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 형태로 운영하면, 일반적인 언론사와 달리 조합원들의 생각이 더 많이 반영될 수 있겠다는 기대 때문에 가입했다."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 조합원이 된 이유를 묻자, A씨에게서 이런 답이 돌아왔다. 기대했던 대로 조합원들의 생각이 많이 반영되고 있다고 여기고 있을까?
"조합에서 보내는 메일은 받고 있다. 그렇지만 솔직히 말하면 조합이라는 형태가 아직까지는 운영 경비 마련 차원에서 의미를 갖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조합원 의견 수렴을 앞으로 더 강화하면 좋겠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조합원들도 더 부지런히 참여해야 할 것이다."
A씨는 수도권에 사는 40대 인문학 연구자다. 2일 A씨에게서 <프레시안>에 대한 생각과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들었다. A씨에게 <프레시안> 기사의 장단점을 물었다.
"특집, 탐사 위주 기사가 다른 매체보다는 많은 것 같다. 그게 장점이다. 이념적인 스펙트럼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건 단점이다. 색깔을 포기하고 무리하게 기계적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건 결코 아니다. 그렇지만 <프레시안>이 더 많은 독자층을 확보하는 데 현재 기사 논조가 한계로 작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익숙한 주제, 익숙한 논조의 기사가 많다는 지적일까? "그렇다"는 답이 돌아왔다. 기사 분량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기사 내용과 주제에 따라 길이는 달라져야 할 터인데, 전반적으로 기사 분량을 줄이거나 늘릴 필요가 있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외부 전문가의 기고가 풍부하다는 점은 일반적으로 <프레시안>의 장점으로 꼽힌다. 이와 관련해 A씨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의견을 제시했다.
"오늘 <프레시안> 톱기사로 천안함 관련 외부 필자 칼럼이 올라갔다. 사회단체 소식지 등에 게재된 글을 <프레시안>이 공유해 사이트에 올리는 건 좋은 일이라고 본다. 그렇지만 이런 큰 문제에 대해 <프레시안>에서 자체 생산한 자료가 아닌 외부 칼럼이 톱기사로 올라간 것이 조금 의아하다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논조에 동의했기 때문에 주요하게 배치했으리라 짐작하지만, 이런 경우 그 문제에 대한 <프레시안>의 입장은 정확히 뭘까 하는 궁금증이 들 때가 있다."
종이 신문들은 편집국의 견해를 담아 매일 서너 건의 사설을 게재하지만 <프레시안>은 그렇지 않은 데서 비롯한 의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건을 다른 관점에서도 볼 수 있구나' 하는 걸 느끼게 하는 언론이길"
A씨의 일터와 관련된 상황을 물었다. 인문학의 위기라는 이야기가 오래전부터 나온 한국의 대학, 그리고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이들을 기관장으로 부적절하게 임명했다는 비판을 받은 몇몇 학술 및 연구 관련 국책 기관들의 오늘에 대한 A씨의 생각이 궁금해서였다. 이와 관련, 윗분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이야기를 했다가는 언제든 밥줄이 끊길 수도 있는 A씨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인터뷰 기사를 익명으로 내보내는 이유다.
"인문학은 중요하다. 요즘 인문학 관련 학과를 없애는 대학들이 있는데 그건 정말 문제다. 중앙대에서 하는 식으로 개악하는 건 절대로 안 된다. 그렇지만 인문학의 위기와 관련해 인문학자들이 제기하는 비판이 항상 타당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문학자들은 인문학자들대로 노력해야 할 부분이 분명히 있다. 지난 10여 년간 여기저기서 쏟아진 인문학 연구비 규모가 결코 작지 않다. '당신은 직장에서 월급을 받는 연구자이니 그런 속 편한 소리를 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연구비를 더 잘 활용할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코드 인사가 이뤄졌다는 비판을 받은 기관장이 있는 기관들에서) 부적절한 변화가 피부로 느껴진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예컨대 국책 연구 기관의 경우 기관장이 바뀌면 발주하는 연구 과제의 성격이 변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보다 더 심각한 건 그런 식으로 부임한 기관장의 인사에 의해 부적절한 인사들이 보직을 맡아 부적절한 보직 행위를 하는 것이다. 기관장이 정치적 성향이 강한 사람일 경우, 그리고 부임 후 해당 기관의 내부 사정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자신과 정치적 입장을 함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주요 보직에 앉힐 경우 생기는 문제다. 그런 식으로 보직을 맡은 사람들이 원장과는 무관하게 보직자로서 권한을 사유화하는 일도 있다고 들었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가 언론에 가끔 보도되기도 하지만, 보도되는 것보다 그런 일이 더 많이 일어난다고 알고 있다."
A씨에게는 아직 학교에 가지 않은 자녀가 있다. 어린이집 관련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은 지난 몇 달, 다른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A씨에게 어린이집 문제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어린이집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국회에서 지난달에 부결됐다. 그 후 부결에 동참한 국회의원들에 대한 낙선 운동 이야기도 나왔고, 일부 진보 언론에서 그러한 낙선 운동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이런 여론과 달리, 난 그 법안이 부결된 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학내에 CCTV를 설치해 교사들의 출퇴근을 확인하려 한 광주시교육청의 행위가 인권 침해에 해당하는지 조사해달라'는 진정을 얼마 전 인권위가 기각했다가 논란이 일기도 했는데, 똑같은 맥락에서 보면 어린이집 CCTV 의무화도 어린이집 교사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기본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CCTV 의무화를 비롯한 일련의 움직임은) 어린이집에 대한 사람들의 불안감을 이용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 애도 어린이집에 처음 갔을 때 잘 적응하지 못해 선생들을 힘들게 한 적이 있다. 난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선생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돌보는 건 참 힘든 일이다. 내 자식을 내가 돌볼 때도 너무나 힘들어서 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는데, 수많은 어린이를 돌보는 게 얼마나 힘들겠나. 물론 어린이집의 여러 문제점은 바로잡아야 한다. 그렇지만 그런 안전 강화 조치와 별도로 제도를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엄마 아빠들이 어린이집 교사들을 조금 더 믿어주는 것이 아주 민감해진 현재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프레시안>이 어떤 매체이기를 바라는지 물었다.
"어떤 사건 혹은 상황이든 두 가지 면모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진보 성향 독자들은 '진보 언론이면 이런 논조의 기사를 내보낼 것'이라고 예상하고 보수 성향 독자들은 보수 언론에 이런저런 논조를 기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상황에서 <프레시안>은 '이 사건을 (익숙한 관점이 아닌) 다른 관점에서도 볼 수 있구나' 하는 걸 느끼게 하는 언론이었으면 한다. (설령 그 결론이) 진보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더라도 사실 관계를 더 타당하게, 더 합리적으로 재구성하는 식의 기사를 싣는 것을 진보 언론이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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