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찬바람이 부는 날, 생태 한 마리에 송송 썬 무와 고춧가루를 넣고 팔팔 끓인 생태찌개가 간절하다면 신중하게 생각해볼 일이다. 남획이나 기후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한 그날 이후 명태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우리 밥상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세슘 검출된 명태 등 수산물
지난해 12월 2일 '시민방사능감시센터'는 국내 유통 수산물의 방사능 오염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시민방사능감시센터에 따르면 고등어, 명태, 대구 등 시중에 판매 중인 국내산 및 수입산 수산물 11개 품목, 150개를 구입해 방사능 분석 검사를 진행했다. 분석방법은 원재료 1킬로그램 내외를 분쇄하고 고순도 게르마늄 감마핵종분석기를 통해 1만 초로 분석을 했다. 분석시간에 따라 검출 한계 농도가 달라지는데 1만 초 분석은 식품의약안전처가 진행하는 8000초 분석보다 낮은 농도의 핵 분석도 가능하다. 이번 조사에서 일본산으로 표기된 수산물은 시중에서 구할 수 없어 제외됐다.
검사 결과 150개 수산물 중 10개 수산물에서 세슘 137이 검출됐다. 세슘 137이 검출된 수산물은 러시아산 명태 3개, 러시아산 명태곤, 미국산 명태알, 국내산 고등어, 노르웨이산 고등어, 러시아산 대구, 국내산 다시마 등이다. 특히 명태(부산물 포함)는 분석시료 중 10퍼센트가 넘는 시료에서 세슘이 검출됐다. 이에 대해 시민방사능감시센터 김혜정 위원장은 "우리 식탁에 올라오는 명태는 보통 8년을 바다에서 지내다 잡혀온 것들이다. 명태는 치어 때 북해도에서 보내다가 성어 때 올라간다. 일본산이든 러시아산이든 방사능에 오염될 우려가 높다"고 설명했다.
원산지별로는 국내산 수산물(2.7퍼센트(%))보다 수입산 수산물(10.7퍼센트)에서 검출 빈도가 높았다. 특이한 점은 이번 조사에서 세슘이 검출된 수산물은 모두 대형마트에서 구입한 것들로 시장에서 구입한 수산물에서는 세슘이 검출된 시료가 한 건도 없었다는 점이다.
이번에 검출된 세슘 137은 핵발전 연료로 쓰이는 우라늄이 핵분열 했을 때 발생하는 방사성 물질의 하나로 자연계에서는 존재하지 않고 핵실험이나 핵발전소 사고 때 대기나 바다, 토양을 오염시키는 대표적인 방사능 오염 물질이다. 세슘 137은 인체에 침투하기가 쉬우며 소화기관이나 근육 등에 영향을 주어 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조사에서 검출된 양은 정부가 기준치로 정한 1베크렐(Bq)을 넘지 않았다. 하지만 체르노빌 사고 이후 주민의 내부 피폭을 조사해온 반다제프스키 박사는 체내의 세슘 137에 의한 방사능 노출은 저선량에서도 위험하다고 밝힌 바 있다.
