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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맘-워킹맘 갈라치기, 무상보육 철회 수순밟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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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맘-워킹맘 갈라치기, 무상보육 철회 수순밟기"

[좌담] "어린이집 학대, 부모 노동조건 개선해야 해결 가능"

"보육대책이 보육에만 집중되는데, 사실 부모들의 노동조건이 개선되지 않는 한 보육 문제는 해결될 수가 없다."

김호연 공공운수노조보육협의회 고충상담센터장이 말했다. 김호연 센터장은 "아주 상식적인 문제인데 정책 입안자가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덧붙였다. "대한민국은 맞벌이가 아니면 살 수가 없는 구조"이고, 부모는 늘 출퇴근 자체가 전쟁인데 그 구조를 고치지 않고 어떻게 아이들의 보육 환경을 개선할 수 있냐는 것이다.

보육 교사로 일한 기간이 15년, 현장을 떠난 이후에도 보육 운동을 계속하고 있는 김호연 센터장은 "(어린이집의 현실을 개선하려면) 부모인 노동자들이 진짜 하루 8시간 근무만 해야하고, 육아휴직도 상시화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진석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부모 참여를 위해 운영위원회, 모니터링단 등을 하겠다지만, 부모들이 어린이집에 관여하지 못하는 가장 큰 문제는 부모의 근로조건"이라며 "운영위원회에 참여하라고 해도 갈 수 있는 부모가 별로 없지 않냐"고 지적했다.

김진석 교수는 "그럼 정부는 '지원도 해준다는데 왜 운영위원회, 모니터링단이 안 되냐'면서 '부모들이 못 하는 거 아니냐'는 주장을 펼 것이고, 결국 또 책임은 다시 부모에게 간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지금 내놓는 대책들을 보면, 정부 책임은 죄다 빠져 있다"고 덧붙였다. "일종의 '분할 통치 전략'을 보육 정책에서도 펴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CCTV 설치로 어린이집 교사와 부모를 갈라놓고, 전업맘의 가정보육을 유도하겠다며 전업맘과 워킹맘을 갈라놓고, 참여를 유도한다는 명분으로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부모와 먹고 살기 바쁜 부모를 갈라놓는 게 정부 대책의 전부란 것이다. 인천 송도 어린이집 학대 사건에서 시작된 정부의 움직임 어디에도 정부 스스로의 책임을 강화하는 대목은 없다.

참여연대가 27일 개최한 보육 관련 긴급 좌담회 '행복한 보육은 어디에'에서 나온 지적들이다.

"CCTV 설치, 부모와 교사 사이에 '상호감시체계' 도입하잔 얘기…현장은 더 황폐해질 것"

이날 좌담회에는 전문가 2명, 부모대표 2명이 나와 보육 관련 여러 이슈들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격식 없이 털어놓았다. 전문가 대표 2명을 포함해 사회를 본 김남희 참여연대 노동복지팀장까지 마이크를 잡은 5명이 모두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어서, 부모들이 겪고 있는 현실적 고충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이들은 모두 "이제라도 제대로 된 보육정책이 자리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아동학대 사건이 처음도 아니고,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만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지금이야말로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적기 아니냐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내놓는 정책들은 그 근본 대책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는 지적이 곧이어 나왔다.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서 10살, 7살 두 아이를 키우는 전업맘 임정희 씨는 "이쪽 분야 전공자도 아니지만 너무 즉흥적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진석 교수도 "정부에서 나올 것이라 예상한 대책이 반복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대표적인 것이 CCTV(폐쇄회로) 설치 의무화다. 보육 교사 출신인 김호연 센터장은 CCTV 설치 얘기가 처음 나온 것이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5년의 일"이라고 말했다.

부모들은 "근본 대책은 아니지만 설치 자체에는 찬성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전업맘 임정희 씨는 "물론 아동학대를 예방할 대안이라고 하기에는 최하위 점수지만 설치에는 찬성한다"고 말했다. "보육 현장은 교사의 사적 공간은 아니고 아이를 돌보는 공적 공간이라고 본다"는 이유였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16살, 9살, 6살의 세 아이를 키우는 아빠 홍인기 씨도 "CCTV 설치가 상습적 폭력에 길들여진 몇몇 교사들을 견제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고 말했다.

걱정의 목소리도 물론 함께였다. 찬성 의견을 피력한 임정희 씨는 "CCTV가 있어도 아동학대는 벌어진다"며 "결국 규제보다는 문턱을 열어야 한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홍인기 씨도 "교사의 스트레스 총량을 줄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주로 반대 목소리였다. 김진석 교수는 "CCTV 설치는 부모와 교사 사이의 상호 감시체계를 도입하는 것이고, 결국 그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라는 메시지"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아동학대 대책이 아닐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보육 현장이 황폐화될 것"이라 우려했다.

김호연 센터장은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이 통과된다 해도 민간 어린이집은 다 '반사'할 것"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김 센터장은 "수원의 한 어린이집 원장에게 받은 제보"라며 "공무원들이 민간어린이집연합회에 협조공문을 보내 민간 어린이집 원장들에게 빌고 있다고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금은 연합회가 가만히 납작 엎드려 있지만 민간 어린이집은 사유권 침해 부분에서 소송이 걸릴 수 있는 만큼, 정부도 앞에서는 '설치 의무화' 큰소리를 쳐도 뒤에서는 시설연합회에 빌고 있는 형국"이라는 얘기다.

