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듣는 개 기분 나쁘겠지만 "개같은…"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듣는 개 기분 나쁘겠지만 "개같은…"

[민교협의 정치시평] "복지 확대 되면, 국민 나태"라는 망발

말은 인간에게는 존재와 같다. 이와 관련하여 널리 회자되는 철학적 언설은 맥락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닌다. 독일 철학자 마틴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 표현했다. 이 말은 본래 사물이 있게 되는 것이 존재이기에 말이 말의 표현을 통해 사물을 존재하게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즉 말이 하나의 사물이나 사건을 그 사물과 사건으로 만든다는 뜻이다. 그러니 그 말을 하는 사람은 그 말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또한 칼 마르크스는 인간의 생각과 의식을 존재와 관련지어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여기서의 존재는 그가 속한 사회적 계층이나 계급을 가리킨다. 이 두 언설을 연결 지어 보면 한 사람의 생각이란 결국 그가 속한 계급에 따라 결정되며, 그 생각과 존재는 그가 하는 말을 통해 되풀이되는 셈이다.   

지난 2월 5일 여당 대표라는 사람이 "복지가 확대되면 국민이 나태해진다"는 발언을 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복지가 과잉으로 베풀어져 필연적으로 부정부패가 따라온다고 덧붙였다. 옛날 어른들은 삶을 별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등 따스고 배부르게" 살고, 이웃과 화목하게 살면서 백수를 누리는 것이 사람들이 사는 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여당대표란 사람이 이런 삶을 사는 것이 나태한 것이고, 또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가 이런 태도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참 우리나라 사람들은 관대하다 못해 너무도 심성이 착한 사람인 듯하다. 마치 조선 시대에 머슴이 편안하게 지내면 배 아파 견디지 못하는 주인집 마나님 말씀 같다. 하기야 무슨 짓을 해도 변함없이 지지해주니 머슴처럼 보이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더욱이 이 나라의 고질적인 부정부패가 복지와 연결된 듯이 말하는 그 교활한 말솜씨에 치가 떨린다. 새누리당의 전신이 "차떼기당"이란 별칭으로 불렸던 과거를 잊었나. 일반인들은 부정부패를 저지르려 해도 저지를 능력이 안 된다. 정치인과 고위 관료, 법조인들의 부패가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한 반성은 없이 부정부패를 복지 과잉으로, 국민들이 추구하는 최소한의 행복을 나태와 연결 짓는다. 그런데도 사회에서나, 그의 지역구에서도 여기에 분노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얼마 전 소위 국가를 대표한다는 사람이 "청와대 실세는 진돗개"라고 말했단다. 그 말을 들으니 정말 이 나라의 정치권과 사회를 움직이는 실세는 청와대 진돗개와는 다른 어떤 개, 뭐 삽살개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와 법이 청와대를 향해 꼬리치고, 관료들이 자기 이익을 위해 삽살개 같은 짓을 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해야 이 나라에서는 실세가 된다. 그래야 복지 따위는 아예 문제가 되지도 않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삶이 어찌 나태해질 수 있을까. 개를 키워 본 사람은 누구나 안다. 개가 얼마나 부지런한지. 개는 할 일이 없어 낮잠을 즐길지언정, 나태하지는 않다. 

이 나라는 모두들 실세가 되기 위해 개처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언론이, 대형교회가, 대학 운영자들이 그렇다. 그래서는 안 되는 집단일수록 더 그러하다. 이 말이 지나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조롱 섞인 말을 하지 말라고 지청구할 것인가. 그들이 국민을 조롱하고 모욕하는 데 이정도 조롱이 뭐 대수인가. 한국 언론을 보라, 그들의 보도 행태를 보면 이런 말을 못할 것이다. 세금조차 거부하고 집단 이익과 현실적 성공을 신의 축복으로 오도하는 일부 대형교회가 그렇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상지대학교 사태를 보라. 비리 사학을 감독해야할 "사학분쟁조정위원회"나 교육부가 대학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이런 말이 어찌 지나치다고 말할 수 있는가. 검찰은? 국정원은? 경찰은?. 국정원 대선개입이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묻히고, 검찰과 경찰이 개입하여 이 사건을 무마하여도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나라에 무슨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말인가. 수십조를 허공에 날리고도 자랑질을 일삼는 데도 어떠한 책임 추궁도 따르지 않는다. 온갖 비리와 부패를 저지르고도 국민들 위에 군림하는 자리에 오르려고 들 하지 않는가. 서민 증세와 당연히 있어야할 국민에 대한 국가의 기본적 의미가 무상 복지 등의 언설로 무마되며, 서민 증세에서 보듯이 국가가 기업을 위해 존재한다는 인식이 일반화된 나라에서 어떻게 경제적 민주를 기대할 수 있는가. 국민들은 이유도 모르는 채 죽어가고, 땅에서 기고 하늘로 올라도 아무도 관심 쏟지 않는다. 뭐라고 한 마디라도 할라치면 종북좌파라고 겁박한다.

개처럼 말하고 개처럼 살아서는 개 같은 존재가 될 뿐이다. 듣는 개 기분 나쁘겠지만 "개같은"이란 말은 개에게는 엄청난 모독이다. 우리가 개처럼 살지 않기 위해서는 깨어 있어야 한다. 이 나라의 실세들에게서 더 이상 희망과 인간다움을 바랄 수 없다면 우리가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가고, 그를 위한 개혁과 행동을 이끌어가야 한다. 시민의 자각과 의식, 또 그에 따른 자율적이며 독립적인 행동만이 우리의 삶을 구하는 길이다. 개 같은 실세를 벗어나 인간다운 삶을 이끌어가는 인간만이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자율적 인간이며 계몽된 의식을 가진 시민으로써의 권리를 자각하며, 같은 시민에 대한 연대와 책임을 함께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가 지향하는 공동체는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한 말의 공동체이며, 의식과 생각의 공동체이다. 자신의 존엄을 스스로 지키지 못하면 우리는 개만도 못한 존재가 될 것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