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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소망을 꿈꾼다? 이젠 먼 일이 됐어요"

[민들레] 세월호 유가족, 단원고 엄마들의 이야기

안산이라는 낯선 도시에 이렇게 자주 오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불과 1년 사이에. 세월호 참사 정부합동분향소에서 천진하게 웃고 있는 사진 속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는 것은 언제나 용가 필요한 일이었다. 더구나 이번엔 자식을 잃은 엄마들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했다. 망설이며 시작한 자리에는 단원고 안주현 학생의 엄마 김정해 씨, 유예은 학생의 엄마 박은희 씨, 이영만 학생의 엄마 이미경 씨, 김도언 학생의 엄마 이지성 씨가 함께했다.

민들레 : 어느덧 해가 바뀌었어요. 지난 한 해 너무 황망한 시간을 보내셨지요. 건강이 염려돼요.

주현엄마 : 다들 건강이 좋을 수가 없죠. 노숙도 하고, 도보행진도 하고, 계속 밖으로 돌아다니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까. 종일 밥을 안 먹어도 배고픈 줄 모르겠고, 잠을 두세 시간밖에 못 자는데 피곤한 줄도 모르겠고. 그러니 이상한 일이에요. 아이들 생각하며 그거 하나로 힘내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예은엄마 : 여전히 광화문을 지키는 부모님들도 있고 팽목항에 작은 분향소를 만들어서 수시로 오가고 있어요. 부모들이 안산에서 팽목항까지 걷기도 했고, 주말이면 대학생들과 기차를 타고 팽목항까지 가기도 했어요. '창비'에서 나온 책 <금요일엔 돌아오렴>으로 전국 북콘서트도 하고 있어요. 뭐든 해보려고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대책위)'에서 빡빡한 일정을 준비하고 있어요.

도언엄마 : 이렇게라도 바쁘게 돌아다녀야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있어요. 우린 이렇게 바깥활동이라도 하지만 아직 집 안에서 혼자 힘들어하고 있는 부모들도 많아요. 그분들이 걱정이죠.

주현엄마 : 생존한 아이들과 가족들도 힘들지만, 저희와 대책위 활동을 같이 하고 계세요. 얼마 전 생존자 대표 아버님은 아이와 함께 팽목항 도보행진에 참여하면서 힘을 보태기도 하셨어요.

▲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 왼쪽부터 주현엄마(김정해 씨), 도언엄마(이지성 씨), 예은엄마(박은희 씨), 영만엄마(이미경 씨). ⓒ민들레

영만엄마 : 분향소에 '엄마이야기공방'이 생긴 이후로 날마다 20~30명 정도가 모여요. 요일별로 재능기부 하는 분들이 있어서 엄마들이 모여 앉아 꽃잎으로 누른 엽서 만들기, 브로치 만들기, 노란 리본 만들기를 해요. 에코백도 만들고요. 이 브로치도 일일이 수를 놓아서 만든 거예요. 바느질하면서 그 순간만큼은 다른 생각 안 하고 집중할 수 있으니까 마음 달래기에 좋아요. 작업하면서 모여 있으면 바깥소식도 접할 수 있어서 지금은 공방이 제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예은엄마 : 형제, 자매들에게도 미안하죠. 예은이 쌍둥이 언니랑 동생 둘이 집에 있는데, 제가 이렇게 다니니까 밥도 못 챙겨주고 있어요.

영만엄마 : 엄마들은 힘들 때 울기라도 하는데, 아빠들은 그걸 쌓아두니까 더 위험할 수 있다고 전문가 선생님들이 말씀하세요. 직장에서도 웃으면 웃는다고, 슬퍼하면 슬퍼한다고 수군거리고 보상금 얘기 꺼내고 하니까 그 시선들이 너무 힘들어서 직장 그만둔 부모들도 많아요.

예은엄마 : 그동안 간담회 하러 전국으로 찾아다녔는데, 요즘은 분향소로 오라는 부탁도 많이 드려요. 희생자 304명을 숫자로 보는 것보다 직접 와서 보면 잊을 래야 잊을 수가 없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아요. 얼마 전에 악성 댓글을 달았던 청소년 한 명도 분향소에 와 보고는 '이런 건 줄 몰랐다'고 '미안하다'고 울면서 돌아갔어요. 많은 분들이 다녀가셨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은 직접 오셔서 우리 아이들을 봐주시면 정말 좋겠어요. 저희는 4월 16일에 퍼뜩 깨달은 현실, 아이들이 겪은 현실을 직시하려고 하는 거예요. 바쁜 일상으로 돌아가면 저희한테도 묻히고 국민들한테도 잊히고…. 국가는 의도적으로 잊으려고 노력하고 있으니까요. 잊으려는 사람들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그보다 열 배, 스무 배 잊지 않으려는 노력을 할 수밖에 없는 거죠. 죽을힘을 다해 싸우는 거예요.

