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MB만 캠프데이비드 초대? 노무현은 거절했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MB만 캠프데이비드 초대? 노무현은 거절했다"

[MB의 시간과 비용] <6> 문정인 연세대 교수

"기록물 자체로 가치는 있다. 그러나 읽는데 곤혹스럽다."


많은 이들이 <대통령의 시간>을 읽으며 내놓은 총평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화제다. 퇴임한 지 2년 만에 이런 회고록을 냈다는 것 자체도 놀랍지만, 그 내용이 황당해서 그렇다. 누군가는 이를 '공상과학소설'로, 또 누군가는 이를 '공소장에 앞선 피의자 조서'로 표현하기도 했다.


<프레시안>은 이 회고록이 어느 정도 진실인지, 어디까지 우리가 믿을 수 있는지, 어떤 부분이 잘못됐는지, 조금 더 세밀하게 접근해보기로 했다. 대통령 회고록이 갖는 무게 때문이다. 이 회고록과 무관하게 <프레시안>은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와 함께 지난해부터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대한 자체적인 검증 작업을 벌여왔다. 그 작업을 묶어서 낸 책이 <MB의 비용>이다.


'MB의 시간과 비용'이라는 기획은 철저하게 이명박 정부의 정책 평가를 위한 기획이다. 회고록 중 크게 논란이 된 한미 쇠고기 협상, 대북 관계, 외교 안보 문제, 4대강 사업 평가 등에 대해 전문가와 함께 조목조목 따져봤다. 많은 독자들을 대신해 <대통령의 시간>을 낱낱이 해체 재구성해 보고자 한다.


'MB의 시간과 비용' 5~6편에서는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인터뷰를 소개한다. 문 교수는 미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을 지냈고, 노무현 정부 시절 동북아시대위원장, 외교통상부 국제안보대사를 역임했다. 인터뷰는 <프레시안> 협동조합 박인규 이사장이 진행했다. 편집자

MB의 시간과 비용


<1> "MB와 임태희, 비밀접촉 팩트가 다르다"

<2> "MB 회고록, 자기 부하들에게 부정당했다"

<3> MB "촛불 때 죽었어봐…'글로벌 코리아' 못 외쳤지"

<4> "MB, 거짓말로 4대강 강행…배후는?"

<5> MB는 '외교의 신'…잘못한 건 노무현 탓?

'그랜드 바겐' 구상은 DJ 때부터…그 마저도 '실패'인데 '자화자찬'

프레시안 : 이 글을 읽어보면, 이 전 대통령의 인식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는 우리가 주도하는 게 마땅하다'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실상은 '해결'을 위해 우리가 행동을 하는 것 같지 않다는 게 문제인 것 같다.

문정인 : 북핵 문제를 풀려면 무엇보다 남과 북 사이에 신뢰가 있어야 한다. '북한에 대해 미국의 군사적 행동을 우리가 막아줄 수도 있다'라고 하는 인식이 북측에 있을 때, 북한은 우리를 신뢰하고 도움을 청하게 된다. 그러면 우리에게 협상의 레버리지가 생긴다. 그 레버리지를 가지고 우리가 미국도 움직이고 중국도 움직이면서 주도적으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전 대통령은 그런 기본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그런데도 북핵 문제를 주도하겠다?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 전 대통령이 '비핵개방 3000'을 내놓았다. 이것은 북한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등가성의 법칙에 안 맞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기들이 핵을 포기하면 10년 후에 3000달러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 북한 사람들은 '이명박 정부 아니라도 우리가 핵을 포기하면 국제사회에서 얼마든지 돈을 끌어올 수 있다. 10년 후면 1만달러가 될 수 있다'는 얘기를 한다. 등가성이 성립하지 않아 실패한 정책이다. 현실 인식이 전혀 없는 것이다. 북한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이명박 정부 사람들은 모든 것을 물질로 생각하니까 3000달러면 이 정책이 작동할 것으로 본 것 같다. 그런데 북이 원하는 것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을 해소하고 체제와 국가 안보를 확실히 하는 것이다.

