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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친구 먹었다'는 일베, 어떻게 유지될까

[살림이야기] 개인과 공동체를 살리는 '갈등전환'

"친구 먹었다." 얼마 전,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조롱하는 사진과 말 한마디가 대중의 분노를 샀다.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에 단원고 교복을 입은 한 남성이 어묵을 들고 있는 사진을 올리면서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시신이 물고기에 먹혀 어묵이 됐고, 그 어묵을 자신이 먹고 있으니 친구를 먹었다는 말이다. 더 충격적인 것은 희생자를 향한 반인륜적 조롱과 모욕을 아무렇지 않게 표출하고, 이를 추켜세우고 즐기는 커뮤니티가 비록 온라인이지만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패륜적 범죄가 오늘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흑인 차별이 한창이던 20세기 중반 미국 남부 지역에선, 흑인을 살해해 나무에 메달아 놓고 이를 배경으로 삼아 웃으며 기념 촬영하는 모습이 아무렇지 않게 펼쳐졌다.

내러티브, 이야기의 힘

어떻게 이런 끔찍한 일이 특정 집단과 공동체에서 아무렇지 않게 여겨지고 오히려 권장될까? 바로 공동체 내에 회자되고 통용되는 내러티브, 이야기의 힘이다. '일베'라는 사이버 커뮤니티에서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을 조롱하고 모욕하는 내러티브에 일상적으로 노출된 사람들은 동일한 조건에 맞닥뜨리면 그런 행동을 하게 된다는 말이다.

갈등 해결 방식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특별한 갈등 해결의 지식도 원칙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갈등 상황에 닥치면 그동안 들어왔던 익숙한 갈등 해결 내러티브에 따라 반응한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갈등 해결에 관한 이야기는 어떤 것이 있을까? 한국 사회나 각자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회자되는 갈등과 관련된 내러티브를 살펴보면, 갈등에 대한 인식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공동체나 나의 갈등 대처 방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말을 모아 보는 것도 방법이다.

"경찰 불러!"
"법대로 해!"
"그냥 까라면 까."
"절대 미안하단 얘기 하지 마."
"좋은 게 좋은 거야."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거야!"
"그냥 술 한 잔하고 풀어."
"빨갱이 아냐?"

앞에서 나열한 대화에 담겨 있는 갈등 해결 방식은 무엇인가? 갈등을 부정적이고 불온하고 공동체의 안전을 파괴하고 분열을 조장하는 부정적인 에너지 혹은 현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게 녹아 있다. 힘을 가진 쪽이 원하는 방식으로 일방적으로 처리하거나, 외부 공권력의 해결에 의존하는 식이다. 침묵을 강요하거나, 갈등을 죄악시하거나 불온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전체주의적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는 문화도 이를 부추긴다. 일체의 반대 의견이나 비판적 언행을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다. 그래서 공동체의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지도자의 의지에 순응할 것을 요구한다.

평화라는 종착역으로 가기 위한 기착지

갈등전환의 핵심은 갈등이 지닌 긍정적 에너지에 주목하는 것이다. 갈등을 불편한 제거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패러다임에서, 건설적 변화를 이끌어낼 선물이자 기회로 바라보는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다. 그 과정을 통해 갈등이 가진 폭력성은 최소화하고, 정의는 극대화시키는 것이 갈등전환의 핵심이다.

"진정한 평화는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갈등을 통해 정의가 실현되는 것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말이다. 여기서 정의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만족스럽고 올바른 상태를 말한다. 모두가 만족스러운 평화라는 종착역으로 가기 위해서 갈등이라는 중간 기착지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해결에 대한 기술을 배우기 전에, 갈등을 부정적으로 보는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앞서 살펴본 갈등에 대한 인식에는 갈등 해결에 장애가 되는 사고방식이 담겨 있다. 갈등을 창조적 에너지로 전환하려면, 두 가지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갈등은 인간관계에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점과 갈등이 긍정적으로 전환되면 더 나은 세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동력이 된다는 점이다. 마치 중국집에 갈 때마다 짜장면과 짬뽕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처럼 갈등은 일상적인 것이며, 이런 갈등을 외면하지 않고 긍정적인 변화로 전환해서 '짬짜면'이란 위대한 발명품이 나온 것처럼 말이다.

