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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G폰 이용 교사, 학생 스마트폰 사용 관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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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2G폰 이용 교사, 학생 스마트폰 사용 관찰기

[민들레] 스마트폰 사용은 선택의 문제

나는 아직도 2G폰을 쓴다

기억나는 광고가 있다. 한석규가 스님과 함께 대나무 숲을 걷다가 휴대폰이 울리자 휴대폰 전원을 끈다. "새로운 세상을 만날 때는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광고가 등장했다. 한석규를 연상시키는 남자가 등장한다. 배경은 역시 대나무 숲. "세상은 바뀌는 것이 진리"라는 대사와 함께 혜민 스님이 LTE 스마트폰을 꺼내 개그콘서트를 보며 웃음 을 터뜨린다. "새로운 세상에서는 가끔 즐기셔도 좋습니다."

이미 이동전화 가입자 수는 총인구수를 넘어섰고, 스마트폰 가입자 수도 3000만 명을 가볍게 넘어버렸다. 스마트폰은 대세다. 아직도 2G폰을 쓰는 내게 주변 사람들은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그 낡은 폰으로 문자도 보내고 통화도 하는 나를 보는 사람들 반응은 다양하다.

선배 : 이거 써 보면 생각보다 쉬워. 너무 겁먹지 말고 바꿔봐.
동료 : 너한테만 따로 문자 보내야 하는 거 아냐?
젊은 후배 : (애매한 웃음) 선생님,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
학생들 : 샘, 지금 학교 앞 매장에서 공짜 폰 행사하고 있어요.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지만, 그들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을 종합해 보면 "이상한 데서 고집 피우지 말고 정상적으로 살아!"라는 것을 나도 안다. 그래도 나는 한동안 스마트폰 없는 생활을 계속하게 될 것 같다. 지금 우리 사회를 급속도로 점령해버린 신문물에 익숙해지기를 거부하면서 이 희대의 상품이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낯선 이의 눈으로 계속 살펴보고 싶기 때문이다. 또, 내 낯선 행동을 통해 스마트폰에 완전히 익숙해진 스마트한 사람들에게 그 이전의 삶을 잠시라도 기억하게 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다음에 이어지는 글들은 스마트폰에 대한 나의 관찰 기록이다.

▲ LG U+의 LTE 세계최초 전국망 '혜민스님, 두사람' 광고 갈무리.

관찰 기록 1. 차이 : 엄마는 적어요? 나는 찍어요!

중학교 입학식에서 있었던 일이다. 입학식을 마치고 각자 교실로 들어간 아이들에게 담임선생님이 시간표를 칠판에 적어주고 있었다. 복도에서 창문으로 교실 풍경을 들여다보던 엄마 중 한 명이 핸드백을 뒤적이더니, 옹색한 메모지 한 장과 펜을 꺼내 들었다.

"뭐 해?"
"저게 시간표를 안 적고 넋 놓고 그냥 앉아 있잖아. 들어가서 적으라고 할 수도 없고, 내가 적어가려고."

나머지 엄마들이 빠르게 자기 아이를 살핀다. 아이가 시간표를 적고 있는 것을 확인한 엄마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그냥 앉아 있는 아이를 둔 엄마들은 너도나도 핸드백을 뒤지기 시작한다. 그 사이 짧은 담임 시간이 끝나고 아이들이 자리에서 일어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뒤이어 펼쳐진 풍경이라니! 넋 놓고 앉아 있는 줄만 알았던 그 아이가 유유히 교실 앞으로 나가 스마트폰을 꺼내더니, 칠판에 적힌 시간표를 찍는 것이 아닌가! 스마트폰으로 칠판에 적힌 시간표를 찍는 행렬은 그 뒤로도 한참 이어졌다. 아이의 입학식이라 맘먹고 디지털카메라(DSLR)를 준비해 온 엄마들도 있었고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엄마들도 많았는데, 그중 누구도 시간표를 찍을 생각은 못했다.