▲ 단원고 이영만 학생 어머니 이미경 씨. ⓒ민들레
영만엄마 : 청와대 근처 청운동사무소에서 노숙할 때 너무 큰 상처를 받았어요. 76일, 그렇게 긴 시간을 기다렸는데 저희가 무지했나 봐요. 코앞인데 대통령이 한 번은 나오겠지 하고 기대했죠. 근데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없으신 것 같아요. 이번 시정 연설에서도 여러 번 민생 얘기하셨지만, 세월호 참사만큼 중요한 민생이 있나요? 무릎 꿇고 기다릴 때도 지나가면서 우리를 외면하고 그렇게 울부짖어도 눈길 한번 주지 않았어요. 손 한번 잡아주고 이해한다는 말 한 마디만 해줬어도…. 진정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것 같아서 그게 속상하죠.

예은엄마 : 너무 답답하고 안타까운 건 많은 분들이 이 일에 미리 패배의식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처음엔 누구든 나서서 끝까지 함께해주겠지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시민단체나 학자들도 '국가를 상대로 한 싸움은 질 게 뻔하다'라면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오지 않아요. 요즘에는 시민단체들도 시민의식을 이끄는 일과는 거리가 먼 것 같아요. 다들 공모나 위탁사업을 하느라 바쁘다는 거예요. 이번에 사회의 많은 병폐나 치부가 드러났는데, 그중에 시민단체도 있다고 봐요. 사업 위주의 활동보다 예전처럼 사람 세우는 일부터 다시 시작해야 해요. 아무리 환경이 좋아지고 복지가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한순간 이렇게 많은 생명들을 앗아가는 사회구조적 악이 있는 한, 그걸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잖아요.

도언엄마 :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거라고 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아요. 우리 아이들, 이건 참사가 아니라 학살이에요. 자연생태처럼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복원되는 게 아니라 최대한 빨리 진실을 밝혀내지 않으면 또 다른 희생이 생길 수밖에 없는 거예요.

민들레 : 세월호 이후 사회를 바라보는 어머님들 시각도 많이 달라지셨을 것 같아요.

주현엄마 : 그럼요. 전 정말 평범한 주부였어요. 그전엔 사회 문제에 관심도 별로 없었죠. 동참도 못했고요. 지금 와서 정말 후회되는 게 '천안함 사건 때 좀 더 관심 가지고 움직였더라면, 세월호 참사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봐요. 그땐 그냥 남의 일로만 생각했거든요.

민들레 : 유가족 간담회에서 예은이 아빠가 태안 해병대 캠프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어요. 단원고 아이들이 예전에 해병대 캠프를 다녀왔다고요. 그리고 얼마 후에 태안에서 사고가 난 걸 보고는 우리 아이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하고 무심히 넘겼는데 일 년 만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하시더라고요.

도언엄마 : 맞아요. 저도 그랬어요. 경주 리조트 사고 때 우리 애하고 뉴스 보면서 "도언아, 어떡하니. 다 키운 자식들 잃고 저 부모님들 어떻게 살아가니" 이런 얘기를 했는데, 두 달 뒤에 제가 그 일을 당한 거예요. 꿈에도 생각을 못했죠. 이건 말이 안 돼요. 우리 아이들 매일 밤 10시에 야자 끝나고 녹초가 되어서 집에 돌아와요. 얼마나 신 나서 간 수학여행인데…. 이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이 일 겪고 나니 아차, 머릿속에 경주 리조트 사건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거예요. 같이 슬퍼하고 같이 뭔가 해주지 못한 게 너무 후회스러웠어요.

영만엄마 : 우리 같은 서민들 그저 순박하게 아등바등 살아왔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고통을 받고 이런 참사를 얼마나 더 겪어야 세상이 바뀔까 수없이 생각해요. 저만 해도 살기 바쁘고 힘들다고, 주위 사람을 둘러보지 않고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혹은 '안타깝다' 하는 마음만 가지고 지나쳤는데, 사회적으로 목소리도 내고 힘든 사람들 편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다는 생각에 이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죠.

예은엄마 : 저는 아이 키우면서 내 아이만 잘하면 된다 생각했어요. 그동안 예은이에게도 "너만 잘하면 돼!"라는 말을 제일 많이 했어요.

