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 학생 및 교수들이 붙인 대자보가 한꺼번에 뜯겨 나갔다. 학과제 폐지를 골자로 한 '학사구조 선진화 방안'을 비판하는 대자보다. 대학 본부 측은 학칙에 따라 철거했다고 주장하지만, 대자보를 붙인 이들은 학칙 상 근거가 없다고 맞받아쳤다.
두산그룹이 중앙대를 인수한 지난 2008년 이후, 중앙대는 '기업 식 대학 운영'의 실험 모델에 가까웠다. 일차적으로 타격을 입은 건, 인문학 등 '돈이 안 되는 학문'을 가르치고 배우는 이들이다. 지금 논란이 되는 '학사구조 선진화 방안' 역시 일종의 학문 구조조정이라는 게 대자보를 붙인 이들의 생각이다. 학생들의 전공 선택 폭을 넓힌다는 건 허울일 뿐, 실제로는 기초학문의 씨를 말리려는 시도라는 것.
지금까지는 대학 본부의 목소리가 압도적이었다. 대자보 철거가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 이를 보여준다. 그러나 최근 진행되는 검찰의 수사가 끝난 뒤에는 또 모를 일이다. '중앙대의 실험'을 이끌었던 박범훈 전 총장과 두산, 그리고 이명박 정권 핵심 사이를 잇는 비리 고리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다.
5일 중앙대 학생 구조조정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에 따르면, 대학 본부는 지난 3일 오후 흑석동 서울캠퍼스 곳곳에 게시된 구조조정 관련 대자보 수백여 장을 철거했다. 공대위는 "중앙대 구성원의 목소리가 구겨지고 찢겨 쓰레기통에 버려졌다"고 밝혔다.
이어 공대위는 "대학본부는 학칙에 따라 허가받지 않은 게시물을 철거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정작 학칙에는 신고제로 규정돼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이번 대자보 철거는 '구조조정과 관련된 게시물'을 떼내라는 대학본부의 지시로 이뤄진 것"이라면서 "심지어 학생회가 관리하는 학생자치공간인 학과 게시판에 붙은 대자보까지 철거했다"고 비판했다.
앞서 중앙대 대학본부는 지난해 1월 파업 중이었던 청소노동자들을 지지하는 학생들의 대자보를 철거했으며, 지난해 5월에는 '대학 기업화에 반대 한다'며 자퇴한 학생의 대자보와 이를 지지하는 대자보도 잇따라 철거했다.
한편, 검찰은 중앙대 총장 출신인 박범훈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정부 부처에 압력을 행사해 중앙대에 특혜를 제공했다는 의혹을 수사 중이다. 박 전 수석이 총장이던 시기, 두산이 중앙대를 인수했다. 박 전 수석은 이명박 정부 핵심과 가까운 사이였다. 특혜 압력 의혹이 나오는 배경이다. 중앙대 이사진을 구성하는 두산그룹 고위 인사들 역시 수사 범위 안에 있다. '이명박 정부-박범훈-중앙대-두산'로 이어지는 비리 고리가 있다는 의혹 때문이다. 실제로 박 전 수석은 퇴임 뒤 두산 측으로부터 다양한 혜택을 입었다. 박 전 수석의 딸은 이른 나이에 중앙대 교수가 됐다. 중앙대 이사장은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이며, 중앙대 관련 주요 의사결정자는 대부분 두산 관계자다.
이 같은 비리 의혹이 제대로 파헤쳐 진 뒤에도, '중앙대의 실험'이 계속될 수 있을지 궁금해 하는 이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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