세대 차이. 어른들이 적는 동안 아이들은 찍는다. 계속해서 새로운 기기가 등장하고 빠른 속도로 교체되는 상황은 어른을 무능하게 만든다. 이것은 전통사회와 비교할 때 완전히 역전된 구조다. 적어도 전통사회에서는 어른들이 아이들보다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은 경험을 했기에 더 많이 알고 더 많은 것을 할 줄 알았다. 그러나 빠른 사회 변화는 이와 같은 구도를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세상은 정신없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어제 익힌 기능은 오늘 쓸모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태어날 때부터 컴퓨터와 인터넷, 스마트폰에 둘러싸여 자라난 아이들은 그것들이 제 몸의 일부인 양 능숙하게 다룬다. 아이들은 스마트폰으로 무수히 많은 일을 해결한다. 음악을 듣고, TV를 보고, 게임을 하고, 사진을 찍어 전송한다. 버스가 오는 시간을 알아보고, 급식 메뉴를 살펴본다. 그리고 정신없이 카카오톡을 하면서 자기들만의 소통 체계 속으로 깊이깊이 들어간다.

어른들이 '밀어서 잠금 해제' 앞에 당황하고, 화면을 잘못 건드려 엉뚱한 기능을 실행시키느라 걸려오는 전화도 못 받고 허둥지둥하는 동안 아이들은 스마트폰에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간다. 스마트폰을 갖고 있으면서도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길을 묻고, 기억해야 할 일들을 메모하는 것은 어른들뿐이다. 어른들은 이 새로운 문명의 이기에 적응하기 위해 애써 노력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스마트폰을 둘러싼 차이가 그냥 차이로 끝나지 않고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는 사실이다. 2012년 여수엑스포는 애초에 스마트폰으로 전시관 관람을 예약하도록 계획되었다. 스마트폰 사용자들에게는 환영할 만한 일이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황당한 방침이었다. 결국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의 거센 반발로 스마트폰 예약제는 폐기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다일까? 이번에는 스마트폰 예약제가 폐기되었지만, 다음번에는 어떨까?

처음 고속도로 톨게이트에 하이패스 카드가 도입되었던 때가 생각난다. '매일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일부러 카드를 만들어 사용할 일은 없지 않나?' 처음에는 다들 그런 생각이었다. 하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이제 고속도로 톨게이트에는 통행료를 징수하는 통로보다 하이패스 전용 통로가 더 많아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통행료 징수 통로는 늘 정체된다. 그러니 하이패스 카드를 만드는 사람은 점점 늘어날 수밖에….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와 같은 일이 스마트폰과 관련해서도 곧 닥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벌써 기차 예매에 스마트폰을 이용한 예약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한국철도공사는 역사의 유인 발권 창구를 점차 줄여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이제 기차표를 어떻게 구입해야 하나?

관찰 기록 2. 욕망 : 수업 중에 스마트폰이 사라졌다!

ⓒ연합뉴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수업을 하는 도중 ○○이의 폰이 없어졌다. 폰을 찾지 못한 ○○이는 경찰에 신고까지 하였으나 경찰은 나와 학생부 교사에게 두 차례씩 전화를 했을 뿐, 다른 노력을 하지는 않았다. 완전히 풀이 죽고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학교에 오던 ○○이가 나를 찾아와서 상담을 하고 싶단다. 잃어버린 폰은 갤럭시 노트, 최고로 비싼 폰 가운데 하나였다. 이 녀석은 이 폰을 사기 위해 알바를 하고 있다고 내게 말했던 것 같은데, 그것은 절반의 진실이었나 보다. 아이는 아주 강력한 요금제를 약정해 폰을 샀고, 해지하려면 150만 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50만 원? 너 미쳤니?' 하는 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것을 겨우 눌러 참았다. 아이가 죽어버리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110만 원은 약정을 위반하고 계약을 해지하기 위한 액수이고, 40만 원은 폰의 수리비였다. 얼마 전 폰이 깨져서 수리를 해야 한다며 다시 알바를 한다고 말했던 것이 기억났다.