▲ 문정인 연세대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이명박 전 대통령의 주장

역사적으로 볼 때 독재 권력이 스스로 변화한 예는 찾기 어렵다.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유도하는 보다 적극적인 전략이 필요했따. 아울러 한반도 평화와 직결된 북핵 및 군사 관련 논의에 대한 주도권을 우리가 찾아와야 한다.() 취임 전부터 나는 남북 관계의 이같은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 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위협하는 북핵 및 안보 문제를 북한, 미국 간의 대화에만 맡겨두고 우리는 제3자처럼 물러나 있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봤다. (<대통령의 시간> 305페이지)

'도발-대화-합의-지원-합의 파기-재차 도발-대화 재개'로 반복되는 악순환이 지난 20년 동안 이어져 왔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했다. 2009년 6월 16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오바마 대통령에게 이런 취지를 자세히 설명하고 공감대를 이뤄냈다.(…) 그랜드 바겐 제안은 북핵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주도권을 우리가 확보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대통령의 시간> 319페이지)

프레시안 : 그 이후에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이 나왔다. 갑작스럽게 나왔다는 인식이 있다.

문정인 : 본인은 그랜드 바겐에 상당히 역점을 두었다고 말하는데, 이 제안은 2009년 9월 뉴욕 방문 중에 나온 것이었다. (이 전 대통령은 2009년 9월 21일 미국 현지에서 미국외교협회(CFR), 코리아소사이어티(KS), 아시아소사이어티(AS) 공동주최 오찬을 통해 '차세대 한미동맹의 비전과 과제'라는 제목의 연설을 했다. 이 연설을 통해 "이제 6자회담을 통해 북핵 프로그램의 핵심 부분을 폐기하면서 동시에 북한에게 확실한 안전보장을 제공하고 국제지원을 본격화하는 일괄 타결, 즉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을 추진해야 한다"고 처음 밝혔다. 편집자) 청와대는 대통령이 국내나 해외에서 연설할 때 항상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차원에서 이 전 대통령도 그랜드 바겐을 얘기한 것 아닌가. 일회성 제안인 것 같다.

사실 그랜드 바겐 구상의 기본 골자는 소위 김대중 정부 때 나왔던 북핵의 포괄적 해결 방법과 다를 바 없다. (이명박 정부 사람들) 본인들도 그렇게 얘기한다. 그런데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진짜 포괄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것 보다는 우리의 제안을 북한이 안 받을 테니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의 5자가 협의를 통해 북을 압박해야 한다는 것이 거기에 깔린 기본 의도다. 6자회담이 계속 안 되는 상황에서 나온 것인데, 사실 6자회담을 깬 것도 엄격히 말해 이명박 정부다. 실제로 당시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나 통일부에서는 그랜드 바겐의 개념을 제대로 설명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랜드 바겐이라는 개념은, 오랫동안 고민해 만든 것이 아니고, 그냥 미국에 가는데 어떤 메시지가 있어야겠다고 해서 만든 것 같다.

실제로 그랜드 바겐이라는 말이 나온 후에 커트 캠벨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이 제안을 과거 '포괄적 해결방법'과 동일시했고, '우리(미국) 하고 협의도 하지 않고 (포괄적 해결방법)그것을 제시했다. 난 모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중에 한미 간에 큰 마찰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캠벨 차관보가 꼬리를 내렸던, 그런 기억이 있다. 그러나 그 이후 이명박 정부가 그랜드 바겐 구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아마 계속 대북 압박을 하면서 '6자회담 안하면 5자라도 만나서 하자'는 구상을 했던 것 같다.

또 하나 이명박 정부가 가장 원했던 것 중 하나는 북한 급변사태를 대비한 한··중 3국 전략대화였다. 김태효 전 비서관이 무던히도 노력했던 것으로 안다. 결국 중국이 안 받았다. 중국 정부 측은 '북한이 붕괴하지 않았는데 무슨 얘기냐. 이것은 오히려 북한에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따라서 한··중 3국 대화는 공식적인 '트랙1'에서는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고, '트랙2'에서도 중국이 부정적이었다. 그런데도 다 잘 됐다고 얘기한다. 예를 들어, 이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장렌구이 중국 공산당 중앙당교 교수나 덩위원 전 당교 학습시보 부편집인과 같은 사람들의 글을 인용하고 있다. 대통령이 그런 사람들을 안다는 것 자체가 난 이해가 안 가는데, 286페이지 보면 그들이 '북한과 관계를 재설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고 나온다. 일부 보수 언론이 이들을 띄우기도 했는데, 이들은 중국 정부나 학계의 주류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마치 중국의 주류 시각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프레시안 :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연기하는 조치를 취했다. '우리가 북한 문제를 주도해야 한다'고 하면서 우리 스스로 미국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부분에 대한 설명이 없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무기한 연기가 됐다.

