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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제4제국'이 되려는가?

[주간 프레시안 뷰] '유러피안 드림'은 끝났나

그리스 외채 위기가 불거지면서 유럽의 최대 강국 독일의 과거 행적 및 현재의 역할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우선 그리스 정부가 과거 나치 독일의 학살 및 강탈에 대한 거액의 배상금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이탈리아, 프랑스 등은 독일이 강력한 경제력을 앞세워 유럽을 지배하려 한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과거 나치 독일이 탱크를 앞세워 무력으로 유럽을 지배하려 했다면, 현재 독일은 마르크화를 앞세운 경제력으로 '제4제국'을 꿈꾸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한때 제레미 리프킨이 말했던 '유러피언 드림', 즉 정의롭고 평등한 유럽 사회의 건설은 이제 물 건너 간 것일까요?

지난 10일,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의회 연설을 통해 독일에게 2차 대전 중 그리스에서 강탈해간 돈을 갚으라고 요구했습니다. 1941년 4월 나치 독일은 그리스를 점령한 이래 중앙은행으로부터 거액을 강제 대출했습니다. 그리스 점령 비용 및 발칸반도, 러시아, 북아프리카 등지에서의 전쟁 비용을 대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를 무력 점령해놓고서 피점령국인 그리스에게 점령 비용을 대라는 참으로 뻔뻔스런 강탈행위였습니다. 게다가 타 지역에서의 전쟁 수행을 위한 강제 대출이 점령 비용을 위한 강제 대출의 10배에 이른다고 합니다. 다른 지역의 전쟁 수행을 위해 피점령국을 쥐어짜낸 것이죠.

뿐만이 아닙니다. 당시 그리스에 거주하는 유대인 등 민간인들로부터 자그마치 7톤에 달하는 금을 강탈했습니다(현재 가치 2.35억 유로, 약 3100억 원).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나치는 1944년 6월 10일 수도 아테네 인근의 디스토모라는 마을에서 어린이 수십 명을 포함해 218명을 살해하는 등 수많은 학살을 저질렀습니다.

치프라스 정부의 배상 요구는 당면한 그리스 외채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임기응변이 아닙니다. 독일이 주도하는 유럽중앙은행(ECB) 등의 외채 상황 요구를 피하기 위한 꼼수가 아니라는 얘깁니다. 그리스 정부는 이미 지난 1965년 10월부터 독일에 대해 2차 대전 동안의 빚을 갚으라고 요구했습니다. 나치의 전쟁 피해에 대한 배상이 아니라 그리스 중앙은행에서 빌려간 돈을 갚으라는 요구였습니다. 1995년 11월에는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총리가 2차 대전 중 부채를 상환하기 위한 협상을 요구했으나 독일이 거부한 바 있습니다.

이번 요구는 지난 2012년부터 그리스 정부가 철저한 조사를 벌여 부채 규모를 확정한 끝에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긴축 반대'를 내걸고 지난해 말 집권한 현 시리자 정부가 아니라 그 전전 정부 때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스 정부는 지난 3년간 자그마치 5만쪽에 이르는 그리스 중앙은행의 관련 문서들을 조사한 끝에 최근 194쪽의 보고서를 냈습니다. 보고서의 결론은 독일이 그리스에 갚아야 할 부채는 128억 달러(약 15조 원)라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21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만났으나 이러한 그리스의 요구와 관련해 뚜렷한 결론은 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독일 언론 <슈피겔>은 법학자 등과의 인터뷰를 통해 독일이 일방적으로 무시할 수만은 없는 요구라고 지적했습니다.


문제는 지난 2009년 유럽 재정위기 이후 독일의 경제적 독주에 대한 불만이 그리스뿐만 아니라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도 높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스페인, 포르투갈 등 남유럽의 피해 국가들뿐만이 아니라 프랑스, 이탈리아 등도 독일 비판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들은 독일이 유로 위기로 커다란 경제적 이득을 챙겼으면서도 그리스 등 피해 국가들을 챙기기보다는 이들을 지배하며 독일식 제도를 강요하려 한다고 비판합니다.

