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시민과 커피하우스
2월 27일 결국 계속 운전을 결정한 월성 1호기 수명 연장 논의 과정은 한국 핵 발전 정치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
2월 12일 밤늦게까지 이어진 심의 회의에서 '찬핵' 진영이라 묶일 다수의 원자력안전위원들은 이미 전문가들이 검토한 검증 자료들이 충분히 나와 있으니 서둘러 표결에 들어가자고 강변했고, 노후 핵발전소가 갖는 기술적 문제와 단층의 취약성을 우려하는 소수의 위원들은 성실하게 그러나 외로운 항변으로 맞섰다. 심의 회의의 결정이 26일로 한차례 더 미뤄지게 된 데에는 많은 보는 눈과 듣는 귀가 쏠려 있었던 사정이 작용했음이 다분하다.
월성 1호기 수명 연장을 다루는 원자력안전위원회에는 어느 때보다 많은 관심이 주어지고 있다. 현역 국회의원이 회의 전체를 참관한 것이나 위원회의 발언들이 외부로 속속들이 전달되는 것도 거의 처음일 것이다. 일부 안전위원과 언론들이 신경질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만큼 그들은 일방통행의 전문가 핵 발전 행정에 익숙해왔다.
민관 워킹 그룹까지 구성해놓고도 핵발전소 증설 결론을 밀어붙인 지난해의 제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 작성 과정도 바로 그랬다. 거기에는 회의실 문 안을 지켜보는 언론도 시민도 정치인들도 보기 힘들었다. 그리고 찬핵 전문가들의 논리가 공론으로 포장되었다. 이런 과정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진 탓인지,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는 공론의 결정 방식을 두고 논란을 거듭하고 있다.
투명한 정보 공유와 자유로운 비판 공방을 통하여 기득권이나 권력에 좌우되지 않는 결정이 이루어질 때 사람들은 그 결과에 승복할 수 있고 체제의 정당성도 확보될 것이다. 독일의 정치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이러한 기제에 주목하며 '공론장'을 이론화했다. 공론장의 원형은 고대 폴리스에서 찾을 수 있지만, 하버마스는 17~18세기 유럽에서 왕과 귀족의 권위에 맞서며 등장한 부르주아 계급의 생활에서 그 기본 형태를 발견했다.
물리적 공간으로 보면 영국과 프랑스의 커피하우스와 살롱이었다. 자원이나 구성 요소로 보면 그곳에서 발행하고 읽히던 신문과 저널이었다. 그리고 주인공으로 보면 거기에 모여 신문에 나오는 소식들을 토론하고 정견을 펼치며 귀족정을 공격하면서 공중의 여론, 즉 공론을 형성하는 '시민'이었다. 시민사회는 정치적으로 그렇게 만들어졌다.
이러한 부르주아의 공론장이 결국 시민혁명의 지반이 되었고, 커피하우스의 논객들은 구체제를 허무는 정치인과 언론인들이 되었다. 이후 대의 민주주의라는 외피를 가진 자산 계급의 과두정으로 제한되기도 했고 하버마스가 얘기한 바 '생활세계의 식민화' 경향에 따라 애초의 의미가 퇴색하고 말았다는 평가도 있지만, 시민과 현대 민주주의의 탄생과 발전의 기본 원리를 보여주는 유용성은 여전하다.
얼마 전부터 '에너지 시민' 또는 에너지 시민성에 대한 논의가 싹트고 있다. 콘센트에 플러그를 꼽고 전기 고지서를 받아보는 단순한 에너지 소비자에서 벗어나서, 에너지의 생산과 분배의 결정에 관심을 갖고, 밀양과 고리의 송전탑과 핵발전소 현장을 찾고 지원하며, 때로는 직접 협동조합을 만들어 태양광 전기를 스스로 생산하고 판매도 하는 시민들이 그들이다. 이들이 많아질 때 비판적 이성을 가진 원자력안전위원들이 외롭지 않고, 국가의 에너지 계획도 시민의 참여 속에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측면을 고려하여 만들어지게 될 것이라는 기대다.
그런데 에너지 시민 역시도 허공에서 태어나는 것은 아닐 테다. 도식적으로 말하자면 에너지 시민을 위한 커피하우스와 살롱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에너지 시민들이 읽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신문과 잡지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이들이 모여서 떠들고 논박하고 대안을 만들어 원자력안전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부,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의 자칭 전문가와 권력자들의 언행을 감시하고 참여할 수 있는 마당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아니, 서구의 부르주아 계급처럼 그런 공론장에 참여할 수 있는 경제적 시간적 여유도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탈핵신문>이 벌써 햇수로 창간 4년째를 맞고 있고, 수십 종의 탈핵 서적이 출간되었으며, 곳곳에서 탈핵 강의와 행사가 열렸고, 탈핵 도보 행진도 수시로 이루어지고 있다. 탈핵 희망버스와 탈핵 농활 경험자들이 시나브로 에너지 활동가로 자라고 있고, 전국에서 만들어지는 에너지협동조합의 발전소들이 에너지 전환의 산 교육장이 되어주고 있고, 서울 동작구에는 에너지 슈퍼마켓도 있다. 웹사이트와 블로그, 사회 연결망 서비스(SNS)도 에너지 공론장의 역할을 나눠맡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소중한 성과다. 그러나 에너지 시민들의 공간과 언로가 충분하냐고 묻는다면 간에 기별이 가는 정도라고 얘기하는 게 맞겠다. 이제는 에너지 시민과 에너지 공론장의 형성과 내실 강화의 방법들을 보다 진지하고 치밀하게 고민할 때가 된 것 같다. 에너지 시민의 맹아들에 대한 칭송에 머무르지 말고, 에너지 시민들이 에너지 전환의 공론장에서 실제로 구체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에너지 시민을 위한 전략과 물질적 자원, 즉 인프라와 소프트웨어를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찬핵 진영은 실제로 커피하우스를 가지고 있다. 지난 해 가을 한국수력원자력이 모 프랜차이즈 커피 회사와 협력해서 서울 종로1가 YMCA 건물에 차려놓은 "에너지팜"부터 정탐해보는 것은 어떨까.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바로 가기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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