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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의 나와 그대에게

[팽목항으로 부치는 편지] "진실로 울겠습니다"

십삼 년 전 제가 열한 살 때의 기억입니다. 그해 여름 저희 부모님께서는 무남독녀인 저를 또래 친구들과 함께 첫 야영에 보내 주셨습니다. 몇 날 며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까르르대며 뛰놀았던 야영지, 그곳이 제주도였습니다. 환한 아침마다 숙소 창문에 걸터앉아 저는 저 멀리 바다가 뿜어내는 푸른빛을 하염없이 바라봤습니다. 그러곤 공중전화 박스까지 한달음에 달려가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엄마, 정말 정말 아름다워.

하루는 인솔자와 동반해 모든 아이들이 해변에 놀러 나간 날이었습니다. 형형색색 수영복을 입은 한 떼의 아이들이 모래성을 쌓거나 물장구치는 모습은 마치 햇빛이 수놓은 성전의 스테인드글라스 같았습니다. 저는 이향이란 이름의 친구와 손을 맞잡고 얕은 물속을 거닐었습니다. 그러다 키 작은 제가 문득 먼저 알아차렸습니다. 우리가 우리도 모르는 새에 두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곳까지 밀려왔다는 것을요. 튜브가 없었던 어린 이향이와 저는 얼굴이 파랗게 질려 서로의 손을 구명대처럼 꼭 잡고 열한 살답게 생각했습니다. 괜찮아. 어른이 있으니까. 그치, 이향아.

다시 돌이켜봐도 저는 그 순간 세상을 너무 많이 살아버린 기분입니다. 인솔자는 정신없이 바빴고, 물 밖으로 간신히 얼굴만 내밀고 있던 이향이와 저는 비로소 ‘우리의 어른’은 곁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배신감에 차 악착같이 발버둥 쳐야 했습니다. 그때 십일 년의 기력을 한꺼번에 다 써 버린 것 같았습니다. 가까스로 뭍에 도달한 저는 울지도 않고 단 하나의 생각을 했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빼앗긴 나의 눈부신 풍경,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그로부터 십삼 년이 지났습니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불구하고 제 머릿속엔 그 여름의 기억이 핏물처럼 고여 있습니다. 이따금 욕조에 몸을 담그는 일조차 진저리 쳐져 황급히 화장실을 빠져나오기도 합니다. 열한 살의 모래밭으로 돌아가 거칠게 숨을 내쉽니다. 어떤 기억은 왜 늙지도 않는 걸까요. 저는 정수리 한가운데 번개를 맞은 것처럼 고통스러운데, 그것이 결코 자신의 과거와 미래가 아니라 믿는 사람들로 인해 왜곡된 기억으로 운위됩니다. 타의에 의해 희석되고 잊힙니다. 이제 그만 마음 한편에 덮어야 하는 우연적 일이란 듯이.

실은 지난 1월 23일 아침까지도 저는 팽목항에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안산 분향소에 막 이르러서도 불쑥불쑥 발길을 돌리고 싶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맨 정신으로는 남쪽 바다를 마주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일 년 가까이 숱한 참혹을 보았고, 부정의에 맞서 부딪치는 지인들을 지켜보면서도 선뜻 목소리를 낼 수 없었습니다. 회오리바람 몰아치는 세상 속에서 스물네 살의 저는 무력하고 무지한 한낱 티끌 같았습니다. 동시에 유년 시절의 편린이 언어를 외마디 비명으로 메웠습니다. 그런데 엄마, 성한 데 하나 없는 진실이 성하다고 하잖아요. 믿을 수 없이….

저는 '진실로' 울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눈물의 중심을 찾아 진도로 갔는지 모릅니다. 유가족 분들이 마련한 팽목항의 작은 분향소에서 304명의 숨결과 마주쳤을 때, 눈물이 되레 몸속으로 역류했습니다. 어째서였을까요. 해풍에 흩날리는 샛노랗고 보드라운 리본들을 살결처럼 쓰다듬어 보면서야 저는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우리가 엎어진 곳엔 목 놓아 우는 우리를 일으키고 보듬어 줄 국가라는 어른이 부재했음을 말입니다.

몇 시간째 제 방 책상 앞에 앉아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윤희 삼촌께서 하신 말씀이 귓가에 계속 맴돕니다. 돌아오지 못한 자식 생각에 술 없이 하루도 견딜 수 없어 손을 떨고 계시다는 아버지들, 연신 담배를 피워 무신다는 어머니들. 조금이나마 유가족 분들을 위로하자는 취지에서 이 편지를 쓰고자 했으나 저는 제 슬픔조차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는 인간임을 깨닫습니다. 하물며 제가 어떻게 그분들의 비참한 심정을 헤아릴 수 있을까요. 좀처럼 펜을 종이에 대기 힘듭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잊지 않겠습니다. 진실로 울겠습니다. 앞으로도 세상은 이향이와 저를 번번이 속이겠죠. 그러나 십삼 년 전 우리는 알았습니다. 눈앞에 진정한 어른이 보이지 않는다면 아이는 제 힘으로 땅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는 것을요. 간밤에 찾아 읽은 알프레드 테니슨의 시를 조심스럽게 덧붙입니다. 부디 안녕히 계세요.

고귀한 분노를 모르는 포로를
언제라도 나는 부러워하지 않노라
조롱에서 태어나 여름 숲을 모르는
그런 새를 부러워하지 않노라

마음대로 잔인한
짐승들을 부러워하지 않노라
죄책감을 느낄 줄 모르는
양심이 없는

굳은 맹세를 해보지 않은 마음을
나는 부러워하지 않노라
잡초 속에 고여 있는 물같이
부족을 모르는 안일을 나는 부러워 않노라

무어라 해도 나는 믿노니
내 슬픔이 가장 클 때 깊이 느끼나니
사랑을 하고 사랑을 잃는 것은
사랑을 아니한 것보다 낫다고

(알프레드 테니슨, '인 메모리엄' 中)

2015년 2월 20일
석지연 올림
▲팽목항 ⓒ석지연

지난 1월 23일 안산 분향소와 팽목항을 다녀온 작가들이 '팽목항으로 부치는 편지'를 제안해 왔습니다. 여전히 고통과 슬픔에 잠겨 있는 유족들을 위로하고, 아직 차가운 물 속에 있는 실종자들을 찾아내기 위한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자는 취지입니다. 팽목항에는 국민들로부터 온 편지를 수신할 우체통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정우영 시인의 편지를 시작으로 8명의 작가들이 팽목항으로 보내는 편지를 연재합니다. 작가들이 시작하지만 온 국민이 쓴 손편지가 속속 팽목항에 모여들기를 작가들은 바라고 있습니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국민들의 따뜻한 편지가 유족들의 시린 마음을 데우고 망각할 수 없는 참사를 되새기는 힘이 될 것입니다.


편지를 보낼 주소는 539-842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 윤희 삼촌(김성훈)입니다.

[팽목항으로 부치는 편지]

<1> "편지 한 통의 기적을 꿈꿉니다"

<2> "팽목항은 어머니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3> 세월호 유족이 차려준 밥상의 의미

<4> "울면 지는 겁니다"

<5> "진도의 닭 울음소리, 들어보신 적 있나요"

<6> "이제 우리가 밥상을 차릴 때"

<7> "은화야, 너랑 나랑 바꿀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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