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행위, 매국행위, 일벌백계 등 최근 섬뜩한 표현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이러한 표현들은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 대상은 한국 군대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군대 내 폭력과 무기 거래 비리 때문이다.
대통령이 이러할진대, 자식을 군대에 보내야 하고 세금을 꼬박꼬박 내고 있는 국민들의 분노와 좌절감은 말할 필요도 없다. 오죽하면 '한국 군대를 믿을 수 없으니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국이 행사하는 것을 찬성한다'는 말까지 나오겠는가?
문민통제와 전작권 환수
각종 무기 비리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군에 대한 민주적 문민통제가 절실하다. 국내외 업체 및 군피아의 로비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고, 군의 폐쇄성과 독점성의 폐해를 바로 잡을 수 있는 문민 권력이 무기 획득 과정을 통제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건 대원칙에 해당된다.
또한 국방에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고 국방이 안보의 한 분야라는 점에서 국가 경제 및 국가 안보 전체 차원에서 무기 사업을 관리할 수 있는 방안도 강구되어야 한다. 그런데 군은 예산 건전성과 안보 효율성을 두루 고려할 수 있는 집단이 아니다. 예산을 늘리고 새로운 무기를 사들이는 데 중점을 두는 경향이 강하다. 그리고 요구한 예산이 확보되지 않으면 '안보에 구멍이 뚫리게 됐다'는 식으로 우는소리를 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운영유지비를 줄여 무기를 사려다 보니, 각종 사건 사고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유지보수가 잘 안된 무기는 '아군 잡는 무기'로 언제든 둔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최고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과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무기 사업을 통제해야 할 필요성을 새삼 확인시켜 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통령에게 이런 의지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또한 국회 역시 무기 소요 제기 단계에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비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전작권 환수도 필요하다. 국방의 최종적인 책임을 미국한테 맡겨둔 상황에서 군 수뇌부가 사명감과 소명감을 갖고 국방 업무에 매진하는 것을 불가능하다. '국방은 미국이 지켜주겠지'하는 안일한 생각이야말로 개인적, 조직적 기득권과 비리의 인식론적 토대가 되고 있다.
특히 전작권을 미국이 갖고 있다 보니, 무기 소요 제기에서부터 기종 선정과 유지관리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눈치를 보게 된다. 이렇게 되다 보니 한국은 미국 무기 업체와 펜타곤의 '호갱'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5년간 한국이 미국 무기 도입 1위를 차지했다는 스웨덴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분석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이뿐만이 아니다. 무기 비리의 가장 큰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적되는 것이 바로 '자군 이기주의'이다. 각 군은 예산과 첨단 무기를 경쟁적으로 구매하려고 한다. 이러다 보니 나눠 먹기, 중복 투자 등의 문제가 심각하게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 전작권을 환수하면 합동성과 통합성이 강화될 수밖에 없고 무기 소요 제기 역시 전체적인 맥락에서 조정이 용이해진다. 전작권 환수가 안보 주권의 확보뿐만 아니라 건전한 군사력 건설의 필수적인 요소라는 지적은 이러한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국방 개혁인가 개악인가?
아울러 민간인 출신의 국방장관을 기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 지도 이미 오래되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거꾸로 가고 있다. 문민 국방장관은 고사하고 안보라인의 핵심 직책을 모두 육사 출신으로 채우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식 선군정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말이다.
또한 국지전은 현장 지휘관의 판단에 맡기고, 전작권 전환도 또 다시 연기하기로 했다. 대통령의 헌법상의 가장 중요한 책무가 국군통수권일진대, 국지전은 한국군에게, 전면전은 미군에게 맡기고 있는 셈이다. 대통령이 가장 기본적인 책무를 외면하고 있으면서 과연 방산비리 척결과 같은 국방 개혁이 가능한지 의문이 드는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최근 정부와 군의 움직임은 거꾸로 가고 있다. 무기 사업에서 '군사화'가 더욱 강화되는 양상이기 때문이다. 방산비리 논란이 첨예했던 작년 11월 9일 국방부는 방위사업법 일부를 개정해 10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핵심적인 내용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방위사업청이 맡았던 국방중기계획 작성을 국방부가 직접 작성하기로 한 것이다. 또 하나는 무기체계 소요 결정 과정을 기존에 '각 군의 요청→합참의 소요 제기→국방부의 소요 결정'으로 이어지는 3단계에서 '각 군의 소요 제기→합참의 소요 결정'으로 단순화하기로 한 것이다.
국방중기계획은 주요 무기체계 소요를 결정하는 '기획' 단계에 해당된다. 각 군의 소요 제기는 '계획', 합참의 소요 결정은 '실행' 단계에 해당된다. 기획-계획-실행 단계를 군이 모두 독식하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문민 통제는 더더욱 어려워지고 군피아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커지게 된다. 개혁이 아니라 개악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대안 세력의 성장이 필요하다. 무기 사업을 비롯한 국방 정책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실력을 키워야 한다. 온 국민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윤 일병 사건이 개혁의 단초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군인권센터라는 시민단체의 활약이 컸다. 마찬가지로 무기 사업 분야에서도 이를 면밀히 감시하고 견제하며 대안을 내놓을 수 있는 시민사회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국방 분야에서 시민사회의 성장은 국회와 언론의 역할 강화를 견인할 수 있다. 이는 국민적 공감대 확산으로 이어져 무기 사업 개혁의 사회적 토대를 만드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
* 이 글은 <황해문화> 봄호에 기고한 글을 일부 발췌해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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