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3∼4조 이상의 지방 학부모 돈이 서울로
한국과 일본의 고등교육에 있어서 학령 인구의 감소가 심각한 문제가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1990년대 말까지 고등교육 소비자(대입입학 희망자)는 대략 100만 명 정도로 당시에는 대학 문이 좁은 상태였기 때문에 대학운영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이 수치는 지속적으로 떨어져 2015년 현재, 대체로 60만 정도가 된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2015학년도 수능 원서 접수 결과(2014.9.14)>에 따르면, 2015년 수능 응시 지원자는 64만 619명으로 나타났다. 2013년에 비해 1만128명 감소했다. 2020년 경에는 40만명 선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방에서는 이 같은 학령인구의 감소만이 문제가 아니다. 이와 동시에 지역의 학생들이 지속적으로 수도권으로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2011년 현재 서울의 전체 대학생 27만 명 중 절반인 14만 명이 지역(지방) 출신이라고 한다(<조선일보> 2011.6.14). 이로 인해 지역에는 엄청난 경제적 손실이 나타난다. 숙식비를 제외하더라도 연간 등록금 대략 800만원, 연간 용돈(월30만원 가정) 360만원이면, 1인당 1년간 1160만원, 14만 명이면 1조6천억 원에 육박하는 돈이 지역에서 수도권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여기에 숙식비가 포함되면 3배 이상은 될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우수 인재들의 수도권 유출로 인하여 지역을 발전시킬 인재들이 고갈되고 있다는 점이다.
학생 '삶의 질' 고려가 없는 구조개혁 지표
이와 같이 수도권 지역 대학들의 절반 이상이 지방 학생들인데도 불구하고, 수도권 대학들의 기숙사 수용율은 거의 바닥에 가깝다. 그래서 학생들의 '삶의 질''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고 여기에 세계 최고 수준의 등록금으로 학부모들의 허리가 휘어질 지경이다. 물론 등록금 자체를 보면, 한국의 등록금은 미국에 비할 바가 못된다. 그러나 미국은 국공립 대학의 비율이 매우 높기 때문에, 한국의 비용 부담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2011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사립대 평균 등록금은 연간 768만 6000원으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수준이지만, 미국은 등록금 부담이 비교적 적은 국공립대의 비율이 매우 높다.
[표 ➀]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한국의 국공립 대학은 24.4%, 일본은 24.6% 등에 불과한 반면,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국공립의 비중이 80∼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이 같은 사정은 한국이 경제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국민교육의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교육을 주로 사립에 의존한 결과이다. 이것은 이미 60여년 이상 지속되어온 것이기 때문에 당장 정부의 교육 투자로 해소할 수 없다. 따라서 흔히 교육 문외한 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무리하게 정부의 교육 투자를 OECD 선진국 수준으로 바로 확대하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것은 국립대학교 수를 그 만큼 늘린 다음에나 가능한 말인데 한국의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고등교육을 국가가 전담하다시피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만 보면, 한국의 대학 등록금은 세계 최고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만큼 상대적으로 한국 대학생들의 경제적 부담이 크다는 말이다.
가구의 소비지출 가운데 고등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도 2005년 4.4%에서 2010년에는 6.4%로 높아졌다. 특히 대학 등록금을 내야 하는 1분기(1학기)와 3분기(2학기)에는 이 비중이 훨씬 높다. 1분기의 경우 2005년 8.2%이던 소비 지출 대비 고등교육비 비중이 2009년에는 13.5%, 2011년 11.5%에 달했다(<한국경제> 2011.6.12).
이 때문에 상당수 대학생들은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각종 아르바이트(part time job)를 해야 한다. 일부는 유흥업소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한 일간지의 보도에 따르면, "많은 대학생이 1학기 기말고사 이후 맞이하는 여름방학부터 유흥업소 등에서 본격적으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접대부·웨이터로 빠져 한 학기 수십명 자퇴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경향신문> 2011.6.10) 이런 사연들은 이미 언론에 많이 보도되었기 때문에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그동안 등록금 부담을 줄이기 위한 여러 가지 정책적 검토들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과도한 재정지원 문제로 무산되었다. 그런데 1989년 사립대 '등록금 완전자율화 조치'가 취해지면서 대학이 등록금을 마음대로 책정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등록금 인상률은 두 자릿수로 뛰기 시작했으며 2002년엔 국·공립대도 등록금 자율화의 대상이 되었다. 이전보다 훨씬 더 가계 부담이 커지자, 2007년 대선 공약에는 반값 등록금이 서서히 등장하기 시작했다.