▲인천 송도 어린이집에서 아동 학대 사건이 발생한 이후, 어린이집 문제가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연합뉴스


"전업맘-워킹맘 갈라치기, 무상보육 철회를 위한 수순밟기다"

아동학대 방지 대안으로 '가정 보육을 유도'한다는 것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이른바 '전업맘, 비취업맘'이라고 불리는 여성들이 과연 "일하고 싶지 않아서 집에서 애만 보고 있냐"는 비판이 제일 먼저 튀어 나온다.

본인 역시 7살, 4살 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인 김남희 팀장은 "우리나라의 '비취업맘'이 진정 자발적인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첫째 아이 임신 전부터 출산 후까지도 학원에서 일을 했던 임정희 씨도 "일 하고 싶어도 아이 임신하고 육아를 하다 보면 일을 할 수 없는 환경에 있는데 그런 환경을 개선할지 근본 대책은 없다"고 비판했다.

세 아이를 키우며 지난 한 해 연구년을 얻어 '전업'으로 아이를 돌봤다는 홍인기 씨는 "그런 말을 하는 (문형표 장관은) 분명히 가사노동을 안 해 본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홍 씨는 "바우처 제도로 가는 것이 맞다고 본다"며 "집에서 아이를 키우면 지원금이 적은데 왜 차등을 두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가정보육을 확대하고 '전업맘'들에게는 시간제 보육을 활성화하겠다는 대안이 결국 "무상보육의 철회를 위한 수순 밟기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김진석 교수는 "0-3세 가정보육 유도는 일단 아동학대 대책과 아무 관련이 없는 문제"라고 선을 그은 뒤, "최근의 흐름을 보면 아동학대에서 시작된 일련의 흐름이 보육의 공공성에 대한 세력 다툼으로 진화하는 양상"이라고 분석했다. 즉, "'무상보육'이라는 제도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전업맘-워킹맘을 나누는 순간, 보육의 사회화라는 아젠다는 후퇴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정부와 보수언론 등은 이미 칼날을 무상보육으로 돌리고 있지만, 김호연 센터장은 "엄밀히 말하면 우리나라는 아직 진정한 무상보육을 실현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국공립도 대부분 민간에 위탁하니 사실 어린이집의 99%가 민영으로 운영되고 있고, 어린이집의 질을 평가하는 평가인증기관도 위탁 받은 민간 기관이며, 보육정책연구소도 사설기관인 현실"에서 국가가 주도하는 보육 정책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란 얘기다.

막대한 예산만 쏟아부을 뿐, "민영으로 운영되는 시설에 대한 관리감독은 하나도 되지 않는 시스템"인데, "보육 환경에 대한 불신"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도 '무상보육'으로 그 원인을 돌리는 것은, 결국 시스템을 바꿀 생각은 없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99% 민영화된 어린이집, 정부는 그들과 싸울 준비가 돼 있나?

어린이집 문제 해결에 있어 가장 손쉽게 내놓을 수 있는 대안은 홍인기 씨의 지적대로 "국공립 어린이집 확대"다. "제일 간단한 대안"이다. 그러나 김진석 교수는 "지금과 같은 민간위탁 구조에서는 국공립 자체가 질을 담보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결국 "위탁구조에 대한 근본 성찰이 동반돼야 한다"는 얘기다.

성찰과 동시에 조금씩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 김 교수는 "보육교사의 처우개선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선결과제는 교사의 신분 보장인 것 같다"고 토로했다.

김 교수는 "보육교사 임용이 완전히 사적인 영역에서 이뤄지는 상황에서 절대 아동학대, 내부비리를 내놓고 얘기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김 교수는 "사적 영역에 맡겨진 보육교사 임용 구조를 공공의 영역으로 가져오자"고 제안했다.

보육 현장 출신의 김호연 센터장도 "보육교사 처우 개선은 노조가 알아서 할 문제지만, 보육환경의 변화는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김 센터장은 "교사의 휴게시간 보장, 임금체계 일원화, 초과보육 금지, 원장의 자격강화" 등을 당장 바꿀 수 있는 대안으로 내놓았다.

가뜩이나 OECD 평균(교사 1명당 14.3명)보다 교사 1명당 학생수가 많은데(교사 1명당 17.5명), 초과보육이 이뤄지면 1명의 교사가 돌봐야 하는 아이들은 더 늘어난다. 당연히 '보육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주로 이런 '초과보육'은 민간 어린이집에서 많이 일어난다.

교사처우도 민간이 훨씬 열악하다. 처우개선을 말하지만, 현재 민간 어린이집 원장들은 보건복지부가 내놓는 보육교직원보수기준도 지키지 않는다. 김호연 센터장은 "최저임금만 주는 곳이 많다"고 밝혔다. "지금 정해진대로만 주라고 해도 민간 원장들은 어린이집 다 망한다며 바로 집회할 것"이라고 김 센터장은 말했다.

결국은 '원장님들', 즉 민간어린이집연합회와 정부가 맞설 준비가 돼 있는지의 문제인 셈이다. 정부 대책 어디에도 그런 '정면승부'의 결심은 묻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어린이집 문제가 달라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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