문정인 : 전작권 환수는 이렇게 봐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전작권 환수에 천작한 것은 '군사주권 회복' 부분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북한 때문이다. 북한은 전작권을 주한미군 사령관이자 한미연합사령관이 가지고 있고, 우리가 독자적 군사행동을 하지 못한다고 보아 우리를 괴뢰군이라 부르는 것이었는데 노 전 대통령은 이러한 북의 태도에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결국 우리가 아무런 자율성이 없기 때문에 북한이 우리를 무시하고 미국에 모든 평화협상을 제의하는 것 아닌가. 이번에 북한이 한미군사훈련 중지와 핵실험 중지를 맞바꾸자는 제안을 미국에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노 전 대통령은 전작권 환수를 통해 북의 그런 태도를 바꾸려 했다.

만약 전작권이 우리한테 왔다고 하면, 얘기는 달라질 것이다. 북한은 우리와 얘기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주력군이 되고 미국이 지원군이 되는 게 전작권 환수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이 전 대통령이 그것을 알고 전작권 환수 연기를 결정했을까? 그렇게 보지 않는다. 주변에 친미 동맹파들만 다 모여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북한의 위협이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작권을 환수하면 북한에 잘못된 시그널을 보낼 수 있다. 그래서 연기해야 한다'고 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런 것을 보면 이 전 대통령의 현실 인식에 문제가 있다. 그런 위협적인 상황이라면, 오히려 우리가 전작권을 가지고 있어야만 필요시 북한에 보복 타격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전작권이 우리에게 있다는 인식을 분명하게 하면, 북한의 태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또한 환수해 와도 미국이 한미동맹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부시 전 대통령에 이어 오바마 대통령과의 친분도 강조하고 있다. ⓒ연합뉴스

"MB의 회고록, 朴 대통령 대북 정책 파탄 내려고 썼나"

이명박 전 대통령의 주장

이후 북한은 '금강산 국제관광특구법'을 일방적으로 발표하여 현대아산의 금강산 관광 시설을 몰수하고 50년 사용 독점권을 무효화 하겠다고 선언하는 등 다른 방식으로 도발해왔다. 당시 우리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해 남북 접촉의 전말을 공개하자는 내부 의견도 있었다. 만일 그랬다면 당시 남북한 간에 오간 말들이 낱낱이 밝혀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경우 남북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파탄을 맞았을 것이다.(<대통령의 시간> 361페이지)

프레시안 : 361페이지를 보면 이 전 대통령도 남북 문제와 관련해 많은 것을 공개할 경우 좋지 않다는 얘기를 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남북 관계는 이 회고록 때문에 안 좋은 방향으로 영향을 받을 것 같다. 본인의 말대로 '파탄'의 원인이 될 가능성도 있다. 자신이 유리할 때는 '남북 간에 오간 말들을 공개하지 말아야 한다'고 해놓고, 자신은 후임 정부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 남북 간에 오간 말들을 낱낱이 공개하는 것 아닌가?

문정인 :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나, 회고록을 이렇게 쓰는 것이나, 남북 관계를 파탄 내려고 그런 것 아닌가. '이명박의 사람들'은 북한을 고립시키고 봉쇄하면 북한은 망할 것이고, 그러면 우리가 흡수통일을 할 수 있다는 식의 숨은 어젠다를 가지고 있다. 그런 숨은 어젠다를 통해 정책을 만들었고, 현재까지도 그에 따른 계산된 행동을 하고 있다고 본다. 나아가 박근혜 대통령에 '정상회담을 하지 말라'고 압박을 가하는 인상이 든다. 잘못된 일이다. 전직 대통령이면 가만히 있지, 남북 관계를 파탄 낼 필요까지는 없는 것 아닌가? 박근혜 정부는 어떻든 간에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작동시켜서 교류협력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면 전 정권 사람들은 지켜보면 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재를 뿌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프레시안 : 이명박 정부가 북한 붕괴론에 기반해 북한에 대해 압박을 해 나갔다고 하는데, 지금 박근혜 정부는 그러한 기조에서 달라졌을까? 어떻게 봐야 하나?