창졸간에 폰을 잃어버린 ○○이의 상황은 정말 딱했지만, 자세히 이야기를 나눌수록 나는 화가 났다. 도대체 얘가 뭔 일을 저지른 거야? 그리고, 왜 이런 어린아이에게 그 비싼 폰을 내어 주느냐고! 뭘 믿고!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줄을 섰고, 학교에서도 ○○이의 가정 형편은 정말 어려운 편에 속했고, 아무리 생각해도 갤럭시 노트는 너무 심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식으로 무분별하게, 책임질 수 없는 소비를 하니까, 그러니까 가난한 거 아냐? 이런 생각마저 든다.

그러다 생각했다. ○○이를 탓할 수 있을까? 아이들은 어른들의 삶을 복제하며 자라난다. 값비싼 물건을 하나 장만하는 것으로 비루한 현실을 잊으려는 어른들의 턱없는 소비 또한 복제한다. 당장 돈이 없어도 12개월 카드 할부로 이자를 물어가면서 장만한 고가의 핸드백이 비참한 현실을 벗어나는 절절한 위안이라고 한다면 사실 할 말이 없다. 그가 그 선택으로부터 파생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그것을 감당하기로 선택했다면, 그걸 두고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는가. 설령 내 눈에 그것이 너무 어리석게 비칠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경우는 문제가 다르다. 나는 ○○이가 무모하게 갤럭시 노트를 장만했을 때, 자기가 정확히 어떤 선택을 했는지 몰랐다고 생각한다. 공짜 폰은 공짜가 아니며, '약정'이라는 이름의 계약은 '아차' 하는 순간, 자신을 곤란한 상황에 몰아넣으리라는 것을 정확히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아이들에게도 그런 황당한 조건으로 고가의 폰을 떠안기는 시스템에 대해 왜 우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가.

○○이의 갤럭시 노트는 어쩌면 ○○이가 갖지 못한 모든 것을 대신하는 단 한 가지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아무리 비싼 폰을 가지고 있어도 결핍이 채워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사랑의 결핍을 채우려면 사랑밖에는 답이 없고, 관심의 결핍을 채우려면 관심밖에 답이 없다. 폰은, 잠깐 그 결핍을 잊게 해줄 뿐이다.

관찰 기록 3. 규제 : 스마트폰 위기 앞에서 돌아버리는 아이들

평소 멀쩡하던 학생이 교사에게 무례한 행동을 하며 대들거나, 욕설을 퍼붓거나, 몇 번이고 집요하게 교사를 찾아와 자기 요구를 반복한다.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십중팔구는 스마트폰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수업시간 중 사용하다 적발되어 스마트폰을 압수당한 상황임을 짐작할 수 있다. 스마트폰 압수는 학생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분이다. 덕분에 학교는 몸살을 앓는다. 수업시간 중에 교사의 눈을 피해 문자를 보내거나 게임을 하는 학생들은 생각보다도 훨씬 많다. 수업의 진행을 실질적으로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이 보유하고 있는 기기의 가격이 비싸지면서 도난, 분실 사고도 끊이지 않는다. 한마디로 애물단지가 따로 없다.

이에 가장 강력한 대응 방법으로 등장한 것은 아예 학교에 스마트폰을 가져오지 못하도록 하거나 학교 일과 시작과 함께 스마트폰을 수거했다가 종례 시간에 돌려주는 것이다. 일과 중 스마트폰 소지 자체를 금지함으로써 수업의 정상화를 도모하기 위해서다. 공부를 위한 것이니 명분은 충분하다. 그러나 스마트폰 소지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학생들의 권리를 강력하게 제한하는 것이다. 어차피 일과 중에는 필요치 않으니 상관없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상관없지 않다. 사용할 일이 없다고 하더라도, 외부적인 힘에 의해 스마트폰을 강제로 내놓게 되는 상황 자체가 불쾌감을 유발한다.

