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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스가 없었다면 중국도 한국처럼 분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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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장제스가 없었다면 중국도 한국처럼 분단됐다?

[프레시안 books] 조너선 펜비 <장제스 평전>

한국어 번역본에는 <장제스 평전 : 현대 중국의 개척자>(민음사, 2014년 12월 펴냄)라는 제목이 붙었지만, 이 책의 원래 제목은 'Generalissimo : Chiang Kai-shek and the China He Lost'로서, 굳이 직역하자면 '총통 : 장제스와 그가 잃은 중국' 정도가 될 것이다. 이 책을 관통하는 저자의 핵심 관점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것은 오히려 한국어 번역본의 제목이기는 하지만,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을 포괄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역시 원서의 제목이다. 저자 조너선 펜비는 장제스가 태어난 1887년부터 그가 중국공산당에 패하고 타이완으로 건너간 1949년까지를 분석 대상으로 삼고 있다. 장제스의 일대기를 중심에 두고 서술하면서도, 아울러 그때그때의 정치적 상황과 사회경제적 배경에 대한 설명을 곁들임으로써, 저자는 '장제스'와 '그가 잃은 중국'을 종합적이면서 논리적으로 풀어나갔다. 이런 면에서 이 책은 단순한 위인전의 성격을 넘어, 20세기 전반기의 중국 현대사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교재이기도 하다.

이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정상을 노리는 혁명가(1887∼1926)'에서는 장제스의 출생부터 그가 국민당을 장악하기까지의 시기를 다루고 있다. 장제스의 유년 시절을 포함하여, 청 말의 혁명 운동과 신해혁명, 중화민국 초기의 난맥상, 제1차 국공합작 등과 같은 굵직한 사건들이 서술되어 있다. 2부 '북벌 최고사령관(1926∼1927)'은 장제스가 광둥국민정부(廣東國民政府)의 군권을 장악하여 제1차 북벌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과정, 그리고 제1차 국공합작의 붕괴, 쑹메이링과 결혼 등에 관한 내용을 분석하고 있다. 3부 '난징 10년의 지도자(1928∼1937)'는 난징국민정부(南京國民政府) 시기의 경제적 성장과 정치적 혼선, 농촌 소비에트를 구축한 중국공산당과 벌인 대결 등을 다루고 있다. 또한 14장의 제목을 '난징 10년의 빛과 어둠'이라고 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난징 10년(Nanjing Decade)'의 성과와 그 한계에 대해서 균형 잡힌 시각으로 정리하고 있다. 4부 '항일 전쟁의 영도자(1937∼1944)'는 전적으로 중일전쟁 시기를 다루고 있다. 이 부분의 분량이 가장 많으며, 또한 저자가 가장 공을 들여 집필한 부분이기도 하다. 장제스의 전략과 지휘 방식의 문제, 일선 지휘관들의 무능과 부패, 전쟁의 참상, 전쟁 지원을 둘러싸고 미국(조지프 스틸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인도·버마·중국 전역 미군 사령관)과 벌인 갈등, 쑹메이링의 외교적 역할 등 장제스와 국민당의 '항전'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고려 사항들이 망라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5부 '중국을 잃어버린 개척자(1944∼1949)'에서는 중일전쟁 이후의 국공협상과 국공내전을 다루면서, 대륙에서 장제스의 마지막 행적을 분석한다.

장제스가 중국에 없었다면?

ⓒ민음사
이 책의 장점은 크게 세 가지 지점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첫 번째는 바로 평이한 서술 방식이다. 일반적인 평전이나 전기와 마찬가지로, 저자는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내용을 장제스와 그 주변 인물들의 행적을 현장감 있게 묘사하는 방식으로, 마치 전지적 작가 시점의 소설 한 편을 읽는 기분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서술하였다. 이 책은 다양한 자료들을 통해서 장제스뿐만 아니라 여러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행동을 서술함으로써 복잡하고 은밀한 사건의 내막에 접근하였고, 또한 전쟁과 자연재해의 파괴, 경제 정책 실패 등이 남긴 상처들에 대한 상세한 묘사를 통해서 당시 인민들의 고통을 독자 앞에 펼쳐 보인다.

특히 주요 사건의 흐름과 시대적 배경을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각 장은 당시의 정치적·사회적·경제적 상황에 대해 간단한 배경 설명을 한 후에 장제스 개인의 활동을 기술하는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이 책이 장제스 개인의 일대기뿐만 아니라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참고서가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약간의 흠결을 지적하자면, 본문 중간중간에 의미가 명료하지 않은 번역체 문장들이 등장하여 가독성을 조금 떨어트린다는 아쉬움이 있고, 중국 현대사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의 바탕이 부족한 데에서 오는 고유명사 번역의 오류가 일부 눈에 띈다는 점이다.

