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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불법' 군사 정권 용인한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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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불법' 군사 정권 용인한 미국

[문학예술 속의 반미] 광주항쟁의 영향과 미국

V. 광주항쟁의 영향과 미국, 1980~1992

6. 1980년대 시와 미국 (1)

1980년대 한국에서 시는 반미투쟁을 포함한 반정부운동의 효과적 도구였다. 상대적으로 창작하기 간편하고 정치적 탄압이 심한 상황에서 배포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특히 1980년대 초 군사정권의 억압이 극도로 가혹할 때 시는 민족문학 또는 민중문학 운동의 중심이 되었다. 저항 시는 문학예술의 다른 분야에도 폭넓게 적용됐다. 예를 들어, 반미 시는 홍보나 선전선동을 위한 다양한 유인물에 자주 실렸다. 또한 항의시위 노랫말이 되기도 했고, 삽화를 곁들인 자료집으로 출판되기도 했다.

반미 시의 내용과 강도는 다양했다. 첫째, 미국은 한국에서 일어나는 사회문화적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비난받았고, 미국인들은 '양놈'을 비롯한 상스러운 용어로 표기되었다. 김남주는 1989년 미군들이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하는 동안 한국 여인들을 무자비하게 강간했다고 폭로하는 <포항 1988년 2월>을 발표했다. 이철송은 1992년 <오리 사냥>에서 먹을 것을 찾아 미군 부대로 접근하는 한국인에게 미군들이 '짐승'이라 여기며 '물오리를 쏘듯' 총질하는 모습을 그렸다.

김솔은 1988년 발표한 <기지촌>을 통해 미국 영화는 오로지 폭력만을 보여주고, 미군들은 부대 주변에서 한국인들은 쉽게 쏴 죽이며, 미국은 한국 전체를 거대한 기지촌이 되도록 이끌어왔다고 비난했다. 그리고 한반도의 해방과 통일을 위해 양키들은 미국으로 돌아가라고 외쳤다. 양성우는 <이태원에서> (1988)를 통해 미국에 의해 밟히고 찢어지고 토막 난 땅에서 "내 땅은 내 땅인데. 병신처럼 움츠러들고, 공연히 공연히 사시나무 떨듯"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신세를 한탄했다.

백기완은 <아, 우리의 딸들이여> (1988)에서 "양키놈 휘파람에 말려 비철대는 여인"들에게 "장도칼을 빼들라"며 분개했다. 그는 이 시를 쓰게 된 배경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나는 얼마 전 이태원 거리에서 미국병사에게 웃음을 팔다가 무슨 까닭인지 그들에게 몰매를 맞고 있는 한국 여인이 있는데도 이를 모르는 채 웃음을 팔고 있는 다른 여인을 보고는 영 돌아설 수가 없었다" 백기완은 이에 앞서 1981년 <서울에서 남미까지>라는 120행이 넘는 장시에서 "양공주의 쓰라린 경험을 가진 40대의 여자"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원한과 증오를 섞어 털어놓았다.

도날드야 / 그날 네 군홧발에 내 옷고름이 찢기던 그날 / 사흘이나 굶어 쓰러진 어머니까지 / 거푸 당하던 그날 /
너는 마침내 네 짝을 시켜 / 나를 다시 강제로 그렇게 해버리고는 / 그 놈이 내 허벅지를 지진 담뱃불을 핑계로 / 네놈들이 합세해 나를 허튼년이라고 / 머리채를 박박 깎아버리든 도날드야
아, 나는 그때 눈앞이 캄캄한 너희 부대 / 철조망을 미치게 물어뜯다가 / 다 바랜 나를 너도 경찰도 / 도둑으로 몰아 잡아넣든 도날드야 /
그날 내가 옥에서 나오던 날 / 딴 여자를 다시 끼고 돌아가는 / 너를 이 비수로도 아주 쓰러뜨리지 못하고 / 끌려가던 그날 나는 백번이고 되물었다
도대체 너는 왜 우리 땅에 왔는가 / 먹고 마시고 뺏고 죽이고 / 꼬드기고 등을 돌리고 / 다시 꼬드기다가 끝내 배신하는 / 아리조나의 총잽이야 /짐승보다 더 야비한 너는 / 도대체 왜 여길 왔는가 /
내가 당한 경험으로 보아 / 너는 다시 남미의 처녀들을 / 얼마나 짓밟아 망쳐 놓을건가 /
그래서 너같은 놈들에겐 / 지구의 여인이 일어나야 한다고 / 남미의 여인이여 속지말라고 / 이 장도칼을 부치고저 나는 서울가는 / 기차에 몸을 실었다 도날드야 /

많은 시인들은 또한 미국 문화의 부정적 영향에 대해서도 분노를 쏟아냈다. 문병란은 코카콜라가 메스껍다며 미국의 문화적 침투를 거부하는 <코카콜라> (1986)를 발표했다. 이하석은 <아메리카>를 통해 미군 부대 주위의 양공주를 묘사하면서 한국에서의 퇴폐 문화를 풍자했다. 노동자 시인으로 유명했던 박노해는 1984년에 쓴 <영어회화>에서 "부유층 아들딸들이 유치원서부터 / 영어회화 교육에다 / 외국인학교 나가고 / 중학생인 네가 잠꼬대로까지 / 영어회화 중얼거리고 / 거리 간판이나 상표까지 / 꼬부랑글씨 천지"가 되어버린 상황을 한탄했다. 그리고 영어 남용이 일본 식민통치 아래서의 '조선어 말살'을 떠올리게 한다고 했다. 이와 비슷하게 해직 교사 김경윤은 <분단 시대의 국사 시간> (1992)에서 "굴종과 침묵만을 강요하는 식민지 교단에서아이들은 연습장에 영어 단어만" 외운다며 탄식했다.

