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의 수사 검사였던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를 검증하기 위한 인사청문회가 7일 국회에서 열렸다.
장시간의 걸친 청문회의 초점은 결국엔 이 한 곳으로 모아졌다.
박 후보자는 1987년 1월부터 네 차례에 걸쳐 이어진 검찰 수사 과정에서 고문에 가담한 경찰관이 최초 구속된 2명 강진규 조한경 외에도 3명(반금곤, 황정웅, 이정호)이 더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가. 또는 알려고 노력하였는가.
박 후보자는 청문회가 시작되고 오전 내내 이에 대해 '떳떳하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그는 "검찰의 본분을 저버리는 처신을 결코 하지 않았다"고 했고 "제가 정말 열심히 (2차, 3차) 수사를 해서 공범이 3명 더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것으로 이 사건의 진상이 다 드러났다고 말씀드린다"고도 했다. (☞ 관련 기사 : 떳떳한 박상옥 "내가 박종철 사건 진상 규명다")
그는 점심 시간 후 재개된 인사청문회 자리에선 "물고문은 혼자서도 할 수 있다"며 1차 수사 때엔 고문 경찰이 2명뿐이란 경찰 측 주장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도 주장했다.
박 후보자는 "결박을 하거나 수갑을 채우면 혼자서도 (물고문을) 할 수 있다"면서 "강진규·조한경(최초 구속된 경찰관 2명)은 전투경찰대 출신일 뿐 아니라 경찰 특수경비대 출신이다. 두 사람은 왜소한 상태가 아니었다. 직접 조사해서 안다"고도 말했다.
박완주 "수사 기록 어디에도 박상옥이 '공범'을 물은 적은 없다'
박 후보자는 그러면서도 1987년 1월 20일 시작돼 4일 만에 마무리 한 1차 검찰 수사 때에도, 공범이 더 있는지를 직접 심문했던 강진규 등을 상대로 알아보려 했다고도 주장했다.
그러나 박완주 새정치민주연합이 공개한 자료는 정반대다.
박 의원은 "박 후보자는 1차 수사 때 강진규에게 수차례에 걸쳐 공범이 있느냐고 물었다고 했다. 그런데도 완강하게 (경찰이) 은폐했다고 답했다"면서 "그러나 제가 1차 수사기록을 여기 가지고 있다. 박 후보자는 당시 강진규에게 96번 질문을 했다. 그 가운데 단 한 번도 '가담한 다른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이 없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이어 "이 기록에 후보자님 도장이 다 찍혀 있다"면서 "대법관하실 분이 거짓말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박 후보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으며 "알겠다"고 답했다.
28년이 흘렀건만…고문 경찰과 유족이 한 자리에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에는 늘 '은폐·조작'이란 단어가 따라붙는다.
1987년 경찰이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다'며 고문을 은폐하려 했었음은 물론, 이런 경찰을 제대로 수사해야 했던 검찰도 안기부가 진두지휘했던 '관계기관 대책회의'의 외압 등으로 사건을 축소하려 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 관련 기사 : 박종철 사건, 수사 전 "조용한 마무리" 가이드라인)
28년이란 긴 시간이 지났지만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이날 청문회에는 고문 경찰 혐의로 재판을 받았던 5명의 경관 중 황정웅 전 경관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청문회엔 그가 고문해 죽게 한 故 박종철 군의 친형 박종부 씨도 참고인으로 출석해 있었다.
여야는 황 전 경관의 요청으로 얼굴을 가림막으로 가리고 질의를 진행했다. 그는 '당시 검찰 조사를 받을 때 상급자 누가 개입했느냐는 추궁을 받은 사실이 있느냐'는 전해철 새정치연합 의원 질문에 "기억이 잘 안 난다"고 답했다.
황 전 경관은 이어 "정말 죄스럽게 생각한다. 그 당시에도 잘못이란 걸 알고 있었고 용서를 많이 빌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런 비극적 재회가 또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박상옥 후보자가 있다. 실체와 진상이 아직 채 다 규명되지 않은 사건의 수사 검사를 '대법관'으로 임명한 대법원도 있다. 친형 박 씨는 이날 "경찰을 상대로 한 검찰 수사는 3번이나 있었다. 그러나 검찰의 잘못은 한 번도 수사 대상이 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바로 이 점이 오늘의 사태를 만든 원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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