이 책의 두 번째 장점은 다양한 참고 자료에 있다. 저자는 당시 중국에서 발간된 중문 및 영문 신문, 장제스를 포함하여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의 회고록, 당시 서양인 기자 또는 외교관이 남긴 다양한 기록들을 주요 1차 자료로 활용하고 있으며, 또한 서구의 중국 현대사 학계의 대표적인 연구 성과들도 2차 자료로 활용하여 본문 곳곳에 반영하였다. 신문 기사와 같은 단편적이고 팩트 중심적인 자료들과 함께, 전문 연구자들의 종합적·분석적 시각을 반영함으로써, 이 책은 유명 인물에 대한 단순한 전기 기록이나 도덕적 포폄을 넘어서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다양한 인물들에 관한 기록은 다양한 시점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었고, 저자는 이러한 다양한 시점들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하여 나름대로 상당히 노력하고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저자가 참고한 자료들의 압도적 다수가 영문 자료에 편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중국 신문이나 타이완 중앙연구원 소장 자료들도 인용되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서술이 서구인들이 남긴 기록과 관찰, 중국에서 발행한 영문 신문, 영미 학계의 주류 연구 성과 등에 의존하고 있다. 전문 역사학자가 아닌 영국인 저자에게 기대해서는 안 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다른 나라들의 연구 성과까지는 아니더라도 중국의 자료나 연구 성과는 더 폭넓게 활용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역사학을 기본으로 하는 연구에서, 연구자가 의존하는 자료의 성격은 그의 시각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끼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꼽을 수 있는 장점은 저자의 균형 잡힌 관점에 있다. 비록 참고한 자료들이 대부분 서구인들의 기록 및 분석이지만, 펜비는 친(親)·반(反) 장제스 성향의 인물들이 남긴 기록들을 골고루 활용함으로써, 장제스에 대한 긍정 또는 부정 일변도의 서술을 지양한다. 장제스 개인에 대한 묘사에서 저자는 그의 괴팍하고 신경질적인 성격, 간언을 용납하지 않는 독선적 자세 등을 지적하면서도, 동시에 그의 성실성과 청렴함도 부각한다. 한 인물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함께 드러내는 이러한 서술 방식은 장제스뿐만 아니라 쑹메이링, 쑹쯔원, 왕징웨이, 후한민, 펑위샹, 장쉐량, 조지프 스틸웰, 클레어 셔놀트 등 이 책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에 대한 묘사에도 모두 적용된다.

또한 본론에서 저자는 장제스와 국민정부가 이룩한 전국 통일 및 경제 근대화의 한계, 국민당의 부정부패, 일반 서민들의 곤궁 등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면서도, 에필로그에서는 '장제스가 없었다면?'이라는 물음을 던지면서 그의 역사적 기여를 높이 평가한다. 장제스가 없었다면 20세기 전반기 중국에서는 군벌 혼전의 '봉건 할거 국면'이 지속되었을 것이고, 제2차 국공합작을 이끌어낸 1936년 시안사건에서 그가 죽었다면 2차 세계대전의 역사도 완전히 뒤바뀌었을 것이며, 그가 미국의 압력에 굴복했다면 중국은 양쯔강을 경계로 나뉜 분단국가가 되었을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이러한 서술 방식과 관점을 통해서 이 책은 독자들로 하여금 장제스와 국민정부의 공(功)과 과(過)를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장제스의 시대와 21세기 중국…'정상 경로로 회귀'라는 시각의 위험성

종합하면, 다양한 성격의 자료들을 토대로 장제스에 대한 균형 잡힌 관점을 평이한 문체로 서술한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자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방식의 서술에는 한 가지 중요한 문제점이 있는데, 이는 곧 저자의 독자적인 해석이나 관점을 드러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다양한 관점과 평가를 종합하여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서술하는 것만으로도, 한 인물에 대한 평전으로는 충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 기초적인 배경지식을 갖고 있으면서, 장제스라는 인물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기대하는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그런데 펜비는 본론의 이러한 단점을 에필로그를 통해서 완전히 극복한다. 에필로그에서 펜비는 장제스와 그의 치세에 대한 부정적 평가들을 인정하면서도, 그의 '실패'가 초기의 '성공'을 불식시켜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뿐만 아니라, 국민혁명과 그에 이은 초기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전쟁과 자연재해가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장제스와 국민정부에게는 새로운 국가를 건설할 시간적 여유나 정치적·경제적·사회적 토대가 허락되지 않았다는 것이 저자의 관점이다. 장제스의 패배와 마오쩌둥의 승리는 결코 '역사적 필연'의 결과가 아니었으며, 장제스와 국민당 자체의 과오, 그리고 시대적 상황의 제약에서 비롯했다는 것이다.

