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빵 뺑소니', '13월의 세금폭탄', '인천 어린이집 폭행', '땅콩회항' 등 요즘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각종 사건·사고들을 보면, 그 전개 과정에서 미디어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소셜미디어(SNS)의 역할은 가히 독보적이다. 때로는 사건을 처음으로 고발하는 신문고 역할을 하고, 이미 알려진 사건을 순식간에 대중 속으로 확산시키는 증폭기가 되기도 하며,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는 토론의 장이 되기도 한다.
당국자도 떨게 만드는 중국의 인터넷 여론
그렇다면 중국은 어떨까? 우리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중국의 급속한 경제 성장과 과학 기술의 발전은 중국의 미디어 환경을 가히 혁명적으로 변화시켰다. 그리고 이것이 중국 사회의 내부 변화뿐만이 아니라 한중관계에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가 되고 있다.
현재 중국의 네티즌은 약 6억 2000만 명(2013년 12월 현재)에 달하고, 그중 스마트폰을 이용한 인터넷 사용자도 5억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중국인 두 명 중 한 명이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고, 그들 대부분은 스마트폰을 통해서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중국에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주요 사건을 보면 뉴미디어를 포함한 인터넷 공간에서 여론이 형성되고, 이렇게 형성된 여론이 현실 세계에서 실제적인 행동 변화를 유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명한 '궈메이메이'(郭美美) 사건도 그 중 하나다. 2011년 궈메이메이라는 젊은 여성이 중국판 '트위터'로 불리는 '웨이보'(微博)를 통해 자신이 소유한 명품들과 스포츠카는 물론, 51억 위안(약 8900억 원) 가량이 예치된 통장 잔고를 공개해 인터넷 공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이를 계기로 중국 정부는 여론에 떠밀려 그녀와의 관련성을 조사하기 위해 중국 적십자회(紅十字會)에 대한 수사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또 같은 해 원저우(溫州) 고속철 참사 당시에는 웨이보가 최초로 사고 소식을 외부에 알려 존재감을 높였고,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정부 당국의 무능함과 부패를 적극적으로 고발하면서 중국 정부를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난팡저우모>(南方周末) 신문사의 파업 사건과 베이징(北京)시 대기오염의 심각성, 보시라이(薄熙來) 재판 생중계, 공권력에 의한 노점상 구타 사건 등 민감한 정치적 사건이나 파급력이 큰 민생문제에서도 뉴미디어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중국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13년에 중국 국내에서 발생했던 1000대 사건 중에서 뉴미디어를 통해 처음으로 공론화된 사건의 비중은 전체의 63.4%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미 뉴미디어가 전통 미디어의 영향력을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국의 정부 당국자들 사이에서는 "현재 인터넷 여론은 민심에 직결돼 있고 권력기관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국가운명에도 개입하고 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중국 인터넷 여론의 '골든 타임'
그렇다면, 이렇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중국의 인터넷 여론은 과연 어떤 과정을 통해 형성되는 것일까?
상하이교통대학(上海交通大学) 연구팀이 2014년 중국의 36개 도시 108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웨이신(微信, 중국판 카카오톡)과 웨이보(微博, 중국판 트위터)가 중국 사회의 양대 정보원이 됐고, 이들이 인터넷상에서의 여론 형성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중국의 인터넷 여론은 웨이신을 통해 만들어진 특정 화제가 웨이보를 통해 확산되는 메커니즘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많은 사건이 웨이신을 통해 먼저 회자가 되면, 이것이 인터넷의 유력한 전파 수단인 웨이보를 거쳐 대량 확산되고, 이어 전통 미디어가 여기에 주목하면서 사회 전체의 여론장으로 확산되는 구조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또 재밌는 사실은 사회적으로 주목 받았던 특정 사건이 인터넷상에서 처음 거론된 후 신문이나 방송 등 전통 미디어가 이 사건을 다루기까지 평균적으로 약 45시간, 이틀이 걸린다는 것이다. 즉 특정 사건이 발생한 후, 이것이 더욱 여론화되는가, 아니면 조기에 수습되는가는 이틀 동안의 처리방식에 달려있다고도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중국의 인터넷 여론에 있어서 '골든 타임'은 이틀인 셈이다.
한중관계에도 중요한 변수로 등장
그런데 이러한 사실들이 우리들에게 중요한 이유는 외교적인 문제, 즉 한중관계와 관련된 문제도 이와 같은 메커니즘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양국관계는 총체적으로 양호한 상태에 있지만, 각종 돌발 사고와 고질적으로 잠재되어 있는 인식의 차이 등이 한중관계의 발목을 잡아 왔다. 서해 불법조업 단속 과정에서의 인명 사고나 강릉단오제와 동북공정을 둘러싼 역사 논쟁, 또 유명인의 민족 감정을 자극하는 발언 등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이런 일들이 발생하게 되면 이 역시 중국의 인터넷이라는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 인터넷 여론을 형성하고, 이것이 곧 중국 정부의 외교정책에도 압력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형성된 중국 인터넷에서의 반북 여론이 중국 정부로 하여금 유엔 대북제재에 동참하게 만든 압력으로 작용했다는 연구도 있다. 그렇기에 우리 정부는 물론이고 민간 차원에서도 중국의 인터넷 여론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이를 바탕으로 한 대응 매뉴얼을 잘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아야 할 일들이 생길 수도 있다. 공공외교의 차원에서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적극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통로로서 인터넷 공간을 십분 활용해야 함은 물론이다.
올해에도 한중관계에는 중국 네티즌들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사안들이 수두룩하다. 자칫하면 민족주의 정서를 자극할 수 있는 이어도(중국명 쑤엔자오, 苏岩礁)와 관련한 한중 해양경계획정 협상도 올해 본격적으로 재가동된다. 한·중 FTA 가서명과 양허내용의 공개도 이뤄질 전망이다. 또 중국이 대대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반(反)파시스트전쟁 승리 70주년' 기념행사에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할지 여부도 초미의 관심사다. 양국 사이에 산적한 현안을 풀어 가는데 있어 급변하는 중국의 미디어 환경을 고려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