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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족이 차려준 밥상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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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족이 차려준 밥상의 의미

[팽목항으로 부치는 편지] "다윤아, 너를 끝까지 기다릴게"

다윤이 어머님께

어머님, 요즘 어떻게 지내시느냐고 안부를 여쭙기도 어렵습니다.
지난 1월에 45명의 작가들과 팽목항을 다녀왔습니다. 글이나 쓰는 작가들이 무슨 힘이 될까 싶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속절없이 잊혀져가는 세월호의 슬픔을 가슴에 새기기 위해 나선 길이었습니다.

한겨울의 팽목항은 쓸쓸했습니다.
유족들께서 준비해 주신 아침 식사를 함께 나누며, 그 따뜻한 밥에 담긴 뜻에 목이 메었습니다. 그 밥이야말로 차가운 물속에 잠긴 아이들에게 차려주고 싶은 어머님의 간절한 마음이 담긴 밥상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끼니 때마다 비어 있을 밥상의 한 자리가 얼마나 크고 허전하셨겠습니까. 많이 드시고 힘을 내라시던 유족분들의 말씀이야말로 바다 속의 아이들에게 전하는 외침임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그날, 저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눈물의 밥상을 받았습니다.

윤희 삼촌께서 전해 주신 말씀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아직도 어린 자녀들을 차가운 바다에 잠겨둔 아빠들은 하나같이 손을 떨고 계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루도 술 없이는 지내지 못하신다는 말씀이 쇠못처럼 가슴을 후벼 팠습니다. 어찌 그 슬픔을 온전히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분향소에 들렀습니다.
그곳에 놓인 해맑은 아이들의 영정 사진을 대하는 순간 가슴이 쇠망치로 맞은 듯 먹먹해져 눈물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기가 막힌다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걸 몸으로 느꼈습니다. 사진 속의 아이들은 하나같이 밝은 모습이었습니다. 봄날의 어느 꽃보다 더 화사하게 웃음을 짓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대하며 저는 죄인이 되었습니다.
그 영정들 틈에는 사진이 없는 아홉 개의 빈 자리가 군데군데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허다윤, 조은화, 남현철, 박영인 학생과, 고창석, 양승진 선생님, 그리고 권혁규 어린이와 권재근 아빠, 이영숙 님의 자리였습니다. 사진도 볼 수 없는 그 빈자리는 유난히 크고 깊은 슬픔으로 다가왔습니다. 볼 수 없기에 더욱 간절한 그리움이 그 자리를 채우고, 만날 수 없기에 더욱 보고 싶은 안타까움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차가운 바다 속에서 가족의 곁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아홉 명의 빈자리가 채워지는 날까지 이 나라는 침몰 중입니다. 아홉 명의 실종자가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오고, 선체를 인양하여 어떻게 해맑은 아이들이 바다 속에 수장되어야 했는지 그 진상을 낱낱이 밝혀내고, 그에 합당한 책임을 물을 때까지 이 나라는 바다 속에 가라앉아 있는 것입니다.

세월호의 슬픔은 대한민국의 슬픔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 배의 승조원이며, 우리의 아이들이 모두가 그 배에 탔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많은 세월이 흘러도 그 참혹한 침몰의 비극은 잊혀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민생이나 경제를 내세워도 세월호의 슬픔을 희석시켜서는 아니 됩니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보다 더 절실하고 큰 민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세월호를 인양하고 실종자를 찾아내어 진상을 규명하는 것이야말로, 영문도 모른 채 수장된 고혼들을 위로하고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를 제2, 제3의 참사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지겹다, 이제 그만 좀 하라", "세월호는 세금폭탄이다", "세월호 때문에 경제가 침체했다"는 망언을 용서해서는 아니 됩니다. 그런 말들이야 말로 세월호를 침몰시켰으며, 억울한 희생자들을 수장한 장본인인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난해, 저는 아들을 군대에 보냈습니다. 아이만 훈련소에 떼어놓고 돌아오는 내내 어미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에 아이의 옷과 신발이 든 소포가 집으로 배달되어 왔습니다. 아이가 신고 다니던 해진 운동화 뒤축을 한참동안 쓰다듬었습니다. 어미는 아이의 체취가 밴 옷을 끌어안고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이태 만에 돌아올 아이를 잠시 떼어놓고도 이리 허전하고 슬픈 것이 부모의 마음일진대, 잘 다녀오겠다고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를 졸지에 잃은 부모의 마음이야 오죽 하겠습니까. 제주에서 돌아올 때 조개껍질을 주워와 엄마 목에 걸어 주겠다던 아이가 눈앞에서 배와 함께 바다에 잠기는 걸 본 부모의 마음이 어떠할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턱턱 막힙니다.

