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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대한민국의 잔인한 민낯, 사람다움이란…

[생협평론] 세월호 이후·① 함께하기

대한민국의 잔인한 민낯

세월호 참사는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져주었다. 그것은 시민의 안전 불감증, 국가의 책무 방기, 기레기로 비유되는 무책임한 언론, 기능하지 않는 관료 조직, 이윤이 생명보다 앞선 기업의 탐욕 등의 '수준'을 너머 보다 근본적인 것이었다. 10분 안에 모두 구조할 수 있었다는 침몰 현장1)에서 생눈을 뜨고 304명의 목숨이 수장되는 걸 지켜보아야 했던 시민들은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운 충격을 받았다. 이 충격은 아이들이 감금되어 죽어가는 공포와 고통에 대한 아픔, 슬픔, 무력감이었다. 시민들은 너도나도 '미안합니다'라며 함께 책망했고, 대한민국의 무능하고 일그러진 민낯에 경악하고 분노했다.

승선자들을 버리고 탈출한 선원들의 만행이 드러나고, 해경과 재난대책본부, 정부 각 부처, 청와대를 망라하여 너 나 할 것 없이 범정부적으로 표출된 무능력과 무책임함을 적나라하게 목격하면서 그리고 고위 당국자와 일부 정치인들의 몰지각한 언행들을 접하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2)

참사 이후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폄훼와 악의적인 헛소문 유포, 냉소와 조롱이 공공의 장에서 벌어졌다. 세월호 유가족을 둘러싼 '막말'에는 공무원, 언론인, 종교인, 교수 등 소위 사회의 여론 주도층 인사들이 적지 않았다. 그 말들은 잔인했다. 예컨대,

이번 세월호 사고에서 죽은 학생 부모 중에 종북 좌파들이 있다면 이런 종자들은 애도할 필요가 없어요.(서승만, 피플뉴스 편집국장, 2014.4.19., 페이스북)

가난한 집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경주 불국사로 가면 될 일이지, 왜 제주도로 배를 타고 가다 이런 사단이 빚어졌는지 모르겠다.(조광작, 한국기독교총연합회 공동부회장, 2014.5.20., 한기총 긴급임원회의)3)

ⓒ프레시안(최형락)


잠시 무대를 바꾸어 생각해보자. 1929년 국제사회는 제네바조약에 '포로의 대우에 관한 조약'을 추가했다. 적성국(敵性國)의 군인이라도 인간적으로 처우해야 한다는 인류의 약속이었으며 이 조약 덕분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많은 포로들이 고향으로 생환하였다. 남북이 정전협정으로 대치하는 상황이지만 대한민국 헌법은 고문을 금지하고 있다. 사상범이든, 흉악범이든 고문으로 자백을 얻어서는 아니 된다는 신조를 헌법에 명시한 이유는, 대한민국은 자율적인 개인의 약속 위에 세워진 민주주의 공화국이기 때문이다. 고문은 인간성을 파괴하는 폭력이므로 민주주의 공화국의 전제를 무너뜨린다. 예수는 로마의 식민 지배를 받던 팔레스타인 지역 가난한 나자렛 마을의 목공으로 생계를 꾸렸다. 민중과 함께했으며 형제애를 실천하여 계급을 뛰어넘는 보편적인 사랑을 실현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막말을 쏟아낸 여론 주도층의 언설은 현대 문명사회가 오랜 염원과 투쟁, 희생과 헌신을 통해서 이룩해온 문명의 철학적 기초를 무너뜨리는 것이었고, 결과적으로 시민의 사기를 더 저하시키고 정치 성향이 다른 시민들 사이의 분열을 부추겼다. 그 결과, 대한민국 시민은 집단적인 상처를 입었고 아물지 않는 상태에서 그 상처가 덧나는 현재를 살고 있다.