문정인 : 지난해 8월 7일 청와대에서 열린 통일준비위원회 1차 회의에서 내가 직접 대통령에게 물어 본 적이 있다. '대통령의 대북 정책의 기조는 무엇이냐'고. 박 대통령의 답변은 명쾌했다. "북한을 고립, 봉쇄, 압박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을 국제 사회의 건전한 일원으로 이끌어내는 것이 우리의 대북 정책이다'"

그런데 정책 운용과정에서 모순적인 모습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통일준비위만 해도 그렇다. 그 안에는 진보 성향 사람들도 있고 보수 성향 인사들도 있다. 그러다 보니 정책 자체가 모순적인 게 있다. 통일준비위의 첫 번째 목표가 남남갈등을 최소화시키면서 국민적 합의를 구축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 목표는 북한과 함께 하는 통일을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통일 공공 외교를 적극적으로 전개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흡수통일을 하지 않고 북한과 협의해 통일 정국을 만들어 간다는 것인데, 세 번째로 가면, 소위 핵 문제, 인권 문제에서 북한에 압박을 주는 외교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 둘은 다분히 모순적이다.


결국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계속 유효한 정책이라고 한다면, 북한과 어떻게 하든 교류 협력을 하고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관련해 (박 대통령은) 큰 것이 아니더라도, 작은 부분들, 이를테면 이산가족 재상봉과 같은 것을 성사시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 내부에 다른 시각을 가진 이들도 있을 것이다. NSC나 청와대 요직에 있는 강성 인사들은 섣부른 교류, 협력보다는 원칙을 강조 할 것이다.

프레시안 : 이명박 정부에 비하면 그래도 나은 것인가?

문정인 : 물론 그렇다. 현 정부는 원칙과 유연성을 동시에 강조한다. MB정부는 사실 유연성이 없었다. 북측과 만나긴 했지만, 북한이 붕괴할 것으로 봤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그런 전제를 하는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일부 그런 가정을 하는 사람도 있고, 국책연구기관 등에서는 흡수통일을 전제로 한 보고서를 많이 내고 있는데 대통령 생각은 다른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 NSC나 공안 라인에 있는 이들은 원칙을 강조하는 반면, 외교안보수석, 통일비서관, 그리고 통일부 등은 유연성을 요구할 것이다. 그래서 계속 충돌이 있었는데 지금까지 원칙이 많이 강조되고 있는 것 같다. 유연성에 힘을 실어주면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직까지 그런 변화는 없는 것 같다. 이 전 대통령의 가장 큰 실수가 그것이다. 원칙은 국가 이익에 우선할 수 없다. 국가 이익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원칙을 시기와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지도자의 덕목이다.

프레시안 : 국익을 넘어서는 원칙은 있을 수 없다고 하는데.

문정인 :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넘어선 지도자의 원칙이 어디에 있나. 그런 원칙은 나라를 망하게 한다. 그것은 이미 원칙이 아니라 아집이 된다.

회고록에 스스로 밝힌 패착5번 기회 모두 걷어찬 MB

프레시안 :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유투브 인터뷰를 통해 북한을 "시간이 지나면 무너지게(Collapse) 될 정권"이라고 말했다. 이런 오바마 대통령의 인식은 어떻게 나왔을까?

문정인 : 오바마 대통령의 북한에 대한 인식은 여러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첫째는 전문 관료들에 의한 부정적 인식 부각이다. 제프 베이더(Jeff Bader) 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 다니엘 러셀(Daniel Russel)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 등 대부분의 직업 관료들은 북한을 부정적으로 보아 왔고 이들의 대북 인식이 오바마 대통령에게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두 번째, 2009년 4월 5일 체코 프라하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역사적 연설을 하는 날 새벽에 북한이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를 했다. 그것 때문에 오바마가 연설문을 수정해 북한을 규탄하는 대목을 새로 집어넣었다고 한다. 북한이 부정적으로 비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세 번째는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 이 전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의 대북 인식에 상당히 큰 영향을 줬다고 생각한다. 이 전 대통령을 만난 후 오바마가 'hopeless(희망이 없다)', 'rogue(불량)' 같은 단어 사용 빈도수가 증가한 것으로 안다. 핵과 미사일은 물론이고 천안함 사건부터, 미국 소니에 대한 사이버 테러에 이르기까지, 오바마에게 북한은 부정적으로 비칠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것이 워싱턴의 전반적인 흐름인 것 같다. 미국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북한 붕괴론을 계속 얘기하니, 워싱턴에서도 그게 주류가 돼 버린 것 같다.