2012년 대통령 선거가 있자, 정치권은 20대를 겨냥하여 그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이른바 '반값 등록금'을 본격적으로 들고나왔다. 이로 인하여 대학과 정부는 재정적인 문제로 또 한번 휘청거리게 되었다. '반값 등록금 파동'은 2012년 당시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내놓은 등록금 인하 당론과 관련된 논란이다. 여기에 여러 시민단체들도 가세했다.
바닥에 가까운 기숙사 수용률, 숙식비가 더 문제
사실 등록금만이 문제가 아니다. 등록금은 분납(分納)이라든가 다양한 형태의 장학금, 후불제 등 여러 가지 형태로 보완이 가능하지만 숙식비는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2014년 서울 소재 대학교의 월 평균 기숙사비는 1인실은 평균 35만 7000원, 2인실 22만 1000원, 3인실 18만 1000원 등으로 나타나 일반적인 2인실 이하는 크게 부담스러운 정도는 아니었다(<대학알리미>, <머니투데이> 2015.1.10). 문제는 기숙사 들어가는 것이 '하늘에 별따기'라는 것이다.
[표➁]에서 보면 수도권의 기숙사 수용률은 15.8%에 불과하다. 수도권 대학생의 대략 절반이 지방 학생이기 때문에 36% 정도의 학생들이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하고 대학 주변을 떠돌아야 한다. 그런데 수도권에는 지방 학생들이 아니라도 기숙사에 들어가는 경우도 많고, 하숙 또는 자취를 하는 경우도 매우 많다. 그래서 기숙사 수용이 되지 못하는 학생들의 비율은 이보다 훨씬 상회할 것이다. 그리고 설령 기숙사에 들어간다 할지라도 기숙사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수도권 대학 기숙사의 평균 관리 비용은 84만 3000원으로 지방 대학들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표➂]) 수도권과 광주전라권은 거의 2배에 가깝게 벌어지고 있다. 그나마도 기숙사에 들아간다면 말이다. 흥미있는 것은 수도권에 가까워질수록 이 비용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전국에서 기숙사 관리 비용이 가장 높은 대학들을 20개를 뽑으면 대부분이 수도권 대학들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재학생 평균이 1만명이 넘는 대규모 대학들임을 알 수 있다(학생 수가 많은데 기숙사비도 비싸니 아이러니하다. 학생들이 비즈니스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게 분명하다). 기숙사 수용률도 바닥인데다 관리비 또한 매우 비싸다([표➃]).
식비(食費) 또한 다르지 않다. 전국 4년제 대학교 기숙사 식비를 비교해 보면, 식비가 가장 비싼 대학들은 역시 수도권의 대규모 대학들이고 기숙사 수용률도 바닥에 가깝다. 물론 식비는 다른 비용에 비하여 큰 차이가 나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하루 세끼를 먹어야 하므로 실제로는 엄청난 부담을 주기도 한다.
이와 같이 기숙사 수용률도 바닥인 상태에서 설령 기숙사에 들어간다고 해도 관리비, 식비 등이 매우 비싸기 때문에 학생들, 특히 지방학생들의 부담은 매우 클 수밖에 없다.
반값 등록금 투쟁의 시작은 '방 구하기 전쟁'
대학가에는 신학기만 되면, '방 구하기 전쟁'이 일어난다. 2015년 현재 고시원보다 나을 것도 없는 원룸마저 월세 40만원을 넘기고 있다. 최근 급증한 '민자기숙사(BTL : 민간 사업자가 기숙사를 지어 일정기간 동안 운영하며 얻는 임대료를 통해 투자금을 회수하고 학교에 기증하는 방식)'의 경우, 학교 직영 기숙사보다 훨씬 더 비싼 기숙사비를 책정하기 일쑤이다. 연세대, 고려대, 건국대, 경희대 등이 대표적인 대학들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대학 주변에서 대학생활을 해야하는 주거 약자인 대학생들의 주거비 부담은 심각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일부 대학가 주변에선 임대소득을 늘리기 위한 불법건축물이 횡행해 대학생들의 주거안정을 위한 정부의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
예를 들면, 주변 원룸보다도 비싼 기숙사 비용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연세대학교에서는 총학생회가 다른 대학의 기숙사를 직접 찾아가 비교하는 동영상을 제작해 배포하는 '기숙사 원정대'를 꾸리기도 했다(<CBS노컷뉴스> 2015.1.9). 올해 1월 5일 연세대 총학생회와 '민달팽이유니온' 등 시민단체는 "연세대 기숙사 '우정원' 기숙사비가 주변 원룸시세보다 비싸다"며 기숙사비 인하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문제는 이 '우정원'이라는 기숙사는 부영그룹이 100억원 상당의 건축비를 투입해 기증한 것인데 기숙사비가 월 70만 4200원(2인실 기준)에 달하여 주변 비슷한 면적의 원룸 임대료(보증금 1000만원에 50만∼55만원)보다도 월등히 비쌌다는 것이다(<머니투데이> 2015.1.10).