집단적인 참사를 겪은 사회가 그 상처를 딛고 회복하기 위해서는 당사자와 시민들이 상처와 슬픔을 치유하여 단결하는 '사회적 상호작용'을 반복하면서 저하된 사기가 다시 올라오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던 1917년에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논문 '애도와 우울증(Mourning and Melancholia)'을 발표했다. 전쟁터에 보낸 남편, 아들, 연인을 상실한 집단적인 비극이 유럽사회를 뒤덮었던 시기이다. 프로이트는 사랑하는 대상을 상실했을 때 정상인이 겪는 고통의 과정을 두 가지로 구분했다.

애도(mourning)는 서사를 담고 있으며, 부모나 연인을 잃은 고통이 점차 회복 불가능한 것으로 인정되는 과정을 인지하고 나서 앞으로 계속 나아가려는 욕구가 되살아나는 과정이다. 애도를 거치면서 사랑하는 대상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이 드러나고 이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나면 자아가 회복된다. 그러니, 애도는 일종의 수리 작업으로 내면에서 나오는, 내면의 구조 변경 작업이다.4) 그런데 이 과정이 수리되지 못하면 상처가 그대로 남아서 상실한 대상을 포기하지 못하고 고통의 북소리를 반복하는 심한 우울증(melancholia)으로 남아 있게 된다.

애도를 가로막는 조롱과 냉소

세월호 참사 이후 유가족과 시민은 애도의 과정을 제대로 거쳤을까.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안전관리 체계의 수립 등 후속 조치의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다. 게다가 유가족을 비하하고 조롱하며 사생활을 까발리는 비열함이 은밀한 사회 관계망 서비스를 벗어나 공공의 장소인 광장에서 이루어졌다.

지난해 추석 연휴였던 9월 6일.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위한 유가족과 시민의 단식 투쟁 천막 앞에서 일베 회원들이 폭식 행위를 벌였다. 애도를 부정하는 조롱과 냉소가 용인되는 사회 분위기는 디멘터5)처럼 건전한 시민의 기력을 빨아들인다. 급기야 이들의 행동을 두고 언론에서도 '패륜(悖倫)'이라는 표현을 썼다. 사람의 도덕, 인간의 윤리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민낯은 사람다움이 무엇인지 회의해야 하는 수준까지 일그러진 모습으로 드러났다.

우리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행위, 정도를 넘는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 "저러고도 사람이야?", "짐승만도 못한…"이라고 내뱉는다. 생물학적으로는 사람이지만 사람답지 못한 이들이 늘어난다면 참으로 끔찍하다. "자연에는 미술도 문학도 사회도 없다. 가장 나쁜 것은 끊임없는 공포와 급사할 위험이다. 인간의 삶은 고독하고 가난하고 사악하고 야만스럽고 짧다"는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의 <리바이어던(Leviathan>)의 세상이 된다.6)

무엇이 사람다운 것인가. 사람다움을 잃어버릴 때 사회는 어찌되는가.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정작 대한민국의 시민이 되물어야 할 물음은 바로 이 질문이 아니었을까.

ⓒ프레시안(최형락)

사람다움이란 무엇인가

사람다움은 사람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나를 나라고 증명할 수 있는 특성을 말한다. 나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여권이나 주민등록번호를 통해서 타자와 다른 유일한 나를 식별하는 것처럼 사람다움도 다른 생물에는 없거나 사람만이 지니는 특성이 무엇일지에 대한 인식을 통해서 추출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뇌과학 분야에서 사람다움이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탐구와 발견이 있었다.

마이클 가자니가(Michael S. Gazzaniga)의 <왜 인간인가?(Human)>(박인균 옮김, 추수밭 펴냄)에 따르면, 오랑우탄, 고릴라, 침팬지, 보노보, 사람은 모두 같은 조상을 지닌 유인원이다. 진화를 거쳐 인간과 침팬지의 조상은 약 500만 년에서 700만 년 전 어느 시점에서 갈라졌다. 도구를 사용하거나 고통을 느끼거나 무리를 지어 살며 생존을 위해 협동하는 본능은 동물도 사람과 마찬가지이다. 심지어, 사회적이며 윤리적인 행동, 자식에 대한 애착, 부상당한 동료에 대한 동정과 보살핌, 부끄러움과 질투, 지배자에 대한 복종은 동물들의 세계에서도 이루어진다.