▲ 영국 BBC와 인터뷰 중인 이명박 전 대통령. 당시 이 전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원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KTV 갈무리
프레시안 : 박근혜 정부에서도 정상회담을 시도한다고 하면, 북한이 뭔가를 요구할 것 아닌가. 앞으로 정상회담은 더 힘들어지지 않겠나?

문정인 : 정상회담과 관련, 이명박 전 대통령의 가장 큰 패착은 다섯 번 제의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성사시키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외교를 잘 한다는 분이, 남북 간의 '협상'은 못하는 것인가. 그러니 그 '제안'이라는 게 실질적으로 있었는지도 의심스러운 거다. 둘 중에 하나다. 북측이 공식적으로 정상회담을 제안하지는 않은 것인데, 그것을 공식 제안처럼 아전인수로 해석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처음부터 정상회담에 관심이 없었다. 저쪽에서 제안해도 애초에 안 받으려 했던 것 아닌가. 둘 중 하나다. 사실 정상적인 대통령이라면 협상을 해야 한다. 그런데 다섯 번 중에 단 한 번도 성과가 없었다? 북한 측에서 이 전 대통령 측에 대해 '거짓말'이라고 비난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프레시안 : 보수 성향의 국민들은 '그래도 이 전 대통령이 원칙을 지켰다'고 공감을 하지 않을까.

문정인 : 이건 원칙의 문제가 아니다. 정상회담을 안 할 것이면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할 의사가 있었다면 제대로 협상을 해서 성사시켜야 했다. 사실 한반도에 평화와 안정을 가져오고 통일의 가능성을 높여준다면 어느 정도의 대가를 치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문제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태도를 취했고 그 결과 자꾸 북한에 잘못된 시그널을 보낸 것 같다. 천안함 사건, 연평도 사건이 그런 태도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북측의 신뢰가 없어지면서 남북 관계는 꼬이고 군사긴장은 오히려 첨예해졌다. 지금 봐도 희한한 일이 있다. 연평도 포격이 있던 2010년 11월 23일과 며칠 후인 12월 초 북한의 류경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이 내려왔다는데, 참 이해가 안 되더라. 어떻게 류 부부장의 방남을 우리 측이 받을 수 있겠는가. 그건 원칙에 기초한 행동도 아니다. 그리고 국정원이 한 비밀 활동을 대통령이 왜 공개한 것일까. 아주 부적절하다. 직접 만난 것도 아닌데….

이명박 전 대통령의 발언

"(대북) 특사는 우리가 필요하면 보낼 수 있다", "내 자신이 북한 사람들이 자립하며 살 수 있도록 하는 경험과 애정을 갖고 있기 때문에 뜻밖에 남북 관계를 개선하는 계기가 올 지도 모르겠다"(2009년 4월 3일 영국 런던에서 있었던 로이터, 블룸버그, AFP 통신사와의 합동 인터뷰 중 이명박 전 대통령의 발언)


"난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날 준비가 항상 되어 있다", "조만간이라고 단정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아마 연내에 만날 수 있을 것 같다고 본다", "(남북 정상이) 열린 마음으로 사전에 만나는 데 대한 조건이 없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 2010년 1월 28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있었던 BBC 인터뷰 중 이명박 전 대통령의 발언)

2009년 4월 런던 발언, 2010년 1월 다보스 발언에서는 이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러면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하지 말라고 훈수를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자기가 못했으니까 박 대통령도 하지 말라는 이야긴가. 결국 이 전 대통령은 북한을 협상의 대상으로 본 것이 아니고 악마이자 야만으로 본 것 한다. 부시와 다를 바 없다. 배타주의, 타자의 악마화. 그런 것이 보인다. 이건 원칙이 아니라 편견이고 우월주의의 발로다. 또한 싱가포르 접촉 당시에 이 전 대통령이 보고받았다는 내용이 있다. 김양건이 '이것 안 받고 가면 죽는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도 김양건을 과거 몇 차례 만나 본 적이 있지만 그런 이야기할 사람이 아니다. 그는 지도급이고 핵심 인사이자 외교를 잘 아는 사람이다. 이런 건 상대방에 대한 신뢰와 예의의 원칙을 어긴 것 아닌가 한다.

