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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크의 선택'과 '이명박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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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크의 선택'과 '이명박의 선택'

[기자의 눈] 이명박이 2002년 시라크에게 배워야 할 것

지나간 한국 대선을 짚어보는 것도 '별 소용없다'는 마당에 뜬금없이 들릴지 모르지만, 지난 2002년 프랑스 대선을 짚어보면 현 정국과 상황과 맞물리는 것이 꽤 흥미롭다.

보수-극우 후보가 1, 2위를 달리고 있는 한국 상황이 시라크, 르펭이 결선에 진출했던 프랑스 당시 상황과 아주 흡사하다는 이야기다.

2002년 프랑스와 2007년 한국, 닮은 꼴

코이비타시옹(좌우 동거내각)에서 나란히 대통령과 총리를 지내며 권력을 분점하고 있던 '공화국을 위한 연합(UMP)' 소속 자크 시라크와 사회당 소속 리오넬 죠스팽이 정면으로 맞붙은 그 선거는 '유럽의 좌향좌냐, 우향우냐의 시금석'으로 세계적 관심을 모았었다.

게다가 이 선거는 두 사람의 리턴 매치였다. 1995년 선거에서 죠스팽이 시라크를 앞섰지만 결선에서 아깝게 고배를 마셨던 것.

좌파 후보 9명을 포함해 16명의 후보가 난립하긴 했지만 두 사람이 결선에서 진검승부를 펼칠 것이라는 관측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자크 시라크 대통령에 이어 2위를 차지해 결선 티켓을 거머쥔 사람은 극우주의자인 '국민전선(FN)'의 장 마리 르팽 총재였다.

물론 여러 가지 면에서 한국 정치와 프랑스 정치를 빗대는 것이 부적절하겠지만 하여튼 이명박-이회창 두 사람이 1, 2위를 달리는 현 상황과 비슷한 구도였던 것.

'프랑스내 외국인 불법체류자는 즉각 추방돼야 한다', '프랑스인만 사회보장제도 혜택을 받아야 한다', '사형제도를 부활시켜야 한다' 는 급진적(?) 공약을 들고 나온 르펭에 대해 프랑스 뿐만 아니라 유럽의 거의 전 언론들이 프랑스 수치의 날', '프랑스 민주주의의 패배' 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것도 현 상황과 비슷하다.

유럽의 우파 신문들이 앞장서 르펭을 공격한 것과 한국의 보수 신문들이 반 이회창 대열의 선두에 서 있는 것도, 물론 근본적 이유는 다르겠지만, 역시 흡사하다.

하지만 흡사한 것은 딱 여기까지다.

르팽과 선 긋고 중도파 포용한 시라크
▲ 2002년 프랑스 대선결선에서 시라크는 의도적으로 이민자, 동성애자 등 사회적 소수자들과 스킨쉽을 강화하며 극우파 르팽과 차별성을 강조했었다

결선을 앞두고 좌파들은 시라크 지지를 선언했다. '울며 겨자먹기'였겠지만 동거내각을 구성했던 사회당의 대표적 정치인인 롤랑 파비우스가 "결선투표에서 극우파를 막기 위해 바리케이드를 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것은 이해한다 치자.

급진적 트로츠키주의자로 5.72%의 적잖은 득표율을 기록한 아를레트 라기예를 비롯한 '노동자 투쟁(LO)' 후보,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LCR) 등 급진주의자들도 잇달아 '시라크 지지'를 선언했다.

대학생들도 "공화국을 지키자"고 거리로 나섰다. 물론 이같은 '시라크로 대동단결' 물결은 파시즘에 대한 불안감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

하지만 시라크 본인의 행보도 주요한 역할을 했다. 르펭 돌풍으로 인해 프랑스의 우경화가 확인됐음에도 불구하고 시라크는 결선 기간 내에 "공화국의 전통을 지키겠다"며 극우파와 선을 긋고 좌파까지 보듬어 안았다.

프랑스 중도파와 좌파들이 시라크를 지지하고 나선 것은 "시라크를 동의하지 않지만 르펭과 달리 그는 인정할 수 있다"는 안도감이 한몫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이명박은?

이명박 "사실은 내가 진짜 보수다"

'대북강경 노선'은 물론이고 "저 이회창은 시도 때도 없이 도로를 점거하는 행위 같은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전경들을 때리는 자들은 공공의 적으로 처벌하겠다"는 등의 철학으로 대선 3수에 나선 이회창 후보는 그 '선명함'으로 일정 부분 지지를 얻고 있지만 반대로 '이회창만은 안 된다'는 위기의식도 높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정치컨설턴트들은'이회창 후보가 극우 자리를 점함으로써 이명박 후보는 오히려 중도 유권자들에 대한 소구력을 높일 수 있다'며 '권영길 후보로 인해 노무현 후보가 색깔론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과 비슷한 구도'라고 설명하고 있다.

'여권도 싫지만 그래도 어떻게 이명박을 찍을 수 있나…'를 '차라리 이명박을…'로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명박 후보는 시라크의 길을 걷는 대신 우향 우로 자신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 후보는 지난 8일 오후 재향군인회 주최 토론회에서 "일부에서 제기된 소위 '한반도 평화비전'은 한나라당의 공식 당론이 아니다"면서 "제 대북정책과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유화적으로만 흐른 햇볕정책으로 인해 우리 사회 내부의 갈등의 증폭되고, 한미동맹이 이완됐다"고도 주장했다.

중원을 공략하는 것이 아니라 혹여 자신이 중도로 이미지메이킹 될까봐 '진짜 보수'임을 자임하지 못해 안달이 난 모습이었다.

지금까지만 보면 "그동안 놓치고 있었던 안보문제, 법질서의 문제가 중심적인 쟁점으로 부각돼 이번 선거가 역사적인 의미를 갖게 됐다. 이 전 총재의 출마는 우파 분열로 가지 않고 우파 경쟁으로 보고 우파 확대로 봐야 한다"는 조갑제 전 월간조선 사장의 분석이 딱 맞아떨어지고 있다.

하긴 프랑스는 프랑스고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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