그러면 어떤 특성이 사람다움에 속하는 것일까. 하나는, 감정과 언어이다. 나무에서 내려와 직립보행을 하게 된 사람의 신체는 생존에 매우 불리했으나 이를 보완하기 위해 무리 생활을 선택했다. 무리 속에서 상호작용을 해야 하는 사회 행동에서 감정이 발달하고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서 언어가 발달했다는 것이다. 집단에서 서로를 존중하는 존재임을 상호 확인하는 것은 생존의 필수조건이었다. 따라서 사람답다는 것은 사회적이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둘째, 생득적인 도덕규범, 또는 윤리의식이다. 뇌 과학자들은, 사람은 어떤 추상적인 도덕규범은 가진 채로 다른 도덕규범은 배울 준비가 된 상태로 태어난다고 말한다. 그 후 환경, 가족, 문화가 사람을 특정한 도덕 체계로 제한하거나 안내한다.7) 덧붙여서, 동물의 윤리적 행동과는 달리 사람의 윤리적 행동은 더 복잡하고 정교하다. 사람은 윤리의식을 규칙으로 만들어 각 구성원에게 적용되는 의무를 창조해내었다. 규율을 성문화하는 것도 오로지 사람의 특성이고, 상황에 대한 맥락을 구성하는 것 역시 사람만이 지니는 특성이다.8)

세 번째, 사회적 상호작용을 연장하는 데 필요한 능력이다. 예컨대,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동을 억제하거나 상호작용 시 속이는 자를 처벌하는 능력이다.9) 사람이 사람다움을 획득하게 된 생물학적 조건은 사회적 상호작용, 즉 함께하기였다. 그리고 이 작용이 반복되어 복잡해지면서 사람만이 지니는 자유와 책임, 보이지 않는 존재를 믿고 행동하는 의식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10) 함께하기를 제대로 못하면 사이코패스가 되기 쉽다. 감정적으로 중요하고 공감이 가는 자극이 외부에서 주어지더라도 자기를 제어하지 못하고 어느 한 가지에만 마음을 빼앗겨 그 마음을 억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이코패스는 공감, 죄책감, 수치심이라는 도덕적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11)

함께하기 : 세월호 참사 후 아이쿱생협 조합원들의 활동

세월호 참사 소식은 아이쿱생협 조합원들에게 더 민감하게 다가왔다. 대다수의 조합원이 성장기 아이를 둔 부모들이었기 때문이다. 조합원들도 집단 우울증에 빠졌다. 사기가 저하되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던 시기, 조합원들은 안산분향소를 삼삼오오 방문하는 것부터 노란 리본을 자연드림 매장에 준비하여 조합원과 주민들이 추모의 마음을 공개적으로 함께 표현하도록 나섰다.

정신을 바짝 차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며 5월 한 달 동안 광화문광장에서 1인 시위를 매일 두 시간씩 진행했다. 4월 24일과 5월 8일, 아이쿱소비자활동연합회는 '세월호 사고에 대한 아이쿱소비자활동연합회 성명'을 발표했다. 실종자 구조를 위한 최선의 조치, 진상 규명 및 책임자 처벌 촉구, 재난안전관리 체계의 총체적 점검 및 재수립을 촉구했다. 청계광장,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추모제, 집회뿐만 아니라 울산, 포항, 광주, 대구, 진주, 제주, 부산 곳곳에서 진혼과 추모 촛불행동에 참여했다. 해남에 있는 한울남도아이쿱생협은 반찬과 생수를 실고 진도 팽목항에 남아 있는 실종자 가족을 몇 번이나 찾아갔는지 모른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머라도 안하면 미칠 것 같은 요즘,
밥 먹고 수다 떨다가도 눈물 나는 요즘,
아이랑 웃다가 문득 슬퍼지는 요즘,
평생 우울증하고는 거리가 먼 저는 요즘 우울증을 실감하고 살아갑니다.
그래도, 집에서 따뜻한 저녁밥을 지어 먹고 아이들과 함께 동네를 나섭니다.
저 같은 사람이 우리 마을에도 많이 있다지요.