아직도 집에 들어가지 못한 채 밖으로 도는 어머니가 계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이의 텅 빈 방을 열면 갈피를 접어놓은 책이 그대로 놓여 있고, 아이가 조잘거리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할 테니 어떻게 휑뎅그레하게 비어 있는 아이의 방을 바라볼 수 있겠습니까.

다윤이 어머니의 심경은 그보다 더욱 참담하실 것입니다. 아직도 차가운 바다 속에 잠긴 채 가족의 곁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실종자 가족의 슬픔과 아픔은 감히 입에 올려 위로하기조차 조심스럽습니다. 무엇으로 그 슬픔을 위로할 수 있겠습니까. 이 세상의 어떤 말이 그 참담한 슬픔을 위로할 수 있겠습니까. 생때같은 자식이 영문도 모른 채 바다 속에 잠기어 있는데, 무엇이 그것을 보상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참혹한 슬픔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홉 명의 실종자가 가족의 곁으로 돌아오는 날까지, 그 슬픔을 함께 하며 다윤이 어머님께서 하신 말씀을 함께 외치는 것입니다.
"내 사랑 다윤아, 엄마는 너를 끝까지 기다릴게."

어머님께서 남기신 그 글이야말로 모든 실종자 가족들이 지닌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그 마음이야말로 세월호 희생자의 모든 유족들과 그 슬픔을 지켜보아야 했던 이 나라의 국민들이 함께 지녀야할 마음이라 하겠습니다.

이제 서툰 붓이나마 그 슬픔을 되새기는 것은 바로 다윤이를 기다리는 어머님의 심경과 다르지 않은 마음으로 그 슬픔을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다윤이 어머님.
어떤 말씀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겠지만, 다윤이가 한시라도 빨리 어머님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담아 편지 한 장을 전해 올립니다. 부디 힘내시고, 건강을 살피시기를 바랍니다.
저희 작가들은 그 날이 올 때까지 세월호 참사로 슬픔에 잠겨 있는 유족과 실종자 가족들과 함께 할 것을 다짐하며 이렇게 외치기로 하였습니다.

"실종자는 찾아내고, 세월호는 인양하라"

2015년 2월 4일
이시백 드림.

지난 1월 23일 안산 분향소와 팽목항을 다녀온 작가들이 '팽목항으로 부치는 편지'를 제안해 왔습니다. 여전히 고통과 슬픔에 잠겨 있는 유족들을 위로하고, 아직 차가운 물 속에 있는 실종자들을 찾아내기 위한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자는 취지입니다. 팽목항에는 국민들로부터 온 편지를 수신할 우체통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정우영 시인의 편지를 시작으로 8명의 작가들이 팽목항으로 보내는 편지를 연재합니다. 작가들이 시작하지만 온 국민이 쓴 손편지가 속속 팽목항에 모여들기를 작가들은 바라고 있습니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국민들의 따뜻한 편지가 유족들의 시린 마음을 데우고 망각할 수 없는 참사를 되새기는 힘이 될 것입니다.


편지를 보낼 주소는 539-842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 윤희 삼촌(김성훈)입니다.

[팽목항으로 부치는 편지]

<1> "편지 한 통의 기적을 꿈꿉니다"

<2> "팽목항은 어머니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 ⓒ프레시안(손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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