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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기자가 '도시의 광부'된 사연은…

[함께 사는 길] 건전지 재활용으로 '도시 광부' 될 수 있다

직장에서 퇴근한 장 기자. 현관문 열고 집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으면 저녁 요리를 한다. 밥은 TV를 시청하며 먹고, 상을 물리면 소소한 집안일과 함께 컴퓨터로 인터넷을 하며 여가를 보낸다. 가상세계를 여행하다 정신을 차리면 어느덧 자정이 가까운 시각. 그리 한 것도 없는데 벌써 잘 시간이다. 아쉽지만 아침 알람을 맞추고 잠을 청한다.

특별할 것 없는, 집에서 보내는 일반적인 저녁 시간 풍경이다. 그럼 이 단순한 시간을 보내며 총 몇 개의 건전지(배터리)를 사용했을까? 살림살이가 매우 소박한 편인 나는 작은 집에 홀로 살기에 꼭 필요한 제품 외에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가구나 가전제품은 가급적 사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가 사용한 건전지는 현관문 도어락에 4개, 가스레인지에 2개, TV 리모컨에 2개, 셋톱박스 리모컨에 2개, 컴퓨터에 1개, 손목시계에 1개…. 어림잡아도 무려 12개의 건전지를 사용하고 있었다.

건전지 없이 살 수 없는 세상

▲ 건전지가 사용되는 TV 및 셋톱박스 리모컨. ⓒ함께사는길(장병진)
자, 이제 여러분의 집을 살펴보라. 과연 몇 개의 건전지를 사용하고 있나? 현관문 도어락, 가스레인지, TV·셋톱박스 리모컨, 에어컨 리모컨, 카메라, 컴퓨터, 무선 키보드·마우스, 각종 시계, 손전등, 게임기, 자동차 스마트키, 화재경보기, 디지털 체중계, 각종 장난감 등등. 일반 가정이라면 십수 개는 기본일 테고 수십 개에 달하는 집도 많으리라. 게다가 이는 한번 쓰고 버리는 1차전지 가운데 AA, AAA, LR44 등 일반 건전지나 단추형 건전지만 센 것으로, 휴대폰이나 노트북 배터리 등의 기타 전지는 제외한 숫자다.

어렴풋이 생각은 했었지만, 일상생활에서 이렇게 많은 건전지를 소비할 줄이야.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건전지 없이 살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된 건전지를 쓰지 않는 삶! 시작과 동시에 당장 불편한 건 TV였다. 전원을 켜고 끄고 채널을 바꾸거나 음량을 조절할 때마다 TV나 셋톱박스 앞으로 다가가야 했다. 게다가 요즘 TV 같은 기기들은 리모컨이 없으면 모든 기능을 다 사용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하루를 기약하고 시작된 나의 비장한 도전은 부끄럽게도 고작 2시간 만에 굶주린 배를 움켜쥐며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밥을 먹기 위해 가스레인지 불을 켜야 했기 때문이다. 집에 라이터도 없어 임시로라도 가스 불을 피우는 게 불가능했다. 분명 어릴 적 집에서 사용했던 가스레인지는 건전지 없이 켜지는 모델이었는데…. 일단 실패를 선언하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문제는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조리 없이 먹는 간편식이나 불을 피우는 도구를 준비하고 시작한다 해도 이 도전은 많은 이들에게 불가능한 일임이 분명했다. 손잡이형 도어락을 쓰는 집에선 건전지가 없다면 집 안으로 들어갈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의식하진 못했지만, 오늘날을 사는 우리는 건전지 하나 없으면 '먹고' '사는' 것 모두가 불가능했다.

이 많은 건전지는 다 어디로?

소모품이라는 점에서 가급적 사용을 줄이면 좋겠지만, 소비자로서 건전지는 많은 영역에서 포기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이미 대부분의 제품이 건전지 없이는 사용할 수 없게 만들어졌거나 혹은 무선기기라는 점에서 건전지가 제품의 기능을 온전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가급적 충전으로 재사용이 가능한 건전지를 사용하는 것이 좋지만, 기기의 특징과 맞지 않은 경우도 있고 이 또한 언젠가는 버리는 날이 온다.