그래서, 저녁마다 함께 모여 초등학교 앞에서 돗자리 펴고 이야기 나눕니다.
웃다가도 울기도 하고 울다가도 웃기도 합니다.
촛불추모제입니다.
일상을 보내다가는 울컥 눈물 나고, 분노가 치밀어오는 요즘,
이런 자리라도 있어서 위안이 되고 고맙기도 합니다.

지나가는 마을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리본에 추모 글도 써주시고, 서명도 해주십니다.
묻지도 않고 눈빛만으로 서로의 마음을 위로합니다.

매일 저녁 7시 30분에서 8시 30분에 부산 당감동 동원초등학교 앞에서
우리는 지금 촛불을 들고 슬픔을 나누고 나라를 걱정합니다.12)

지난해 5월 14일, 세월호 참사 한 달이 되어가던 시점에서 한 조합원이 쓴 글이다. 슬픔을 함께하자 공감과 참여 의지가 더 타올랐다. 7, 8월 동안 한 달 넘게 진행되던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위한 국민단식릴레이에 수백여 명의 조합원이 자진해서 동참했다. 세월호 십자가 순례단과 함께 걸으며 생협의 식재료로 조합원들이 반찬을 준비하여 순례단과 밥을 함께 했다.

광주의 생협들은 공판이 열릴 때마다 도시락, 간식을 준비하고 공판에 참석하는 유가족들을 지지, 응원했다. 안산에 마련할 유가족의 치유 공간 기금을 모으고 11월 10일에는 '보다 안전한 사회를 위한 시민 ‘톡talk’ : 한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너와 나의 이야기, 세월호 4.16 이후의 우리'를 열었다. 20만 조합원 중 4000여 명의 조합원이 '지혜카드'에 한마디씩 의견을 보내주었다. 아프고 우울해하던 조합원들은 조금씩 용감해졌고 자아를 회복했다.

사회를 바꾸기 위해 해야 할 일은 역시 혼자 투덜거리는 게 아니라, 함께 힘을 모으는 것이다. 이런 걸 협력이라고 한다. 힘을 모아 함께 움직이면 그때부터는 협동이다.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의 협동은 이런 심오한 뜻을 가진 단어다.13)
▲경복궁 광화문 앞에서 농성 중인 유가족들. ⓒ프레시안(최형락)

협력의 체계화 : 일본 생협의 이재민과 재해 지역 지원 활동

함께하기는 재난과 참사를 당한 사람과 지역사회를 구제하는 강력한 수단이고 방법이다. 우리는 3.11과 이에 대처한 일본 생협의 모습을 통해 이 점을 확인할 수 있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에 발생한 규모 9.0의 지진과 해일로 1만5800여 명이 사망하고 2600여 명이 아직도 행방불명이다. 지금도 전국에 산재한 피난민 수가 약 23만 명인데, 그 중 가장 많은 피난민이 후쿠시마 주민들이다.

3.11을 통해서도 일본 사회의 불편한 민낯이 드러났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도쿄전력(東京電力)의 탐욕과 자만이 빚은 인재(人災)였으며, 비상사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정부는 무능했으며 갈팡질팡 진실을 숨겼고, 원전 수습 현장에서는 파견회사, 비정규직 현장 노동자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불공정이 자행되었다.

