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헷갈리는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 원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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헷갈리는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 원칙은?

[황재옥 칼럼] 통일부 장관 신년 인터뷰, 고단수 전략? 속 빈 강정?

새해를 맞으면 사람들은 으레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각오를 다진다. 국가도 예외가 아니다. 국가 차원의 새해 계획과 정책방향은 대개 해당 분야 장관의 신년 인터뷰에 담겨 있다. 그래서 장관이 어떤 표현을 쓰는지, 어떤 계획을 발표하는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새해 초 그들의 생각과 계획을 들어보면, 국민들은 작년보다는 좀 더 맘 편히 살 수 있을지, 아니면 삶이 더 고달파질지 대충 감이라도 잡을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필자는 지난 1월 25일 자 <연합뉴스>에 실린 류길재 통일부 장관의 인터뷰 기사를 유심히 읽었다.

그 인터뷰는 아마도 1월 19일 금년도 통일부의 대통령 업무보고에 대한 백그라운드 브리핑 성격을 띤 자리였던 것 같다. 류 장관은 대북전단 살포, 남북대화 재개,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관광 재개,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해 폭넓게 정책 방향을 설명했다. 그런데 필자의 식견이 짧고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금년도 통일부가 하려는 일이 뭔지, 남북관계가 작년보다 좀 개선될 가능성은 있는지에 대해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헷갈리는 대목도 많았다.

▲ 지난 19일 통일부, 외교부, 국방부, 국가보훈처 합동 업무보고를 받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

첫째, 현재 북한이 우리 정부더러 막아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전단 살포 문제에 대해서 류 장관은 아리송한 답변을 했다. "정부 입장에서는 기본적인 원칙을 견지해 나가면서 동시에 원칙에만 얽매여 있을 수는 없다"고 했다. 그리고는 "전단문제는 접경지역 주민들이 굉장히 위협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최근에 그런 부분을 좀 더 많이 생각하고 있다"고도 했다.

원칙을 견지해 나가면서 동시에 원칙에만 얽매어 있을 수 없다는 건가? 아니면 원칙을 지키겠다는 건가? 그것도 아니면 융통성 있게 하겠다는 건가? 정부 내 다른 부처는 몰라도, 적어도 통일부만큼은 전단 살포를 적극적으로 막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단체들에게 그런 일 하지 말아 달라고 사정은 해보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헷갈리지 않을 수 없다.

둘째, 지난해 12월 29일 정부가 제안한 통준위-통전부 차원의 남북당국대화 제의에 북한이 답을 안 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통일부 장관은 우선 "우리가 대화 이니셔티브를 잡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쉽게 답을 안 주고 있다"고 했다. 또 "우리 측의 대북제안에 허를 찔렸기 때문에 북한이 대화에 호응을 안하고 있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그러면서 "북한이 우리 제의를 쉽게 받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까지 붙였다.

그러면 정부는 북한이 쉽게 대화에 호응해 나오지 못 할 것을 알고서도 작년 연말에 그런 제안을 했다는 건가? 기자가 "추가 조치 계획은 없는가"라고 묻자, 류 장관은 "북한이 우리가 제안한 것을 거부하진 않았다. 지금으로선 정부가 뭘 할 것인가 보다는 북한이 우선 답을 주는 게 순서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북한은 이미 김정은 신년사에서 우리 정부가 지난 해 말 제안한 통준위-통전부 차원의 대화에 대해서 답을 했다고 본다. 신년사에서 통준위-통전부 대화는 언급하지 않고, 대신 고위급 접촉 재개-부문별 회담-북남 최고위회담을 역제의하는 방식으로 답을 했다고 본다. 통일부 장관은 북한이 답을 안 하고 있으나 통준위-통전부 대화 제의는 아직 살아있다는 투로 말하면서, 북한이 답을 할 차례라는 걸 분명히 했다. 그러면 류 장관은 언제까지 그 답이 오기를 기다릴 것인가? 그리고 그 답이 올 때까지는 아무것도 안 할 것인가?

셋째, 이산가족 상봉문제에 대해서도 류 장관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상봉하면 뭘 주고 하는 식의 공식처럼 자리 잡았던 것들이 최근에 와서 상당히 깨졌다. 그런 식의 대가가 아니라 큰 틀에서 남북관계의 발전과 연계를 해서 일을 한다면, 그런 식의 정도를 갖고 일을 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북한의 대남전략이나 내부현실을 감안할 때 대가 없이 명분만 앞세워서 과연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 사업에 협조하도록 만들 수 있을까?