둘째, 미국은 광주학살을 방조하고 한국의 '불법' 군사 독재정권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비난당했다. 1990년 "5.18 광주 민중항쟁 10주년 기념시집"으로 출판된 <하늘이여 땅이여 아아, 광주여>엔 100편이 넘는 시가 수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노동자 시인 백무산은 <오월은 어디에 있는가>에서 광주를 "파쇼의 패악성과 제국주의의 독소를 집중 투하한 곳"이라고 정의했다.

김희수는 400행이 넘는 장시 <오월은 꽃잎으로 누울지라도>에서 "광주에 사는 외국인들은 보따리 싸들고 / 가족과 함께 철수시켰다네"라며, 그리고 김남주는 <학살2>에서 "밤 12시 나는 보았다 / 미국 민간인들이 도시를 빠져나가는 것을"이라며, 광주학살을 미국 관리들이 사전에 몰랐다고 주장하는 것을 반박했다. 고규태는 <무명전사의 넋>에서 광주학살에 동원된 무기와 도구들이 모두 미국에서 건너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남주는 위 시집에 실린 <학살>과 <나이롱 박수> 등 10편의 작품을 통해 광주학살을 포함한 한국의 모든 불행은 미국에 의해 초래되었다고 분노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자가 외적의 앞잡이"이며, 미국이 한반도를 분단시키고 방방곡곡을 "아비규환의 아수라로 만들어" 놓았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절규했다. "앞으로는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고 / 뒷전에서는 원격조종의 끄나풀로 꼭두각시를 앞장세워 / 제 조국의 해방과 독립을 위해 싸우는 민중들을 / 계획적으로 학살하는 아메리카여 / 보아다오, 너희들과 너희들 똘마니들이 저질러 놓은 범죄를" 나아가 "광주학살 지령한 양키들을 몰아내자"고 외쳤다.

사실 반미 시와 관련해 작품의 양으로든 내용의 강도로든 김남주를 앞지를 시인은 없을 것이다. 그는 1972년 이른바 '10월 유신'이 선포되자 반대투쟁을 시작해, 1979년 10월 박정희가 죽기 직전 '남민전' 사건으로 체포되어 1980년 감옥에 갇혔다가, 1988년 풀려났지만 1994년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는 자신을 시인이라기보다는 '전사'(戰士)로 간주했다. 시는 자유와 민주를 위한 그의 무기였던 셈이랄까. 반미 시로 가득 찬 그의 대표시집 <조국은 하나다>는 그가 감옥에 있을 때인 1988년 백낙청, 염무웅, 황석영에 의해 편집 출판되었는데, 여기서 문학평론가 염무웅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반제(국주의) 민족해방과 조국통일에의 열망을 누구보다도 정열적으로, 가장 격정적으로, 노래하고 싸우는 김남주 시인"의 "문학은 압제와 착취에 신음하는 전 세계 민중의 가장 귀중한 예술적 재보이며 자유와 해방을 지향하는 전 인류적 투쟁의 가장 빛나는 무기로 되고 있다"

그리고 가수 안치환은 2000년부터 그의 시에 곡을 붙인 '헌정 음반'을 만들어 발표해왔다. 그는 100편이 넘는 작품을 통해 미국에 호통치고 분개하고 저주했는데, 아래에 일부를 소개한다.

<시인의 일>
수천의 시민을 학살하여 / 양키의 이익을 지켜주고 / 그 대가로 세자책봉의 영광을 누리는 것이 / 장군인 너의 일이라면 // 홀랑 까진 마빡 위에 지르르 기름기가 흐르고 / 그 위에 학살과 저주의 낙인이 찍힌 채 / 양키의 부름으로 바다를 건너는 것이 / 반역자인 너의 일이라면 // 시인인 나의 일은? / 이 자가 저질러놓은 죄악 / 그 하나하나를 파헤쳐 / 만인에게 만인에게 만인에게 고하고 / 일깨워 민중들 일어나 단결하게 하고 / 자유의 신성한 피의 전투에 / 나아가자 나아가자 앞으로 나아가자 노래하는 일.

<매국노>
피 묻은 칼로 / 제 나라 허리를 잘라 그 아랫도리 반쪽을 / 이민족의 코앞에 발아래 바치고 그 대가로 / 제 동포의 머리 위에 군림한 자 // 이민족의 용병으로 미8군의 고용살이로 노예살이하면서 / 나라의 다른 반쪽 그 독립의 가슴에 괴뢰의 총칼을 들이대는 자 / 그 총구 그 칼로 반공 쿠데타로 일어나 // 백악관에서 입안되고 CIA에서 변조되고 미8군에서 급조되어 / 제국주의의 총구에서 튀어나온 상품의 이름 새 시대의 새 지도자라 불러야 하나 // 신식민지에서 무슨 놈의 대통령이고 독재자냐 괴뢰면 괴뢰고 하수인이면 하수인이지 /

<희망에 대하여2>
/ 양키야말로 학살의 숨은 원흉이고 / 양키야말로 이 땅의 모든 악의 근원이고 / 양키가 이 땅에 온 것은 해방군으로서가 아니라 / 점령군으로서 왔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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