그럼에도 사회 전체적으로는 용기 있는 시민과 이들의 활동을 조직적으로 지원하는 체계가 비교적 잘 가동되어 2차, 3차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예컨대, 후쿠시마 원전사고 직후 많은 주민들이 패닉에 빠져 원전 주변 동네를 빠져나올 때 의료복지생협은 거꾸로 고립된 주민의 건강을 돌보기 위해 의사, 간호사를 파견하고 지역생협은 노인요양홈, 복지시설에 부족한 생필품을 공급했다. 어린아이를 둔 부모와 생협 조합원들이 중심이 되어 원전 가동중지를 요구하며 수상 관저 앞에서 수개월간 집회를 열었고 동네의 방사선량을 측정하고 방사선 검사를 마친 물품을 조합원에게 공급하는 등 안전을 지키기 위한 행동을 꾸준히 펼쳤다. 더 크게는 사업소의 전력을 재생가능 에너지로 전환하거나 조합원의 출자를 통해 풍력발전소를 세운 사례들도 있다.

재해 지역과 이재민 지원 활동에서 일본 생협은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고베 대지진) 당시 괴멸적인 타격을 입은 고베 시민과 고베생협을 지원하기 위해 전국에서 집결하여 활동했던 경험을 지니고 있다. 그 경험을 살려 전국의 생협은 각 지자체와 재해지원협정을 맺고 생협 안에서도 재해 발생 시 행동 방침과 구체적인 지침을 명시하고 있으며 정기적으로 가상훈련도 실시한다.

이러한 일상 속에서의 대비와 훈련이 3.11 당시 효과를 발휘했다. 지진 발생 후 30분 만에 전국조직인 일본생협연합회는 대책본부를 설치하고 신속하게 긴급지원활동에 나섰다. 당일 야간에 긴급구호물품을 실은 배송 트럭이 출발했으며 수백여 명의 직원을 파견하여 주민의 안부 확인 활동, 매장 복구, 고립 지역 물자 공급을 담당했다. 일본의료복지생협은 500여 명의 의사, 간호사를 파견하여 피난소 순회 진찰, 가설진료소 설치, 후쿠시마 원전 근처 환자들을 대피시켰다.

전국의 생협에서는 응원 편지 보내기, 자원활동가 모집, 모금 활동이 전개되었다. 4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여러 생협은 동북지역의 이재민 지원 활동―차(茶) 모임, 심리상담, 건강상담, 텃밭 가꾸기, 농지의 방사선량 저감 활동, 일자리 만들기― 지역사회 재건을 지원하는 활동을 꾸준히 지속하고 있다.

필자가 생각하기엔 이 꾸준함과 체계화가 일본 생협의 저력이다. 함께하기, 또는 함께 행동한다는 것은 의지만으로 효과를 발휘하는 게 아니다. 서로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이해하고 응답하는 기술을 터득하고 체계화하는 것은 협동의 경험을 축적하고 개선하며 노하우, 기술로 전수하고 공유하는 과정 없이는 어렵다.

함께하기에 익숙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협동조합 조합원의 몫

사회적 존재라는 특성을 뺀다면 사람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다. 인류의 모든 문명은 타자에 대한 존중과 자비심에 기초하여 꽃을 피웠다. 유학에서 사람다움을 뜻하는 인(仁)의 첫 의미는 '차마 타자에게 함부로 하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이다.14) 인을 뜻하는 영어 휴머니티(humanity)의 의미에는 '타자를 향해 친절하고 공감하는 태도, 특히 누군가 고통을 겪을 때 그러한 태도'가 들어 있다.15) 정약용은 인(仁)은 사람 인(人)이 겹쳐진 글꼴로 그것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말한다고 보았다.16)