▲ 단원고 안주현 학생 어머니 김정해 씨. ⓒ민들레
주현엄마 : 맞아요.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 "친구들 괴롭히지 말아라." "어느 곳에서든 자기만 잘하면 된다." 그렇게 이야기했던 것이 얼마나 잘못된 교육이었는지 깨달았어요.

예은엄마 : 부모들이 공부해서 앞으로 어떤 세상을 살게 될지를 알고, 아이들에게 그런 교육을 해야 하는 것 같아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교육을 해야 해요.

도언엄마 : 우리가 어릴 때부터 받은 건 주입식 교육이잖아요. "해! 하지 마!" 딱 두 가지로 나눠서 자기가 판단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이번에도 똑같다고 봐요. 사고가 났을 때, 분명 아이들은 위험하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우리 부모들은 평소 아이에게 선생님 말씀 잘 들으라는 말을 제일 많이 했어요. 4월 16일도 그랬죠. "위험하니까 선생님 시키는 대로 잘 따르라"고 했어요. 그런데, 자신이 위험하다 판단하면 무조건 움직이라고 말해줬어야 해요. 옳다고 생각하면 바로 행동하고, 나쁘면 그걸 고치기 위해 노력하면서 자신들이 살아갈 사회를 주체적으로 만들라고 그렇게 말해주지 못한 게 너무 미안해요.

주현엄마 : 비록 우린 이런 일을 겪었지만, 다음 세대는 다른 삶을 누려야죠. 처음에 아이 찾으러 팽목항에 내려갔을 때, 그때까지만 해도 우린 말 잘 듣는 '국민'이었어요. 국가에서 하라는 대로 했죠. 진도체육관에서 팽목항까지 차로 40분 정도 걸리는데, 왜 유가족들을 그렇게 분리시켰는지 생각도 안 해보고 그 먼 거리를 날마다 오가며 그냥 시키는 대로 했어요. 운 좋은 사람만 살아남는 위험사회인데, 내 자식만 감쌀 게 아니라 아이들이 어디서 뛰어놀든 안전한 사회를 어른들이 만들어야 했어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이미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우려하고 있었거든요.

예은엄마 : 좀 더 정확히 얘기하면, 운이 좋아야 살아남는 게 아니라 이것도 빈부격차에요. 위험에 대해 정보를 갖고 있는 사람은 산다는 거예요. 이런 불평등 구조를 언제까지 끌어안고 갈 건지 그것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세월호 참사 이후에 부산 '인디고서원'에서 낸 <새로운 세대의 탄생-세월호 참사에 대한 기억의 의무>(궁리 펴냄)이란 책을 보면서 정말 마음이 아팠어요. 어찌 보면 이번 일은 승객 304명, 우리 아이들 250명만 죽은 게 아니라 전국에 있는 많은 아이들이 같이 상처를 받은 거예요. 간담회 가서 아이들 만나보면 너무 힘들어해요. '과연 나는 살아야 할까. 꿈을 위해 노력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그런 생각까지 하면서 아파하고 있더라고요. '이건 단순히 단원고 학생들이 죽은 것 이상의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 또래 모든 아이들을 같이 수장한 것이다' 싶었어요. 이 충격이 어떤 결과물로든 나올 텐데, 이걸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아이들 미래도 달라지고 사회도 달라질 거라고 봐요.


도언엄마 : 이우중학교 간담회에 갔는데, 학생들이 세월호 소식 듣고 자기들도 많이 힘들었대요. 이 일을 잊지 말아달라고 당부하니까 "절대 잊지 않을 거예요"라고 하면서 자기들이 대한민국을 꼭 바꾸겠다고, 할 수 있는 데까지 다 하겠다고 다짐하듯 말하는데 정말 고맙더라고요. 저희도 노력할 거지만 어른들은 한계가 있잖아요. 앞으로 사회를 끌어갈 10,20대가 움직여야 바뀔 수 있어요. 그래서 학생들과 젊은이들한테 진실을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진실을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부모들이고 어른들인 거죠.

영만엄마 : 아이들을 가까이서 만나는 선생님들도 나서서 진실을 말해주시면 정말 좋겠어요. 세월호 희생자 부모들은 이 일에 사명 아닌 사명을 가지고 있어요. 보잘 것 없는 부모들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자식을 잃은 부모가 또 무엇을 못하겠어요. 자식을 위해서 노력하다보면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지고, 이 가슴 아픈 일이 대한민국 변화에 조금은 기여를 할 수 있게 되길 바랄 뿐이에요.

