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이제 우리가 밥상을 차릴 때"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이제 우리가 밥상을 차릴 때"

[팽목항으로 부치는 편지] 여전히 세월호가 아픈 국민 여러분께

여전히 세월호가 아픈 국민 여러분께

'국민 여러분께'라고 입을 떼고 보니 난감하기만 합니다. 국민이라는 호칭이 국가라는 단위를 상정하기 마련이고, 어느새 국가는 통치라는 개념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국가라고 할 때 우리는 대통령이라든가 장관, 또는 국회의원 같은, 나라의 법률과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권력기관을 상상하게 됩니다. 어쩐지 국민이라고 하면 이런 통치와 지배의 권력기관을 기점으로 우리가 한통속으로 묶이는 기분이 들어 썩 유쾌하지가 않지요.

그런데 또 달리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요. 더군다나 세월호 참사와 같은 절대로 개인적이거나 우발적일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나고 보면 그 사건에 대응하고 반응하는 우리는 결국 국민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지요. 그러니 국민이라는 말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내 삶이 다른 이들의 삶과 연루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자명한 실감을 바탕으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타인의 고통에 무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고통은 곧 내가 겪고 있는, 겪을 수 있는 고통과 아픔의 다른 형태이기도 하다는 것을 실감하는 그런 공동체의 감각. "믿을 것은 국민 여러분 밖에 없습니다" 하고 유가족 여러분들이 호소할 때, 그 국민이란 그런 것이겠지요. 유가족들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고, 그들의 억울함에 분노하며, 그들이 받는 국민 취급을 곧 내가 받는 자존감의 상처로 생각할 수 있는 우리 모두.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우리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다시 국민 여러분께.

팽목항 가족식당의 밥상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앞서 이시백 소설가도 밥상 이야기를 하셨네요. 1박 2일의 짧은 일정을 함께 움직였으니, 마음에 오래 밟히는 장면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테지요. 좀 늦은 아침식사였어요. 숙소에서 20분 거리의 팽목항 분향소는 유난히 쓸쓸하고 휑했는데, 가족식당이 있는 컨테이너 안에는 훈훈한 밥냄새가 가득했어요. 45명의 작가들은 식판을 들고 줄을 서서 밥과 반찬을 담아 삼삼오오 식사를 했어요. 검은 쌀이 섞인 잡곡밥은 뜸이 잘 들어 늦은 식사의 허기를 달래 주었습니다. 양념이 잘 밴 생선도, 알맞게 데쳐 사각사각 씹히는 시금치나물도, 온기가 남아있는 말랑한 고구마도 입에 착 맞게 달았습니다. 짭조롬한 장아찌에 고소한 멸치볶음까지 있어서 마치 집에서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는 기분이었습니다. 괜시리 푸근하게 마음이 탁 놓여서 별 것 아닌 농담에 소리를 내어 웃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아참 여기가 팽목항이지 하며 멈칫하기도 했구요. 우리에게 이 밥상을 차려 주기 위해 유가족 여러분들은 새벽부터 서둘러 밥을 짓고 생선을 조리고 나물을 무쳤겠지요. 집에 돌아와 어설픈 밥상을 차리다가 그 때의 그 밥상을 종종 생각합니다. 그 밥상을 차린 마음들도요.

생각해 보니 유가족들은 새해 첫 아침에도 이런 밥상을 차렸었지요. 위로해 주고 걱정해 준 국민 여러분들과 떡국 한 그릇 함께 먹자는 취지였는데, 초대받은 대통령은 끝내 참석하지 않아 빈자리에 떡국만 식어 갔노라는 뉴스도 보았어요. 갑자기 떠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수습하기에도 경황이 없을 유족들이 매번 그래도 감사하다고 밥상을 차립니다. 그리고 참 면목없이, 할 수 있는 일이 맛있게 먹는 일밖에 없다는 듯이 우리는 최선을 다해 밥을 먹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유가족이 차린 밥상을 받아 먹기만 한 것은 아닌지, 뒤늦게 그 날 먹은 밥에 목이 멥니다.

1박 2일의 팽목항 방문 동안 유가족들에게 제일 많이 들은 말이 '미안하다'와 '감사하다'였습니다. 엄마들이, 아빠들이 잘 몰라서 내 아이들을 죽게 했다고, 뒤늦게 미안하고 미안해서 잠을 이룰 수 없다고. 떠나고 나니 아이들이 얼마나 큰 삶의 희망이고 보람이었는지 더 많이 알게 되어 감사하다고. 적어도, 위로받고 보호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되려 스스로를 자책하게 만드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원망하고 소리치며 화풀이라도 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감사하다고 고개를 숙이게 만들다니, 참 뻔뻔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세월호의 비극을 함께 앓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분들은 아직 많이 외롭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또 국민 여러분께

누더기가 된 세월호 특별법이 그나마도 제대로 실행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특별법에 무너진 유가족들의 마음은 세월호 인양을 두고 또 말할 수 없는 상처를 입고 있습니다. 모두 힘들었지만, 더 이상 애쓸 수 없이 애쓰셨다는 것 알고 있지만, 가장 힘든 사람들이 최전선에 있다는 것 잊지 말자는 말, 하고 싶었습니다. 세월호 사건뿐 아니라, 그 이후에 일어난 일들도, 그리고 가장 힘들었을 유가족들의 상처도, 착잡한 마음 다잡고 애썼던 우리 모두의 시간도 절대로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잊지 않을 뿐 아니라 서로 힘내자고 끼니 챙기면서 또 함께 가야 하겠지요. 전국 각지에서 모인 가족들이 밥상 사이에 두고 마주 앉는 명절입니다. 누구보다 쓰리고 아파 차마 울지도 못하는 또 다른 가족들의 숟가락도 함께 놓아 주십시오. 부끄러운 정부를 가진 탓에 늘 마음이 가난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함께 있어서 서로가 더 큰 자랑이 되고 더 큰 믿음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닐지요. 새해에는 꿈꾸는 것 모두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

"실종자는 찾아내고, 세월호는 인양하라."

2015년 음력 설을 앞두고
서영인 드림.
▲ ⓒ서영인

지난 1월 23일 안산 분향소와 팽목항을 다녀온 작가들이 '팽목항으로 부치는 편지'를 제안해 왔습니다. 여전히 고통과 슬픔에 잠겨 있는 유족들을 위로하고, 아직 차가운 물 속에 있는 실종자들을 찾아내기 위한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자는 취지입니다. 팽목항에는 국민들로부터 온 편지를 수신할 우체통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정우영 시인의 편지를 시작으로 8명의 작가들이 팽목항으로 보내는 편지를 연재합니다. 작가들이 시작하지만 온 국민이 쓴 손편지가 속속 팽목항에 모여들기를 작가들은 바라고 있습니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국민들의 따뜻한 편지가 유족들의 시린 마음을 데우고 망각할 수 없는 참사를 되새기는 힘이 될 것입니다.


편지를 보낼 주소는 539-842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 윤희 삼촌(김성훈)입니다.

[팽목항으로 부치는 편지]

<1> "편지 한 통의 기적을 꿈꿉니다"

<2> "팽목항은 어머니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3> 세월호 유족이 차려준 밥상의 의미

<4> "울면 지는 겁니다"

<5> "진도의 닭 울음소리, 들어보신 적 있나요"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