비교사상가 이토 슌타로(伊東俊太郞)는, 인류 문명의 최소 필수조건으로 아힘사(ahimsā), 즉 비폭력과 불살생. 공생(convivence), 타자와, 타 문명과,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것. 형평(equitability)이다. 격차를 없애는 것이라 한다.17) 이럴 때 "개인이라는 사적 존재는 이웃이라는 공공을 통해서 확인되며, 이웃과 따뜻한 손을 잡음으로써 행복과 상생의 의미를 추구해간다. 한자어로서 人間은 그 자체로 진보이며 진실이다"18) 이렇게 보면 협동조합에서 양성되는 함께하기의 문화, 협동의 노하우야말로 사람다움을 체화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오늘날 우리에게 두려운 것은 협력할 마음이 없어진 주민들로 이루어진 '냉소적 사회'가 등장하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벌어진 사태는 이런 우려가 지나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그런 가운데 희생자를 애도하며 유가족을 위로하고 안전 사회를 바라며 행동하는 이들은 우리 사회의 구원자였다. 함께하기는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이고 사람다움의 원천이라고 나는 믿고 싶다.

1) 세월호 제17회 공판(2014.9.24.)에서 검찰 쪽 전문가 증인이었던 박형주(56) 가천대학교 초고층방재융합연구소 소장의 탈출 시뮬레이션 실험 결과. '시뮬레이션 해보니 "5~9분 만에 전원 탈출 가능"', <오마이뉴스> 2014.9.24.
2) '세월호 사고에 대한 아이쿱소비자활동연합회 성명'(2014.4.24.) 일부.
3) '소름 돋는 '세월호 막말', 이걸 용서해야 하나?'(<오마이뉴스> 2014.6.1.)에서 재인용.
4) 리처드 세넷의 <투게더 :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김병화 옮김, 현암사 펴냄) 2013, 404~405쪽.
5) <해리 포터>에 등장하는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흡수하는 괴물(편집자 주)
6) 리처드 세넷, 같은 책, 120쪽 재인용.
7) 마이클 가자니가의 <왜 인간인가?>(박인균 옮김, 정재승 감수, 추수밭 펴냄) 174쪽.
8)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스피노자의 뇌과학 : 기쁨, 슬픔, 느낌의 뇌과학>(임지원 옮김, 김종성 감수, 사이언스북스 펴냄) 188~194쪽.
9) 마이클 가자니가, 같은 책, 174쪽.
10) "둘 이상의 뇌가 상호작용할 때 예측 불가능한 새로운 일들과 규칙이 생겨난다. 개별 뇌에서는 결코 발견할 수 없는 자유와 책임이 그 대표적 가치이다.", 마이클 가자니가의 <뇌로부터의 자유>(박인균 옮김, 추수밭 펴냄) 207쪽.
11) 마이클 가자니가, 같은 책, 199쪽.
12) <지금 할 수 있는 일 3>(iCOOP 생협 블로그 '협동으로 랄랄라' 펴냄)
13) <우리의 안전을 위해 세상을 바꾸자 ― 보다 안전한 사회를 위한 시민 톡 후기>('협동으로 랄랄라' 펴냄)
14) 신정근의 <사람다움이란 무엇인가>(글항아리 펴냄) 86쪽.
15) http://www.macmillandictionary.com/dictionary/british/humanity
16) 신정근, 같은 책, 290쪽.
17) <川勝平太連続対談 日本を変える! (第7回) 文明の視点から>,<璟>, Vol.59, 2014 Autumn, 367~372.
18) 이래경의 <민주진보세력의 새로운 좌표, 역동적 복지국가를 향하여>((사)복지국가소사이어티 펴냄)

* 계간지 <생협평론>은 (재)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가 펴내는, 협동조합을 다루는 본격적인 전문잡지로서 협동경제·나눔·평화에 대한 의견들이 교환되는 공간입니다. 정보지이자 실천적 교육서로서 협동조합 활동가뿐 아니라 협동조합에 관심 있는 모든 이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전달하고, 협동조합을 둘러싼 다양한 사회·경제·문화적 이슈를 다룹니다.(☞ 바로가기 :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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