예은엄마 : 참사를 통해 뭐가 진실인지 드러났다는 생각이 들어요. 대안학교나 대안방송의 경우가 그래요. 대안이라고 하는 많은 활동들이 사회적으로 실험 단계, 검증 단계라 생각했는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정말 이게 대안이구나'를 생각하게 됐어요. 아픔을 공감하고, 생명이나 사람을 중요시하고, 진실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도 있고 그야말로 '사람' 냄새가 났어요. 이런 영역들이 더 확장되면 좋겠다 싶어요.

▲ 단원고 김도언 학생 어머니 이지성 씨. ⓒ민들레
도언엄마 : 부정부패를 기성세대가 묵인해준 것이 큰 잘못이라는 걸 이제라도 알았다면, 하나하나 바로잡아 가야죠. 함께 사는 사회, 함께 사는 엄마, 아빠가 되어야죠. 도언이 오빠가 동생 죽고 나서 딱 두 달 만에 군입대를 했어요. 그동안 밥 한 끼도 제대로 못해주다가 입대하는 날 아침밥을 차려줬는데, 집에 뭐가 있나요? 그냥 된장찌개 끓여서 먹이고 군에 보내는데 그때 '아, 동생 잃은 이 아이의 분노와 슬픔을 알아주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도 신경을 잘 못 쓰고 있는데, 주변 분들이 저를 대신해 아들에게 편지도 써주고 사진도 보내주고 간식도 챙겨주고 있어요. 사소하지만 조금씩 바뀌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많은 국민들이 도와주고 계시니까요.

주현엄마 : 전국을 다니며 간담회를 하던 중에 원광대 학생이 군인이 꽃을 들고 있는 사진을 우리에게 보여주면서 이런 얘기를 했어요. "어머니, 정치인들은 사랑을 모르나 봐요. 어머님들이 지니신 무기는 큰 사랑이에요." 그래서 새해 첫날에도 자식한테 첫 끼니를 지어주는 마음으로 정치인들, 그리고 시민들과 따뜻한 밥상을 나누게 되었어요.

영만엄마 : 청와대 앞에서 농성할 때 매일 '집에 가!'라고 적은 피켓을 들고 나와서 우리에게 상처를 주던 분이 계셨는데, 계속 상황을 설명했더니 나중엔 마음이 바뀌셔서 우리를 도우려고까지 했어요. '아, 예전의 나처럼 내 일이 아니어서 사회에 관심 없고 잘 몰라서 그렇구나' 싶었어요. 우리 유가족이나 세월호 참사에 대해 오해하고 계신 분들께도 부지런히 진실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전국 어디든 마다않고 간담회를 다니게 되었죠.

예은엄마 : 단원고 250명의 아이들과 교사들, 그 가족들, 단원고 아이들과 그 부모들, 이웃들까지 생각하면 이 작은 도시에서 세월호로 가슴 아픈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그러니까 안산이 더욱 좋은 모델이 되어야죠. 바로 여기에서 세월호의 잘못을 바로잡는 대안교육도 생기고, 민주사회 시민단체도 생기고 그래서 안산 시민들이 세월호 때문에 피해를 본다고 생각하지 않고, 여기서 오래 살고 싶다고 말할 수 있게 만들어야죠. 종교,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전문가들이 오셔서 연구와 조사를 많이 해서 안산에서부터 다양한 시도를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영만엄마 : 맞아요. 아이들 교육도 중요하지만, 어른들이 바로 설 수 있게 부모 교육도 꼭 필요한 것 같아요. 우리 유가족들에게도 필요하고요.

민들레 : 여쭤보기도 죄송하지만, 어머님들의 올해 소망이랄까요.

영만엄마 : 다른 소망을 꿈꾼다는 것은 이미 먼 일이 되어 버렸어요. 꼭 원하는 것이라면 꽃보다 아름다운 아이들, 그 아이들이 왜 영문도 모른 채 버림받아야 했는지 그 진실을 밝혀내는 것밖엔 없어요. 416 기억저장소에서 아이들의 기록물 수집을 요청해서 집 곳곳에 아이 물건을 다시 정리하는데, 참 괴로웠어요. 지금을 지혜롭게 잘 헤쳐 나가서 진상규명하는 데 힘을 보태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예은엄마 : 너무나 평범하고 많이 부족한 부모들이지만 끝까지 힘을 모아서 부모라는 이름으로 우리 아이들한테 보여주고 싶어요. 우리 국민들이 그렇게 어리석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주현엄마 : 대외적으로는 활발히 활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세월호 희생자 부모들은 아이를 잃은 극도의 슬픔으로 고통과 좌절의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아이들을 위해 견디고 일어서려 하지만, 한 발짝 떼기도 힘들 때가 많아요. 그때마다 국민 여러분이 손을 내밀어 주신 것에 감사해요. 죽은 우리 아이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라 생각하고, 모든 아이들을 위한 안전사회를 목표로 계속 진상규명을 해나갈 거예요.