이산가족 상봉 문제가 우리에게는 인도주의 문제고 민족의 체면 문제이지만, 북한에게는 그렇지 않다. 대내적으로 복잡한 정치문제고 체제문제다. 남북 간 체제와 국력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이산가족 상봉 행사장 아닌가? 정부가 이산가족 상봉 사업을 성사시키고 싶으면, 민족의 체면 문제니 '큰 틀의 남북관계'니 하는 공허한 얘기를 하기 보다는 실질적으로 북한에 체제부담을 상쇄할만한 이득이 되는 카드를 들고 협상을 해야 한다. 그게 아니면 이산가족 상봉이 설사 성사된다하더라도 단발성에 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현 정부가 이전 정부와 차별화하고 싶은 욕망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차별화 한답시고 방법이 아닌 걸 들고 일을 하겠다고 하면 그건 결과적으로 어리석은 일이 되고 말 것이다.

넷째, 금강산관광 재개 문제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재개할 수 있다고 전제해 놓고서도 두 가지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먼저 "금강산 관광 사업은 박왕자 씨 사건으로 인해 빚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 문제에 대해 남북 간 대화를 통해 풀어야 할 게 있다"고 해놓고, 다시 "금강산 관광이 재개됐을 때 현재 유엔의 대북제재 규정과 딱 일치하는 부분들이 분명히 드러나 있진 않기 때문에 그건 유엔 안보리에서 판단을 경청해야 한다"고 했다.

류 장관은 5.24조치 문제는 거론하지 않는 대신 유엔 대북 제재 관련 얘기를 했다. 금강산 관광 대가를 현금으로 지불하는 문제가 "유엔 대북제재 규정에 분명히 드러나 있지 않기 때문에 안보리에 물어 봐야 한다"고 해놓고서는 "(남북간에) 얘기도 이뤄지지 않았는데 안보리가 의견을 줄 리도 없거니와 물어보기도 그렇지 않나?"라고 반문까지 했다.

도대체 류 장관은 금강산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겠다는 것인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이 남북대화에서 박왕자 씨 총격에 대한 시인·사과·재발방지 등 우리 측 요구를 다 들어 주어서 금강산 관광이 본격 재개되려고 할 때 안보리에 물어봤더니 유엔 제재결의에 저촉된다고 하면 그 때 금강산관광 재개 합의는 그냥 없던 일로 하겠다는 것인가?

다섯째, 지난 1월 19일 통일부 업무보고 때 대통령이 "북한이 대화에 나올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하라"고 지시한데에 대한 후속조치가 이루어지고 있느냐는 질문에 류 장관은 "그만큼 대통령께서 남북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한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조치를 취하라고 한 말씀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대통령이 말한 '호응할 수 있는 여건 마련'에 부응할 수 있을지 생각을 하고 있다"고 했다.

깐깐한 박 대통령의 지시가 '구체적으로 조치를 취하라는 말씀'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호응할 수 있는 여건 마련'에 부응할 수 있을지 생각을 하고 있다? 이렇게 대통령과 장관이 의사소통이 안 될 수 있는가? 박근혜 대통령이 대면보고를 안 받았기에 망정이지, 만약 대면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이런 식으로 말했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까? 대통령이 통일부 장관에게 뭐라고 코멘트를 했을까?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이 이외에도 알듯 모를 듯한 얘기들, 아리송한 얘기들이 나왔다. 한마디로 고승의 선문답 같기도 하고 속 빈 강정 같기도 했다. 고단수의 대북 교란전략 일지도 모른다는 뜬금없는 생각도 들었을 정도이다.

"남북 철도·도로가 연결돼 물류 이동이 되면 북한은 통과료 같은 걸 얻게 되고, 철도 개보수 작업이 이뤄진다면 북한 경제에도 엄청나게 큰 이득이 올 수 있기 때문에 북한이 비핵화로 가야한다는 것을 설득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라고 말한 대목에서는 류 장관에 묻고 싶은 질문이 생겼다. 발생한 지 24년이 넘은 북핵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는지, 6자회담은 왜 성과를 못 냈고 다시 재개도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싶어졌다. 그리고 남북회담장이나 6자회담장에서 북한 대표가 이런 얘기를 듣고 난 뒤 어떤 표정으로,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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