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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벽돌집 못보겠다"…67년 전 끔찍한 기억 지금도 몸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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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벽돌집 못보겠다"…67년 전 끔찍한 기억 지금도 몸서리

[4.3트라우마] ① 피해자·유족 정신적 외상 심각…세계적으로도 유례 없어

제주4.3사건이 발생한지 67년이 지났다. 그동안 정부의 공식 사과와 피해자·유족 등에 대한 일부 지원이 이뤄졌지만, 삶의 질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4.3희생자와 유가족의 68%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광주는 5.18 피해자들을 위해 국내 첫 국가폭력 피해자 치유를 위한 광주트라우마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광주5.18의 희생자는 700여명, 제주4.3은 3만여명에 이른다. 장기간 국가폭력 아래 고통 받은 피해자와 가족들을 위해 사회적 치유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제주의소리]가 제주4.3사건 67주기를 맞아 트라우마 실태와 치유 방안 등을 두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붉은 벽돌집 못 봐"67년 전 기억 트라우마

겉도는 제주트라우마센터 '사회적 치유 절실'

▲ 미 정보장교가 대전 산내학살 현장을 촬영해 미국정부에 보고한 사진. 미 정부는 1999년까지 50년동안 관련 자료와 사진을 공개하지 않았다. 이 사진은 지금은 고인이 된 제주출신 재미 4.3연구가인 故 이도영 박사에 의해 1999년 세상에 드러났다.

1948년 제주4.3사건 당시 8살이던 꼬마는 집 뒤뜰에 나갔다 경찰들이 정문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무서워 뒷문에 숨었다.

경찰은 집에 불을 지르고 방안에 있던 할아버지(당시 54세)와 아버지(28), 어머니(29), 동생 2명(5세.7세)을 총으로 쏴 죽였다. 꼬마는 넋이 나간채 가족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꼬마는 경찰들이 사라지자 불길 속에 뛰어들어 애기구덕(바구니)에 있던 막내(1세)를 꺼내 목숨을 구했다. 그러나 엄마 젖을 먹지 못한 동생은 시름시름 앓다 결국 굶어죽었다.

▲ 한국전쟁 당시 예비검속. 예비검속이란 적에게 동조할 가능성이 있는 자를 미리 체포하는 것으로, 당시 수많은 제주도민들이 예비검속이란 미명 아래 집단 학살을 당했다. ⓒ제주의소리 자료 사진

당시 12살이던 한 증언자는 집이 불타던 모습이 떠올라 지금도 붉은 벽돌로 지은 집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한다고 한다. 붉은 집이 활활 타오르는 불길과 겹쳐서 끔찍했던 기억이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4.3사건을 겪은 희생자와 유족들의 상당수가 이 처럼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영구적인 정신적 장애를 남기는 충격, 이른바 '트라우마'다.

정문현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은 “당시 충격으로 (괜히)신경질을 내거나 마음을 억제하지 못하는 희생자와 유족들이 많다”며 “정작 본인들은 트라우마인지도 모르고 생활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나이 드신 분들을 보면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 더 늦기 전에 이들을 치유하기 위한 국가적 노력이 필요하다"며 "방치하면 사회적 비용이 더 들어가게 된다"고 대책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제주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김문두 교수가 2011년 발표한 '4.3 후유장애자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와 우울증'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의 68.6%가 트라우마를 경험하고 있었다.

우울증을 겪고 있는 후유장애자도 절반이 넘는 53.3%에 달했다. 이는 같은 조사 항목으로 2006년 이뤄진 5.18피해자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율 31.4%와 비교해 갑절 높은 수준이다.

당시 김 교수는 "4.3은 60여년 전 사건임에도 30년전 5.18사건보다 스트레스 장애율이 높았다"며 "이는 학계에 보고할 만하고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수치"라고 설명했다.

▲ 지난해 7월14일 제주4.3평화기념관에서 열린 '4.3희생자 발굴유해 유가족 찾기 감식 결과보고회'에서 한 유족이 유골함 앞에 명패를 붙이며 흐느끼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외상후 스트레스는 본인은 물론 가족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 지역적 특성상 도내 가정마다 4.3피해자가 있다고 가정하면 제주도민 집단의식 속에 트라우마 예후가 있을 수도 있다.


최고의 4.3전문가로 꼽히는 김종민 제주4.3평화재단 이사는 "기자 시절 희생자들이 들려주는 참혹하고 엽기적인 이야기를 많이 접했다"며 "이들의 증언을 들은 날에는 밤에 몸살을 앓을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김 이사는 "4.3은 제주지역에서만 피해자가 3만명에 이르는 대규모 사건이었다"며 "언론보도와 통계에 잡히지 않았지만, 실제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자살한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트라우마 경험자는 65세 이상 노인이 대다수다. 대부분 월수입 61만원 이하의 기초생활수급자다. 홀몸에 가정형편까지 어려워 개인적인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외부로 표출되지 못한 기억의 상처가 한 사람의 일생을 고통으로 몰아갈 수 있다고 설명한다. 경제적 빈곤까지 더해지면 정서적 고통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화영 인권의학연구소 소장은 "광주5.18도 과거사 청산이 많이 진척됐지만 피해자의 자살률이 일반인의 10배에 이른다"며 "경제적 지원과 정신적 치유는 별개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 소장은 "그동안 4.3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명예회복이 이뤄졌지만 정신적 후유증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다"며 "이들을 정상적인 삶으로 이끌기 위한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제66주년 제주4.3희생자 추념식에서 유족들이 위패 봉안실을 찾아 66년 전 억울하게 죽어간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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