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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아픈 엄마가 신줏단지처럼 모시는 묘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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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아픈 엄마가 신줏단지처럼 모시는 묘약은?

[작은것이 아름답다] 감기약을 사랑하는 엄마

저는 결혼한 지 6년째 접어든, 갓 돌이 지난 딸 하나를 둔 내과의사입니다. 집과 멀리 떨어진 대학에 합격해 기숙사 생활하면서 부모님 곁을 떠났으니, 성인이 된 뒤 부모님을 뵙는 것은 1년에 채 20번이 안 됐던 것 같습니다. 가끔 집에 갈 때면 항상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엄마의 약상자였습니다. 엄마는 당뇨는 물론이고, 그 흔한 고혈압 같은 만성질환과는 거리가 먼 분입니다. 그런데도 그 커다란 약상자는 항상 온갖 약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학생 때는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지만, 졸업 뒤 수련과정을 거치며 약 이름이 익숙해져 갈 때쯤 날 잡아 약상자를 들여다보았습니다. 대부분 약은 약국봉투에 담겨 있었고 봉투 위에 '기침약', '몸살약', '편도선약', '배탈약' 같은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엄마 나름대로 그 약을 처방받을 당시 주 증상에 맞는 이름을 붙여놓고 나중에 같은 증상이 있을 때 드시기도 하고 그랬나 봅니다.

지금은 엄마가 주중에 집에 오셔서 딸아이를 봐주고 계십니다. 14년 만에 '엄마밥' 먹고 일하러 가는 호사를 누리고 있습니다. 의사가 된 뒤 처음으로 같이 사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엄마의 건강상태도 좀 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도 병원 가는 것보다는 딸인 저에게 '어디 어디 아프니, 무슨 약 좀 지어다 달라'고 말씀하시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처음에는 그대로 약을 지어다 드렸고, 엄마는 지어온 약을 온전히 다 드시는 적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집에도 약상자가 만들어지고 약봉투가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 동아제약이 1960년대 첫선을 보인 액제 감기약 '판피린'. 현재도 '국민 감기약'으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엄마는 수년 전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은 뒤 항상 조금만 무리하면 허리 통증이 생깁니다. 거기다 무릎은 퇴행성 관절염이 있어, 오래 걷거나 서서 일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엔 원래 가진 관절염과 허리 수술 후유증이 악화와 호전을 반복하는 것 같은데, 엄마는 이것을 '몸살'이라고 생각하시는 듯합니다. 그래서 동네의원에 가시면 몸살감기약을 일주일치 처방받아 많이 아픈 날 한 봉지씩 드시곤 했나 봅니다. 웬만하면 참고, 못 참겠으면 한 봉지 드시고. 이것이 엄마가 찾아낸 차선책이었던 것이죠. 지어온 약은 진통제, 소염제, 근이완제, 위장약 따위였습니다.

이렇게 감기약을 사랑(?)하는 엄마와 살다 보니, 제 진료실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고혈압, 당뇨약을 타러 오시는 엄마 또래, 혹은 그보다 연세가 많은 할머니들 가운데 한 달에 한 번 오실 때마다 감기약을 처방해달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예전이라면 단호히 "약은 증상이 있을 때 오셔서 진료 받고 처방을 받으셔야죠!"라고 말씀드리고 혈압, 당뇨약만 처방했을 것입니다. 이제는 그분들의 모습에 엄마가 겹쳐 보이기도 하고, 일 다니랴 집안일 하랴 여기저기 쑤시고 아픈데 병원에 찾아올 시간을 내기 힘든 고단한 일상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감기약 며칠 치만 처방해 달라는 그분들 목소리를 외면하기가 어렵습니다. 진통제에 소염제, 근이완제 소량, 진통 효과가 있는 기침약 소량. 이렇게 처방하고 '지어 드린 약은 이러저러한 약이니, 그 밖에 증상에는 듣지 않을 것이라고 그럴 때는 꼭 병원에 오시라'고 설명합니다. 관절염 약 대신, 이 약을 신줏단지 모시듯 할 그분들을 외면하기 힘든 현실입니다. '우리네 엄마들이 몸이 아프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일하시고 남은 시간에 운동이나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그래서 몸살감기약 처방이 필요하지 않는 날이 얼른 왔으면…' 하고 바라봅니다.

감기에서 회복하는 지름길 처방전. 평소에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 면역력을 키워서 감기에 걸리지 않는 것이 가장 좋겠고, 혹시 감기에 걸린다면 따뜻한 물을 수시로 마시고 푹 쉬어줍시다.

* 월간 <작은것이 아름답다>는 1996년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 생태환경문화 월간지입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위한 이야기와 정보를 전합니다. 생태 감성을 깨우는 녹색생활문화운동과 지구의 원시림을 지키는 재생종이운동을 일굽니다. 달마다 '작아의 날'을 정해 즐거운 변화를 만드는 환경운동을 펼칩니다. 자연의 흐름을 담은 우리말 달이름과 우리말을 살려 쓰려 노력합니다. (<작은것이 아름답다>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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