그렇다면 대체 우리는 얼마나 많은 건전지를 쓰고 버릴까? 2012년 출고량을 기준으로 산정해보면, 한해 우리나라에서 버려지는 건전지는 약 1만 1000톤 정도다. 건전지의 평균 무게를 20그램으로 산정하면, 한해에만 약 5억 5000만 개가 소비되는 셈이다. 하지만 이 가운데 재활용이 되는 건 18퍼센트(%) 정도인 2000톤, 개수로 약 1억 개뿐이다. 즉, 국민 1인당 한해 10개의 건전지를 버리는데, 분리배출을 하는 건 2개뿐이며 나머지 8개는 그냥 버린다는 이야기다. 제품의 생산자에 재활용 의무를 부과하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는 2003년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배출되는 폐건전지의 90퍼센트를 차지하며 가장 많이 사용되는 망간·알칼리(알칼라인)전지는 뒤늦은 2008년부터 생산자책임재활용 대상에 포함되었다는 점도 아쉽다. 이후 회수율과 재활용률이 높아지긴 했지만 지금 정도로는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

▲ 분리배출되는 배터리는 일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나머지는 그냥 버려져 우리의 목숨을 위협한다. ⓒJohn Seb Barber

건전지의 재활용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가 무심코 버리는 건전지가 부메랑처럼 돌아와 우리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미나마타병을 일으키는 수은이 다량 함유된 수은전지의 경우 90년대 중반 국내 생산이 중단되어 현재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수입 건전지에는 여전히 수은이 함유된 제품이 있으며, 그 외에도 철, 아연, 망간, 니켈, 카드뮴 등 인체에 해로운 물질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 매립되면 토양으로 흘러들어 다시 우리의 입으로 들어올 것이고, 소각되더라도 대기의 매연으로 바뀌어 우리를 병들고 죽게 할 것이다. 단추만 한 건전지 하나가 한 사람이 평생 마실 양인 600톤의 물을 먹을 수 없게 만들 정도라 하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도시 광부가 되어주세요!

우리에게 독이 되는 폐건전지. 하지만 조금만 귀찮음을 무릅쓴다면 독은 약이 될 수도 있다. 폐건전지는 훌륭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폐건전지 재활용 업계에 따르면, 폐건전지는 버릴 것 하나 없을 정도로 알차게 재활용이 가능하다. 특히, 폐건전지의 대다수인 망간·알칼리전지의 경우 세라믹 벽돌 착색제나 투수율이 높은 기능성 바닥 벽돌을 만들 수 있는 망간분말과 함께 철, 아연 등의 철강 재료를 추출할 수 있는데, 폐건전지 1만 톤으로 1700톤의 망간과 2000톤의 아연을 회수할 수 있다. 전량 수입해야 하는 망간과 자급도가 매우 낮은 아연의 수입을 그만큼 덜 해도 된다는 이야기다. 또한, 산화은전지의 경우 은괴나 장신구를 만들 수 있고, 니켈카드뮴전지나 수소전지 그리고 리튬전지도 모두 철강 재료로 재활용될 수 있어 폐건전지 시장은 도시 광산으로도 불린다.

하지만 업계의 기술과 시설, 충분한 사업성에 비해 회수되는 폐건전지가 매우 적은 것이 문제다. 이제 우리의 철저한 분리배출이 필요한 시점이니, 오늘부터 여러분도 도시 광부가 되어 보는 건 어떨까? 방법은 이미 설명도 필요 없을 정도로 어렵지 않으니.

▲ 분리배출된 건전지에서 각종 철강재료 등을 얻을 수 있다. ⓒ함께사는길(이성수)

TIP
건전지도 종류별로 어울리는 사용처가 있다.

라디오나 게임기, 전동 장난감, 카메라 플래시 등 큰 전력이 필요한 기기에는 알칼리전지나 충전식 전지를, 가스레인지나 시계, 리모컨 등 단시간 가끔 사용하거나 작은 전력으로 움직이기는 기기에는 가격이 저렴하고 간헐방전 조건에서 수명이 긴 망간전지가 어울린다.

또한, 여러 개의 건전지를 사용하는 기기의 경우 교체할 때 부분교체를 지양하고 한꺼번에 같은 제품으로 바꾸는 것이 좋다.

* 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 <함께 사는 길>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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