북한을 악마화, 희화화하고, 북에 갑질을 하려고 하면 남북 관계는 풀리지 않는다. 그리고 자기 혼자 못했으면 그 걸로 끝내야지 왜 박근혜 대통령까지 걸고 넘어 가려 하는 걸까. 전직 대통령이 (현 정권이) 잘 되도록 충고는 못 할망정, 판을 깨서는 안 된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미국 부시 전 대통령의 골프카트 운전대를 잡고 운전하고 있다. ⓒ연합뉴스

MB가 최초로 캠프데이비드 초청 받아?…노무현은 초정 받고 거절


이명박 전 대통령의 주장


캠프 데이비드는 미국 대통령 전용 별장으로 워싱턴D.C. 서북쪽에 위치해 있다....캠프 데이비드 초청 여부로 미국의 환대 정도를 가늠하기도 했다. 한국 대통령의 캠프 데이비드 초청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한국의 새정부 출범에 대한 미국의 기대가 반영된 결과였다.(…) 부시의 첫인상은 친근했다. 다정한 이웃같은 모습이었다.(…) 골프 카트에서 부시와 나눈 여러가지 대화는 당시 한미 관계와 대북정책에서 매우 중요한 현안들이었다. 그동안 실무 차원에서 해결되지 않던 문제가 그 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풀려나갔다.(…) 헤어진 지 30분도 안 돼 부시 부부와 우리 부부는 만찬장에서 다시 만났다. 자리에 앉자마자 부시가 말했다.


"이 대통령님, 원래 국가 정상끼리 만나면 종교 의식은 하지 않는게 관례입니다. 그러나 저는 식사 기도를 함께 드리고 싶습니다. 괜찮겠습니까?"


교회에서 기도하던 모습을 보고 하는 제안 같았다. 나중에 들은 얘끼지만 부시는 기도하는 우리 부부의 모습에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좋습니다. 함께 기도하지요."
"손잡고 기도해도 괜찮겠습니까?"


우리 네 사람은 식탁에 둘러앉아 서로 손을 잡고 기도를 드렸다. 역사상 유례없는 풍경이었을 것이다. 만찬을 마칠 때쯤 부시와 나는 이미 오랜 친구처럼 친밀해져 있었다. 이때부터 부시는 내게 '친구'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만찬을 마친 후 부시는 앞으로 한국을 믿고 정보를 교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날 다져진 신뢰의 결과였다. 이후 한미 양국의 정보 협력은 더욱 강화됐다. (<대통령의 시간> 190~196페이지)

프레시안 : 상대방에 대한 예의나 객관적 현실 인식이 부재한 것 같다.

문정인 : 나도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회고록 쓰기 전에 전임 정부에 대한 연구도 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부시 전 대통령 초청으로 캠프 데이비드에 간 부분을 읽어보라. 미국의 인정을 받아서 본인 혼자만 간 것처럼 자랑을 해 놓았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과 차별성을 부각시키는 듯 했다. '미국이 버린 노무현, 미국이 사랑한 이명박?' 이건 웃기는 소리다. 2003년 2월 초 내가 당선자 고위사절단원으로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부시와 노무현의 캠프 데이비드 회동 이야기 나왔다. 그러나 노무현 당시 당선자는 그 제안에 부정적이었다. 그리고 2004년에는 부시의 텍사스 목장에 초청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실무진 수준에서 거절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 전 대통령은 '나만 갔다'며 생색을 내고 있다. 그래서 결국 쇠고기 협상에서 재킷을 풀어줬나? 뭘 알고 말해야지. 치적을 추켜 세우는 것도 좋지만, 전임에 대한 예우도 좀 했으면 좋겠다.

프레시안 : 조금 다른 문제이지만, 지금 남북 관계를 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문정인 : 우리 대통령이 남북 관계를 성공시키려고 한다면, 기본적으로 비공식 막후 접촉을 해야 한다. 국정원의 대북 전략 기능을 빨리 복원을 시켜야 한다. 북측과 비공개 접촉을 해서 사전 의제 조율을 해야 한다. 그리고 난후 공식 회담을 개최해야 성공할 수 있다. 안 그러면 계속 평행선을 그릴 것이고 국민들은 짜증을 내기 시작할 것이다. 판을 깨는 공식 회담 뭐 때문에 하나. 그리고 작은 것 하나라도 성사 시켜야 한다. 금강산 문제 해결과 이산가족 재상봉은 연계해 볼만 한 것 아닌가. 그러면 상당한 선순환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프레시안 : 박 대통령이 정상회담에 관심이 있기는 있나.

