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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너무 많이 기대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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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너무 많이 기대하지 마라!

[김근식의 남북관계 중년부부론] <2> 과거 남북관계에 대한 엄정한 평가 (1) 우여곡절의 남북관계

세상일이 다 그렇지만 과거에 대한 엄정한 평가와 현재에 대한 정확한 진단에 기초해야 미래의 새 전략과 비전이 도출된다. 새로운 남북관계를 모색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의 남북관계에 대한 성찰적 평가와 변화된 조건·환경에 대한 냉정한 진단을 하고 나서야 올바르고 현실 가능한 미래 남북관계의 방향과 전략이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과거 남북관계에 대한 엄정한 반성적 평가를 해보자.

탈냉전 이후 남북관계는 한마디로 '우여곡절'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우여곡절의 남북관계의 첫 번째 특징은 진전과 퇴보를 거듭하며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는 점이다. 대화가 잘되어 관계가 나아지다가도 돌발상황이나 쟁점부각으로 인해 다시 역으로 후퇴하는 경우가 오히려 다반사였다.
노태우 정부 때 남북은 오랜 협상 끝에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했다. 문건의 내용은 지금 봐도 손색없는 남북관계 미래 모습의 '모범 답안'이었다. 그러나 합의서 잉크도 마르기 전에 북핵문제가 대두되면서 남북관계는 경색되고 말았다. 김영삼 정부도 민족이 동맹보다 낫다며 대북 쌀 지원을 결정했지만 정작 쌀 지원 과정은 인공기 게양문제와 선원 억류 사건이 불거지면서 상호 불신과 적개심만 증폭시키고 말았다.
본격적인 화해협력이 시작되었던, 역사적인 관계 개선을 이뤘던 김대중 정부 시기조차도 2001년 초 장관급 회담이 결렬되어 남북관계가 일시중단됐고, 급기야 대북 특사 방북을 통해 관계 정상화가 이뤄졌다. 노무현 정부 역시 북핵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가 지속되었지만 2004년 해외 탈북자 대거 입북 문제로 북이 반발하면서 장관급 회담이 중단되었다가 2005년 6.17 면담으로 가까스로 재개되었다.

이명박 정부는 전반적인 관계 경색의 와중에서 2009년 하반기 남북정상회담 논의가 진행되기도 했고 임태희-김양건 회동을 통해 정상회담 합의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합의 번복과 금강산관광 회담 결렬 이후 북이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포격을 함으로써 남북관계는 완전 중단됐다. 지금의 박근혜 정부 역시 개성공단 중단 등 기싸움을 벌이다가도 결국은 공단 재가동에 합의하는가 하면 2014년은 고위급 접촉 성사를 통해 이산가족 상봉도 성사되었지만 황병서 일행의 방남에도 불구하고 남북이 합의한 2차 고위급 접촉은 성사되지 못했다. 화해협력을 중시하는 정부든, 대북강경을 불사하는 정부든 탈냉전 이후 남북관계는 한 번도 순탄하게 관계 개선을 지속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여곡절의 남북관계 두 번째 특징은 화해협력과 불신대립이 병행했다는 점이다. 남북관계 개선과 함께 민족화해가 증진되고 경제협력이 증대되고 사회문화적 교류가 부쩍 늘어난 것이 사실이다. 필자도 금강산과 개성을 제외하더라도 평양과 백두산 등 북한을 10여 차례 넘게 방문했다.
그러나 동시에 상호 불신과 갈등도 지속됐다. 민족공동행사를 위해 매번 우리가 평양을 방문하고 북측이 남측을 방문했지만 6.15와 8.15를 기념하기 위한 남북공동행사는 항상 막판까지 줄다리기 협상과 밤샘 버티기, 그리고 티격태격의 연속이었다. 동포를 만나는 설렘과 가슴 벅참도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측에서는 매번 지침과 괴로움으로 다가왔다. 만날수록 북측과의 이질감이 커지고 서로 체제를 지키려는 완고한 정치의식이 불거져 나오면서 남북의 만남은 감동과 기쁨보다는 오히려 기싸움의 성격이 강하기도 했다.

▲ 지난 2007년 10월 3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고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회담을 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이와 함께 남북관계 개선은 우리 내부의 남남갈등 증폭이라는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낳고 말았다. 냉전 시대에는 대북정책을 둘러싼 남남갈등은 사실 존재하지 않았거나 표면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탈냉전 이후 남북관계 개선은 우리 내부에 대북정책을 둘러싼 팽팽한 이념대립과 노선갈등을 유발시키고 말았다.
우여곡절의 남북관계 세 번째 특징은 합의와 불이행의 롤러코스터가 지속되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남북관계는 어렵게 합의를 이끌어냈지만, 이에 대한 온전한 이행은 한 번도 없었다. 역사적인 드라마였던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으로 태어난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의 합의 사항은 실제로 이행되지 못했다. 남북 기본합의서, 비핵화공동선언 등 굵직한 남북 합의는 지금은 휴짓조각이 되었거나 되살리기 힘든 현실이 되고 말았다.

이외에도 각종 실무회담에서 합의된 수많은 다양한 합의서와 문건들은 고스란히 통일부 자료집에 부록으로만 정리되어 있을 뿐이다. 합의해놓고 이행되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정상으로 받아들여지는 역설적 현실이 바로 지금까지의 우여곡절의 남북관계를 그대로 드러낸다.

따라서 이제 앞으로의 남북관계는 가다 서다하지 않는, 일희일비하지 않는, 합의해놓고 불이행하지 않는 그런 관계가 돼야 한다. 미래의 남북관계는 지속성과 불가역성과 합의이행을 담보하는 이른바 '제도화'(institutionalization)가 절실하다.
우여곡절과 롤러코스터가 아니라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지속되는 남북관계, 가다 서다가 아니라 더디고 느리더라도 한번 진전되면 역행되지 않는 불가역의 남북관계, 합의해놓고 휴지조각이 되는 남북관계가 아니라 합의하면 반드시 이행을 담보하는 안정적인 남북관계. 지속성과 불가역성과 합의이행을 담보하는 남북관계의 '제도화'가 절실하고 절박하고 필요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과도하게 감정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북과의 만남이나 대화를 그저 순진하게 설렘과 감동으로만 접근해서는 안된다. 무리한 감성이 아닌, 화해협력의 가능성과 현실성에 토대해서 철저히 지속가능하고 이행 가능한 화해협력의 관계를 고민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남북대화와 관계개선이 마치 잘못된 것이라든가 북에게 굴복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대북 강경과 압박만으로 접근하는 것 역시 지양되어야 한다. 대북 강경과 고집도 또 다른 의미의 매우 감정적인 접근이다. 주관적 희망과 근거 없는 기대만을 내세운 채 압박 위주의 대북강경이 우리가 원하는 남북관계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 것도 현실과 동떨어진 또 하나의 감정적 고집에 불과한 것이다.
화해와 협력, 대화와 합의만이 남북관계의 능사가 아니다. 또 압박과 봉쇄, 원칙과 고집만이 남북관계의 해법도 아니다. 두 가지 모두 사실은 지나치게 북을 선의로 대하거나 악마로 간주하는 극단적 감정주의 접근이다. 남북관계가 항상 진전되어야 한다거나 남북관계는 항상 경색될 것이라는 지나친 희망과 과도한 실망 모두를 경계해야 한다.

남북관계가 항상 개선될 것이라는 최대목표도 아니고 동시에 매번 경색될 것이라는 최소목표도 아닌, 즉 지나친 기대와 지나친 포기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그래야 우여곡절의 남북관계를 이제는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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