<전국대학교 생활관 관리자협의회(2014)> 자료에 따르면, 식비를 제외한 1학기 관리비가 연세대(본교)는 165만원, 건국대(본교)는 135만원인데 반하여 동양대(경북 영주소재)는 50만원이다. 일반적으로 수도권에서 횡행하는 BTL 기숙사는 1학기에 130만원∼180만원 정도인데 지방대학의 기숙사는 50∼70만원 정도이므로 학생들의 주거비만 수도권이 3배 이상에 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수도권에 있는 지방 학생들의 '삶의 질'이 바닥일 수밖에 없다.
수도권은 땅값이 비싸기 때문이라는 것은 변명이 안된다. 직영 기숙사든 BTL이든 대학내의 부지에 짓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대학들이 참된 의미에서 학생 '삶의 질'에 관심이 없는 것이다. 학생을 오로지 소비자로 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일 뿐이다. 조금 과장되게 말한다면, 수도권의 한 달 생활비와 지방대학생들의 한 학기 생활비와 맞먹는 경우도 있다. 지방 대학생들이 수도권 학생들보다 생활형편이 더 나은 것은 결코 아닌 점을 수도권 대학들은 인식해야 한다.
적립금은 쌓이는데
대학등록금 인상 투쟁과 '학생 삶의 질'에 관한 문제는 여러 차례 제기되었지만, 그때마다 대학들은 재정상의 이유를 들어서 이를 무시해왔다. 만약 대학에 적립금이 충분히 쌓여있다면, 가장 먼저 학생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투자에 주력을 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상당수의 대학들은 자체 모금된 펀드가 학생들의 '삶의 질'의 증진이나 '학업 유지(장학금)'를 위해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개별 대학의 자산 확대로만 주로 활용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사립대 등록금 완전자율화 조치(1989)이후 등록금 인상도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등록금 1천만원 시대에 돌입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화여대는 지난 해 건축 예산 93억원을 책정했었지만 쓰지 않았다. 이 돈은 그대로 쌓였고, 적립금 총액은 6500억 원을 넘어섰다. 적립금을 더 쌓기 위해 예산을 부풀려 잡았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홍익대 5500억, 연세대 4500억, 수원대 2900억 등 사립대들의 적립금 총액은 10조원대에 달한다. 절반 이상은 학생들 등록금으로 쌓은 것으로 추산된다"고 한다(<MBC 뉴스데스크> 2011.06.15).
사정이 이러한데도 이들 대학들은 정부 지원만 요구하고 있다. 사용 내역 공개조차 꺼리는 이 돈들을 장학금이나 기숙사 건설 등으로 사용하면 학생들의 '삶의 질'을 높이면서 등록금도 일정 수준을 유지하거나 낮출 수 있을 것이다.
생활고에 지친 학생들이 "늘 돈이 없다"며 죽는 시늉만 하는 대학들의 적립금의 실상을 알게 되면서 분노가 터져 나온 것이 바로 '반값 등록금 투쟁'인 것이다.
삶의 질도 대학평가의 지표가 되어야 한다
대학 구조개혁이 진정한 의미에서 사회적 문제라고 인식한다면 무엇보다도 대학생들의 '삶의 질'의 요소들도 고려해야만 한다. 기숙사 수용률, 관리비, 식비 등도 중요한 지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또 이것이 사회안전도도 높일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학업 정진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학생 불만 제로 사회'로 바꿀 수 있는 묘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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