김부선 씨가 일으킨 갈등으로 사회구조 변해

지난해 영화배우 김부선 씨가 갈등의 아이콘으로 세간에 오르내렸다. 아파트 난방비 청구의 불합리한 점을 지적하며 주민들과 일으킨 갈등 때문이다. 논란이 되자 동료 연예인의 비아냥거림도 뒤따랐다. "좀 조용히 지냈으면 좋겠다. 이 분은 연기자보다 개인적인 일로 더 바쁘고 시끄럽다. 설치면서 드러내는 일을 할 줄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다"라며 김부선 씨를 트러블메이커 취급했다.

하지만 김부선 씨의 갈등 덕에 공공기관이 나섰고, 주민 토론회가 열리고 결국 김부선 씨가 거주하는 아파트는 중앙난방에서 개별난방으로 전환됐다. 아파트 관리비 비리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와 지자체 차원의 대책이 잇따랐다. 갈등이 촉매재가 되어 고질적인 갈등 사안이었던 아파트 관리 비 비리에 공적 기관이 적극 개입하면서 사회구조 변화까지 가져온 것이다. 김부선 씨의 사례는 갈등이 '위기'가 아니라 '기회'라는 걸 보여준다. 갈등을 불편하고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고 긍정적 변화를 위한 에너지로 여길 때 개인과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

갈등 환영하는 문화 만들기

불편함을 빨리 없애는 데 초점을 맞춘 갈등 종식 패러다임은 문제가 되는 요소를 제거하거나, 문제를 일으킨 사람을 비난하는 데 집중한다. 손쉽고 빠른 방법이기 때문이다. 배우 김부선 씨의 입을 틀어막는 것이나, 세월호 참사의 원흉으로 지목된 유병언 일가를 소탕하고, 해경을 해체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갈등 유발자를 색출해 입을 틀어막으면 손쉽게 소란함을 잠재울지 모르지만 해묵은 갈등의 요소와 불의한 구조는 고착되고, 갈등 당사자나 피해자들의 욕구는 외면당한다. 누가 갈등을 유발했는지 찾고 그 대상을 단죄하는 데 집중하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친다.

공동체도 문제가 되는 요소나 사람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지도자만 바꾸면 마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여긴다.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을 솎아내면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단편적 해결 방식이야말로 진짜 문제를 보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장애물이며, 갈등이 지닌 긍정적인 에너지를 질식시키는 요인이다. 앞으로 갈등 상황에서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갈등 상황에서 조정자 역할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최소한의 갈등 해결의 원칙과 소통 방법을 적용해 지혜롭게 갈등을 전환하는 방법을 살펴보려 한다.

TIP> 갈등 상황에서 갈등전환을 시도하려면 눈앞에 닥친 상황에 압도당하거나 휘둘리지 않고 침착하게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눈앞에 벌어진 사건을 창문으로 여기면 좋다. 창문을 통해 어딘가를 바라볼 때 창문 자체를 인식하는 경우는 드물다. 시선은 창문 너머 어딘가에 머문다. 마찬가지로 갈등전환을 시도할 때 빨리 해결책을 찾기 위해 사건 자체에 신경을 곤두세우기보다 사건 너머에 있는 실체에 집중해야 한다. 이런 작업은 갈등의 내용과 그 갈등을 포함하고 있는 상황을 구분하도록 도와준다.

* 한국갈등전환센터는 개인과 단체와 지역사회가 '갈등'을 긍정적인 변화의 동력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연구·교육·실천하는 단체이다. 기업, 단체, 학교, 교회 등에 갈등전환을 소개하고, 이론과 실습을 버무린 갈등전환 워크숍을 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강의 신청 및 워크숍 문의는 한국갈등전환센터(743-4113, JHP@hananuri.org)로.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우리나라 대표 생협 한살림과 함께 '생명 존중, 인간 중심'의 정신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살림은 1986년 서울 제기동에 쌀가게 '한살림농산'을 열면서 싹을 틔워, 1988년 협동조합을 설립하였습니다. 1989년 '한살림모임'을 결성하고 <한살림선언>을 발표하면서 생명의 세계관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살림은 계간지 <모심과 살림>과 월간지 <살림이야기>를 통해 생명과 인간의 소중함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살림이야기>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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