펜비의 가장 독자적인 해석은 에필로그의 마지막 세 페이지에서 그가 장제스의 시대와 21세기 중국을 비교하는 것에서 두드러진다. 그는 오늘날의 중국에서 장제스 치하의 20년을 읽어낸다. 일당독재라는 비민주적 정치 제도 아래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 연해 도시 지역과 내륙 농촌 지역 사이의 격차 확대, 국제 사회와 연계 강화, 고위층의 부패, 공중도덕 강조 등은 장제스 치하의 중국과 21세기 초의 중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며, 이런 점에서 펜비는 장제스의 시대를 '포스트 마오쩌둥 중국의 전조(前兆)'라고 평가하였다. 나아가 이 두 시기를 1949∼1976년의 마오쩌둥 치하의 '악몽'과 대비하면서, '훨씬 더 정상적인 국가'의 길로 접어든 것으로 규정하였다. 펜비의 논리에 따르면, 마오쩌둥 시기의 중화인민공화국은 '정상적'인 발전 경로에서 이탈한 시기이며, 개혁·개방 이후에 이르러서야 중국은 장제스 시기의 '정상적'인 발전 경로로 회귀한 것이 된다.

마오쩌둥 시기의 중국에 대한 평가는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므로 논외로 하지만, 과연 펜비가 말하는 '정상적인' 발전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서 그가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것이 '영미식 정치 개혁과 자본주의 발전의 길'임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의 이러한 인식은 그가 본문 곳곳에서 쑹쯔원에 대해서 상당히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펜비가 묘사한 쑹쯔원은 미국에서 고등 교육을 받은 행정가로서, 국민당 내에서 합리적 재정 개혁을 주도하면서, 동시에 장제스 중심의 독재 구도에도 도전한 인물이다. 그의 어마어마한 축재에 대해서도 간략히 언급되어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펜비는 쑹쯔원을 장제스의 시대가 '정상'의 길에 더 근접하게 만들 수 있었던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자본주의 경제의 확대와 산업화, 국제적 교류의 확대, 그리고 이에 수반되는 민주주의적 정치 개혁의 추진 등을 '정상적인' 국가 발전의 경로로 전제하는 것은, 사실 펜비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서구 중심적 관점에서는 널리 공유되고 있는 인식이다. 신자유주의의 세계적 확장 속에서 사회주의 또는 '제3의 길'에 대한 모색이 힘을 잃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펜비가 '정상적인' 발전 경로에 근접한 시기라고 평가한 장제스 시기의 중국에서도 수많은 중국인이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 이는 다른 어느 곳보다도, 그가 그토록 생생하게 묘사한 이 책의 본문에서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다.


방대한 일기를 반영할 수 없었던 점은 아쉽다

마지막으로, 장제스의 일기에 대해 한마디 첨언하면서 서평을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펜비도 지적했듯이, 장제스는 거의 매일 일기를 작성하였고, 매주 그리고 매월 일기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면서 평가하고 분석하였다(403∼404쪽). 1917년부터 기록한 장제스의 일기는 1972년까지 작성되었고, 이 방대한 양의 일기는 2005년에 그 후손들에 의해 미국 스탠포드대학의 후버연구소에 기증되었다. 후버연구소는 그 이듬해부터 장제스의 일기를 공개하였고, 이로 인하여 이전까지는 부분적으로만 확인할 수 있었던 일기가 비로소 그 전모를 드러내게 되었다.

물론 장제스 같은 사람이 과연 일기를 솔직하게 기록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충분히 의심해볼 여지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제스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 그의 일기가 무엇보다 중요한 자료가 된다는 것은 자명하다. 한국의 배경한 교수는 이 일기 자료를 통해서 '기독교인으로서 장제스'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장제스를 분석하기도 하였다(배경한, '장개석과 기독교 : 일기에 보이는 종교 생활', <중국근현대사연구> 41, 2009).

안타까운 것은 펜비가 이 책을 집필한 시점이 아직 일기가 공개되기 전인 2003년이었다는 점이다. 물론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저자는 다양한 자료들을 참고함으로써 장제스를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데 성공했고, 그 자체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일독할 가치가 있다. 다만 이 책이 집필된 이후에 공개된 장제스 일기를 반영할 수 없었다는 점은, 필자뿐만 아니라 저자 본인에게도 아쉬움으로 남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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