욱 강고하게 가져야 합니다. 포기하지 않는 신념과 믿음이 강물처럼 흐르도록 우리 안을 철저하게 들여다봐야 해요. 우리 안에 지레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지는 않은지, 이기적인 마음으로 움직이는 건 아닌지, 사건을 덮고 부정을 감추려고 하는 사람들보다 우리들이 정의로운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그걸 스스로 점검해야 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멀리 보며 우리 사회를 개혁하고 사람을 존중하는 사회로 만들 내적 동기, 의지, 뜻, 신념 등 이런 것을 어떻게 더 강화하고 지속할 수 있느냐 하는 부분을 고민해야 합니다. 이것이 세월호가 주는 성찰적 과제라고 봅니다.

제르멘 티옹이라는 프랑스 여성 인류학자가 '악과 싸우되 선을 자처하지 말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 사람은 나치와 싸웠고,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나왔습니다. '나도 내 안에도 악이 있을 수 있으니, 끊임없이 자신을 들여다보며 선이 되려고 노력하라'는 말이지요.

'작은것이 아름답다'는 말에 많은 것이 농축돼 있다고 봐요. 작은 것을 볼 수 있는 눈은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존중하고 배려하며 저마다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을 뜻하니까요. 우리가 물질 차원의 성취를 위해 아등바등 싸우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그걸 더욱 강화시키고 부추기고 있어요. 거기에 말려들어가 그것만 추구하며 살아가면, 우리 삶이 찌그러지고 어긋나고 억울한 일을 더 많이 당하게 됩니다.

현실의 혼탁함을 벗어나게 하고 우리를 정화하는 것은 작은 것 속에 있어요. 우리의 삶이 척박해지고 거칠어질수록 폭력적인 마음을 스스로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거기에서 전환의 운동이 나옵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새롭게 만들어갈 수 있는 힘이 모였을 때 환경운동이나 시민운동도 힘을 얻고, 사회를 정화시킬 수 있는 시민사회의 역량이 커집니다.

시야를 넓혀 달리 볼 수 있을 때 문제 해결이나 치유도 가능할 거라고 봅니다. 개인도 그런 것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 두터운 삶을 사는 거고, 현실에서 물질적 이익을 위해 싸움만 계속 해나가는 사람은 얇은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개인이나 사회나 현실 투쟁의 틀을 넘어서는 다양한 정화의 차원을 갖출 때 성숙한 사회로 갈 수 있지 않을까요? 물질적으로만 잘 사는 사회가 아니라, 모두가 사회적 삶을 풍요롭게 경험하고, 먼 길을 함께 걸어가기 위해 정신 영역을 일궈야 합니다. 그것이 세월호 1주기인 지금, 우리가 가야할 길입니다.

▲ 사회학자 정수복. ⓒ작은것이아름답다(김기돈)
정수복 님은 좋은 삶이 가능한 인간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연구하는 사회학자이자 작가로,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글쓰기를 한다. 2002년부터 10년 가까이 파리에 체류하다 2011년 말 귀국한 뒤 세상의 길과 책 속으로 난 길을 걸으며 느끼고 상상하고 생각한 것들을 글로 풀어내고 있다. 펴낸 책으로는 <의미세계와 사회운동>(민영사 펴냄), <녹색 대안을 찾는 생태학적 상상력>(문학과지성사 펴냄), <시민의식과 시민참여>(아르케 펴냄), <파리를 생각한다-도시 걷기의 인문학>(문학과지성사 펴냄), <파리의 장소들-기억과 풍경의 도시미학>(문학과지성사 펴냄),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당연의 세계 낯설게 보기>(생각의나무 펴냄), <책인시공-책 읽는 사람의 시간과 공간>(문학동네 펴냄), <책에 대해 던지는 7가지 질문>(로도스 펴냄), <삶을 긍정하는 허무주의-걷는 사회학자 정수복이 둥지 철학자 박이문을 만나다)>(알마 펴냄) 등이 있다.


* 월간 <작은것이 아름답다>는 1996년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 생태환경문화 월간지입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위한 이야기와 정보를 전합니다. 생태 감성을 깨우는 녹색생활문화운동과 지구의 원시림을 지키는 재생종이운동을 일굽니다. 달마다 '작아의 날'을 정해 즐거운 변화를 만드는 환경운동을 펼칩니다. 자연의 흐름을 담은 우리말 달이름과 우리말을 살려 쓰려 노력합니다. (
<작은것이 아름답다>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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