시민방사능감시센터 이윤근 소장은 "2013년에 진행한 조사에서도 명태, 고등어에서 방사능 물질 검출빈도가 높고 수입산이 국내산보다 검출률이 높았다"며 "낮은 농도이긴 하지만 수산물에서 꾸준히 (방사능 물질이) 검출되고 있다. 1베크렐 이하의 검출은 고착화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 소장은 "우리의 수산물 정책이 일본산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번 결과에서 보듯 러시아산이나 기타 국가의 수산물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방사능 오염 밥상 방치하는 정부
방사능 오염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정부는 이와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당장 정부는 후쿠시마 주변 8개 현 수산물 금지 조치를 재검토하고 있다. 일본의 WTO 제소 가능성을 제기하며 수입 재개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지만 중국, 러시아, 대만 등은 우리보다 더 강력한 규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비춰볼 때 정부의 주장은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무엇보다 일본 상황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12월 2일 한일 식품 방사능오염과 영향에 관한 공동토론회에 참석한 일본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에 따르면 2014년 11월 25일 현재 처리하지 못한 고농도 오염수는 총 41만 1898세제곱미터(㎥)로 여기에 지하수가 계속 흘러들어오고 있어 매일 300톤(t)의 오염수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 정부는 최근 오염수를 정화해 삼숭주소만 방출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일본 내부에서조차 그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현재 핵발전소가 어떤 상황인지에 대한 정보가 없다는 것이다. 일본 시민방사능감시센터에서 활동하는 아오이 가즈마사 씨는 "아베 정권이 제정한 특정비밀보호법이 12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특정비밀의 누설뿐 아니라 미수, 공모, 교사 등도 엄벌의 대상이다. 이 법에 따라 후쿠시마 핵발전소 상황 등이 특정비밀로 취급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앞으로 일본의 핵발전소 오염 상황이 은폐될 위험이 높음을 예고한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일본 정부가 제공한 자료를 토대로 수입을 재개할 뜻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민간위원회를 구성해 수입 재개 검토를 위한 논의를 추진한 후 결정하겠다고 하지만 위원 대부분이 원자력 관계자와 관련 공무원들이라 짜인 각본대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방사능 검출된 국내 원전 주변
우리 밥상을 위협하는 것은 일본만이 아니다. 시민방사능감시센터가 지난해 4월부터 10월까지 6개월간 고리, 영광, 월성, 울진 핵발전소 반경 5킬로미터(km) 이내 토양과 해조류, 어류 등을 수거해 방사능 분석을 진행한 결과 분석시료 59개 중 12개 시료에서 세슘과 요오드 131이 검출됐다. 고리 원전 1호기 배수구에서 1.3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수거한 숭어에서는 세슘 134와 세슘 137이 각각 1.75베크렐, 4.88베크렐이 검출되기도 했다. 이 외에도 고리원전 주변 해초와 다시마, 모래에서는 세슘과 요오드가 검출됐고 울진원전 주변 토양과 해초, 월성 원전 주변 모래, 영광원전 주변 토양에서도 세슘 137이 검출되는 등 원전 주변의 토양과 해조류의 방사능 오염이 확인됐다. 이윤근 소장은 "요오드-131은 자연반감기(8일)가 짧아 상시적인 오염 가능성을 추정할 수 있는 지표물질이다. 상시적으로 방사능 오염수가 방출되고 있다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새정치민주연합 정호준 의원실에 따르면, 국내 원전에서 지난 10년간 배출한 방사능 폐기물은 기체방사능 3514.6조 베크렐, 액체방사능 2400.1조 베크렐 등 약 6000조 베크렐이다. 이들 방사능 폐기물은 토양과 대기, 바다로 그대로 방출됐다.
하지만 한국수력원자력과 정부는 국내 원전으로 인한 방사능 오염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다. 원전주변 해산물과 해조류에서 방사성물질이 검출되는 것은 과거 핵실험과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여파 때문이며 원전에서 배출되는 액체, 기체 방사능물질은 기준치 이하이기 때문에 환경과 건강에 영향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한 밥상을 위해
한때 국민의 생선이라 불리던 명태는 후쿠시마의 그날 이후 남획과 기후변화에 이어 방사능 오염으로 우리 밥상에서 멀어지고 있다. 명태뿐이겠는가. 김혜정 위원장은 당장 모든 일본산 식품, 표고버섯과 야생버섯류, 고사리, 녹차류, 명태, 명태 내장류, 숭어, 참치 등을 아이들 밥상 안전을 위해 조심해야 할 식품으로 꼽았다.
방사능으로부터 우리의 밥상을 지킬 수는 없을까. 시민방사능감시센터는 당장 안전한 밥상을 위해 후쿠시마 주변 8개 현 수입재개 시도를 중단하고 일본산 식품 수입 시 중국, 러시아, 대만 등 주변국가 수준으로 수입 규제를 강화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일본산 외 식품 전반에 대한 방사능 검사 확대 및 시중 유통 기준 강화, 모든 식품에 대한 방사능 검사시간 및 검출 기준 강화, 스트론튬 90과 플루토늄 239 검사 및 결과 공개, 방사능 오염 우려가 높은 식품 섭취 제한 가이드라인 제시 등을 제안했다. 또한 국내 원전 주변에서 방사능 오염이 확인된 만큼 국내 원전에서 배출되는 액체 및 기체 방사능 폐기물 총량제를 실시하고 온배수를 이용한 농수산물 생산 및 온배수 앞 낚시 및 해수 담수화 추진 중단, 원전주변 주민 갑상선암 역학조사 실시 등을 요구했다.
* 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 <함께 사는 길>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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