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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종 테러'만 테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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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김기종 테러'만 테러인가?

[강수돌 칼럼] '비폭력 불복종 운동'의 전제조건

마크 리퍼트 미 대사가 3월 5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가 주최한 '한반도 평화와 통일, 그리고 한·미 관계 발전방향' 강연회장에서 얼굴 등에 '테러'를 당했다. 김기종 씨가 25㎝ 길이의 과도를 휘두른 것이다. 대사는 치료 직후 트위터에 "상태가 좋은 편이다.…한미 동맹 진전을 위해 같이 갑시다."라고 했다.


한편, 연행 도중 다리를 다친 김 씨는 "미국 놈들 혼내주려고 대사관을 범행대상으로 삼았다"고 했다. 범행 동기에 대해 김 씨는 "전쟁을 반대한다. 남북대화를 정상화하자"고 했으며 왜 폭력을 썼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전쟁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전쟁보다 더 큰 폭력이 어딨냐?"고 답변했다고 한다.

김 씨는 범행 직후 "한미연합 키리졸브 훈련이 남북관계를 망치고 있다"며 "제가 여러분한테 죄송하지만 스스로에는 부끄러움이 없다. 과도는 제가 어제 과일 깎아먹던 것"이며 "이번 키리졸브를 중단시키기 위해 내가 희생을 했다"고 했다. 김 씨는 병원에서도 "전쟁훈련 반대 합니다", "이산가족이 못 만나는 이유가 전쟁훈련 때문이라 그랬습니다", "전쟁훈련 중단합시다, 키 리졸브…"라고 누운 채 외쳤다고 한다.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만 보더라도 김 씨는 '우리마당독도지킴이'의 대표로서 민족주의 성향이 대단히 강한 실천 운동가임을 알 수 있다. 사실, 일반 사람들은 해마다 반복되는 갖은 종류의 한미 군사훈련에 대해 별 관심도 갖지 않고 그저 그렇게 해마다 하나 보다, 하는 정도의 생각으로 살아간다. 혹시 그런 군사훈련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더라도 마음속으로만 마뜩찮게 생각할 뿐 김 씨처럼 특정 인물에게 상징적 테러를 가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지는 못한다. 그러나 김 씨는 '자기희생'을 통해 키리졸브로 상징되는 한미 군사 훈련을 중단시키고 남북 사이에 대화와 화해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계기를 만들고자 했다. 그런데 이 사건은 몇 가지 점에서 좀 더 깊은 성찰을 요한다.


우선, 김 씨가 미국 대사를 향해 '평화통일', '전쟁 반대', '한미 군사 훈련 반대' 등 지극히 평화주의적인 구호를 내세우면서도 명백한 테러를 가한 것은 엄청난 자기모순임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이 지점에서 나는 헨리 데이빗 소로(1817~1862)가 무려 170년 전인 1846년에 노예제나 멕시코 전쟁을 반대하여 국가에 세금 납부를 거부하는 '시민 불복종'으로 감옥에 갇히기도 했던 일을 떠올린다. 또 나는 인도의 독립 운동가 마하트마 간디(1869~1948)가 대영 제국을 상대로 독립 투쟁을 하는 가운데, 소금 만들기나 물레 돌리기 등 평화의 기술을 통해 자급, 자립, 자치를 이루고자 했던 비폭력 저항 운동을 떠올린다. 사실, 한국에서도 그간의 숱한 '촛불 시위'나 '희망버스', 심지어 대부분의 노동자 파업조차 '평화적 불복종' 저항이 아니었던가? 이렇게 비폭력 불복종 저항 운동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우리가 질문할 것은, 김 씨는 왜 그러할 수밖에 없었던가, 하는 점이다. 나는 김 씨에 대해 전혀 몰랐다. 인터넷 검색 결과, 그는 1970년대 말과 1980년대에 걸쳐 대학을 다니면서 민주화 운동을 했고, 그 이후로도 이런저런 일을 해왔다. 1988년 9월부터 우리마당통일문화연구소 소장을, 1995년 3월부터는 만석중놀이보존회 대표를, 2006년 4월부터는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장을 맡아 왔다. 1997년부터 약 10년 동안 성공회대에서 대학생을 가르치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그는 2010년 1월에 시게이에 도시노리 일본 주한 대사에게 시멘트 덩어리를 2개 던진 혐의로 기소돼 집행유예를 받았고, 2014년 2월에도 서울시의 한 행사에서 소란을 피우고 관계자를 폭행해 벌금형을 받았다. 일부 주변에선 그에 대해 "극단적 민족주의에 매몰돼 이성을 잃었"다는 평가를 한다. 그런데 그는 또한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약 4년에 걸쳐 통일부에서 임명한 통일교육위원으로 시민을 대상으로 통일 교육을 하기도 했다. 이런 화려한 경력을 가진 사람이 왜 미국 대사를 향해 테러를 했을까, 하는 점이다.