우리 헌법은 국가 안보,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해 권리를 제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동시에 권리의 제한에 많은 단서들을 붙여놓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꼭 필요한 만큼만 제한해야 한다는 단서이다. 수업 중 질서 유지와 수업의 정상화를 위해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할 수 있지만, 그것이 소지 금지로 이어지는 것은 권리에 대한 과잉 제한이 아닐까?

생각해보면 학교에서 원천적으로 소지를 금지하는 품목들이 있기는 하다. 술이나 담배, 마약, 그리고 흉기류가 여기에 속한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술, 담배, 마약, 흉기류들과 같은 반열에 놓일 만큼 위험하고 해로운 것인지는 의문이다. 스마트폰의 위험과 해악에 대한 사회 일반의 반응은 매우 과장되어 있는 것 같다. 수업시간에 잠을 자도, 옆자리 친구와 대화를 나누어도, 학습 활동을 안 해도 그냥 보아 넘기는 교사들조차 스마트폰 사용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한다.

왜 그럴까? 스마트폰을 손에 쥔 학생은 자기 손안의 다른 세계, 적어도 다른 세계로 통하는 통로를 쥐고 있는 것이다. 학생이 교사(혹은 어른)의 통제 범위 밖에 있는 다른 세계와 접속하고 있는 상황은 수업 시간 중 교실에서 교사의 권위를 크게 훼손할 수밖에 없다. 교사가 통제할 수 없는 다른 세계에 있는 아이에게까지 권위를 행사하여 수업을 이끌어 나가는 것은 보통의 교사가 해낼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 근거가 무너지는 위기 상황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본능이다.

스마트폰 사용에 대한 과도한 규제의 뿌리에는 '교사의 공포'가 있다. 그러나 현실을 보자. 학생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있고 그 상황은 당분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현실을 인정한다면 스마트폰에 대한 근거 없는 공포를 벗어던지고 상황을 제대로 보아야 한다. 아이들의 손에서 스마트폰을 영원히 빼앗을 수 없다면(불가능하기도 하고, 그럴 필요도 없다) 교육이 할 일은 학생들이 스마트폰과 잘 지내는 법을 배우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스마트폰과 잘 지내려면 필요할 때에는 스마트폰의 전원을 끄고 집중하는 것, 바로 그것을 배워야 한다. 스스로 몰입과 집중을 선택하고 그것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스스로 제거하고 통제할 수 있는 힘, 이것이야말로 폰과 신체가 혼연일체 되어 살아가는 우리들이 배워야 할 것이다.

부모들에게도 배움이 필요하다. 식당에 가면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이 아이가 자신의 즐거움을 방해할 때 스마트폰을 손에 쥐여주는 장면을 종종 본다. 스마트폰 없는 유년 시절을 보냈어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떼어 놓지 못하는데, 태어나면서 걸음마와 함께 스마트폰을 손에 쥔 아이들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지금 내가 조금 편해지고자 하는 행동이 아이의 삶에, 그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신중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관찰 기록 4. 선택불가의 상황 :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리해진다?

총인구보다 많은 이동전화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2013년 12월 기준 스마트폰 가입자 수는 3751만 6572명이다. 그렇지만, 스마트폰 사용자가 다수라고 해서 2G폰 사용자 수가 무시할 정도로 적은 수인 것도 아니다. SKT의 2G폰 사용자 수만 해도 약 500만 명 정도라고 한다. 지난해 휴대전화 앞번호를 010으로 변경하는 정책의 여파로 그 수가 살짝 증가하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은 모두가 스마트폰 사용자인 것으로 간주하고 행동한다. 나는 모임 장소의 약도를 전송받고 당황했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내 2G폰으로는 사진을 확대할 수 없기 때문에 보내주는 약도를 알아볼 수가 없다). 연락이 카톡으로 이루어져 나 혼자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상황이 속출한다. 이쯤 되면 거의 왕따다. 얼마 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하는 행사에 참가신청을 하는데, 010이 아닌 옛날 번호에 중간 숫자가 세 자리인 내 전화번호를 적었더니 참가신청을 할 수가 없었다. 계속 "휴대전화 번호를 기입하라"는 경고 메시지가 뜰 뿐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 아이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휴대전화가 없었다.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을 때, 학급에 휴대전화가 없는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아이의 담임선생님은 친절한 분이어서 급한 연락이 있으면 학부형인 내게 따로 문자를 보내주었지만, 가끔은 잊을 때도 있었다. 그 당황스러움이란! 그런데 요즘은 휴대전화로도 부족하다. 카톡이나 클래스팅을 이용해 연락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 있어야 한다. 학급 전원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으니, 괜찮은가? 혹시 스마트폰이 있어야만 연락 가능한 상황들이 이어지고, 스마트폰이 있어야 대화에 한 자리라도 끼어들 수 있는 상황들이 쌓이면서, 그것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게 만드는 압력으로 작용하지는 않았을까? 담임선생님도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제공해주는 상황이 "엄마, 스마트폰 사 줘!"라는 아이의 말에 힘을 더해주지는 않았을까?

