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 사건이 '종북몰이'로 비화되는 양상이다. 정작 미국 사회는 이번 사건을 "극단주의자의 개인적 도발"로 규정한 반면, 한국은 집권당인 새누리당부터 보수단체에 이르기까지 이를 '종북 사건'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공안몰이에 나서는 분위기다. 보수단체 회원들의 쾌유 기원 집회도 잇따르고 있다.
리퍼트 대사 피습 다음 날인 지난 6일, 서울 광화문 일대는 그의 쾌유를 기원하고 종북세력 척결을 주장하는 보수단체의 집회로 하루종일 북적였다.
자유민주수호연합과 나라사랑실천운동 등 10여 개 보수단체들은 미국대사관 인근 KT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리퍼트 대사에 대한 테러는 극소수 종북세력의 반동"이라며 "이번 반미 테러를 계기로 평화통일과 민족자주의 가면을 쓰고 북한을 비호하는 종북 반미 세력을 척결해 달라"고 촉구했다.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준 미국에게 감사합니다'라고 쓰인 펼침막을 들고 기자회견을 연 이들은 성조기과 태극기를 각각 흔들며 피의자 김기종 씨에 대한 배후 세력 색출을 촉구하기도 했다.
어버이연합과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자유청년연합 역시 이날 비슷한 내용의 기자회견과 집회를 잇따라 광화문 일대에서 열었다. 어버이연합은 피의자 김 씨의 사진으로 화형식을 진행했고, 종북좌익척결단은 사건이 벌어진 강연 행사를 주최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앞에서 인공기를 불태우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너무 부끄럽다'는 플래카드도 보였다.
주말인 7일엔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기원하는 개신교인들의 기도회와 부채춤, 발레 등의 공연까지 등장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한성총회는 '마크 리퍼트 대사 쾌유 기원 및 국가안위와 사회발전을 위한 경배 찬양 행사'를 열고 각종 공연을 펼쳤다. 이들의 기도회 사진은 미국 <폭스뉴스>에 '한국인 지지자들, 피습당한 미 대사에게 개고기 제공( Well-wishing South Korean offers dog meat to injured US ambassador)'이란 제목의 기사로 보도되기도 했다.
앞서 리퍼트 대사가 입원 중인 세브란스병원 측은 지난 6일 한 70대 남성이 리퍼트 대사에게 전해 달라며 개고기와 미역을 들고 병원을 찾았다고 밝힌 바 있다. <폭스뉴스>는 이 소식을 전하며 기사 말미 "개 애호가인 리퍼트는 목요일 피습 전 서울의 거주지 근처에서 바셋하운드종의 애견 '그릭스비'와 함께 자주 산책을 했다"고 썼다.
朴정부, 또 '공안몰이' 나서나
이번 피습 사건을 '공안 사건'으로 몰고 간 것은 극우성향 단체들 뿐만이 아니다. 중동 4개국 순방 중 이 사건을 보고받은 박근혜 대통령은 "한미동맹에 대한 테러"라며 '배후 수사'를 지시했고, 이런 박 대통령의 '지침'에 따라 검·경은 전담팀 110여 명을 투입해 김 씨에 대한 배후 수사와 함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다.
당·정·청 역시 지난 6일 회의에서 이번 사건을 "종북세력 사건으로 규정하고 배후를 철저히 조사하는 것에 공감했다"(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라고 밝혔다. 피습 사건 첫날 충격에 빠졌던 미국사회가 이 사건을 '개인 일탈'로 규정하며 비교적 차분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을 포함해 한국의 정치권과 언론 모두 이 사건을 '테러'라고 규정한 반면, 미국에선 일관되게 '공격', '폭력' 등으로 표현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정치적 의미가 있는 '테러'가 아니라, 개인의 우발적인 돌출 행동이라는 성격 규정이다.
일각에선 미국과 결이 다른 이런 접근 방식이 집권 이후 '공안몰이'를 줄곧 정국 전환 카드로 사용해온 박근혜 정부가 이 사건을 또다시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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