김 씨의 테러에 대해 진중권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에서 "IS에게는 '종교', 일베 폭탄테러 고교생에게는 '국가', 과도 테러 김기종 씨에게는 '민족'... 이 세 가지 형태의 극단주의의 바탕에는 실은 동일한 문제가 깔려 있다고 봅니다. 그것이 각자 처한 환경에 따라 상이한 형태로 표출되고 있을 뿐"이라는 글을 올렸다. 이어 진 교수는 "IS 대원들이 자신을 '순교자'로 여기고, 폭탄 고교생이 자신을 '열사'라 여기듯, 식칼 테러 김기종 씨도 아마 자신을 '의사'라 여길 겁니다. 완전한 자기 파괴의 어두운 충동을, 대의를 향한 전적인 헌신으로 포장하고 싶어 하는 심리"라 설명했다.


비교적 덜 알려진 일로, 김 씨가 2007년 '우리마당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분신자살을 시도한 일이 있다. 우리마당 사건은 1988년 괴한 4명이 우리마당 사무실을 습격해 여성을 성폭행 하고 달아난 사건이다. 당시 김 씨는 지인들에게 보낸 유서에서 "사건 발생 후 수사기관과 언론, 국회는 웬일인지 사건 진실을 감추려고만 하고 있다"며 "20년째 버텨왔지만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어 분신을 했다"고 했다. 이 문자를 받은 한 지인은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분신 전에도 조증, 우울증 등이 있었다"고 말했다. "혼자 오랫동안 시민운동, 민주화 운동을 하는 사이, 알던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형편도 어려워지면서 판단력이 흐려진 상황이었던 것 같다"라고 했다. 김 씨의 상태는 분신 이후 더 나빠졌다. 후유증으로 기억 상실증이 온 것이다. 김 씨의 한 고교 후배도 "김 선배는 80년대 민주화 운동하던 시절에 대한 피해의식, 자기 집착 같은 것이 있었다"고 했다.


이 모든 상황을 종합하면, 김 씨는 군사 독재 시절을 거치면서 민주‧통일에 헌신했지만 어이없는 폭력을 경험하면서 심대한 트라우마를 갖게 된 것 같다. 진실 규명도 되지 않는데다 자신의 노력이 넓은 사회적 지지를 받지 못하면서 극단주의라는 코너에 몰린 셈이다.


끝으로, 강조할 것은 김 씨의 테러만이 테러가 아니란 사실이다. 테러 내지 폭력은 물리적으로 자행되는 노골적인 것만 있지 않다. 사실은, 부모가 자녀들의 인생을 자기들 뜻대로 좌지우지 하려 하는 것이나 강대국이 약소국의 이용가치를 십분 활용하기 위해 자기들 뜻대로 하려는 것이 모두 폭력이고 테러이다. 나아가 일반 시민들이 민주주의 문제나 통일 문제와 관련, 자신의 양심과 입장에 따라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함에도 권력자들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목소리를 내면 이러저러한 형태로 억압을 가하거나 제약을 가하는 것 또한 폭력 내지 테러이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김 씨의 '테러'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곳곳에 퍼져 있는 폭력의 씨앗들을 모두 점검하고 제거하는 성찰을 행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슷한 일들은 또다시 반복되고, 오로지 테러를 가한 당사자만 처벌하는 것으로 사태를 마무리하려 하는 어리석음도 반복될 것이다. 그 와중에 우리 사회 또는 세계 전체의 폭력성은 더 강해질 것이고 우리 모두는 더 강한 폭력의 감옥에 갇히게 될지 모른다. 바로 이러한 성찰에 토대한 변화들이야말로 '비폭력 불복종 저항 운동'을 가능하게 하는 전제조건들이다. 즉, 테러 없이 개방적 대화로 문제를 푸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테러의 유혹으로 몰아넣는 정치경제적, 사회문화적 구조들을 제대로 바꾸어내야 한다. 그런 전제조건의 충족이 없이 무조건 비폭력이나 평화를 외치는 것은 자기기만이거나 통치전략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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