얼마 전, 구청에서 관내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시행하는 토론대회의 예선 참가 준비물이 스마트폰이었다. 대회 당일, 그 자리에서 스마트폰으로 정보 검색을 하는 매우 '스마트한' 계획을 수립한 것이다. 구청에 문의 전화를 했다.

박현희 : 스마트폰이 없는 학생은 대회에 참가할 수 없나요?"
구청 관계자 : 요즘 스마트폰 없는 학생도 있나요?(헉! 나는 이런 사람 무섭다.)
박현희 : 없는 학생도 꽤 돼요. 그리고 소수라 하더라도 스마트폰이 없다고 대회 참가에서 불이익을 받으면 안 되는 것 아닌가요?
구청 관계자 : 빌려서 참가할 수 있지 않을까요? 친구나, 가족이나….
박현희 : 아이들 말이, 스마트폰은 마치 신체의 일부 같은 것이라서 빌려달라고 해선 안 된다네요.
구청 관계자 : 그럼, 저희가 대여 스마트폰을 준비하겠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이건 알아두셔야 할 것 같네요."
박현희 : 네?
구청 관계자 : 스마트폰을 빌려서 사용하는 아이들은 사용법을 잘 모르거나 익숙하지 않아서 아무래도 불리할 수밖에 없어요. 그건 저희로서도 어쩔 수 없는 문제네요.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특정한 부분에서 점점 스마트폰을 사용해야만 하는 쪽으로 우리를 몰고 간다. 이 '선택불가'의 상황은 스마트폰을 가질 수 없는 형편이거나,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불리한 조건이라는 점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누가 스마트폰을 장만하지 못할까? 누가 스마트폰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할까? 가난한 사람, 노인들, 농촌에 사는 사람, 그리고 크게 보면 저개발국가에 사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은 이미 불리한 처지에 놓여 있고, 앞으로 그 불리함은 더욱 커질 것이다.

도구의 발달을 무시하며 산 속 도사님처럼 살아가라는 말은 아니지만, 스마트폰을 비롯한 많은 '보편화'에 대해 한 번쯤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무시할 수 없는 숫자들을 무시하면서 우리는 많은 실수를 저지른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대학에 가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 그런데도 우리는 사람들을 만나면 "몇 학번이세요?" 하고 묻는다. 세상 모든 이들이 결혼을 하는 것 같지만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도 우리는 '결혼 적령기'를 지난 사람들을 만나면 결혼한 사람이라고 단정 짓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모든 사람들이 집에 텔레비전을 두고 사는 것 같지만, 텔레비전 없는 집도 많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제저녁 '별그대'에서 말이죠…" 하면서 얘기를 꺼낸다.

언제나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이 '다른 선택'으로 인하여 고통 받지 않도록 배려하는 출발이 된다.

*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격월간 교육전문지 <민들레>와 함께 대안적인 삶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민들레>는 1999년 창간 이래,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구현하고자 출판 및 교육 연구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은 곧 학교 교육'이라는 통념을 깨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다양한 배움'의 길을 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바로가기 :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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