도언엄마 : 우리 도언이가 마지막으로 남긴 한 마디가 "엄마, 사랑해"였어요. 다시 들을 수 없지만, 지금도 그게 제가 버티는 힘이에요. 사랑한다는 그 한 마디를 진짜 행복하게 주고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어요. 진실은 형체가 없고 보이지 않지만 그 진실이 밝혀지면 좋겠어요.

▲ 단원고 유예은 학생 어머니 박은희 씨. ⓒ민들레
민들레 : 다른 부모님들께 하고 싶으신 이야기가 있다면요?

예은엄마 : 부모는 누구나 자기 자식이 모든 것을 다 잘하기를 원하는 것 같아요. 근데 사람이 각자 잘하는 게 있는 거지, 다 잘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에요. 같이 어울리고 도우면서 함께 사는 공동체 교육으로 방향을 바꾸고, 함께 크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싶어요. 예전에는 부모가 일하느라 바빠서 아이들끼리 서로 돌보면서 성장했는데, 요즘엔 부모들이 거의 아이들 매니저처럼 하고 있으니까요. 교육에 의문을 제기하는 정도가 아니라,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아예 한 번은 멈춰야 하는 것 같아요.

도언엄마 : 학교와 집에서 감수성을 기르는 교육이 필요해요. 아이들이랑 손잡고 분향소에 꼭 와보셨으면 좋겠어요. 꼭이요.
현엄마 : 내 아이가 잘 되면 다 되는 줄 알고 살아온 부모들이지만 지금이라도 저희들은 더 용기 내서 더 이상의 어린 희생들이 없게, 자식 잃고 눈물을 흘리는 부모가 없게 노력할 거예요. 아이 가진 여러 부모님께서도 '세월호 진실의 촛불'을 같이 켜주시면 좋겠어요.

예은엄마 : 아프리카 어느 마을에서, 저 나무에 먼저 도착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주겠다고 했더니 아이들이 다 같이 손을 잡고 뛰어갔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우리에게도 그런 교육이 필요해요. 똑똑한 한 사람보다 좀 모자란 사람 열 명이 낫지 않을까요. 생태계에서도 위기가 왔을 때 평소에 역할이 없던 종자가 균형을 잡아주는 것처럼, 인간사회도 그런 것 같아요. 공부 잘하는 사람도 필요하고, 공부는 못해도 공감능력 뛰어난 사람, 예술적 재능을 가진 사람도 필요하고. 저도 이렇게 힘든 일을 같이 겪으면서 다른 부모들과 가까이 지내보니, 다들 직업도 다르고 가방끈 길이도 다르지만 한 명 한 명에게서 다 배울 점이 있어요.

영만엄마 : 예전에는 같은 아파트 살아도 서로 얼굴만 알고 있었지 인사도 잘 안 했거든요. 이제는 유가족들끼리 만나면 아빠, 엄마 할 것 없이 서로 손도 붙잡고 반갑게 포옹도 하면서 공감하는 법, 사랑을 표현하는 법을 배운 것 같아요. 이렇게 큰일을 겪고 나서야 겨우 깨닫고 변화한 거예요. 다른 사람 신경 안 쓰고 내 가족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으로 그저 열심히 살아오다가 아이가 그렇게 가고 나서야 뭐가 중요한지 삶의 본질을 알았어요. 아이들이 부모에게 정말 큰 가르침을 남겨준 거죠.

도언엄마 : 그래도 이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슴 아픈 대가예요. 태어나서 경품 한 번 당첨되어 본 적이 없는 내가 세상에, 이런 일에 뽑히다니. 이건 누구든지 이런 일을 겪을 수 있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더욱 선체인양을 하고 진실을 꼭 밝혀야 해요. 저희는 너무 큰 걸 잃고, 너무 늦게 깨달았어요. 정말 너무 늦게….

인터뷰가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엄마들은 아이들과의 따스한 일상에 대한 회상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함께 눈물을 글썽이기도 하고, 와르르 웃음이 터지기도 하는 그 자리에 그리움이나 애달픔이 잔잔하게 일렁였다. 너무 늦은 깨달음이라 자책하지만 멀리서 별이 된 아이들은 생을 바쳐 싸우는 부모들의 큰 사랑을, 그 이유를 아마 잘 알고 있을 것이다.

*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격월간 교육전문지 <민들레>와 함께 대안적인 삶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민들레>는 1999년 창간 이래,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구현하고자 출판 및 교육 연구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은 곧 학교 교육'이라는 통념을 깨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다양한 배움'의 길을 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민들레>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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