독일은 현재 세계 최대의 무역흑자국입니다. 지난 해 무역흑자 규모는 2170억 유로(약 283조 원)로 독일 GDP의 7%나 됩니다. 프랑스와의 무역흑자만 3백억 유로입니다. 2000년 이후 15년간 무역흑자는 4배로 늘었습니다. 특히 독일 경제는 유로 위기 이후 '나 홀로' 승승장구 하고 있습니다. 유로존에서 독일 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30.1%에서 2009년 26.5%로 줄었지만 2015년에는 29.0%로 다시 늘어났습니다. 즉 유로 위기 이후 독일 경제의 독주를 말해주는 것이죠. 독일은 자국의 임금 인상을 억제하는 방법으로 수출 경쟁력을 높여 엄청난 무역흑자를 이뤄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확보한 자금을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빌려주었고, 유로 위기가 발생하자 빚을 갚으라며 가혹한 긴축 및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로 위기에 대한 대응방법으로 그리스,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은 재정투자를 확대해 성장률을 높이길 원했습니다. 그래야 외채를 상환할 경제적 능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독일은 긴축 및 구조조정을 요구했습니다. 결국 채권국인 독일의 입장이 관철됐고 유럽 각국은 정부 부채가 GDP의 일정 규모를 넘지 못하도록 헌법에 규정하게 됐습니다. 가혹한 '긴축'의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지금 그리스, 스페인 등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 '긴축'은 민중의 원한을 드러내는 대명사가 됐습니다. 독일이 택한 방식은 미국이 IMF를 통해 추진해온 것과 동일한 방식입니다. 이 때문에 유로화의 도입이 유럽 국가들의 동반 성장이 아니라 오로지 독일의 경제적 번영과 타국에 대한 지배의 도구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슈피겔> 3월 23일자 기사는 "2차 대전이 끝난 직후 독일이 다시 유럽을 지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유로 위기는 독일을 '스스로 원치 않은 헤게모니 국가(reluctant hegemon)'로 변모시켰고, 현재의 독일을 나치에 비유하는 사례가 만연하고 있다. 과연 이러한 비판은 정당한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실제로 히틀러의 콧수염을 단 메르켈 총리의 얼굴 그림, 탱크에 비유된 독일 경제가 남유럽으로 쳐들어가는 만화, 그리고 지난해 그리스 아테네의 시위 현장에서는 "제4제국이여, 물러가라"는 포스터가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중세때부터 1806년 나폴레옹에 의해 해체된 신성로마제국(제1제국, 황제 대부분이 독일인이었습니다), 1871년 비스마르크에 의해 통일된 빌헬름 황제의 제2제국(1918년 1차 대전 패배로 해체), 그리고 1933-45년 히틀러의 제3제국에 이어 독일이 제4제국이 됐다는 얘깁니다. 현재의 독일을 제4제국으로 비판하는 책도 발간됐습니다.


이탈리아의 저명한 언론인 비토리오 펠트리(71세)와 게나로 상길리아노는 최근 <제4제국: 독일은 어떻게 유럽을 굴복시켰나>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펠트리는 이 책을 쓴 목적에 대해 "오직 독일만 이득을 보는 공동통화(유로)의 지속 불가능함"을 알리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펠트리는 메르켈 독일 총리를 콜로세움(Kohlosseum: 전임 헬무트 콜 총리가 이룩한 통일 독일)에 본부를 둔 메르키아벨리(Merkiavelli: 독일의 마키아벨리)라고 지칭하면서 현재의 독일이 다른 유럽 국가들의 희생 위에 자국의 이익만 챙긴다고 비판합니다.

<슈피겔>은 이탈리아 정치인의 대부분이 이러한 저자들의 비판에 공감하고 있다고 전합니다. 예컨대 유럽집행위원장을 역임한 로마노 프로디는 <레스프레소> 칼럼에서 "독일에서는 포퓰리스트와 민족주의자, 그리고 메르켈이 공존하고 있지만, 브뤼셀(유럽연합)에서는 오직 한 나라만이 유럽의 앞날을 결정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최근 유럽 정상들 사이에서 메르켈 총리는 '마담 노(Madame Non)'로 불리고 있다고 합니다. 모두가 메르켈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이죠. 메르켈이 '노' 하는 사안은 절대 실행될 수 없다는 얘깁니다. 한편 이탈리아 우파 정치인 루이지 레이타니는, 이제 이탈리아는 "비스마르크와 히틀러에서 메르켈로 이어지는 야만인들과 결별"해야 한다고 선언했습니다.