문정인 : 박근혜 대통령은 상당히 합리적인 측면이 있다. 상황이 이런데 어떻게 정상회담을 하나.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상황이 돼 버렸다. 지금 일본의 아베 총리를 대하는 것 봐라. 만나서 뭔가 가시적인 것을 얻을 수 없으면 정상회담 안 할 것이다. 지금처럼 북쪽과 교감도 없는 상태에서 정상회담 가능할까?

프레시안 : 마무리를 해보자. 이 책은 처음부터 자화자찬으로 점철돼 있다. 외교 문제도, 어떤 시스템보다는 본인의 개인기, 다른 정상과의 진한 우정 등으로 모든 것을 해결했다는 식의 기술들이 전부다. 문 교수 지적한 대로 그는 거의 '외교의 신'이 돼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주장

"그래서 제가 부시 대통령에게 직접 얘기하는 것입니다. 이제 한국 경제도 발전하고 국가 위상도 높아져 양국 국민간 활발한 왕래가 미국에게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문제는 개선돼야 합니다. 임기 중에 처리해주신다면 미국에 대한 한국민의 정서도 달라질 것입니다."


그러자 부시는 "내 임기 중 처리되도록 하겠다"고 답변했다.(…) 부시의 임기는 2009년 1월 19일까지였다. VWP(비자면제프로그램)는 2008년 11월 17일붵 시행되었으니, 부시는 자신의 약속을 지켰을 뿐 아니라 내 요구도 들어준 셈이다. (<대통령의 시간>197페이지)

문정인 : 본인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집고 넘어가자. 솔직히 핵 안보정상회담 유치도 한국 외교부가 사전 작업 다 한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이 오바마와 가깝다고 해서 즉석에서 된 것이 아니다. 과정을 쏙 빼버린 것이다. 비자면제 프로그램 문제도, 사실 노무현 정부 시절 외교부에서 죽 진행해 왔던 것들이다. 이명박 정부 때 결실을 맺었을 뿐이다. 좋은 지도자는 밑에 있는 관리들이 만든 프로세스를 자세히 파악하고, 그것을 녹여서 결단을 내린다. 그런 과정을 써야 대통령도 올라가고 관료도 올라가는데, <대통령의 시간>을 읽으면 모든 부처는 수동적인 심부름꾼이고 대통령 혼자 다 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이는 지극히 비정상적인 것이고 잘못된 것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다른 나라와 관계에서는 외교의 신인데, 왜 북한에 대해서는 '외교 바보'가 돼 버렸는가. 김정일에 대해서는 왜 그런 능력을 발휘 못했나.

프레시안 : DJ 회고록과 비교를 하면 어떻나?

문정인 : DJ도 자기 칭찬이 많긴 했지만 역사적 사실에 기초를 많이 했다. 디제이 자서전에는 '내가 잘나서 이렇게 됐다'는 부분은 거의 없다. 당시 상황이 이랬고, 내가 이런 대화를 했다는 정도다. 자서전 2권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나는 각국의 정상들과 대화를 할 때 나름의 몇 가지 원칙이 있었다. 첫째는 어떤 경우에도 상대방에게 '아니다(NO)'라고 하지 않는 것이다. 둘째는 되도록 상대방 말을 많이 들어주는 것이다. 셋째, 상대방과 의견이 같은 대목에서는 꼭 '내 의견과 같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넷째, 할 말은 모아두었다가 대화 사이사이에 집어넣고, 그러면서도 꼭 해야 할 말은 빠뜨리지 않는 것이다. 다섯째 회담 성공은 상대의 덕이라는 인상을 주도록 하는 것이다. 여섯째가 가장 중요한데, 상대를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다."(<김대중 자서전> 315페이지)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 나온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이 대통령의 외교에는 건설 수주하는 듯한 '상인의 지혜'는 있지만, '선비의 성찰과 양심'은 결여됐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프레시안 : 긴 시간 감사하다.(끝)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