경제 강국 독일에 대한 반감은 프랑스에서도 대단합니다. 특히 프랑스는 지난 80년간 세 차례나 독일에게 프랑스 전체 또는 일부를 점령당한 경험이 있기에 '독일공포증(Germanphobia)'이 커가고 있다고 <슈피겔>은 전합니다. 프랑스의 좌파 지식인 에마뉴엘 토드는 독일이 과거 소련이 장악했던 동유럽의 방대한 지역을 자신의 영향권 아래 두면서 "점차 힘의 정치, 은밀한 팽창을 추구하고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또 후에 경제장관을 역임한 아르노 몬테부르그는 지난 2011년 "(지난 19세기) 비스마르크는 유럽, 특히 프랑스를 지배하기 위해 독일 통일을 이뤘다. 오늘날 메르켈은 과거와 놀랍도록 유사한 방법으로 독일 국내 문제 해결을 위해 독일 보수 세력이 원하는 경제금융 질서를 나머지 유럽에 강요하려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도 지난 2012년 5월 유로존에 대해 "이것은 통화동맹이 아니다. 오히려 제국에 가깝다"고 지적했습니다. 독일을 중심으로, 동유럽 등 이웃나라들을 주변부로 하는 제국이 돼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로 위기의 직접 피해국가인 그리스는 반감을 넘어 원한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스 문화부 장관 니코스 자이다키스는 "지금 우리는 마치 전쟁 이후의 고통을 겪고 있는 것 같다. (금융위기 이후) 우리는 GDP의 4분의 1을 잃었고, 국민의 4분의 1이 실업자"라면서 긴축정책이 그리스를 파괴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그리스의 상황은 2차 대전 당시 연합국의 포탄이 비 오듯 쏟아졌던 무지막지한 공습 이후의 라이프치히나 드레스덴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과거 독일 국민은 공습으로 피해를 입은 반면 현재 그리스 국민은 (독일이 강요한) 긴축으로 고통 받고 있다는 얘깁니다. 그리스 문화부가 입주해 있던 건물은 긴축정책의 결과로 팔려나가 새 건물을 물색해야 할 형편이라고 합니다.

자이다키스 장관은 구제금융은 그리스가 원한 것이 아니라 외부에 의해 강요된 것이며 "이제 우리는 국민의 피로 그 빚을 갚고 있다"고 말합니다. 나아가 그는 "독일이 유럽의 정치경제적 리더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리더가 되고자 한다면 지도자답게 행동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일방적으로 부채 상환만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경제 대국답게 형편이 어려운 나라들을 도우면서 다함께 잘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죠. 한마디로 보다 관대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독일의 한 분석가는 그리스가 원하는 것은 '새로운 마샬 플랜'이라고 말합니다. 2차 대전 직후 미국이 막대한 경제지원으로 서유럽의 경제부흥을 이끌었듯이 독일도 자신의 경제력을 유럽의 동반 성장에 투입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 분석가는 "지도적 국가가 되려면 새로운 규칙을 제정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그 규칙을 실행할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독일식 제도와 규칙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들이 스스로 따를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AP=연합뉴스

하지만 <슈피겔>에 따르면 독일 국민의 대다수는 스스로를 유로 위기의 피해자로 여기고 있다고 합니다. 즉 금융 위기의 결과 가혹한 긴축정책에 시달리는 채무국 국민들의 고통은 외면한 채, 자신들의 돈을 떼이는 것만을 안타까워 한다는 것입니다. 메르켈의 민족주의적 성향도 문제라고 <슈피겔>은 지적합니다. 독일 통일을 주도한 전임 콜 총리는 다른 유럽 국가들의 여론을 민감하게 살피고 이에 적응하려 했던 반면, 메르켈은 보다 노골적으로 독일의 국익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메르켈은 "유럽에서 독일의 위상은 세계에서 미국의 위상과 비슷하다. 우리 둘은 사랑 받지 못하는 지도자다"라고 말했답니다. 나아가 그녀는 "나는 (유럽에서) 철저히 고립돼 있다. 그러나 상관하지 않는다. 내가 옳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메르켈이 현재까지의 노선을 바꿀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입니다.

결론적으로 <슈피겔>은 현재의 독일이 과거의 나치처럼 무력에 의한 유럽 지배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제4제국'으로 비판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항변합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이기적 노선을 취한다면 독일이 유럽의 존경 받는 지도국가가 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슈피겔>의 기사들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우선 전후 독일의 철저한 사과로 전쟁 책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처럼 보였던 유럽에서도 여전히 미해결의 문제들이 남아 있다는 것, 그러나 전쟁 책임 자체를 부정하려는 일본에 비해 독일은 훨씬 성실한 자세로 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 독일의 패권주의적 태도에 대한 이웃 나라들의 비판을 솔직하게 전하는 <슈피겔>의 보도 태도에서 바람직한 언론의 역할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반면 이제 독일도 유럽의 지도국가, 또는 패권국가가 되려는 야망을 본격적으로 드러낸 부분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예컨대 <슈피겔>은 독일이 미국이나 중국과 같은 강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인구와 강력한 경제가 필요하다면서, 현재 독일은 강력한 경제를 갖고 있으나 인구 측면에서는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결국 이웃 나라들을 독일 편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것이죠. 이로 미루어보면 독일은 미국,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유럽의 패권국가가 되려는 것 같습니다. 과연 독일의 부상이 앞으로의 국제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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